동몽선습
■ 수편(首篇)
천지 사이에 있는 만물의 무리 가운데에서 오직 사람이 가장 존귀하다.
천지 사이에 있는 만물의 무리 가운데에서 오직 사람이 가장 존귀하다.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오륜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맹자께서는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는 친애함이 있어야 하며,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리가 있어야 하며,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하며,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어야 하며, 친구 사이에는 신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이면서 오상(五常)이 있음을 알지 못하면 짐승과의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며, 임금은 신하에게 의리를 지키고 신하는 임금에게 충성하며, 남편은 가족을 화합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며, 형은 동생을 사랑하고 동생은 형을 공경하며, 친구 사이에는 인(仁)을 도와준 뒤에야 비로소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 부자유친(父子有親)
부모와 자식은 하늘이 정해준 친한 관계이기 때문에 〈부모는〉 자식을 낳아서 기르고 사랑하고 가르쳐야 하며, 〈자식은〉 부모를 받들어 부모님의 뜻을 이어가고 효도하면서 봉양해야 한다.
이 때문에 〈부모는〉 자식을 올바른 도리로 가르쳐서 부정한 곳에 발을 들여 놓지 않게 해야 하며, 〈자식은〉 부모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려서 고을에서 죄를 얻지 않게 해야 한다.
만약 혹시라도 부모이면서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식이면서 자기 부모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세상에서 자립할 수 있겠는가.
비록 그렇지만 천하에는 선하지 않은 부모가 없는지라 부모가 비록 자식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자식은 효도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옛적에 위대하신 순임금이 아버지는 완악하고 어머니는 모질어서 일찍이 순을 죽이려 하거늘 순은 효도로써 화합하고 끊임없이 다스려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셨으니 효자의 도리가 여기에서 지극하였다.
공자께서는 “오형(五刑)에 해당하는 죄목이 삼천 가지이지만 그 중에서 불효보다 더 큰 죄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 군신유의(君臣有義)
임금과 신하는 하늘과 땅처럼 분명히 구분되는 관계이다.
임금은 높고 귀하며 신하는 낮고 천하니 존귀한 이가 비천한 이를 부리고 비천한 이가 존귀한 이를 섬기는 것은 천지간의 어디에나 통용되는 도리이며 예나 지금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의리이다.
이 때문에 임금은 원(元)의 도리를 체행(體行)하여 명령을 내리는 존재이고 신하는 임금을 도와 착한 일을 아뢰고 부정한 일을 막는 존재이다.
임금과 신하가 만날 때에 각각 자신의 도리를 극진히 하여 함께 공경하여 지극한 정치를 이루어야 한다.
만약 혹시라도 임금이면서 임금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며 신하이면서 신하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면 함께 천하 국가를 다스릴 수 없다.
비록 그렇지만 우리 임금은 훌륭한 정치를 베풀 수 없다고 말하는 이를 임금을 해치는 자라고 하니
옛적에 상나라 임금 주가 포학한 짓을 하자 비간이 간하다가 목숨을 잃었으니 충신의 절개가 여기서 극진했다.
공자께서는 신하는 임금을 충으로 섬겨야 한다고 하셨다.
■ 夫婦有別
남편과 아내는 두 성이 합한 관계이다.
백성들이 태어난 시초이며 모든 복의 근원이니 중매를 시행하여 혼인을 의논하며 폐백을 들이고 친히 맞이하는 것은 그 구별을 두터이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내를 맞아 들이되 같은 성은 취하지 않으며, 집을 짓되 안과 밖을 구별하여 남자는 밖에 거처하여 안의 일에 대해 말하지 않고, 부인은 안에 거처하여 밖의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만일 〈남편이〉 씩씩함으로써 대하여 하늘의 굳건한 도리를 실천하고 〈아내는〉 부드러움으로써 바로잡아 땅이 하늘에 순종하는 도리를 받든다면 집안의 도리가 바로 서게 될 것이다.
만약 이와 반대로 남편이 아내를 마음대로 제어하지 못하여 올바른 도리로 다스리지 못하고, 아내가 남편의 약점을 틈 타 올바른 도리로 섬기지 않아서 삼종(三從)의 도리를 알지 못하고 7거에 해당하는 악행이 있으면 집안의 법도가 무너질 것이다.
모름지기 남편은 자기 몸을 삼가서 아내를 잘 거느리고, 아내는 자기 몸을 공경하여 남편을 잘 받들어서 내외가 화순해야 부모님께서 편안하고 즐거워하실 것이다.
옛적에 극결이 밭에서 김을 매고 있을 때, 그 아내가 새참을 내왔는데 서로 공경하여 상대하기를 마치 손님 모시듯 하였으니, 부부간의 도리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자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의 도리는 부부 사이에서 비롯된다.”고 하셨다.
■ 장유유서(長幼有序)
어른과 아이는 하늘이 차례지어 준 관계이다.
형이 형 노릇하고 아우가 아우 노릇하는 것이 어른과 어린이의 도리가 비롯된 유래이다.
종족과 향당에는 모두 어른과 아이가 있으니, 이를 문란시켜서는 안 된다.
천천히 걸어서 어른보다 뒤에 쳐져 가는 것을 공손한 태도라고 이르고, 빨리 걸어서 어른보다 앞서 걸어 가는 것을 공손하지 못한 태도라고 일컫는다.
그러므로 나이가 갑절 많으면 어버이 섬기는 도리로 섬기고, 나이가 열 살이 많으면 형을 섬기는 도리로 섬기고, 나이가 다섯 살이 많으면 어깨폭 만큼 뒤쳐져 따라가니, 어른은 어린 사람을 사랑하며 어린 사람은 어른을 공경한 뒤에야 젊은이를 업신여기거나 어른을 능멸하는 폐단이 없어져서 사람의 도리가 바로 설 것이다.
하물며 형제간은 기운을 함께 나눈 사람이다.
뼈와 살을 나눈 지극히 가까운 관계이니 더욱 우애해야 할 것이요, 노여움을 마음 속에 감추고 원한을 묵혀서 하늘의 떳떳한 도리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옛적에 사마광이 그의 형 백강과 더불어 우애하기를 더욱 돈독히 하여, 형을 엄한 아버지처럼 공경하고, 어린 아이처럼 보호하였으니, 형제간의 도리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맹자께서는 “웃을 줄 알고 손을 잡아주고 안아 줄 만한 아이도 자기 어버이를 사랑할 줄 모르는 경우가 없으며, 그가 성장해서는 그 형을 공경할 줄 모르는 이가 없다.”고 하셨다.
■ 붕우유신(朋友有信)
붕우는 부류가 같은 사람이다.
유익한 벗이 세 종류 있고, 해로운 벗이 세 종류가 있으니, 정직한 사람을 벗하며 신실한 사람을 벗하며 식견이 많은 사람을 벗하면 이롭고, 치우친 사람을 벗하며 구미만 맞추는 사람을 벗하며 말재주만 뛰어난 사람을 벗하면 해롭다.
벗을 사귀는 것은 그 사람의 덕성을 보고 사귀는 것이다.
천자로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벗을 통해서 자신의 인격을 완성하지 않는 경우가 없으니 그 관계가 소원한 것 같지만 관련되는 것이 지극히 가까운 관계와 같다.
이 때문에 벗을 사귈 때에는 반드시 단정한 사람을 사귀며, 벗을 가릴 때에는 반드시 나보다 나은 사람을 가려서 사귀어야 한다.
마땅히 진실한 태도를 지니고 좋은 일로 권면할 것을 요구하며 간절하고 자세하게 권면하며 진실한 마음으로 알려주고 선으로 인도하다가 안 되면 친구 관계를 그만두어야 한다.
만약 혹시라도 서로 사귈 때에 절차탁마하는 것으로 서로 함께 하지 아니하고, 다만 기뻐하고 친하며 장난하고 농담하는 것으로 서로 가까이 한다면, 어찌 오래되어도 소원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옛적에 안자는 남과 사귀되 오래되어도 상대를 공경하였으니, 붕우간의 도리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공자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였다.
“친구들에게서 신임을 얻지 못하면 윗사람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친구들에게서 신임을 얻는데 일정한 방법이 있으니, 어버이에게서 순종한다고 인정받지 못하면 친구들의 신임을 얻지 못할 것이다.”
■ 총론(總論)
이 다섯 가지 일은 하늘이 펼쳐 준 모범이고 사람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도리이다.
사람의 행실이 이 다섯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오직 효도가 모든 행실의 근원이 된다.
때문에 효자가 어버이를 섬길 때에는 첫닭이 울면 모두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가서 기운을 낮추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옷이 더운지 추운지를 여쭈며, 무엇을 잡수시고 마시고 싶은지를 여쭈며,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며, 저녁에는 잠자리를 돌봐드리고 새벽에는 안부를 여쭈며, 외출할 때는 반드시 아뢰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부모님을 대면하며, 멀리 나가 놀지 않으며 나가 놀되 반드시 일정한 장소를 두며, 감히 자기 몸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감히 재물을 자기 것으로 사유하지 않는다.
부모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시거든 기뻐하되 잊지 않으며 미워하시거든 두려워하되 원망하지 않으며, 부모님께서 과실을 저지르시면 말리되 거스르지 않으며 세 번 간했는데도 들어주지 않으시거든 부르짖고 울면서 따르며, 부모님께서 노하여 종아리를 때려 피가 흐르더라도 감히 미워하거나 원망치 않으며, 거처할 때에는 공경함을 극진히 하고, 봉양할 때는 즐거움을 극진히 하고, 병환이 드셨을 때는 근심을 극진히 해야 하고, 상을 당해서는 슬픔을 극진히 하고, 제사 지낼 때는 엄숙함을 극진히 해야 한다.
부모님께 불효하는 자식은 자기 어버이는 사랑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은 사랑하며, 자기 어버이는 공경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은 공경하며, 사지(四肢)를 게을리 하여 부모님에 대한 봉양을 돌아보지 않으며, 장기나 바둑,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여 부모님에 대한 봉양을 돌아보지 않으며, 재물을 좋아하고 처자식만을 사랑해서 부모님에 대한 봉양을 돌아보지 않으며, 이목의 욕망을 좇아 부모를 욕되게 하며, 용맹을 좋아하여 싸우고 사나워서 부모님을 위태롭게 한다.
아!
그 사람의 행실이 착한지 아닌지를 살펴보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이 효도하는지 아닌지를 살펴볼 것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으며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 그 어버이에게 효도한다면 그 마음을 군신간과 부부간과 장유간과 붕우간에 미루어감에 어떤 경우에 적용한들 옳지 않음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효는 사람에게 중대한 것이면서 또한 고원하여 실행하기 어려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나면서부터 이치를 아는 이가 아니라면 반드시 학문에 의지하여 알 수 있으니 학문하는 목적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장차 고금의 사리를 통달하여 마음 속에 보존하며 몸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데 있는 것이니 학문하는 힘을 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역대의 중요한 의리를 뽑아서 다음과 같이 기록해 둔다.
태극이 처음으로 판별되어 음과 양이 비로소 나누어진 시기로부터 오행이 서로 생성됨에 먼저 이(理)와 기(氣)가 있었다.
사람과 물건이 많이 생성되더니 이에 성인이 먼저 나타나서 하늘의 뜻을 계승하여 인간의 표준을 세웠으니, 천황씨와 지황씨와 인황씨와 유소씨와 수인씨가 태고시절의 성인이다.
서계(書契)문자가 나타나기 이전이기 때문에 상고할 수가 없다.
복희씨가 처음으로 팔괘를 긋고 서계문자를 만들어 결승문자로 시행하던 정사를 대신했고, 신농씨가 쟁기와 보습을 만들며 의술과 약을 만들고, 황제씨가 방패와 창을 사용하며 배와 수레를 만들었으며 달력과 산수를 만들며 음률을 제정하셨으니 이들을 삼황이라 일컫는다.
이 때는 사람들의 본성이 지극히 순박했기 때문에 인위적인 정치를 베풀지 않고도 천하가 잘 다스려졌다.
소호와 전욱과 제곡과 요임금, 순임금을 오제라 일컫는다.
고도와 기와 직과 설이 요임금과 순임금을 보좌했으니 요임금과 순임금의 다스림이 모든 왕의 으뜸이 되었다.
공자께서 서경을 산정하심에 당‧우시대로부터 단정하셨다.
하나라 우왕과 상나라 탕왕과 주나라 문왕‧무왕을 삼왕이라 일컫는다.
왕조의 수명이 어떤 경우는 400년이며 어떤 경우는 600년이며 어떤 경우는 800년이었으니 삼대 시절에 융성했던 문물을 후세에는 미치지 못했고 상나라의 이윤이나 부설, 주나라의 주공과 소공이 모두 뛰어난 신하였다.
주공이 례악을 제작하셨으니 전장(典章)과 법도가 지극히 찬란하게 갖추어졌다.
주나라가 쇠미함에 미쳐 오패가 제후들을 이끌어 왕실을 바로 세웠으니 이를테면 제나라 환공, 진나라 문공, 송나라 양공, 진나라 목공, 초나라 장왕이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중국의 맹약을 주도하였으니 왕실의 위엄이 떨쳐지지 못했다.
공자는 하늘이 내신 성인으로서 수레를 타고 천하를 주유하셨으나 도가 세상에서 시행되지 않아서 《시경》과 《서경》을 산정하시며 예와 악을 결정하시며 《주역》을 해설하시며 춘추를 편수하셔서 지나간 성인을 계승하고 후세의 학자들을 인도하셨고, 그 도를 전수받은 이는 안자와 증자이다.
이런 사실에 대한 기록은 《논어》에 있다.
증자의 문인이 대학을 기술하였다.
열국은 魯‧衛‧晉‧鄭‧趙‧蔡‧燕‧吳‧齊‧宋‧陳‧楚‧秦나라 등이니 방패와 창이 날마다 이어져 전쟁이 끊이지 않아 마침내 전국시대가 되었으니 秦‧楚‧燕‧齊‧韓‧魏‧趙의 일곱 나라를 전국칠웅이라 일컫는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이 시기에 태어나 《중용》을 저술하셨고, 그 문인의 제자인 맹가가 제나라와 양나라에서 왕도정치를 진술하셨는데 도가 또 시행되지 못하여 《맹자》 7편을 저술하셨으나, 이단과 종횡과 공리의 학설이 성행해서 우리 유학의 도가 전해지지 못하였다.
진시황 시대에 이르러서는 두 주나라를 병탄하고 여섯 제후국을 멸망시키며, 봉건제도를 폐지하고 군현제를 시행하며 시서를 불태우고 유생들을 구덩이 속에 파묻어 죽이니 2대만에 멸망하였다.
한나라 고조가 빈털털이로 일어나 황제의 위업을 이루어서 왕조의 수명이 4백년에 이르렀는데 명제 때에 서역의 불교가 처음으로 중국에 유통하여 세상을 미혹시키고 백성들을 속였다.
촉한과 오와 위의 세 나라가 솥발처럼 대치하고 있었는데, 제갈량이 의리를 지켜 한나라를 부지하다가 병이 들어 전쟁터에서 죽었다.
진(晉)나라가 천하를 다스림에 왕조의 수명이 100여 년에 이르렀는데 다섯 오랑캐 나라가 중화를 어지럽히니 宋‧齊‧梁‧陳에 남북으로 분열되었다.
수(隋)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였으나 왕조의 수명이 30년에 그쳤다.
당나라 고조와 태종이 수나라 왕실의 어지러움을 틈타 일개 집안을 변화시켜 나라로 만들어 왕조의 수명이 300년에 이르렀다.
후량과 후당과 후진과 후한과 후주를 오계라고 하니, 아침에 나라를 얻었다가 저녁이면 잃어버려서 크게 혼란함이 극도에 이르렀다.
송나라 태조가 국가를 세운 초기에 다섯 별이 규성에 모여 濂‧洛‧關‧閩에 여러 현인들이 배출되었으니, 주돈이와 정호와 정이와 사마광과 장재와 소옹과 주희 같은 학자들이 서로 이어 나타나 이 유학의 도를 밝히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로 삼았지만 자기 몸조차도 용납받지 못했다.
주자가 제가의 학설을 모아서 사서와 오경을 주해하셨으니 배우는 자들에게 크게 공을 세웠다.
그러나 국가의 힘이 강하지 못하여 왕조의 수명이 300년에 그쳤으니 거란과 몽골과 요와 금이 차례대로 침략하고 망조를 드리움에 미쳐 문천상이 충성을 다하여 송나라에 보답하다가 마침내 연경의 옥에서 죽었다.
오랑캐 원나라가 송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하여 면면히 백년을 이어갔으니 오랑캐가 세력을 떨침이 이 때만한 적이 없었다.
하늘이 더러운 덕을 싫어하셨는지라 대명이 하늘 한 가운데로 떠올라 성인과 신인이 계승하였으니 아! 천만년을 이어가리로다.
아!
삼강오상의 도리는 천지와 더불어 시종을 함께하니 삼대 이전에는 성스러운 임금, 명철한 군주와 어진 재상과 뛰어난 보좌관들이 서로 함께 강론하여 밝혔다.
그 때문에 다스려진 날이 항상 많았고 어지러운 날이 항상 적었는데 삼대 이후에는 용렬한 임금, 어두운 군주들과 국가의 기강을 어지럽히는 신하와 집안의 도리를 해치는 자식들이 서로 함께 그것을 무너뜨렸다.
그 때문에 어지러운 날이 항상 많고 다스려진 날이 항상 적었다.
세상이 다스려지고 어지러우며 편안하고 위태로운 것과 나라가 일어나고 폐지되며 보존되고 멸망하는 까닭은 모두 인륜이 밝혀졌느냐 밝혀지지 않았느냐가 어떠한지에서 말미암는다.
살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동방에 처음에는 군장이 없었는데 신인이 태백산 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오자 나라 사람들이 〈그의 아들을〉 임금으로 삼았다.
요임금과 동시대에 즉위하여 국호를 조선이라고 했으니 이가 단군이다.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하자 〈기자가〉 백성들에게 예의를 가르쳐서 여덟 조목의 가르침(八條之敎)을 베풀었으니 어진 사람 기자의 교화가 있었다.
연나라 사람 위만이 노관의 난리를 피하여 망명해 와서 기준을 유인하여 쫓아내고 왕검성을 차지하였는데 손자인 우거왕대에 이르러 한나라 무제가 토벌하여 멸망시키고 그 영토를 분할하여 악랑‧임둔‧현토‧진번의 사군을 만들었다.
소제가 평나와 현도를 합쳐서 평주로 만들고 임둔과 낙랑을 동부의 두 도독부로 만들었다.
기준이 위만을 피해 바다에 떠서 남쪽으로 내려와 금마군에 정착했으니 이것이 마한이다.
진나라에서 망명한 사람이 노역을 피하여 한나라로 들어오자 한나라가 동쪽 영토를 분할하여 제공하니 이것이 진한이다.
변한은 한나라의 영토에 나라를 세웠으니 그 시조와 연대를 알 수 없다.
이것이 삼한이다.
신라의 시조 혁거세는 진한의 영토에 도읍을 정하여 박을 성씨로 삼고,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은 졸본땅에 이르러 스스로 고신씨의 후예라고 일컬어 그에 따라 고를 성씨로 삼았고 백제의 시조인 온조는 하남땅 위례성을 도읍지로 정하여 부여를 성씨로 삼아서 삼국이 각각 한 모퉁이를 차지하여 서로 공격하였다.
그 뒤에 당나라 고종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그 영토를 분할하여 도독부를 설치하여 유인원과 설인귀로 하여금 머물러서 진무케 하였으니 백제는 왕조의 수명이 678년에 이르렀고 고구려는 705년이었다.
신라의 말기에 궁예가 북경에서 반란을 일으켜 국호를 태봉이라 하였고 견훤이 반란을 일으켜 완산주를 점거하여 스스로 후백제라고 일컬었다.
신라가 멸망하니 박‧석‧금의 세 성씨가 서로 왕위를 전수하여 왕조의 수명이 992년에 이르렀다.
태봉의 여러 장수들이 고려의 시조 왕건을 세워서 왕으로 삼으니 국호를 고려라고 하여 여러 흉악한 인물들을 이겨 없애고 삼한을 통합하여 도읍을 송악으로 옮겼다.
고려의 말년에 이르러 공민에게 후사가 없고 가짜 임금 신우가 어둡고 포악하며 스스로 방자하였으며 공양이 임금 노릇을 못하여 마침내 망하기에 이르니 왕조의 수명이 475년이었다.
천명이 진정한 군주에게 돌아가니 명나라 태조 고황제가 국호를 조선이라고 고쳐 내리자 한양에 도읍을 정하여 성스럽고 신령스러운 자손들이 끊임없이 계승하여 거듭 빛내고 여러 차례 스며들어서 지금에 이르니 실로 만세토록 끝없을 아름다움이로다.
아!
우리나라가 비록 궁벽하게 바다 모퉁이에 자리잡고 있어서 영토가 작지만 예악법도와 의관문물을 모두 중화의 제도를 따라 인륜이 위에서 밝혀지고 교화가 아래에서 시행되어 풍속의 아름다움이 중화를 방불하였다.
이 때문에 중화인들이 우리를 소중화라고 일컬으니 이 어찌 기자가 끼친 교화 때문이 아니겠는가.
아! 너희 소자들은 의당 보고 느껴서 흥기할지어다.
■ 어제 동몽선습 서
이 책은 바로 우리나라 유학자가 저술한 것이다.
앞에는 오륜을 총론으로 놓고, 다시 부자, 군신, 부부, 장유, 붕우의 도리를 다음에 열거하였으며, 태극이 처음 나뉨으로부터 삼황‧오제와 夏‧殷‧周, 漢‧唐‧宋을 거쳐 황조에 이르기까지 역대의 세계를 상세히 갖추어 기록하고, 우리나라에 미쳐서는 단군으로부터 시작하여 삼국시대를 거쳐 우리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또한 모두 기록하였으니, 글은 비록 간략하지만 기록한 범위는 넓고 권(卷)은 비록 작지만 포함하고 있는 뜻은 크다.
더욱이 요순의 도는 효도와 공경일 뿐이다.
순임금이 설에게 명령하시되 오품(五倫)을 가장 중시하셨으니, 이 책에서 오륜을 맨 앞에 놓은 것은 그 뜻이 크다고 할 것이다.
아!
부모에게 효도한 뒤에야 임금에게 충성할 수 있고, 형을 공경한 뒤에라야 윗사람을 공경할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을 기준으로 살펴본다면 오륜 가운데에서 효도와 공경이 가장 우선이다.
그러나 《시경》에서 문왕을 찬양하면서 “아! 끊임없이 빛내시어 경에 머무르셨다.”고 했으니, 경이란 처음과 끝을 이루고 위 아래로 모두 통하는 공부이다.
그러므로 《대학》의 요지는 敬 한 글자에 있고, 《중용》의 요지는 ‘정성 성(誠)’한 글자에 있으니, 성(誠)과 경(敬)이 또한 학문을 해 나아가는 데에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새의 두 날개와 같다고 하겠다.
이제 내가 이 책에서 성과 경 두 글자를 가지고 책의 맨 앞에 놓으니, 성을 이룩한 뒤에야 책은 책대로이고 나는 나대로인 병통을 면할 수 있고, 경을 유지한 뒤에야 삼가 체행하고 삼가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니, 배우는 사람들이 어찌 이를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또 책 말미에 국초에 나라를 세우고 조선이라는 국호를 받는 부분에 대하여, 개연히 추모해서 세 번 반복하여 읽고 감동했노라.
아!
끊임없이 이어서 거듭 빛내시고 여러 번 무젖어듬은 실로 선왕들께서 지극한 덕성과 깊은 은혜를 후손들에게 넉넉히 남겨주신 것이 이룬 것이니, 체통을 이어갈 군주들이 이 지극한 덕을 체행하여,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태도를 지니고 성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닦아 탕탕함(넓고 평등한 마음)을 이루며, 성심으로 백성들을 사랑하여 길이 만백성들을 보호한다면 우리나라는 잘 다스려지게 될 것이며, 우리나라는 잘 다스려지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예의는 비록 기자의 교화에 힘입었지만 삼한 이후에는 거의 민멸되었다가, 우리 조선조에 들어와 예악이 다 거행되고 문물이 다 구비되었는데, 저자가 이 내용을 빠뜨리고 기록하지 않은 것이 애석하다.
아! 소자들은 더욱 노력할지어다.
때는 임술년(1742년) 정월 상순에 운관에 명하여 널리 인쇄해서 반포케 하고 책 머리에 서문을 쓰노라.
■ 발문
맹자께서는 “그 사람의 글을 읽고 그 사람의 시를 읽으면서도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면 되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어릴 때에 남의 집안 자제들을 보니, 초학자로서 모두 이 책을 제일 먼저 배우지 않음이 없었는데, 다만 누구의 손에서 나온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박상사 정의씨가 와서 나에게 “이 책은 저희 고조부이신 휘가 세무인 분이 엮으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자신도 모르게 한편으로는 놀랍고 한편으로는 기뻐서 “오늘에야 비로소 그 사람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공은 명종대의 이름난 신하로 그의 학문은 연원이 있고 문로(門路) 또한 매우 바르니,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내용이 포괄적이면서도 요약하여 말했으니, 이는 모두 학문하는 가운데 반드시 익해야 할 일대의 공안이요, 차례대로 서술한 역대의 사실 또한 사가의 총목이다.
어떤 사람은 이 책에 수록된 리기나 성명과 같은 말은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고 의심하지만, 이는 저자의 본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 것이다.
주자는 일찍이 인에 관한 내용을 논의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종류의 명칭과 의미는 고인들이 가르칠 때에 《소학》을 배울 때부터 이미 명백 직절하고 분명한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에 〈배우는 사람이〉 이 도리를 착실하게 실천하지 않아서는 안 됨을 알 수 있었으니 실제로 그와 같은 경지에 나아가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 망연히 이해하다가 안 되면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마침내 평생토록 알지 못할 개념이 되고 말 것이니 다시 어디를 바라보고 사모하여 힘을 쓸 줄 알겠는가?”
요즘의 동학들이 대략이나마 여러 가지 명칭과 의미가 구분됨을 알아서 결국 귀결할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반드시 이 책에서 얻은 것일 터이니 그 공로가 어찌 크지 않다 하겠는가!
적이 들으니 지금 임금께서 경연에 나아가실 때마다 이 책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즐기신다고 하니 임금님의 밝은 지혜가 반드시 이 점을 아시기 때문일 것이다.
공의 자는 경번이고 본관은 함양이니, 처음 과제에 올라 한림이 되었고, 벼슬이 감정에 이르렀다.
소재 노상공 수신은 “공이 일찍이 이 책을 저술하여 자제들을 가르쳤다.”는 내용으로 공의 묘갈명에 기록하였다.
숭정 기원후 경술년(1670년) 10월 일에 은진인 송시렬은 삼가 발문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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