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 제자품(弟子品)
그 때에 장자 유마힐은
'내가 이렇게 병들어 누웠는데 자비하신 부처님께서 나를 어여삐 여기시지 아니 하시는가?'하고 생각했다.
부처님이 그 뜻을 아시고 사리불에게 이르셨다.
“사리불이여, 네가 유마힐에게 나아가 병을 위문하여라.”
사리불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제가 예전에 산속 숲나무 아래서 조용히 좌선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유마힐이 와서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사리불이여, 반드시 앉은 것만이 좌선하는 것이 아니외다.
좌선이란 것은 삼계(三界)에다 몸과 뜻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 좌선이며,
멸진정에서 일어나지 아니하고 온갖 위의 행동을 나타내는 것이 좌선이며
부처님의 도법을 버리지 않고서 범부의 일을 나타내는 것이 좌선이며
마음이 안에도 머물지 않고 밖에도 머물지 않는 것이 좌선이며
외도의 사견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삼십칠도품을 닦는 것이 좌선이며
번뇌를 끊지 않고서 열반에 들어가는 것이 좌선이니
이렇게 좌선하는 이라야 부처님이 인가하시는 것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내가 그 때 그 말을 듣고 잠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병문안을 할 수 없나이다.”
부처님은 목건련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목건련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제가 예전에 베살리성에 들어가서 어떤 마을에서 거사들을 위하여 법문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유마힐이 와서 말했습니다.
'목건련 존자님, 흰 옷 입은 거사들에게 설법하는 것은 당신의 말씀과 같이 말할 것이 아니외다. 설법이란 것은 마땅히 법답게 말하여야 합니다.
법에는 중생이란 것이 없나니 중생이란 [더러운] 때(垢)를 여의었기 때문이며
법에는 나라는 것이 없나니 나라는 때를 여의었기 때문이며
법에는 목숨이라는 것이 없나니 생사를 여의었기 때문이며
법에는 사람이란 것이 없나니 과거와 미래가 끊어진 때문이며
법은 항상 고요한 것이니 모든 형상을 없애버린 때문이며
법은 형상을 여읜 것이니 반연할 것이 없기 때문이며
법은 이름이 없나니 말로 형용할 수 없기 때문이며
법에는 말씀이 없나니 생각과 관을 여의었기 때문이며
법은 형상이 없나니 허공 같기 때문이며
법에는 실없는 말이 없나니 끝까지 공한 때문이며
법에는 내것이 없나니 내 것을 여의었기 때문이며
법에는 분별이 없나니 식심(識心)을 여의었기 때문이며
견줄 것이 없나니 상대가 없기 때문이며
법은 어떤 원인에 속하지 않았나니 인연관계에 매이어 있지 않기 때문이며
법은 법의 체성과 같으니 법의 체성을 증득하였기 때문이며
법은 진여에 따르나니 따를 것이 없기 때문이며
법은 진실한 자리에 머무나니 있느니 없느니 하는 한쪽으로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며
법은 흔들림이 없나니 육진을 의지하지 아니한 때문이며
법에는 과거와 미래가 없나니 항상 어디나 머물지 않기 때문이며,
법은 공에 따르고 형상 없는데 따르며
인연따라 지어진 것 없는 것을 순응하며
법은 좋고 나쁜 것을 여의고 법은 더하고 덜함이 없으며
법은 나고 없어짐이 없으며 법은 높고 낮은 것이 없으며
법은 항상 머물고 흔들리지 않으며 법은 온갖 생각하는 경계를 여의었지요.
목건련 존자여, 법의 참 모양이 이러하거니 어떻게 말할 수 있겠나이까?
법을 말한다는 이는 말할 것도 없고 보일 것도 없으며 법문을 듣는다는 이도 들은 것이 없고 얻을 것이 없나이다.
마치 요술하는 사람이 요술로 만든 사람에게 법을 말하는 것과 같이,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법문을 말할 것이며
중생의 근기가 영리하고 아둔한 것을 알아야 하며
수승한 지견으로 걸릴 것이 없어야 하며
자비한 마음으로 대승법을 찬탄할 것이며
부처님의 은혜 갚을 것을 생각하여 삼보를 끊이지 않게 한 뒤에야 법문을 말할 수 있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유마힐이 이런 법문을 말할 적에 팔백거사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나이다. 저는 이런 유창한 변재가 없기에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부처님이 대가섭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가섭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제가 예전에 가난한 촌락에 가서 밥을 비노라니 그 때에 유마힐이 와서 말했습니다.
‘대가섭 존자님, 자비심이 있기는 하면서도 넓지 못하여서 부자집을 버리고 가난한 집만 찾아가서 탁발하시군요.
평등한 법 가운데 탁발하는 것도 차례차례로 하여야 됩니다.
먹지 않는 법을 위하여 걸식을 할 것이며
인연이 화합상을 파하기 때문에 덩어리로 된 밥을 취하는 것이며
나고 죽음을 받지 않기 위하여 저 음식을 받는 것이며
텅 빈 촌락과 같은 생각으로 촌락에 들어갈 것이며
여러 가지 빛깔을 보아도 장님과 같이하며
소리를 듣더라도 메아리와 같이하며
냄새를 맡을 적엔 바람과 같이하며
음식을 먹을 적에 맛을 분별하지 아니하며
몸에 촉각을 받을 적에 무심정에 든 것과 같으며
모든 현상계가 다 요술로 만들어진 것처럼 제 바탕도 없고 남에게서 얻어진 것도 없는 줄을 아나니 본래부터 그런 것이 있는 것도 아니며 지금에도 없어지는 것도 없습니다.
대가섭 존자님, 만일 여덟가지 삿된 팔사(邪)를 버리지 않고 팔해탈에 들어가며
삿된 모양 같으면서 정법에 들어가며
한 그릇 밥으로 일체 중생에게 보시하며
여러 부처님과 여러 성현에게 공양한 뒤에 먹을 것이니,
이렇게 먹는 이는 번뇌가 있는 것도 아니요
번뇌를 여읜 것도 아니며 선정에 들어간 것도 아니요
선정에서 일어난 것도 아니며 세간에 머문 것도 아니요
열반에 머문 것도 아니며 그에게 밥을 베푼 이는 큰 복도 없고 적은 복도 없으며
이익이 될 것도 아니고 손해가 될 것도 아니니
이것이 불도에 들어가는 것이요 성문법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니
가섭존자시여, 이렇게 밥을 먹어야만 남이 베푸는 음식을 공짜로 먹지 아니하는 것이외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그 때 이 말을 듣고 일찍이 없던 일이라 생각하고 모든 대승보살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으며
또 생각하기를 이 분은 속인으로서도 유창한 변재와 지혜가 이러하거늘 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지 않을까 하고 그 후로는 성문법과 연각법으로 다른 사람에게 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가 없나이다.”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수보리는 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그이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제가 예전에 그의 집에 가서 탁발하는데, 유마힐이 제 발우를 받아 밥을 가득 담아가지고 와서 말했습니다.
'수보리 존자님, 만일 먹는데 평등한 이는 법에도 평등하나니 이렇게 탁발해야 공양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수보리 존자님이
욕심·화내는 마음·어리석음의 삼독심을 끊지 아니하고 또한 그 마음과 함께하지도 아니하며
이 몸을 그대로 두고 하나의 실상을 따르며,
어리석음과 애착을 없애지 않고서 삼명과 팔해탈을 성취하며
오역상 이라 하는 것(逆相)으로서 해탈을 얻되 또한 풀어버릴 것도 얽어맨 것도 없습니다.
고집멸도 사성제를 깨달았다는 것도 없고 사성제를 깨달음이 없는것도 아니며,
과위를 얻음도 없고 과위를 얻지 않음도 없으며,
범부라 할 것도 없고 범부를 여의었다 할 것도 없으며
성인이라 할 것도 없고 성인이 아니라고 할 것도 없어서,
비록 모든 법을 성취하였으되 모든 법상(法相)을 여의여야 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수보리 존자님, 부처님을 보았다는 것도 없고, 법을 들었다는 것도 없다면, 육사외도의 제자들도 당신의 스승일 것이니,
그들로 말미암아 출가하여 그들이 잘못 떨어지는 곳에 당신도 따라서 떨어져야만 밥을 받을만한 것입니다.
만일 수보리 존자님이 저 삿된 소견에 들어가서 열반의 저쪽 언덕에 건너가지 못하며
여덟가지 고난 중에 머물러서 어려움이 없지 못하며 번뇌와 함께하여 청정한 법을 여의었으며
당신이 무생삼매를 얻었으면 모든 중생도 그 삼매를 얻을 것입니다.
당신에게 공양하는 이는 복밭이라 이름할 것도 없으니,
당신에게 공양한다고 하는 이는 삼악도에 떨어진 모든 마구니 무리들과 함께 손을 잡고 원망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됩니다.
당신은 마구니 무리들과 함께 온갖 번뇌와 평등하여 다름이 없는데, 모든 중생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든 부처님을 비방하겠습니까 가르침을 비방하겠습니까. 들음도 없고 결국 멸도를 얻음도 없는 이와 그대가 이러할 것 같으면 공양받을 만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때 이 말을 듣고 당황하여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발우를 두고 그 집에서 나오고자 하니 유마힐이 말하였습니다.
‘수보리 존자님, 두려워 하지 말고 발우를 받으십시오. 부처님께서 교화하신 분이 이렇게 다그친다고 두려워합니까?’
제가 말하였습니다.
‘아닙니다.’
유마힐이 말하였습니다
‘모든 법은 허깨비가 화현한 모습같아서 당신은 두려워하지 않겠지요. 왜냐하면 모든 말은 모습을 여의지 못하고, 지혜있는 사람은 문자에 얽매이지 않으므로 두려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문자는 성품을 여의어서 문자라 할 수 없으니, 그것이 해탈이고 해탈상이 곧 모든 법인 것입니다.’
유마힐이 이런 법문을 말할 적에 이백의 천인이 법안이 청정해짐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부처님은 또 부루나 미다라니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부루나는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제가 예전에 큰 숲속에 어떤 나무 아래에서 신참 비구들을 위하여 설법을 할 적에 유마힐이 와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부루나 존자님, 설법하려거든
먼저 정(定)에 들어서 그 사람들의 마음을 관찰한 뒤에 설법하는 것이니 더러운 음식을 보배그릇에 담으면 안되며,
마땅히 이 비구들의 생각하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니 유리를 수정과 같다고 하여서는 안되며,
당신이 중생의 근본을 알지 못하면서 소승법으로서 인도해서는 안되며,
그가 본래 부스럼이 없는데 상처를 내서는 안되며,
한길로 가려는 이에게 샛길을 가리키지 말며 바닷물을 소 발자국에 넣으려 해서는 안되며
햇빛을 반딧불과 같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부루나 존자님, 이 비구들은 오래 전에 대승의 마음을 내었다가 중간에 잊어버린 것이어늘 어찌하여 소승법으로 지도하겠습니까. 내가 보니 소승들은 지혜 열기가 장님과 같아서 중생들의 근기가 영리하고 노둔함을 분별하지 못하더군요.‘
그리고는 유마힐이 삼매에 들어서 그 비구들로 하여금 지나간 세상을 알게 하였으니
그들은 일찍이 오백부처님께 온갖 공덕의 씨앗을 심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로 회향한 인연을 알게 되어, 비구들은 즉시에 본래 마음을 도로 얻고 유마힐의 발에 예배하고 유마힐이 그들에게 법문을 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다시 물러나지 않게 하였나이다.
제가 그때에 성문들이 중생의 근기를 관찰하지 못하고는 법문을 말해서는 안됨을 알았기에 그이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부처님은 또 마하가전연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가전연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예전에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법문의 요긴한 뜻을 말씀하신 뒤에 제가 다시 그 뜻을 부연하면서 이것은 무상(無常)과 고성제와 공(空)과 무아(無我)와 적멸(寂滅)의 뜻을 말하였는데, 그 때에 유마힐이 와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가전연 존자님, 생멸의 마음으로 실상법을 설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법이 끝내 생멸함이 없는 것이 고성제의 뜻이며, 모든 법은 결국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 공(空)의 뜻이며, 나와 나 없다는 것도 다르지 않는 것이 무아(無我)의 뜻이며, 법에는 그런 것이 없어서 지금 멸할 것도 없음이 적멸의 뜻입니다.’
유마힐이 이 말을 할 때, 여러 비구들이 해탈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부
처님은 또 아나율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아나율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예전에 제가 어느 곳에서 거닐고 있노라니 ‘엄정’이라는 범천왕이 일만의 범천인들을 데리고 맑은 광명을 놓으면서 와서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아나율 존자님, 천안통으로 보는 것이 얼마나 멀고 넓은 정도입니까?’
이에 저는 바로 답하였습니다.
‘어진 이여, 나는 석가모니 부처님 계신 국토의 삼천대천세계 보기를 손바닥 위에 놓인 암마륵과 열매를 보듯 훤히 봅니다.’
그 때에 유마힐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아나율 존자님, 천안통으로 보는 것은 보겠다는 생각에서 보는 것입니까? 보겠다는 생각없이 보는 것입니까?
만일 보겠다는 생각이 있어서라면 외도들의 얻은 오통과 같은 것이요. 보겠다는 생각이 없이라면 곧 무위의 법이니 본다는 것이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그 때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는데, 범천인들은 그 말을 듣고 희유한 깨달음을 얻고 절하고 유마힐에게 물었습니다.
‘세상에 누가 진정한 천안을 가진 분입니까?’
유마힐이 대답했습니다.
‘부처님,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그분이야말로 진정한 천안을 얻으신 분이니, 항상 삼매에 머물면서 모든 불국토를 다 보시되, 분별상이 없습니다.’
그때 엄정 범천왕과 그의 권속 오백 범천인들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고 유마힐의 발에 경례하고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이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부처님은 다시 우바리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우바리는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예전에 두 비구가 계율을 범하고는 부끄러워서 부처님께는 묻지 못하고 저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우바리 존자님, 우리가 계율을 범하였는데 부끄러워서 부처님에게 여쭐 수가 없으니 바라건대 우리의 의혹과 뉘우침을 풀어주어 허물을 면하게 하여 주시요.’
그래서 제가 그들을 위하여 법대로 말하여 주었더니, 때마침 유마힐이 와서 말하였습니다.
‘우바리 존자님, 이 비구들의 죄를 더 보태게 하지 마십시오.
죄를 당장 없애줄지언정 그 마음을 어지럽게 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 죄의 성품은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말씀처럼 마음이 더럽기에 중생도 더럽다고 하는데, 마음이 청정하면 중생도 청정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듯이 마찬가지로 죄와 번뇌 역시 그러합니다.
모든 법이 또한 그러하여 이를 벗어나지 않나니, 심상으로 해탈을 얻을 때 더러움이 있다고 정녕 말할수 있습니까?’
제가 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유마힐이 말했습니다.
‘모든 중생의 심상에 더러움이 없다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망상이 더러움이라도 망상이 없으면 청정함이고
전도됨이 더러움이라도 전도를 여의면 청정함이며
나를 취하려하는 것이 더러움이라도 나를 취하려하지 않는 것은 청정함입니다.
모든 법은 생멸하여 고정되어 있지 않으니, 허깨비 같고, 번개 같으며,
모든 법은 서로 의지할 것이 없어서 한 생각에 머물지 않으며
모든 법은 모두 허망하게 보는 것이니 꿈같고 불꽃같고 물속의 달같고 거울속 모습같아서
망상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을 계율을 수지한다하고, 이를 아는 이가 참으로 아는 사람입니다.’
그때에 계율을 어겼던 두 비구가 말했습니다.
‘훌륭하고 지혜로운 이여! 우바리 존자님도 해낼 수 없는 일이며 계율 지니는 이 가운데 으뜸 가는 이라도 할수 없는 말입니다.’
제가 대답하였습니다.
‘부처님을 제외하고 어느 성문이나 보살들도 그 자유자재한 언변을 따를 수 없으며 그 밝은 지혜도 그러합니다.’
그리고 두 비구가 즉시에 의심과 뉘우침이 없어지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고 원을 세워 말하였습니다.
‘모든 중생이 모두 이러한 변재를 얻어지이다.’
그러므로 저는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 할 수 없나이다.”
부처님은 또 라후라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라후라는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예전에 베살리성에 있는 여러 장자의 아들들이 저에게 와서 예배하고 말했습니다.
‘라후라 존자님, 당신은 부처님의 아들로서 전륜왕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닦았으니 출가하는 것이 무슨 이익이 있나이까?’
이에 제가 법과 같이 출가한 공덕을 말하였더니 그 때에 유마힐이 와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라후라 존자님, 출가한 공덕의 이익되는 것을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이익이나 공덕마저도 없는 것이 출가입니다.
세간법에는 이익이나 공덕을 말할 수 있지만, 출세간법에는 이익이나 공덕을 말할 수 없습니다.
무릇 출가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중간에도 없으며, 62개의 견해들을 여의고 열반에 머무는 것입니다. 이는 지혜로운 이가 받아들이고 거룩한 사람이 실천하는 것입니다. 모든 마구니를 항복받고 오도의 중생들을 제도함에 오안(五眼)을 청정히 하고, 믿음 힘·정진의 힘·깨어있는 힘·마음집중의 힘·지혜의 힘인 오력(五力)을 얻으며, 오력을 바탕으로한 근기 오근(五根)을 세우되, 다른 이들을 괴롭히지 않고 온갖 악을 여의면서 외도를 꺽는 것이며, 허명을 초월하여 진창을 벗어나 속박되지 않는 것이며, 나라고 할 것도 내 것이라고 할 것도 없으며, 마음의 흔들림이나 어지러움이 없어 안으로는 기쁨으로 뜻을 지키고 선정을 따르며 허물을 여의는 것이니, 만약 이와 같이 해낼수 있다면 진정한 출가라 합니다.’
유마힐이 여러 장자의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들은 정법이 있는 곳으로 출가해야 하니, 왜냐하면 부처님 출현하시는 세상은 만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모든 장자의 아들들이 말했습니다.
‘거사님, 저희들이 부처님 말씀을 듣기로는 부모님 허락없이는 출가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유마힐이 말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대들이 만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되면 그것이 곧 출가하는 것이며 그것이 곧 구족계를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할 적에 장자의 아들 서른 두명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으므로 저는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 할 수 없나이다.”
부처님은 다시 아난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아난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예전에 세존께서 병환 중이실 때 우유가 필요해서 발우를 들고 바라문의 집 문앞에 서 있는데, 그 때에 유마힐이 와서 제계 말했습니다.
‘아난 존자님, 어찌하여 이 이른 새벽에 바루를 들고 여기 있나이까?’
이에 세존께 약간의 병이 나시어 우유를 쓰게 되었으므로 여기 와 있노라고 대답하였더니 유마힐이 또 말했습니다.
‘그 무슨 말씀입니까 아 그런 말씀 마십시오. 여래의 몸은 금강과 같은 몸이라 모든 나쁜 짓은 이미 끊어졌고 여러가지 선한 일만 모이었거늘 무슨 병이 있으며 무슨 괴로움이 있겠습니까. 그냥 가시오.
아난 존자님, 여래를 비방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듣지 않게 하며, 큰 위덕을 지닌 하늘 사람들이나 다른 정토에서 온 보살네로 하여금 이런 말을 듣게 하지 마십시오.
전륜성왕은 적은 복력을 가지고도 병이 없는데, 어찌 한량없는 복력과 많은 공덕을 갖춘 여래께 병이 있겠습니까? 어서 가십시오. 우리들로 하여금 이런 수치를 받게 하지 마시오.
외도나 바라문들이 이 말을 들으면 생각하기를
소위 스승이라고 하면서 제 병도 고치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의 병을 고치냐고 하리니 그냥 어서 가서 다른 사람으로 알지 못하게 하십시오.
부처님의 몸은 법의 몸이시고 애정과 탐욕으로 된 것이 아니며, 부처님은 이 세상에 가장 높은 이어서 삼계를 벗어나셨으며, 부처님 몸은 생사윤회에 떨어지지 않으시므로 모든 번뇌가 이미 없어졌으며, 부처님의 몸은 세간을 뛰어났으므로 나고 죽음에 떨어지지 않으시니, 이러한 몸으로 무슨 병이 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그 때에 부끄러운 마음이 생겨서 속으로 생각하기를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면서 잘못 듣지나 않았는가 하고있었는데 허공 중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난존자여, 유마힐 거사의 말과 같건마는 오탁악세에 나셨으므로 이런 일을 나타내어 중생을 제도하려 하시는 것이니 부끄러워 하지 말고 어서 우유를 가지고 돌아가시오.’
세존이시여, 유마힐의 지혜와 변재가 이와 같으므로 저는 그이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 없나이다.”
이렇게 오백명의 제자들이 제각기 지난 일과 유마힐이 하던 말을 부처님께 사뢰고 모두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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