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40 목갈라나 상윳따 ①
■ SN 40.1 - 초선 질문 경
332. 한때에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있었다. 그곳에서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도반,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대답했다.
“도반이여.”라고.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도반들이여, 외딴 곳에서 홀로 머무는 나에게 이런 (온전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초선(初禪), 초선이라고 불린다. 참으로 초선은 어떤 것인가?’라고.
그런 나에게, 도반들이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희열.喜]과 즐거움 [행복.樂]이 있는 초선을 성취하여 머문다. 이것이 초선이라고 불리다.'라고.
그런 나는, 도반들이여,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을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성취하여 머물렀습니다. 그렇게 이런 머묾으로 머무는 나에게, 도반들이여, 감각적 쾌락이 함께 한 인식(想)과 마음의 기울어짐(작의.作意)이 몰려 들었습니다.
그때, 도반들이여, 세존께서 신통으로 나에게 다가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갈라나여, 목갈라나여! 바라문이여, 초선에서 방일하지 말라. 마음을 초선에 자리잡게 하고, 마음을 초선에 집중하고, 마음을 초선에서 삼매에 들게하라.'라고.
그런 나는, 도반들이여, 그 뒤에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불선법.不善法)들에서 멀어져,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을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머물렀습니다. 도반들이여, 바르게 말하는 사람이 ‘스승의 도움을 받아 큰 신통의 지혜(완전한 지혜)를 얻은 제자’라고 말한다면, 나에게 그것을 말해야 합니다(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라고.
■ SN 40.2 - 제2선 질문 경
333. ‘제2선(第二禪), 제2선이라고 불린다. 참으로 제2선은 어떤 것인가?’
그런 나에게, 도반들이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이것이 제2선이라고 불린다.’라고.
그런 나는, 도반들이여,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얻어 머물렀습니다. 그렇게 이런 머묾으로 머무는 나에게, 도반들이여, 거친 사유와 함께 한 인식과 마음의 기울어짐이 몰려 들었습니다.
그때, 도반들이여, 세존께서 신통으로 나에게 다가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갈라나여, 목갈라나여! 바라문이여, 제2선에서 방일하지 말라. 마음을 제2선에 자리잡게 하고, 마음을 제2선에 집중하고, 마음을 제2선에서 삼매에 들게하라.’라고.
그런 나는, 도반들이여, 그 뒤에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두 번째 선정을 얻어 머물렀습니다. 도반들이여, 바르게 말하는 사람이 ‘스승의 도움을 받아 큰 신통의 지혜를 얻은 제자’라고 말한다면, 나에게 그것을 말해야 합니다.”라고.
■ SN 40.3 - 제3선 질문 경
334. ‘제3선(第三禪), 제3선이라고 불린다. 참으로 제3선은 어떤 것인가?’
그런 나에게, 도반들이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여기 비구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을 얻어 머문다. 이것을 제3선이라고 불린다.’라고.
그런 나는, 도반들이여,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을 얻어 머물렀습니다. 그렇게 이런 머묾으로 머무는 나에게, 도반들이여, 기쁨이 함께 한 인식과 마음의 기울어짐이 몰려 들었습니다.
그때, 도반들이여, 세존께서 신통으로 나에게 다가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갈라나여, 목갈라나여! 바라문이여, 제3선에서 방일하지 말라. 마음을 제3선에 자리잡게 하고, 마음을 제3선에 집중하고, 마음을 제3선에서 삼매에 들게 하라.’라고.
그런 나는, 도반들이여, 그 뒤에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을 얻어 머물렀습니다. 도반들이여, 바르게 말하는 사람이 ‘스승의 도움을 받아 큰 신통의 지혜를 얻은 제자’라고 말한다면, 나에게 그것을 말해야 합니다.”라고.
■ SN 40.4 - 제4선 질문 경
335. ‘제4선(第四禪), 제4선이라고 불린다. 참으로 제4선은 어떤 것인가?’
그런 나에게, 도반들이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여기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을 얻어 머문다. 이것을 제4선이라고 불린다.'라고.
그런 나는, 도반들이여,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을 지닌 제4선을 얻어 머물렀습니다. 그렇게 이런 머묾으로 머무는 나에게, 도반들이여, 즐거움이 함께한 인식과 마음의 기울어짐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때, 도반들이여, 세존께서 신통으로 나에게 다가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갈라나여, 목갈라나여! 바라문이여, 제4선에서 방일하지 말라. 마음을 제4선에 자리잡게 하고, 마음을 제4선에 집중하고, 마음을 제4선에서 삼매에 들게 하라.’라고.
그런 나는, 도반들이여, 그 뒤에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을 지닌, 제4선을 얻어 머물렀습니다. 도반들이여, 바르게 말하는 사람이 ‘스승의 도움을 받아 큰 신통의 지혜를 얻은 제자’라고 말한다면, 나에게 그것을 말해야 합니다.”라고.
■ SN 40.5 - 공무변처 질문 경
336. ‘공무변처, 공무변처라고 불린다. 참으로 공무변처는 어떤 것인가?’라고.
그런 나에게, 도반들이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인식)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를 얻어 머문다. 이것을 공무변처라고 불린다.’라고.
그런 나는, 도반들이여,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인식)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얻어 머물렀습니다. 그렇게 이런 머묾으로 머무는 나에게, 도반들이여, 물질적 현상에 대한 인식과 마음의 기울어짐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때, 도반들이여, 세존께서 신통으로 나에게 다가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갈라나여, 목갈라나여! 바라문이여, 공무변처에서 방일하지 말라. 마음을 공무변처에 자리잡게 하고, 마음을 공무변처에 집중하고, 마음을 공무변처에서 삼매에 들게 하라.’라고.
그런 나는, 도반들이여, 그 뒤에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인식)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얻어 머물렀습니다. 도반들이여, 바르게 말하는 사람이 ‘스승의 도움을 받아 큰 신통의 지혜를 얻은 제자’라고 말한다면, 나에게 그것을 말해야 합니다.”라고.
■ SN 40.6 - 식무변처 질문 경
337. ‘식무변처, 식무변처라고 불린다. 참으로 식무변처는 어떤 것인가?’라고.
그런 나에게, 도반들이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를 얻어 머문다. 이것을 식무변처라고 불린다.’라고.
그런 나는, 도반들이여,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 ’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얻어 머물렀습니다. 그렇게 이런 머묾으로 머무는 나에게, 도반들이여, 공무변처에 대한 인식과 마음의 기울어짐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때, 도반들이여, 세존께서 신통으로 나에게 다가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갈라나여, 목갈라나여! 바라문이여, 식무변처에서 방일하지 말라. 마음을 식무변처에 자리잡게 하고, 마음을 식무변처에 집중하고, 마음을 식무변처에서 삼매에 들게 하라.’라고.
그런 나는, 도반들이여, 그 뒤에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얻어 머물렀습니다. 도반들이여, 바르게 말하는 사람이 ‘스승의 도움을 받아 큰 신통의 지혜를 얻은 제자’라고 말한다면, 나에게 그것을 말해야 합니다.”라고.
■ SN 40.7 - 무소유처 질문 경
338. ‘무소유처, 무소유처라고 불린다. 참으로 무소유처는 어떤 것인가?’라고.
그런 나에게, 도반들이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얻어 머문다. 이것을 무소유처라고 불린다.’라고.
그런 나는, 도반들이여,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얻어머물렀습니다. 그렇게 이런 머묾으로 머무는 나에게, 도반들이여, 식무변처에 대한 인식과 마음의 기울어짐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때, 도반들이여, 세존께서 신통으로 나에게 다가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갈라나여, 목갈라나여! 바라문이여, 무소유처에서 방일하지 말라. 마음을 무소유처에 자리잡게 하고, 마음을 무유처에 집중하고, 마음을 무소유처에서 삼매에 들게 하라.’라고.
그런 나는, 도반들이여, 그 뒤에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얻어 머물렀습니다. 도반들이여, 바르게 말하는 사람이 ‘스승의 도움을 받아 큰 신통의 지혜를 얻은 제자’라고 말한다면, 나에게 그것을 말해야 합니다.”라고.
■ SN 40.8 - 비상비비상처 질문 경
339. ‘비상비비상처, 비상비비상처라고 불린다. 참으로 비상비비상처는 어떤 것인가?’라고.
그런 나에게, 도반들이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여기 비구는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얻어 머문다. 이것을 비상비비상처라고 불린다.’라고.
그런 나는, 도반들이여,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얻어 머물렀습니다. 그렇게 이런 머묾으로 머무는 나에게, 도반들이여, 무소유처에 대한 인식과 (그러한 것에) 마음의 기울어짐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때, 도반들이여, 그때 세존께서 신통으로 나에게 다가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갈라나여, 목갈라나여! 바라문이여, 비상비비상처에서 방일하지 말라. 마음을 비상비비상처에 자리잡게 하고, 마음을 비상비비상처에 집중하고, 마음을 비상비비상처에 서 삼매에 들게 하라.’라고.
그런 나는, 도반들이여, 그 뒤에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얻어 머물렀습니다. 도반들이여, 바르게 말하는 사람이 ‘스승의 도움을 받아 큰 신통의 지혜를 얻은 제자’라고 말한다면, 나에게 그것을 말해야 합니다.”라고.
■ SN 40.9 - 무상(無相) 질문 경
340. ‘표상 없는 마음의 삼매, 표상 없는 마음의 삼매(無相心三昧)라고 불린다. 참으로 표상 없는 마음의 삼매는 어떤 것인가?’라고.
그런 나에게, 도반들이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여기 비구는 모든 표상들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아서 표상 없는 마음의 삼매에 들어 머문다. 이것을 표상 없는 마음의 삼매라고 불린다.’라고.
그런 나는, 도반들이여, 모든 표상들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아서 표상 없는 마음의 삼매를 얻어 머물렀습니다. 그렇게 이런 머묾으로 머무는 나에게, 도반들이여, 표상을 기억하는 인식과 마음의 기울어짐이 몰려들었습니다.
"깊은 위빳사나와 함께한 이 삼매는 영원하다는 표상 등이 없기 때문에 표상이 없는 마음의 삼매라 한 것이다.(SAT.iii.177)
그때, 도반들이여, 세존께서 신통으로 나에게 다가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갈라나여, 목갈라나여! 바라문이여, 표상 없는 마음의 삼매에서 방일하지 말라. 마음을 표상 없는 마음의 삼매에 자리잡게 하고, 마음을 표상 없는 마음의 삼매에 집중하고, 마음을 표상 없는 마음의 삼매에서 삼매에 들게 하라.’라고.
그런 나는, 도반들이여, 그 뒤에 모든 표상들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아서 표상 없는 마음의 삼매를 얻어 머물렀습니다. 도반들이여, 바르게 말하는 사람이 ‘스승의 도움을 받아 큰 신통의 지혜를 얻은 제자’라고 말한다면, 나에게 그것을 말해야 합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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