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16장 가섭 ① SN16:1-SN16:5
16.1-만족 경
144.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비구들이여, 깟사빠는 어떤 의복으로도 만족하고, 어떤 의복으로도 만족하는 것에 대해 칭찬한다. 그는 의복을 원인으로 삿되고 부적절한 방법을 저지르지 않는다(의존하지 않는다). 의복을 얻지 못하더라도 동요하지 않고, 의복을 얻더라도 속박되지 않고, 마음 빼앗기지 않고, 묶이지 않으며 위험을 보는 자, 벗어남의 지혜를 가진 자로서 사용한다.
비구들이여, 깟사빠는 어떤 탁발음식으로도 만족하고, 어떤 탁발음식으로도 만족하는 것에 대해 칭찬한다. 그는 탁발음식을 원인으로 삿되고 부적절한 방법을 저지르지 않는다. 탁발음식을 얻지 못하더라도 동요하지 않고, 탁발음식을 얻더라도 속박되지 않고, 마음 빼앗기지 않고, 묶이지 않으며 위험을 보는 자, 벗어남의 지혜를 가진 자로서 사용한다.
비구들이여, 깟사빠는 어떤 거처로도 만족하고, 어떤 거처로도 만족하는 것에 대해 칭찬한다. 그는 거처를 원인으로 삿되고 부적절한 방법을 저지르지 않는다. 거처를 얻지 못하더라도 동요하지 않고, 거처를 얻더라도 속박되지 않고, 마음 빼앗기지 않고, 묶이지 않으며 위험을 보는 자, 벗어남의 지혜를 가진 자로서 사용한다.
비구들이여, 깟사빠는 어떤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으로도 만족하고, 어떤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으로도 만족하는 것에 대해 칭찬한다. 그는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을 원인으로 삿되고 부적절한 방법을 저지르지 않는다.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을 얻지 못하더라도 동요하지 않고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을 얻더라도 속박되지 않고, 마음 빼앗기지 않고, 묶이지 않으며 위험을 보는 자, 벗어남의 지혜를 가진 자로서 사용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렇게 닦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의복으로도 만족할 것이고, 어떤 의복으로도 만족하는 것에 대해 칭찬할 것이다. 우리는 의복을 원인으로 삿되고 부적절한 방법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의복을 얻지 못하더라도 동요하지 않고, 의복을 얻더라도 속박되지 않고, 마음 빼앗기지 않고, 묶이지 않으며 위험을 보는 자, 벗어남의 지혜를 가진 자로서 사용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탁발 음식으로도 만족할 것이고 … 우리는 어떤 거처로도 만족할 것이고 … 우리는 어떤 병의 조건으로부터 필요한 약품으로도 만족할 것이고, 어떤 병의 조건으로부터 필요한 약품으로도 만족하는 것에 대해 칭찬할 것이다. 우리는 병의 조건으로부터 필요한 약품을 원인으로 삿되고 부적절한 방법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병의 조건으로부터 필요한 약품을 얻지 못하더라도 동요하지 않고, 병의 조건으로부터 필요한 약품을 얻더라도 속박되지 않고, 마음 빼앗기지 않고, 묶이지 않으며 위험을 보는 자, 벗어남의 지혜를 가진 자로서 사용할 것이다.’라고.
참으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나는 깟사빠나 깟사빠와 같은 자에 의해서 그대들을 가르칠 것이다. 가르침을 받은 그대들은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
16.2-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는 자 경
14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에 마하깟사빠 존자와 사리뿟따 존자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사리뿟따 존자는 저녁 무렵에 낮 동안의 홀로 머묾에서 일어나 마하깟사빠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마하깟사빠 존자와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두 분이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대화를 나누신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는 마하깟사빠 존자에게 이와같이 말했다.
"도반 깟사빠여, 노력하지 않고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는 자는 바른 깨달음을 증득할 수 없고 열반을 실현할 수 없고 위없는 유가안온(瑜伽安穩)을 성취할 수 없으며, 노력하고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는 자는 바른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고 열반을 실현할 수 있고 위없는 유가안온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라고.
“도반 사리뿟따여, 어떻게 해서 노력하지 않고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는 자는 바른 깨달음을 증득할 수 없고 열반을 실현할 수 없고 위없는 유가안온을 성취할 수 없습니까? 그리고 도반이여, 어떻게 해서 노력하고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는 자는 바른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고 열반을 실현할 수 있고 위없는 유가안온을 성취할 수 있습니까?”
"여기, 도반 깟사빠여, 비구는 ‘아직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악한 불선법들이 일어나게 되면 그것은 손해가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도 노력하지 않고, ‘이미 나에게 일어난 악한 불선법들을 제거하지 못하면 그것은 손해가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도 노력하지 않고, ‘아직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선법들이 일어나지 않게 되면 그것은 손해가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도 노력하고, ‘이미 나에게 일어난 선한 법들이 소멸하게 되면 그것은 손해가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도 노력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 도반이여, 노력하지 않은 자입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어떻게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는 자입니까?
여기, 도반이여, 비구는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악한 불선법들이 일어나게 되면 그것은 손해가 될 것이다.’라면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이미 나에게 일어난 악한 불선법들을 제거하지 못하면 그것은 손해가 될 것이다.’라면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직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선법들이 일어나지 않게 되면 그것은 손해가 될 것이다.’라면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이미 나에게 일어난 선법들이 소멸하게 되면 그것은 손해가 될 것이다.’라고면서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도반이여, 부끄러월 할 줄 아는 힘이 없는 자입니다. 도반이여, 노력하지 않고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는 자는 바른 깨달음을 증득할 수 없고 열반을 실현할 수 없고 위없는 유가안온을 성위할 수 없습니다.
또한 도반이여, 어떻게 노력합니까?
여기, 도반이여, 비구는 ‘아직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악한 불선법들이 일어나게 되면 그것은 손해가 될 것이다.’라면서 노력하고, ‘이미 나에게 일어난 악한 불선법들을 제거하지 못하면 그것은 손해가 될 것이다.’라면서 노력하고, ‘아직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선법들이 일어나지 않게 되면 그것은 손해가 될 것이다.’라면서 노력하고, ‘이미 나에게 일어난 선법들이 소멸하게 되면 그것은 손해가 될 것이다.’라면서 노력합니다. 이렇게, 도반이여, 노력하는 자입니다.
그러면 도반이여, 어떻게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습니까?
여기, 도반이여, 비구는 ‘아직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악한 불선법들이 일어나게 되면 그것은 손해가 될 것이다.’라면서 부끄러워하고, ‘이미 일어난 악한 불선들을 제거하지 못하면 그것은 손해가 될 것이다.’라면서 부끄러워하고, ‘아직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선법들이 일어나지 않게 되면 그것은 나에게 손해가 될 것이다.’라면서 부끄러워하고, ‘이미 나에게 일어난 선법들이 소멸하게 되면 그것은 손해가 될 것이다.’라고 하여 부끄러워 합니다. 이렇게, 도반이여,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는 자입니다. 도반이여, 노력하고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는 자는 바른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고 열반을 실현할 수 있고 위없는 유가안온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16.3-달의 비유 경
146.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비구들이여, 달의 비유처럼, 그대들은 몸을 단속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에 재가자의 집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처럼 언제나 신중하게 재가자의 집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사람이 몸을 단속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에 허물어져 가는 우물이나 산의 절벽이나 건너기 힘든 강을 볼 것이다.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달의 비유처럼, 그대들은 몸을 단속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에 재가자의 집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처럼 언제나 신중하게 재가자의 집을 찾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깟사빠는 달의 비유처럼, 몸을 단속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에 재가자의 집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처럼 언제나 신중하게 재가자의 집을 찾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떤 비구가 재가자의 집을 방문하기에 적합한가?”
“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허공에 손을 흔드셨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이 손은 허공에 걸리지 않고 붙잡히지 않고 묶이지 않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이든지 재가자의 집을 방문하는 비구라면 재가자의 집에 대해 ‘이득을 바라는 사람은 이득을 얻게 되기를! 공덕을 바라는 사람은 공덕을 짓게 되기를!’이라면서 마음이 걸리지 않고 붙잡히지 않고 묶이지 않아야 한다. 남들의 이득에 대해서 그것이 마치 자신의 이득인것처럼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이런 비구가 재가자의 집을 방문하기에 적합하다.
비구들이여, 재가자의 집을 찾는 깟사빠는 재가자의 집에 대해 ‘이득을 바라는 사람은 이득을 얻게 되기를! 공덕을 바라는 사람은 공덕을 짓게 되기를!’이라면서 마음이 마음이 걸리지 않고 붙잡히지 않고 묶이지 않는다. 남들의 이득에 대해서 그것이 마치 자신의 이득인것처럼 즐거워하고 기뻐한다.
이것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의 설법이 청정하지 못하며, 어떤 비구의 설법이 청정한가?”
“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비구들이여,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저들이 내가 설하는 법을 듣기를. 그리고 들은 뒤에 법에 대해 청정한 믿음을 내기를. 그리고 청정한 믿음을 가지면 나에게 청정한 믿음의 표시를 드러내기를!'이라는 마음으로 남에게 법을 설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비구의 설법은 청정하지 못하다.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는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며,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것이며, 지혜있는 자는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저들이 내가 설하는 법을 듣기를. 그리고 들은 뒤에 법을 알기를. 그리고 안 뒤에 그대로 실천하기를!’이라는 마음으로 남에게 법을 설한다. 이렇게 법의 바른 성품(법이 본래부터 수승함)을 연(緣)하여 남들에게 법을 설한다. 연민하는 마음을 내고, 동정하는 마음을 내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어 남들에게 법을 설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비구의 설법은 청정하다.
비구들이여, 깟사빠는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며,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지혜있는 자는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저들이 내가 설하는 법을 듣기를. 그리고 들은 뒤에법을 알기를. 법을 안 뒤에 그대로 실천하기를!’이라는 마음으로 남에게 법을 설한다. 이렇게 법의 바른 성품을 연(緣)하여 남들에게 법을 설한다. 연민하는 마음을 내고, 동정하는 마음을 내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어 남들에게 법을 설한다. 비구들이여, 나는 깟사빠나 깟사빠와 같은 비구를 본보기로 하여 그대들을 가르칠 것이다. 가르침을 받은 그대들은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
16.4-재가자 집 방문 경
147.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떤 비구가 재가자 집을 방문하기에 적합하며, 어떤 비구가 재가자 집을 방문하기에 적당하지 않은가?”
“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비구들이여,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가 이런 마음으로 재가자 집을 방문한다.
‘신도들은 나에게 보시를 하지 다시 가져가 버리지 않기를, 나에게 많이 보시를 하지 적게 보시하지 않기를, 나에게 좋은 것을 보시하지 버릴만한 것을 보시하지 않기를, 나에게 즉시 보시를 하지 머뭇거리며 보시하지 않기를, 나에게 성심으로 보시를 하지 마지못해서 보시하지 않기를.’라고.
그런데 이런 마음으로 재가자 집을 방문한 비구에게 만일 그들이 보시를 하지 않으면 그 비구는 낙담하게 된다. 그는 이 때문에 괴로움과 슬픔을 경험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가 이런 마음으로 재가자 집을 방문한다.
‘신도들은 나에게 보시를 하지 다시 가져가 버리지 않기를, 나에게 많이 보시를 하지 적게 보시하지 않기를, 나에게 좋은 것을 보시하지 버릴만한 것을 보시하지 않기를, 나에게 즉시 보시를 하지 머뭇거리며 보시하지 않기를, 나에게 성심으로 보시를 하지 마지못해서 보시하지 않기를.’라고.
그런데 이런 마음으로 방문한 비구에게 만일 그들이 적게 보시하고 많이 보시하지 않으면 그 비구는 낙담하게 된다. 그는 이 때문에 괴로움과 슬픔을 경험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가 이런 마음으로 재가자 집을 방문한다.
‘신도들은 나에게 보시를 하지 다시 가져가 버리지 않기를, 나에게 많이 보시를 하지 적게 보시하지 않기를, 나에게 좋은 것을 보시하지 버릴만한 것을 보시하지 않기를, 나에게 즉시 보시를 하지 머뭇거리며 보시하지 않기를. 나에게 성심으로 보시를 하지 마지못해서 보시하지 않기를.’라고.
그런데 이런 마음으로 재가자 집을 방문한 비구에게 만일 그들이 버릴만한 것을 보시하고 좋은 것을 보시하지 않으면 그 비구는 낙담하게 된다. 그는 이 때문에 괴로움과 슬픔을 경험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가 이런 마음으로 재가자 집을 방문한다.
‘신도들은 나에게 보시를 하지 다시 가져가 버리지 않기를, 나에게 많이 보시를 하지 적게 보시하지 않기를, 나에게 좋은 것을 보시하지 버릴만한 것을 보시하지 않기를, 나에게 즉시 보시를 하지 머뭇거리며 보시하지 않기를, 나에게 성심으로 보시를 하지 마지못해서 보시하지 않기를.’라고.
그런데 이런 마음으로 재가자 집을 방문한 비구에게 만일 그들이 머뭇거리고 즉시 보시하지 않으면 그 비구는 낙담하게 된다. 그는 이 때문에 괴로움과 슬픔을 경험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비구는 재가자 집을 방문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는 이런 마음으로 재가자 집을 방문한다.
‘내가 어떻게 재가자의 집에 가서 ‘신도들은 나에게 보시를 하지 다시 가져가 버리지 않기를, 나에게 많이 보시를 하지 적게 보시하지 않기를, 나에게 좋은 것을 보시하지 버릴만한 것을 보시하지 않기를, 나에게 즉시 보시를 하지 머뭇거리며 보시하지 않기를, 나에게 성심으로 보시를 하지 마지못해서 보시하지 않기를.’이라고 생각하면서 보시를 받는단 말인가?’라고.
이런 마음으로 재가자 집을 방문한 비구에게 만일 그들이 보시를 하지 않더라도 그 비구는 낙담하지 않는다. 그는 이 때문에 괴로움과 슬픔을 경험하지 않는다. 이런 마음으로 재가자 집을 방문한 비구에게 만일 그들이 적게 보시하고 많이 보시하지 않더라도 그 비구는 낙담하지 않는다. 그는 이 때문에 괴로움과 슬픔을 경험하지 않는다. 이런 마음으로 재가자 집을 방문한 비구에게 만일 그들이 조잡한 것을 보시하고 좋은 것을 보시하지 않더라도 그 비구는 낙담하지 않는다. 그는 이 때문에 괴로움과 슬픔을 경험하지 않는다. 이런 마음으로 재가자 집을 방문한 비구에게 만일 그들이 머뭇거리고 즉시 보시하지 않더라도 그 비구는 낙담하지 않는다. 그는 이 때문에 괴로움과 슬픔을 경험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비구가 재가자 집을 방문하기에 적합하다.
비구들이여, 깟사빠는 이런 마음으로 재가자 집을 방문한다.
‘내가 어떻게 재가자의 집에 가서 ‘신도들은 나에게 보시를 하지 다시 가져가 버리지 않기를. 나에게 많이 보시를 하지 적게 보시하지 않기를. 나에게 좋은 것을 보시하지 버릴만한 것을 보시하지 않기를. 나에게 즉시 보시를 하지 머뭇거리며 보시하지 않기를. 나에게 성심으로 보시를 하지 마지못해서 보시하지 않기를.’이라고 생각하면서 보시를 받는단 말인가?’라고.
이런 마음으로 재가자 집을 방문한 깟사빠에게 만일 그들이 보시를 하지 않더라도 깟사빠는 낙담하지 않는다. 그는 이 때문에 괴로움과 슬픔을 경험하지 않는다. 이런 마음으로 재가자 집을 방문한 깟사빠에게 만일 그들이 적게 보시하고 많이 보시하지 않더라도 깟사빠는 낙담하지 않는다. 그는 이 때문에 괴로움과 슬픔을 경험하지 않는다. 이런 마음으로 재가자 집을 방문한 깟사빠에게 만일 그들이 버릴만한 것을 보시하고 좋은 것을 보시하지 않더라도 깟사빠는 낙담하지 않는다. 그는 이 때문에 괴로움과 슬픔을 경험하지 않는다. 이런 마음으로 재가자 집을 방문한 깟사빠에게 만일 그들이 머뭇거리고 즉시 보시하지 않더라도 깟사빠는 낙담하지 않는다. 그는 이 때문에 괴로움과 슬픔을 경험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나는 깟사빠 비구를 본보기로 하거나 깟사빠와 같은 비구를 모범으로 하여 그대들에게 설법 할 것이다. 그대들은 가르침을 받아서 이와 같이 되기 위해서 닦고 익혀야 한다.”
16.5-늙은이 경
148.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웰루와나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마하깟사빠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마하깟사빠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깟사빠여, 그대는 이제 늙었다. 그리고 그대가 입고 있는 거친 삼베로 만든 낡은 분소의들은 무겁다. 그러므로, 깟사빠여, 그대는 장자들이 보시하는 가사를 수용하고, 공양 초대에 응하여 공양을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내 곁에 머물도록 하여라.”라고.
*'너무 무겹다(nibbasanani)'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전에 세존께서 입고 버리신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SA.ii.170) 즉 분소의 자체가 무거운 것이 아니라 세존께서 수행의 상징으로 주신 것이기에 아주 귀중한 것이라고 주석서는 해석한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랜 세월 동안 숲에 머무는 자였고 숲에 머무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탁발음식만 수용하는 자였고 탁발음식만 수용하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분소의를 입는 자였고 분소의를 입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삼의(三衣)만 수용하는 자였고 삼의만 수용하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원하는 것이 적었고 원하는 것이 적은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만족하였고[知足] 만족하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홀로 머물며 삼매를 닦았고 홀로 머물며 삼매를 닦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았고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열심히 정진하였고 열심히 정진하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깟사빠여, 그대는 어떤 이익을 보기에 오랜 세월 동안 숲에 머무는 자였고 숲에 머무는 삶을 칭송하였으며, 탁발음식만 수용하는 자였고 탁발음식만 수용하는 삶을 칭송하였으며, 분소의를 입는 자였고 분소의를 입는 삶을 칭송하였으며, 삼의(三衣)만 수용하는 자였고, 삼의만 수용하는 삶을 칭송하였으며, 원하는 것이 적었고 원하는 것이 적은 삶을 칭송하였으며, 만족하였고 만족하는 삶을 칭송하였으며, 홀로 머물며 삼매를 닦았으 홀로 머물며 삼매를 닦는 삶을 칭송하였으며,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았고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는 삶을 칭송하였으며, 열심히 정진하였고 열심히 정진하는 삶을 칭송하였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두 가지 이익을 보아서 오랜 세월 동안 숲에 머무는 자였고 숲에 머무는 삶을 칭송하였으며, 탁발음식만 수용하는 자였고 탁발음식만 수용하는 삶을 칭송하였으며, 분소의를 입는 자였고 분소의를 입는 삶을 칭송하였으며, 삼의(三衣)만 수용하는 자였고 삼의만 수용하는 삶을 칭송하였으며, 원하는 것이 적었고 원하는 것이 적은 삶을 칭송하였으며, 만족하였고 만족하는 삶을 칭송하였으며, 홀로 머물며 삼매를 닦았고 홀로 머물며 삼매를 닦는 삶을 칭송하였으며,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았고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는 삶을 칭송하였으며, 열심히 정진하였고 열심히 정진하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첫째는 지금 여기의 행복한 머묾을 보기 때문이고, 둘째는 '후대 사람들이 견해를 뒤따르기를'이라는 후대의 사람들에 대한 연민 때문입니다. ‘참으로 세존을 따라서 깨달은 제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숲에 머무는 사람들이었고 숲에 머무는 삶을 칭송하였다. 탁발음식만 수용하는 사람들이었고 탁발음식만 수용하는 삶을 칭송하였다. 분소의를 입는 사람들이었고 분소의를 입는 삶을 칭송하였다. 삼의만 수용하는 사람들이었고 삼의만 수용하는 삶을 칭송하였다. 원하는 것이 적었고 원하는 것이 적은 삶을 칭송하였다. 만족하였고 만족하는 삶을 칭송하였다. 홀로 머물며 삼매를 닦았고 홀로 머물며 삼매를 닦는 삶을 칭송하였다.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았고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는 삶을 칭송하였다. 열심히 정진하였고 열심히 정진하는 삶을 칭송하였다.’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은 그대로를 위해 실천할 것이고, 그들에게 그것은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런 두 가지 이익을 보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숲에 머무는 자였고 숲에 머무는 삶을 칭송하였으며, 탁발음식만 수용하는 자였고 탁발음식만 수용하는 삶을 칭송하였으며, 분소의를 입는 자였고 분소의를 입는 삶을 칭송하였으며, 삼의만 수용하는 자였고 삼의만 수용하는 삶을 칭송하였으며, 원하는 것이 적었고 원하는 것이 적은 삶을 칭송하였으며, 만족하였고 만족하는 삶을 칭송하였으며, 홀로 머물며 삼매를 닦았고 홀로 머물며 삼매를 닦는 삶을 칭송하였으며,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았고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는 삶을 칭송하였으며, 열심히 정진하였고 열심히 정진하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깟사빠여. 깟사빠여, 참으로 그대는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 되고 많은 사람에게 행복이 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실천한다. 그렇다면, 깟사빠여, 그대는 거친 삼베로 만든 이 낡은 분소의를 입고, 탁발행을 하여라. 그리고 숲에서 머물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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