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10장 야차의 쌍윳따 Yakkhasamyutta
야차의 품
10:1 인다까의 경 Indak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라자가하 시의 인다까라는 야차의 처소인 인다 산봉우리에 계셨다.
그때 인다까 야차가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시로 말했다.
[인다까] “부처님들은 물질은 영혼이 아니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육신을 얻는가?
뼈와 살을 이루는 덩어리는
어디서 오며 어떻게 모체에 안착하는가?”
[세존] “최초로 깔랄라가 생겨나고
깔랄라에서 압부다가 되고
압부다에서 뻬씨가 생겨나고
뻬씨가 가나로 발전하고
가나에서 빠싸카가 생겨나고
머리카락과 털과 손톱 발톱이 생겨난다.
먹을 것과 마실 것으로
그의 어머니가 섭취한 것
모태 안에 있는 사람은
그것으로 거기에서 산다.”
◆
10:2 싹까의 경 Sakkasutta
한때 세존께서 라자가하 시에 있는 깃자꾸따 산에 계셨다.
그때 싹까라고 하는 야차가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시로 말했다.
[싹까] “그대가 모든 계박에서 벗어나
완전히 해탈한 수행자라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그대에게 옳은 일이 아니다.”
[세존] “싹까여, 어떠한 이유로든
어떤 사람과 친밀함이 일어난다면,
슬기로운 사람이라면 그에 대한 동정으로
마음이 동요해선 안 되리.
그러나 깨끗하고 청정한 마음으로
그가 다른 사람을 가르친다면,
그는 연민과 동정 때문에
사슬에 묶이지는 않으리.”
◆
10:3 쑤찔로마의 경 Sucilomasutta
한때 세존께서 가야에 있는 쑤찔로마라는 야차의 처소인 땅끼따만짜에 계셨다.
그런데 그때 카라라는 야차와 쑤찔로마 야차가 세존께서 계신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야차 카라는 야차 쑤찔로마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카라] “이 분은 수행자이다.”
[쑤찔로마] “아니다. 그는 수행자가 아니다. 적어도 그가 수행자인지 거짓 수행자인지 내가 알 때까지는 그는 거짓 수행자이다.”
곧바로 야차 쑤찔로마는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몸을 구부렸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몸을 젖혔다.
그때 야차 쑤찔로마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쑤찔로마] “수행자여, 그대는 내가 두려운가?”
[세존] “벗이여, 나는 결코 그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대와 부딪치는 것이 싫을 뿐이다.”
[쑤찔로마] “수행자여, 나는 그대에게 질문을 하고자 한다. 만약 그대가 나에게 대답하지 못하면, 나는 당신의 마음을 미치게 하거나 심장을 찢어 버리거나 또는 두 발을 붙잡아 갠지스 강 저 쪽으로 던져버릴 것이다.”
[세존] “벗이여, 나는 이 신들과 악마들과 하느님들의 세계에서, 성지자들과 수행자들, 그리고 왕들과 백성들과 그 후예들의 세계에서, 나의 마음을 미치게 하고 나의 심장을 찢어 버리고 나의 두 발을 붙잡아 갠지스 강 저 쪽으로 던질 수 있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벗이여, 네가 원하는 것을 한 번 질문해 보라.”
그래서 야차 쑤찔로마는 세존께 이와 같이 시로 질문했다.
[쑤찔로마] “탐욕과 성냄의 원천은 무엇인가?
불쾌함, 즐거움, 소름끼치는 전율은 어디에서 솟아나는가?
어린 아이들이 다리를 묶은 까마귀를 날리듯이 마음의 상념이 생겨나는 곳은 어디인가?”
[세존] “탐욕과 성냄은 여기에 원천이 있다.
불쾌함, 즐거움, 소름돋는 전율은 여기서 생긴다.
어린 아이들이 다리를 묶은 까마귀를 날리듯이 마음의 상념이 이것에서 생겨난다.
애욕에서 솟아나고, 자신에게서 생겨난다.
뱅골 보리수의 줄기에 난 싹들처럼
감각적 쾌락에 매달려서 겹겹이 얽혀 있다.
칡넝쿨이 숲속에 온통 퍼져 있듯이.
그것들의 원천을 밝게 아는 사람들은 그것을 없애버리네. 야차여, 들으라.
그들은 다시 태어나지 않기 위해 건넌 적 없고, 건너기 어려운 거센 흐름을 건넌다.”
◆
10:4 마니밧다의 경 Manibhaddasutta
한때 세존께서 마니밧다라는 야차의 집인 마니말라까 탑묘에서 마다가인들과 함께 계셨다.
그때 야차 마니밧다가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 앞에서 이와 같이 시를 읊었다.
[마니밧다] “새김을 확립하면 언제나 복되고
새김을 확립하면 즐거움을 얻는다.
새김을 확립하여 날마다 잘 지내면
증오에서 해탈한다.
[세존] “새김을 확립하면 언제나 복되고
새김을 확립하면 즐거움을 얻는다.
새김을 확립하여 날마다 잘 지내더라도
증오에서 해탈하지 못한다.”
날마다 언제나 정신으로
분노를 여읨에 기뻐하고,
모든 존재에게 자애를 베푸는 님에게는
아무런 원한도 없으리.”
◆
10:5 싸누의 경 Sanusutta
한때 세존께서 싸밧티 시의 제따와나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그런데 그때 어떤 재가 여자신도의 아들인 싸누라고 하는 사람이 야차에게 사로잡혔다. 그 재가의 여자신도는 가슴아파하면서 마침 이와 같은 시를 읊었다.
[여자신도] “야차는 희롱하지 않는다고
이처럼 거룩한 님에게 들었네.
그런데 오늘 나는 목격한다.
야차들이 싸누를 희롱하는 것을.
열나흘째와 열닷새째 날 그리고 보름의 여덟째 날과 신변의 힘을 얻는 제사의 날에
여덟 가지 계행을 잘 지켜야 하리.
포살을 행하고 청정한 삶을 사는 자를 야차는 희롱하지 않는다고
나는 이처럼 거룩한 님에게 들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목격한다.
야차들이 싸누를 희롱하는 것을.”
[싸누 속의 야차] “열나흘 째와 열닷새 째 날 그리고 보름의 여덟째 날과 신변의 힘을 얻는 특별한 날에
여덟 가지 계행을 잘 지켜야 하리.
포살을 거행하고 청정한 삶을 사는 자를,
야차는 희롱하지 않는다고 나는 거룩한 님에게서 들었다.
싸누가 정신을 차리면 야차의 이와 같은 말을 전하라.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거나 나쁜 짓을 하지 마라.
당신이 나쁜 짓을 해야만 하거나 지금 하고 있다면,
아무리 날고 도망쳐도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리.”
[정신 차린 싸누] “어머니, 죽은 사람 또는 살아있어도 볼 수 없는 사람 때문에 울지요.
내가 살아있는 것을 보면서, 어머니, 왜 나 때문에 우시나요?”
[여자신도] “아들아, 사람들은 죽은 사람 또는 살아있어도 볼 수 없는 사람 때문에 운다.
그러나 누군가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버린 후 다시 세속으로 돌아온다면, 사람들은 이런 이유로도 운단다.
아들아, 살아 있어도 실제로는 죽었기 때문이지.
아이야, 뜨거운 숲불에서 나왔으면서 숯불 속에 다시 뛰어들길 원하는구나.
아이야, 지옥에서 나왔으면서 지옥에 다시 떨어지길 원하는구나.
멀리 달아나라, 행운이 함께 하리니!
우리의 불행을 누구에게 하소연하겠는가?
불 속에서 건진 것들이 있는데
너는 다시 그것이 불타길 원하는구나.”
◆
10:6 삐양까라의 경 Piyankarasutta
한때 존자 아누룻다가 싸밧티 시의 제따와나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있었다.
그때 존자 아누룻다는 깊은 새벽녘에 일어나 진리의 시구를 암송하고 있었다. 그때 삐양까라의 어머니인 야차녀가 자기 아들에게 이와 같은 말로 조용히 시켰다.
[야차녀] “소리 내지 마라. 삐양까라야,
수행승이 진리의 시구를 암송하는구나.
진리의 시구를 이해해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 실천해야 한단다.
뭇삶을 해치는 것을 삼가고
고의로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우리가 착한 계행을 익힌다면,
악귀의 존재에서 벗어날 것이다.”
◆
10:7 뿌납바쑤의 경 Punabbasusutta
한때 세존께서 싸밧티 시의 제따와나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그런데 그때 세존께서 수행승들을 열반에 관한 법문으로 수행승드릉ㄹ 교화하고 복돋우고 고무시키고 기쁘게 했다. 또한 수행승들은 그 뜻을 이해하고 숙고하고 모든 마음을 집중하여 귀를 기우리고 가르침을 들었다. 그때 뿌납바쑤의 어머니인 야차녀가 자기 아들을 이와 같이 훈계하며 만족해했다.
[야차녀] “조용히 해라, 웃따라야, 조용히 해라 뿌납바쑤야
나는 최상의 깨달은 님인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싶구나.
세존께서 모든 계박에서의 해탈, 열반에 대해 말씀하실 때,
이미 오래 전부터 이 가르침에 대해 깊은 감동이 내 안에 솟구쳤단다.
세상에서는 자신의 아들이 사랑스럽고
세상에서는 자신의 남편이 사랑스럽지만
나에게는 이 가르침을 추구하는 것이
그것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든단다.
아들이나 남편을 사랑하더라도 괴로움에서 해탈하지 못하지만,
올바른 가르침을 들으면, 뭇삶은 괴로움에서 해탈하기 때문이란다.
괴로움에 빠지고 늙음과 죽음으로 묶인 세상에서
늙음과 죽음에서 해탈하기 위해 완전하게 깨달은 그분의 가르침을 듣고 싶으니,
뿌납바쑤야, 조용히 해라.”
[뿌납바쑤] “어머니, 나는 말하지 않아요.
이 웃따라도 역시 잠자코 있어요.
오로지 가르침 귀를 기울여
참다운 가르침을 듣는 것은 즐겁습니다.
참다운 가르침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 우리는 가련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분은 미혹한 신들과 사람들을 위해
빛을 비추시는 분, 마지막 육신을 나투어
지혜로운 깨달은 님께서 가르침 설하십니다.”
[야차녀] “내 가슴에서 낳고 기른 내 아들이 이토록 슬기롭다니 훌륭하도다.
내 아들은 깨달은 님 가운데 가장 높은 이의 청정한 가르침을 좋아한다.
뿌납바쑤야, 행복해라.
오늘 나는 마침내 미혹에서 벗어났으니, 웃따라도 내 말을 들어라.
거룩한 진리가 보이는구나!”
◆
10:8 쑤닷따의 경 Sudattasutta
한때 세존께서 라자가하 시에 있는 씨따바나 숲에 계셨다.
그런데 그때 장자 아나타삔디까가 어떤 용무로 라자가하 시에 도착했다.
그리고 장자 아나타삔디까는 ‘참으로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곧 세존을 뵈러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그러나 장자 아나타삔디까에게 ‘지금은 세존을 뵈러 가기에 알맞은 때가 아니다. 나는 내일 알맞은 때에 세존을 뵈러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세존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으나 밤중에 새벽인줄 알고 세 번이나 잠이 깼다.
마침내 장자 아나타삔디까는 씨따바나 숲에 이르는 문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하늘사람들이 문을 열었다.
아나타삔디까가 읍내에서 밖으로 나왔을 때, 밝음은 사라지고 어둠이 나타났다. 두려움과 전율과 공포가 일어나서 그는 되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야차 씨바까가 몸을 감추고 목소리를 들려 주었다.
“백 마리의 코끼리와 백 마리의 말과 백 마리의 노새가 끄는 수레,
보석과 귀고리로 장식한 십만 명의 처녀도,
여기 내딛는 한 발자국의 십육 분의 일에도 못 미친다.
장자여, 앞으로 나아가라.
장자여, 앞으로 나아가라.
앞으로 나아가면 좋고 뒤로 물러서면 좋지 않다.”
그러자 장자 아나타삔디까에게 어둠이 사라지고 밝음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에게 일어났던 두려움과 전율과 공포가 없어졌다.
다시 두 번째로 아나타삔디까에게 밝음은 사라지고 어둠이 나타났다. 두려움과 전율과 공포가 일어나서 되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두 번째로 야차 씨바까가 몸을 감추고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백 마리의 코끼리와 백 마리의 말과 백 마리의 노새가 끄는 수레,
보석과 귀고리로 장식한 십만 명의 처녀도
여기서 내딛는 한 발자국의 십육 분의 일에도 못 미친다.
장자여, 앞으로 나아가라.
장자여, 앞으로 나아가라.
앞으로 나아가면 좋고 뒤로 물러서면 좋지 않다.”
그러자 장자 아나타삔디까에게 어둠이 사라지고 밝음이 나타났다. 그에게 일어났던 두려움과 전율과 공포가 없어졌다.
다시 세 번재 아나타삔디까에게 밝음은 사라지고 어둠이 나타났다. 두려움고 전율과 공포가 일어나서 되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세 번째로 야차 씨바까가 몸을 감추고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백 마리의 코끼리와 백 마리의 말과 백 마리의 노새가 끄는 수레,
보석 귀고리를 장식한 십만 명의 처녀도
여기 내딛는 한 발자국의 십육 분의 일에도 못 미친다.
장자여, 앞으로 나아가라. 장자여, 앞으로 나아가라.
앞으로 나아가면 좋고 뒤로 물러서면 좋지 않다.”
그러자 장자 아나타삔디까에게 어둠이 사라지고 밝음이 나타났다. 그에게 두려움과 전율과 공포가 없어졌다.
그래서 장자 아나타삔디까는 세존께서 계시는 씨따바나 숲으로 찾아왔다. 그런데 그때 세존께서는 날이 밝아 일어나셔서 바깥을 거닐고 계셨다.
세존께서는 장자 아나타삔디까가 멀리서 오고 있는 것을 보셨다. 보고 나서 걸음을 멈추고 펼쳐진 자리에 앉으셨다. 앉아서 장자 아나타삔디까에게 ‘쑤닷따여, 어서 오시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장자 아나타삔디까는 ‘세존께서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고 감동하여 그 자리에서 세존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려 경의를 표하고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아나타삔디까] “스승이시여, 세존께서는 편히 주무셨습니까?”
[세존] “완전한 열반을 성취한 존귀한 님은
언제나 참으로 편히 잠잔다.
감각적 쾌락에 더럽혀지지 않은 님은
청량해서 집착의 대상이 없다.
모든 집착을 자르고
마음의 근심을 제거하고
마음의 적멸을 얻어서
고요한 님은 안락하게 잠잔다.”
◆
10:9 쑥까의 경 Pathamasukkasutta 1)
한때 세존게서 라자가하 시의 벨루바나 숲에 있는 깔란다까니바빠 공원에 계셨다.
그런데 그때 수행녀 쑥까가 많은 무리에 둘러싸여 가르침을 설하고 있었다.
마침 수행녀 쑥까에 대해 청정한 믿음을 가진 야차가 라자가하 시를 거리에서 거리고 네거리에서 네거리로 돌아다니며 마침 이와 같은 시를 읊었다.
“감미로운 술에 취한 듯 지내는
라자가하 시의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가?
불사의 삶에 이르는 길을 가르치는
쑥까에게 귀를 기울이는 자가 없다.
그녀의 가르침은 참으로 물리지 않고
고갈되지 않는 감로수이다.
생각하건데 슬기로운 사람이라면,
나그네가 구름을 마시듯 그것을 마시리.”
◆
10:10 쑥까의 경 Dutiyasukkasutta 2)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 시의 벨루바나 숲에 있는 깔란다니바빠 공원에 계셨다.
그런데 그때 어떤 재가신도가 수행녀 쑥까에게 공양을 올렸다.
마침 수행녀 쑥까에게 청정한 믿음을 갖고 있는 야차가 라자가하 시를 거리에서 거리로 네거리에서 네거리로 돌아다니면서 마침 이와 같은 시를 읊었다.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쑥까에게 공양을 올린 재가신도는
참으로 슬기롭네.
그야말로 참으로 많은 공덕을 낳으리.”
◆
10:11 찌라의 경 Cirasutta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 시의 벨루바나 숲에 있는 깔란다까니바빠 공원에 계셨다.
그런데 그때 어떤 재가신자가 수행녀 찌라에게 옷을 보시했다.
그때 수행녀 찌라에게 청정한 믿음을 갖고 있는 야차가 라자가하 시를 거리에서 거리로 네거리에서 네거리로 돌아다님ㄴ서 이와 같은 시를 읊었다.
“모든 얽매임에서 벗어난
찌라에게 옷을 보시한 재가신도는
참으로 슬기롭네.
그야말로 참으로 많은 공덕을 낳으리.”
◆
10:12 알라바까의 경 Alavak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알라비 국의 알라바까라는 야차의 처소에 계셨다.
이 때 야차 알라바까는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알라바까] “수행자여, 나가시오.”
[세존] “벗이여, 좋습니다.”
세존께서는 나가셨다. 또 야차는 말했다.
[알라바까] “수행자여, 들어오시오.”
[세존] “벗이여, 좋습니다.”
세존께서는 들어오셨다.
두 번째에도 알라바까는 말했다.
[알라바까] “수행자여, 나가시오.”
[세존] “벗이여, 좋습니다.”
다시 세존께서는 나가셨다. 다시 야차는 말했다.
[알라바까] “수행자여, 들어오시오.”
[세존] “벗이여, 좋습니다.”
다시 세존께서는 들어오셨다.
세 번째에도 야차 알라바까는 말했다.
[알라바까] “수행자여, 나가시오.”
[세존] “벗이여, 좋습니다.”
또 다시 세존께서는 나가셨다. 또 다시 야차는 말했다.
[알라바까] “수행자여, 들어오시오.”
[세존] “벗이여, 좋습니다.”
또 다시 세존께서는 들어오셨다.
네 번째에도 야차 알라바까는 말했다.
[알라바까] “수행자여, 나가시오.”
그러자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세존] “나는 더 이상 나가지 않겠소. 그대 할 일이나 하시오.”
[알라바까] “수행자여, 그대에게 묻겠습니다. 만일 그대가 내게 대답을 못하면 당신의 마음을 산란케 하고 당신의 심장을 찢은 뒤, 두 다리를 잡아 갠지스 강 건너로 내던지겠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벗이여, 신들과 악마들과 하느님들의 세계에서, 성직자들과 수행자들, 그리고 왕들과 백성드로가 그 훙들의 세계에서, 내 마음을 산란케 하고 내 심장을 찢고 두 다리를 잡아 갠지스 강 건너로 내던질만한 자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소. 친구여, 그대가 물어 보고 싶은 것이 있거든 무엇이나 물어 보시오.”
야차 알라바까는 세존께 다음의 시로 말을 걸었다.
[알라바까] “세상에서 사람의 으뜸가는 재산은 무엇이고,
무엇을 잘 닦아 안락을 가져오나?
무엇이 참으로 가장 감미로운 맛이며,
어떠한 삶이 최상의 삶이라 일컬어지는가?”
[세존] “믿음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재산이고,
가르침을 잘 닦아 안락을 얻으며,
진리가 참으로 가장 감미로운 맛이고,
지혜로운 삶이 최상의 삶이라 일컬어진다.”
[알라바까] “사람은 어떻게 거센 흐름을 건너는가?
어떻게 커다란 바다를 건너는가?
어떻게 괴로움을 뛰어넘는가?
그리고 어떻게 완전히 청정해지는가?”
[세존] “사라은 믿음으로 거센 흐름을 건너고,
방일하지 않음으로 커다란 바다를 건넌다.
정진으로 괴로움을 뛰어넘고,
지혜로 완전히 청정해진다.”
[알라바까] “사람은 어떻게 해서 지혜를 얻는가?
어떻게 해서 재물을 얻는가?
어떻게 해서 명성을 떨치는가?
어떻게 해서 친교를 맺는가?
어떻게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또한 가서 슬픔을 여의는가?”
[세존] “열반에 도달하기 위하여
거룩한 님의 가르침을 믿고
방일하지 않고 현명한 자라면,
배우려는 열망을 통해 지혜를 얻는다.
알맞은 일을 하고 멍에를 지고
열심히 노력하는 자는 재물을 얻고,
그는 진실함으로 명성을 떨치고,
보시함으로 친교를 맺는다.
가정생활을 하는 신도일지라도,
진실, 진리, 결단, 보시의
이 네 가지 원리를 갖추면,
내세에 가서도 걱정이 없다.
그리고 진실과 자제,
또한 보시와 인내보다 세상에
더 나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널리 수행자나 성직자에게 물어 보라.”
[알라바까] “어찌 다른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 내가 물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미래의 삶에 유익한 것을 나는 오늘 분명히 알았습니다.
깨달은 님께서 알라비에서 지낼고 오신 것은 참으로 저에게 유익했으니
커다란 과보가 있는 가르침을 받았음을 나는 오늘 분명히 알았습니다.
올바로 깨달은 님과 잘 설해진 뛰어난 가르침에 예경하면서,
저는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돌아다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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