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귀감
한 물건이 있어
흔연히 이루어지니, 천지보다 먼저 났으니 지극히 크고 지극히 높으며,
지극히 텅비어 지극히 신령스러우며, 탕탕하게 넓고 넓으며, 성성력력하여 뚜렷하게 밝은지라.
경계로 가두어 그 머무를 곳을 정할 수가 없으니,
오랜 겁수로도 그 수명을 다할 수 없구나.
내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여 ‘마음’이라 이름하였다.
텅비어 밝은 골짜기 ‘곡(谷)’이라 하고, 신령스럽게 밝은 ‘신(神)’이라하니,
하늘과 땅, 사람인 천지인 삼재의 근본이 되어 만물의 어머니와 같구나.
이름 있는 것, 이름 없는 것, 생각있는 것, 생각 없는 것이 다 함께 여기에서 나왔으니
그러므로 “현묘하고도 현묘하여 온갖 묘한 것들의 문”이라고 한다.
본체는 도라 하고, 작용은 덕이라 하니,
본체가 없이는 작용도 생길수 없고, 작용이 없이는 본체도 신묘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도와 덕을 모두 갖추되
온갖 반연은 버리고 그 신묘함을 살펴 관할어다.
유명하지 않는 성인이나 이룬 것이 없다는 신인(神人)이나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는 지인(至人)은
도와 덕의 참된 실체를 안고서도
마음을 비우고, 아집이 없으니,
한 물건도 없는 경계에서 항상 노니느니라.
이는 인의도 천하도 국가도 부질없는 영화로움이라 여기는 것이니,
요순 황제가 천하를 다스린 도는
만물의 아버지라 할만 하지만, 만물의 아버지의 아버지라고는 할수 없느니라.
인간 세상도 큰 꿈과 같아서, 큰 꿈 가운데에는 분명 크게 깨달은 왕이 있으리니,
그렇기에 크게 깨달은 뒤에는 그것이 큰 꿈일 뿐임을 안다.
그렇게 되면, 장주와 장주가 꿈에서 호접이 되었던 것도 모두가 꿈이 된다.
사람은 하늘을 법으로 삼고
하늘은 도를 법으로 삼고
도는 자연을 법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진인(眞人)은 한결같은 기운을 품고 생명을 키우는 것이 마치 양을 치는 목자와 같아서 채찍질은 뒷일이 된다.
성인은 다투지 않아서 천하에 그와 더불어 다툴 사람이 없다.
성인은 스스로 높이지 않아서 위대하게 되는 것이다.
하늘의 도는 사사로움이 없이 항상 선한 사람과 함께하고,
하늘의 도는 말이 없이도 항상 선한 것에 응답하느니라.
하늘의 도는 활줄을 당겨 벌리는 것과 같아서 여력이 있는 것을 덜어서 부족한 것을 채우지만,
사람의 도는 오히려 그렇지 않아서 부족한 것을 덜어서 넘치는 것에 바친다.
청색 황색 적색 백색 흑색의 다섯가지 색으로 사람들 눈을 멀게하고
궁상각치우의 다섯 개의 소리로 사람들의 귀를 멀게하는 구나.
그래도 눈과 귀를 멀게하는데에는 아름다운 미색이 가장 심하니,
하나만 있어도 꽃을 떨구는 화살이 되고
하나만 있어도 덕성을 베어버리는 도끼가 되느니라.
그래서 성인들이 배를 채워주는 것을 위해도 보기 좋은 것을 위하지 않는 것이다.
하늘을 찢어발겨서 낮과 밤을 멈출 수는 없지만
사람들은 되돌아보고 그 빈틈을 메울수 있다.
도인은 거친 베옷을 입고서도 가슴에는 청옥을 품은 것과 같으니,
그렇기에 덕은 증장하고, 형색은 잊게되는 것이다.
매우 사랑하면 반드시 큰 소모가 있게되고,
많이 감추면 반드시 크게 없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만족을 모르는 데에서 커지는 것이 재앙이다.
믿는 사람이 아름답다고 하지 않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말이라도 믿어 주지 않는다.
또한 가벼이 허락하면 신뢰도 적을 것이고, 쉬운 것이 많으면 어려운 것도 많을 것이다.
위대한 공덕은 공덕을 지었다는 생각조차 없고,
지극히 가까우면 예를 지킨다는 것조차 없고,
참된 기쁨은 웃음소리가 없고,
진정한 슬픔은 곡소리도 없다.
골짜기는 텅 비어야 메아리가 잘 울리고 집은 비어있어야 청결하니,
사람이 자신을 비워서 세상을 노닐수 있다면, 누가 그를 해칠수 있겠는가.
헛된 명성, 부질없는 이익은 얻는다해도 반드시 복이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잃게되어도 반드시 재앙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옛날 도를 얻은 사람들은 빈궁하여도 즐겁고, 만사가 형통하여도 즐거웠으니,
이처럼 즐거운 것은 빈궁함이나 형통함에 있는 것이 아니며, 빈궁하든 형통하든 모두가 바깥경계일 뿐이다.
세상에서 귀족이라는 작위와 관리로써 받는 녹봉에 얽매이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해서 얽매인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없다면, 만물을 떠나 그 무엇이 나를 얽어맬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나를 소라고 부르건 말이라 부르건, 나는 모두에게 그렇다고 응하는데, 내게 그런 사실이 있어 남들이 그 이름을 주었으리라.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을 재앙으로 다시 받아야 할 것이다.
겸양하고 자신을 낮추는 마음은 대중들과 머무는 덕이 된다.
강물이 수많은 골짜기의 계곡을 거느리는 왕이 되는 것은 자신을 훌륭하게 낮추었기 때문이다.
하늘이 덮어주지 않는 곳이 없고, 대지는 실어내지 않는 것이 없으니, 군자의 법이 그러하다.
사람의 마음에서 한 생각 일이키는 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사사로운 말들도 하늘은 천둥소리처럼 듣고,
어두운 방안에서 속이는 마음도 신령한 눈에는 번갯불처럼 보인다.
군자는 널리 온갖 선한것들을 취해서 자신을 보좌하니, 반드시 공자만 글을 보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편작만이 약을 갖는 것이 아니다. 뜻에 부합하면 따르고, 병을 낫게하면 먹는 것이다.
수많은 곳에서 부는 바람도 같은 허공에서 불고 같은 허공으로 들어간다.
제자백가의 많은 쟁론들도 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시비일 뿐이다.
이 마음은 천지의 의지처이고, 천지는 만물의 의지처이다.
이 마음은 나온 곳 없고, 구멍 없이 본래자리로 들어가니,
실상이 있다해도 머물지 않고 항상 움직이고 작용하는데에 있구나.
하나에 통하면 만사를 끝마치니,
마음을 비우면 귀신들도 감복하느니라.
군자가 만물에 의해 자신을 해치고 세속에 의해 성품을 잃으면
그는 거꾸러진 백성이다.
무극으로 도를 세우고, 태일로써 도에 머물되
흐르는 물처럼, 맑은 거울처럼, 그대로 응답하는 메아리처럼 하라.
사람이 그림자가 두려워 피하고자 달리면 발을 아무리 다급하게 놀린다해도 오히려 그림자만 어지러울 뿐이다.
그늘에 머물며 그림자를 없애고 고요히 앉아 흔적을 멈추는 법은 알지 못하는구나.
도라는 것은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또한 말이라는 것은 뜻에 있으니, 뜻을 깨달아 말을 잊어버리는 사람이라야 말을 할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형상 없는 것을 보고 소리 없는 것을 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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