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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42  우두머리 상윳따 ②

 


■ SN 42.8 - 소라고둥 부는 자 경
 
360. 한때에 세존께서는 날란다에서 빠와리까의 망고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니간타의 제자인 아시반다까뿟따 촌장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아시반다까뿟따 촌장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촌장이여, 니간타 나따뿟따는 제자들에게 어떤 법을 설합니까?”
“세존이시여, 니간타 나따뿟따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법을 설합니다.
‘생명을 해치는 자는 누구든지 악처에 태어날 것이고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는 누구든지 악처에 태어날 것이고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자는 누구든지 악처에 태어날 것이고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거짓을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악처에 태어날 것이고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그가 거듭 많이 머무는 행위에 의해 그는 다음 생으로 인도될 것이다.’라고. 
세존이시여, 니간타 나따뿟따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법을 설합니다.”
“촌장이여, 니간타 나따뿟따의 말처럼, 이렇게 ‘그가 거듭 많이 머무는 행위에 의해 그는 다음 생으로 인도될 것이다.’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악처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고, 지옥에 태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촌장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밤과 낮에 때때로 생명을 해치는 어떤 사람과 관련하여, 그가 생명을 해치는 시간과 생명을 해치지 않는 시간 중에 어떤 시간이 더 많습니까?”
“세존이시여, 밤과 낮에 때때로 생명을 해치는 어떤 사람과 관련하여, 그가 생명을 해치는 시간은 더 적습니다. 오히려 그가 생명을 해치지 않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촌장이여, 니간타 나따뿟따의 말처럼, 이렇게 ‘그가 많이 머무는 행위에 의해 그는 다음 생으로 인도될 것이다.’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아무도 악처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고, 지옥에 태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촌장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밤과 낮에 때때로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어떤 사람과 관련하여, 그가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시간과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는 시간 중에 어떤 시간이 더 많습니까?”
“세존이시여, 밤과 낮에 때때로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사람과 관련하여, 그가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시간은 더 적습니다. 오히려 그가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촌장이여, 니간타 나따뿟따의 말처럼, 이렇게 ‘그가 많이 머무는 행위에 의해 그는 다음 생으로 인도될 것이다.’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아무도 악처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고, 지옥에 태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촌장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밤과 낮에 때때로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어떤 사람과 관련하여, 그가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시간과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지 않는 시간 중에 어떤 시간이 더 많습니까?”
“세존이시여, 밤과 낮에 때때로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어떤 사람과 관련하여, 그가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시간은 더 적습니다. 오히려 그가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지 않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촌장이여, 니간타 나따뿟따의 말처럼, 이렇게 ‘그가 많이 머무는 행위에 의해 그는 다음 생으로 인도될 것이다.’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아무도 악처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고, 지옥에 태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촌장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밤과 낮에 때때로 거짓을 말하는 어떤 사람과 관련하여, 그가 거짓을 말하는 시간과 거짓을 말하지 않는 시간 중에 어떤 시간이 더 많습니까?”
“세존이시여, 밤과 낮에 때때로 거짓을 말하는 어떤 사람과 관련하여, 그가 거짓을 말하는 시간은 더 적습니다. 오히려 그가 거짓을 말하지 않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촌장이여, 니간타 나따뿟따의 말처럼, 이렇게 ‘그가 많이 머무는 행위에 의해 그는 다음 생으로 인도될 것이다.’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아무도 악처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고, 지옥에 태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 촌장이여, 어떤 스승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습니다. 
‘생명을 해치는 자는 누구든지 모두 악처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난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는 누구든지 모두 악처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난다.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자는 누구든지 모두 악처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난다. 거짓을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모두 악처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난다.’라고. 
촌장이여, 그 스승에 대해 제자는 믿음을 가집니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나의 스승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자이다. ‘생명을 해치는 자는 누구든지 모두 악처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난다.’라고. 그런데 나는 생명을 해쳤다. 나는 악처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그는 이러한 스승의 견해를 얻어 지니고 있습니다. 촌장이여,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여집니다. 
‘나의 스승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자이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는 누구든지 모두 악처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난다.’라고. 그런데 나는 주지 않은 것을 가졌다. 나는 악처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그는 이러한 스승의 견해를 얻어 지니고 있습니다. 촌장이여,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여집니다. 
‘나의 스승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자이다.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자는 누구든지 모두 악처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난다.’라고. 그런데 나는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했다. 나는 악처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그는 이러한 스승의 견해를 얻어 지니고 있습니다. 촌장이여,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여집니다.
‘나의 스승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자이다. '거짓을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모두 악처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난다.’라고. 그런데 나는 거짓을 말했다. 나는 악처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그는 이러한 스승의 견해를 얻어 지니고 있습니다. 촌장이여,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여집니다. 
그러나, 여기, 촌장이여,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이시며, 위 없으신 분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인 여래가 세상에 출현합니다. 그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생명을 해치는 것을 비난하고 질책합니다. 그리고 ‘그대들은 생명을 해치는 것을 멀리 떠나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비난하고 질책합니다. 그리고 '그대들은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떠나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것을 비난하고 질책합니다. 그리고 ‘그대들은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것을 멀리 떠나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거짓을 말하는 것을 비난하고 질책합니다. 그리고 ‘그대들은 거짓을 말하는 것을 멀리떠나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촌장이여, 그 스승에 대해 제자가 믿음을 가집니다. 그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생명을 해치는 것을 비난하고 질책하신다. 그리고 ‘그대들은 생명을 해치는 것을 멀리 떠나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나는 이러저러한 정도로 정도로 생명을 해쳤다. 내가 이러저러한 정도로 생명을 해친 것은 올바르지 않고 잘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비록 나는 그것에 대해서 뉘우치고 있지만, 내가 이 악업을 짓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숙고한 뒤에 그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버립니다. 미래에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가 됩니다. 이렇게 이 악한 업을 버립니다. 이렇게 이 악한 업을 극복합니다.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비난하고 질책하신다. 그리고 ‘그대들은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떠나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나는 이러저러한 정도로 주지 않는 것을 가졌다. 내가 이러저러한 정도로 주지 않는 것을 가진 것은 올바르지 않고, 잘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비록 내가 그것에 대해서 뉘우치고 있지만, 내가 이 악업을 짓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숙고한 뒤에 그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를 버립니다. 미래에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가 됩니다. 이렇게 이 악한 업을 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이 악한 업을 극복합니다.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것을 비난하고 질책하신다. 그리고 ‘그대들은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것을 멀리 떠나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나는 이러저러한 정도로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했다. 내가 이러저러한 정도로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한 것은 올바르지 않고, 잘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비록 내가 그것에 대해서 뉘우치고 있지만, 내가 이 악업을 짓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숙고한 뒤에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행위를 버립니다. 미래에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가 됩니다. 이렇게 이 악한 업을 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이 악한 업을 극복합니다.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거짓을 말하는 것을 비난하고 질책하신다. 그리고 ‘그대들은 거짓을 말하는 것을 멀리 떠나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나는 이러저러한 정도로 거짓을 말하였다. 내가 이러저러한 정도로 거짓을 말한 것은 올바르지 않고, 잘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비록 내가 그것에 대해 뉘우치고 있지만, 내가 그 악업을 짓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숙고한 뒤에 거짓을 말하는 해위를 버립니다. 미래에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가 됩니다. 이렇게 이 악한 업을 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이 악한 업을 극복합니다. 
그는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입니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입니다.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입니다.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버렸기 때문에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입니다. 이간하는 말을 버렸기 때문에 이간하는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입니다. 거칠게(욕설) 말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거칠게 말하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입니다. 꾸며대는 말을 말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꾸며대는 말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입니다. 간탐을 버렸기 때문에 간탐하지 않는 자입니다. 성냄(악의)의 결점을 버렸기 때문에 성냄 없는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삿된 견해를 버렸기 때문에 바른 견해를 가진 자입니다. 
촌장이여,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며 이렇게 간탐하지 않고, 성냄이 없고, 혼란함이 없는 그 성스러운 제자는 자애을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그와 같이 두 방향. 그와 같이 세 방향. 그와 같이 네 방향. 위 아래와 사방 모든 곳에. 일체의. 일체의 세간에. 광대하고 크고 무량한. 악의 없고 해치고자 함이 없는. 자애를 수반하는 마음을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예를 들면, 촌장이여, 힘센 소라고둥을 부는 사람은 어려움 없이 사방에서 소리를 듣게 합니다. 이처럼, 촌장이여,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많이 행한 자에게 제한적으로 지어진 업은 어떠한 것도 거기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고, 거기서 머물러 있지 않을 입니다.
촌장이여,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며 이렇게 간탐하지 않고, 성냄이 없고, 혼란함이 없는 그 성스러운 제자는 연민을 수반하는 마음을 … 기뻐함을 수반하는 마음을 … 평정을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그와 같이 두 방향. 그와 같이 세 방향. 그아 같이 네 방향. 위 아래와 사방 모든 곳에. 일체의. 일체의 세간에. 광대하고 크고 무량한 악의 없고 해치고자 함이 없는 평정을 수반하는 마음을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예를 들면, 촌장이여, 힘센 소라고둥을 부는 사람은 어려움 없이 사방에서 소리를 듣게 합니다. 이처럼, 촌장이여, 평정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많이 행한 자에게 제한적으로 지어진 업은 어떠한 것도 거기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고, 거기서 머물러 있지 않을 입니다."라고.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시반다까뿟따 촌장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법)을 밝혀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세존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법)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비구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 SN 42.9 - 가문 경
 
36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에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대중)와 함께 꼬살라 지방에서 유행(遊行)하시다가 날란다에 도착하셨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거기 날란다에서 빠와리까의 망고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날란다에는 흉년으로 식량이 부족하고 농작물은 하얗게 타들어가 지푸라기로 변해 버렸다. 그 당시 니간타 나따뿟따가 많은 니간타 무리와 함께 날란다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니간타의 제자인 아시반다까뿟따 촌장이 니간타 나따뿟따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니간타 나따뿟따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아시반다까뿟따 촌장에게 니간타 나따뿟따는 이렇게 말했다.
“오시오, 촌장이여. 그대는 사문 고따마의 교설을 논파하십시요. 그러면 ‘아시반다까뿟따 촌장은 이처럼 크나큰 신통을 가졌고 이처럼 크나큰 위력을 가진 사문 고따마의 교설을 논파하였다.’라는 이런 명성이 퍼질 것입니다.”라고,
“그러나 존자이시여, 어떻게 제가 이처럼 크나큰 신통을 가졌고 이처럼 크나큰 위력을 가진 사문 고따마의 교설을 논파한단 말입니까?”
"오시오, 촌장이여. 그대는 사문 고따마에게 가십시요. 가서는 사문 고따마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문들을 위해 동정하는 것을 칭송하시고 보호하는 것을 칭송하시고 연민하는 것을 칭송하시지 않습니까?’라고. 만일, 촌장이여, 이렇게 질문을 받은 사문 고따마가 ‘그렇습니다, 촌장이여. 여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문을 동정하는 것을 칭송하고 보호하는 것을 칭송하고 연민하는 것을 칭송합니다.’라고 대답하면, 그런 그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그런데,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이렇게 흉년으로 식량이 부족하고 농작물은 하얗게 타들어가 지푸라기로 변해버린 시기에 많은 비구 승가와 유행하는 것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세존께서는 가문들을 파괴하기 위해 실천하는 분입니다. 세존께서는 가문들의 불행을 위해 실천하는 분입니다. 세존께서는 가문들의 파멸을 위해 실천하는 분입니다.’라고. 촌장이여, 이런 양 극단을 가진 그대의 질문을 받으면 사문 고따마는 그것을 뱉을 수도 없고 삼킬 수도 없을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존자이시여.”라고 아시반다까뿟따 촌장은 니간타 나따뿟따에게 대답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니간타 나따뿟따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후 존경의 믜미로 오른쪽으로 돈 뒤에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쪽곁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아시반다까뿟따 촌장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문을 동정하는 것을 칭송하시고 보호하는 것을 칭송하시고 연민하시는 것을 칭송하시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촌장이여. 여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문을 동정하는 것을 칭송하고 보호하는 것을 칭송하고 연민하는 것을 칭송합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이렇게 흉년으로 식량이 부족하고 농작물은 하얗게 타들어가 지푸라기로 변해버린 시기에 많은 비구 승가와 유행하는 것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세존께서는 가문들을 파괴하기 위해 실천하는 분입니다. 세존께서는 가문들의 불행을 위해 실천하는 분입니다. 세존께서는 가문들의 파멸을 위해 실천하는 분입니다.”
"촌장이여, 내가 지난 91겁을 기억해 보건데 전에 어떤 가문도 단지 요리된 탁발음식을 공양한 것만으로 파멸된 가문을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부유하고, 많은 재물과 재산을 가졌고, 소유한 것이 많고, 금과 은이 풍부하고, 토지와 도구가 풍부하고, 재산과 곡식이 풍부한 가문들은 모두 보시가 일으키고(보시를 통해서), 진실이 일으키고, 재산을 탕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촌장이여, 여덟 가지 원인과 여덟 가지 조건 때문에 가문들은 파멸합니다. 왕 때문에 가문들은 파멸합니다. 도둑 때문에 가문들은 파멸합니다. 불 때문에 가문들은 파멸합니다. 물 때문에 가문들은 파멸합니다. 비밀리에 저장해 둔 장소를 떠나거나(찾아내지 못하거나), 사업을 잘못하여 실패하거나, 재물을 낭비하고 허비하고 탕진하는 자가 가문 안에서 생깁니다. 무상하다는 것이 여덟 번째입니다. 촌장이여, 이러한 여덟 가지 원인과 여덟 가지 조건 때문에 가문들은 파멸합니다. 촌장이여, 이러한 여덟 가지 원인과 여덟 가지 조건이 따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누가 나에게 말하기를 세존께서는 가문들을 파괴하기 위해 실천하는 분입니다. 세존께서는 가문들의 불행을 위해 실천하는 분입니다. 세존께서는 가문들의 파멸을 위해 실천하는 분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촌장이여,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포기하지 않으면(그 견해를 포기하지 않고 죽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여질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시반다까뿟따 촌장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법)을 밝혀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세존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법)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비구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 SN 42.10 - 마니쭐라까 경
 
362. 한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에 있는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왕의 대신들이 왕궁에서 함께 모여 앉아 이런 대화를 하고 있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에게 금과 은이 허락됩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인정합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받습니다.'라고.
그때 마니쭐라까 촌장이 그 모임에 앉아 있었다. 마니쭐라까 촌장은 그 모임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에게는 금과 은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받지 않습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보석과 금을 내려놓았습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사용하지 않습니다.”라고.
마니쭐라까 촌장은 그 모임을 납득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마니쭐라까 촌장은 세존께 찾다가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쪽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마니쭐라까 촌장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여기, 세존이시여, 여기 왕의 대신들이 왕궁에 함께 모여 앉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에게 금과 은이 허락됩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인정합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받습니다.'라고. 이렇게 말했을 때, 세존이시여, 제가 그 모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에게는 금과 은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받지 않습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보석과 금을 내려놓았습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사용하지 않습니다.'라고. 세존이시여, 저는 그 모임을 납득시킬 수 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렇게 설명하면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을 말하는 것이고, 세존을 거짓으로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설명하는 것이고, 이어서 말하는 동료 수행자가 누구라도 (세존께서 설하셨다고 전해진 이것을 반복하더라도) 삿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겠습니까?”라고. 
“확실히, 촌장이여. 이렇게 말하는 그대는 내가 말한 것을 말하는 것이고, 나를 거짓으로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설명하는 것이고, 이어서 말하는 동료 수행자가 누구라도 삿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습니다. 참으로, 촌장이여,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에게는 금과 은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보석과 금을 내려놓았기 때문입니다. 사까의 아들인 사문들은 금과 은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촌장이여, 금과 은을 허락하는 것은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들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촌장이여,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들을 허락하는 것은 결코 사문의 법이 아니며, 결코 사카의 아들인 사문들의 법이 아니라고 그대는 분명하게 받아 지녀야 합니다. 나아가서, 촌장이여,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풀은 풀을 구하는 자에게 찾아질 것이고, 목재는 목재를 구하는 자에게 찾아질 것이고, 수레는 수레를 구하는 자에게 찾아질 것이고, 사람은 사람을 구하는 자에게 찾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촌장이여, 어떤 방편으로도 '금과 은은 인정해야 하고 찾아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 SN 42.11 - 바드라까 경
 
363. 한때에 세존께서는 말라의 우루웰라깝빠라는 말라들의 성읍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바드라까 촌장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바드라까 촌장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제게 괴로움의 일어남과 소멸을 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촌장이여, 만약 내가 그대에게 ‘과거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라고 과거와 관련하여 괴로움의 일어남과 소멸을 설한다면 그곳에서 그대에게 의심과 혼란이 생길 것입니다. 촌장이여, 만약 내가 그대에게 ‘미래에는 이런 것이 있을 것이다.’라고 미래와 관련하여 괴로움의 일어남과 소멸을 설한다면 그곳에서 그대에게 의심과 혼란이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촌장이여, 바로 지금 앉아있는 바로 여기에서 앉아있는 그대에게 괴로움의 일어남과 소멸을 설하겠습니다. 그것을 듣고 잘 사고하십시오. 나는 말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바드라까 촌장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촌장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촌장이여, 그들에 대한 사형이나 구속이나 몰수나 비난에 의해서 그대에게 그대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생길 우루웰라깝빠의 사람들이 그대에게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그들에 대한 사형이나 구속이나 몰수나 비난에 의해서 저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생길 우루웰라깝빠의 사람들이 저에게 있습니다.”
“촌장이여, 그들에게 대한 사형이나 구속이나 몰수나 비난에 의해서 그대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가 생기지 않을 우루웰라깝빠의 사람들이 그대에게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그들에 대한 처형이나 구속이나 몰수나 비난에 의해서 저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생기지 않을 우루웰라깝빠의 사람들이 저에게 있습니다.”
“촌장이여, 무슨 이유와 무슨 조건 때문에 우루웰라깝빠의 어떤 사람들에 대한 사형이나 구속이나 몰수나 비난에 의해서 그대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생깁니까? 그리고 무슨 이유와 무슨 조건 때문에 우루웰라깝빠의 어떤 사람들에 대한 사형이나 구속이나 몰수나 비난에 의해서 그대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을 생기지 않습니까?”
“세존이시여, 그들에 대한 사형이나 구속이나 몰수나 비난에 의해서 저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생길 우루웰라깝빠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저에게 욕탐(관심, 욕구, chanda)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들에 대한 사형이나 구속이나 몰수나 비난에 의해서 저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생기지 않을 우루웰라깝빠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저에게 욕탐이 없습니다.”
“촌장이여, 현재에서 보여진 것이고, 알려진 것이고, 시간을 넘어선 것이고, 성취된 것이고, 꿰뚫은 것인 이런 현재의 법을 과거와 미래에도 그대로 적용하여 바른 결론으로 이끌어내십시오. ‘일어났던 괴로움은 어떤 것이든지 과거에도 모두 욕탐를 뿌리로, 욕탐을 인연으로 일어났다. 참으로 욕탐은 괴로움의 뿌리이다. 일어날 괴로움은 어떤 것이든지 미래에도 모두 욕탐을 뿌리로, 욕탐을 인연으로 일어날 것이다. 참으로 욕탐은 괴로움의 뿌리이다.’라고.”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일어나는 것인 괴로움은 어떤 것이든지 모두 욕탐을 뿌리로, 욕탐을 인연으로 일어난다. 참으로 욕탐은 괴로움의 뿌리이다.’라고 이렇게 훌륭한 가르침을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저에게 집 밖에서 거주하고 있는 찌라와시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런 저는, 세존이시여, 아침에 일어나면 사람을 불러 ‘여보게, 가서 어린 찌라와시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보게’라고 사람을 보냅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저는 ‘찌라와시가 아프지는 않아야 할 텐데.’라고 걱정을 합니다.”
“촌장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린 아들 찌라와시에 대한 사형이나 구속이나 몰수나 비난에 의해서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일어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어린 아들 찌라와시에 대한 사형이나 구속이나 몰수나 비난에 의해서 저에게, 심지어 삶이 만신창이 되어버린 것인데, 근심이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저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촌장이여, ‘일어나는 것인 괴로움은 어떤 것이든지 모두 욕탐을 뿌리로, 욕탐을 인연으로 일어난다. 참으로 욕탐은 괴로움의 뿌리이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으로 알아야 합니다.”
“촌장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찌라와시의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고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때에 그대에게 '찌라와시 어머니에 대한 욕탐이나 탐욕이나 사랑'이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촌장이여, 보게 되고 듣게 된 뒤에 그대에게 '찌라와시의 어머니에 대한 욕탐이나 탐욕이나 사랑'이 있게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촌장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찌라와시의 어머니에 대한 사형이나 구속이나 몰수나 비난에 의해서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일어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찌라와시의 어머니에 대한 사형이나 구속이나 몰수나 비난에 의해서 저에게, 심지어 삶이 만신창이 되어버린 것인데, 근심이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저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촌장이여, ‘생겨나는 것인 괴로움은 어떤 것이든지 모두 욕탐을 뿌리로, 욕탐을 인연으로 일어난다. 참으로 욕탐은 괴로움의 뿌리이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으로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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