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060. 흠 없음 경 ①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대중과 함께 꼬살라를 유행하시다가 살라라는 꼬살라 바라문 마을에 도착하셨다.
그 무렵 살라에 사는 바라문 장자들은 들었다.
'존자들이여,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꼬살라에서 유행하고 있는, 사꺄의 후예이고, 사까 가문에서 출가한 사문 고따마가 살라에 도착했습니다. 참으로 세존이신 그분 고따마 존자께는 이러한 좋은 명성이 퍼져있습니다.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이시며, 위 없으신 분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시며, 깨달은 분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이시다.'라고.
그는 이 세간의 모든 중생들, 즉 마라들, 범천들, 축생들, 사문들, 바라문들, 천신및 인간들에게,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추신 것을 널리 알리고 선언합니다.
그는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는 가르침을 설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냅니다.
참으로 그러한 아라한을 뵙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라고.
그러자 살라에 사는 바라문 장자들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어떤 사람들은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주고 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세존께 합장하여 인사를 드리고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세존의 앞에서 이름과 성을 말한 뒤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조용히 한 곁에 앉았다.
2. 한 곁에 앉은 살라에 사는 바라문 장자들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장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누구든지 그에 대한 조건의 선택으로 믿음이 얻어진 마음에 드는 스승이 있습니까(적절한 이유로 믿음이 가는 그런 마음에 드는 스승이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저희들에게는 그에 대한 조건의 선택으로 믿음이 얻어진 마음에 드는 스승이 없습니다."
"장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마음에 드는 스승을 얻지 못하였다면 이 흠 없는 법을 받아들인 뒤 실천해야 합니다. 장자들이여, 참으로 흠 없는 법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그대들에게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을 위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장자들이여, 무엇이 흠 없는 법입니까?"
3. "장자들이여,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보시란 없다. 제물이 없다. 공양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없고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들어간, 사문과 바라문이 이 세상에는 없다.'라고.
장자들이여,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정반대의 주장을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보시도 있다. 제물도 있다. 공양도 있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있고 과보도 있다. 이 세상도 있고 저 세상도 있다.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다. 화생하는 중생도 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들어간, 사문과 바라문이 이 세상에는 있다.'라고.
장자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들 사문․바라문들은 서로간에 정반대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4. "장자들이여, 여기서 '보시란 없다. 제물이 없다. 공양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없고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들어간, 사문과 바라문이 이 세상에는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게 이런 것이 기대됩니다. 즉 몸의 좋은 행위, 말의 좋은 행위, 마음의 좋은 행위라는 이런 세 가지 선한 법들을 버린 뒤에 몸의 나쁜 행위, 말의 나쁜 행위, 마음의 나쁜 행위라는 이런 세 가지 선하지 않은 법들을 받아들여 실천할 것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선하지 않은 법들의 위험과 퇴보와 오염 그리고 선한 법들의 출리에 대한 이익과 청정한 측면을 보지 못합니다. 저 세상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세상은 없다.'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삿된 견해입니다. 저 세상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세상은 없다.'라고 사유합니다. 그것은 삿된 사유입니다. 저 세상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세상은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삿된 말입니다. 이것은 저 세상을 아는 아라한들에게 반대하는 행위입니다. 저 세상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세상은 없다.'라고 남을 가르칩니다. 그것은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그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깁니다. 이렇게 이전의 좋은 계행은 버려지고, 나쁜 계행은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삿된 견해, 삿된 사유, 삿된 말, 성자에게 반대하는 행위,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삿된 견해를 조건으로 이런 다양한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들이 생깁니다.
장자들이여, 거기서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숙고합니다.
'만약 저 세상이 없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그 자신은 안전할 것이다. 만약 저 세상이 있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그 사문․바라문들의 말이 사실이어서 저 세상은 없다고 인정해 보자. 그래도 이 사람은 지금․여기에서 지혜로운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다. '계를 경시하고, 삿된 견해를 가졌고, 원인 없음을 말하는 자이다.'라고.
만약 원인이 있다면 이렇게 이 사람에게 양쪽 모두에서 나쁜 결과가 있을 것이다. '지금‧여기에서는 지혜로운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라고. 이처럼 이 흠 없는 법을 균형을 잡지 못하고 실천하는 자는 유익한 경우를 배제하고 한쪽 부분만 채우고 서 있습니다."
4. "장자들이여, 여기서 '보시도 있다. 제물도 있다. 봉헌도 있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있고 과보도 있다. 이 세상도 있고 저 세상도 있다.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다. 화생하는 중생도 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들어간, 사문과 바라문이 이 세상에는 있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이런 것이 기대됩니다. 즉 몸의 나쁜 행위, 말의 나쁜 행위, 마음의 나쁜 행위라는 이런 세 가지 선하지 않은 법들을 버린 뒤에 몸의 좋은 행위, 말의 좋은 행위, 마음의 좋은 행위라는 이런 세 가지 선한 법을 받아들여 실천할 것입니다.
그 원인 무엇입니까?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선하지 않은 법들의 위험과 퇴보와 오염 그리고 선한 법들의 출리에 대한 이익과 청정한 측면을 봅니다. 저 세상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있다.'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른 견해입니다. 저 세상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있다.'라고 사유합니다. 그것은 바른 사유입니다. 저 세상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른 말입니다. 저 세상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저 세상을 아는 아라한들에게 반대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저 세상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있다.'라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칩니다. 그것은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입니다. 그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전의 나쁜 계행은 버려지고, 좋은 계행은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성자에게 반대하지 않는 행위,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이런 다양한 선한 법들이 생깁니다."
장자들이여, 거기서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숙고합니다.
'만약 저 세상이 있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의 말이 사실이어서 저 세상이 없다고 인정해 보자. 그래도 이 사람은 지금․여기에서 지혜로운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것이다. '계를 중시하고, 바른 견해를 가졌고, 있음을 말하는 사람이다.'라고. 만약 저 세상이 있다면 이렇게 이 사람에게 양쪽 모두에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지금․여기에서는 지혜로운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이처럼 이 흠 없는 법을 잘 균형 잡고 실천하는 자는 유익하지 않는 경우를 배제하고, 양 쪽 부분을 채우고 서 있습니다."
5. "장자들이여,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행하는 자와 행하게 하는자, 절단하는 자와 절단하게 하는 자, 고문하는 자와 고문하게 하는 자, 슬퍼지는 자와 슬퍼하게 하는 자, 지친 자와 지치게 하는 자, 전율하는 자와 전율하게 하는 자, 생명을 해침 당하게 하는 자,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자, 집을 부수는 자, 약탈하는 자, 도둑질하는 자, 노상강도질을 하는 자, 남의 아내를 범하는 자, 거짓을 말하는 자에게 죄악의 과보는 없다. 만약 면도날 같은 끝을 가진 바퀴로 이 땅의 생명을 하나의 고깃덩어리로 으깨고 하나의 살점으로 만들어 버리더라도 그것 때문에 악이 없고, 악의 과보가 없다. 강가 강의 남쪽 기슭에 가서 죽이는 자, 살육하는 자, 절단하거나 절단하게 하는 자, 고문하거나 고문하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악이 없고, 악의 결과가 없다. 강가 강의 북쪽 기슭에 가서 보시하는 자, 보시하게 하는 자, 제사를 지내는 자, 제사를 지내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공덕이 없고, 공덕의 결과가 없다. 보시를 하고 자신을 길들이고 진실을 말하더라도 공덕이 없고, 공덕의 결과가 없다.'라고.
장자들이여,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정반대의 주장을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행하는 자와 행하게 하는자, 절단하는 자와 절단하게 하는 자, 고문하는 자와 고문하게 하는 자, 슬퍼지는 자와 슬퍼하게 하는 자, 지친 자와 지치게 하는 자, 전율하는 자와 전율하게 하는 자, 생명을 해침 당하게 하는 자,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자, 집을 부수는 자, 약탈하는 자, 도둑질하는 자, 노상강도질을 하는 자, 남의 아내를 범하는 자, 거짓을 말하는 자 등 행하는 자에게 악은 과보가 있다. 만약 면도날 같은 끝을 가진 바퀴로 이 땅의 생명을 하나의 고깃덩어리로 으깨고 하나의 살점으로 만든다면 그것 때문에 악이 있고 악의 결과가 있다. 강가 강의 남쪽 기슭에 가서 죽이는 자, 살육하는 자, 절단하거나 절단하게 하는 자, 고문하거나 고문하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악이 있고 악의 결과가 있다. 강가 강의 북쪽 기슭에 가서 보시하는 자, 보시하게 하는 자, 자선을 베푸는 자, 자선을 베풀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공덕이 있고, 공덕의 결과가 있다. 보시를 하고 자신을 길들이고 진실을 말함에 의한 공덕이 있고, 공덕의 결과가 있다.'라고.
장자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들 사문․바라문들은 서로간에 정반대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6. "장자들이여, 거기서 '행하는 자와 행하게 하는자, 절단하는 자와 절단하게 하는 자, 고문하는 자와 고문하게 하는 자, 슬퍼지는 자와 슬퍼하게 하는 자, 지친 자와 지치게 하는 자, 전율하는 자와 전율하게 하는 자, 생명을 해침 당하게 하는 자,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자, 집을 부수는 자, 약탈하는 자, 도둑질하는 자, 노상강도질을 하는 자, 남의 아내를 범하는 자, 거짓을 말하는 자에게 악의 과보는 없다. 만약 면도날 같은 끝을 가진 바퀴로 이 땅의 생명을 하나의 고깃덩어리로 으깨고 하나의 살점으로 만들어 버리더라도 그것 때문에 악이 없고, 악의 결과가 없다. 강가 강의 남쪽 기슭에 가서 죽이는 자, 살육하는 자, 절단하거나 절단하게 하는 자, 고문하거나 고문하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악이 없고, 악의 결과가 없다. 강가 강의 북쪽 기슭에 가서 보시하는 자, 보시하게 하는 자, 제사를 지내는 자, 제사를 지내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공덕이 없고, 공덕의 결과가 없다. 보시를 하고 자신을 길들이고 진실을 말하더라도 공덕이 없고, 공덕의 결과가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게는 이런 것이 기대됩니다. 즉 몸의 좋은 행위, 말의 좋은 행위, 마음의 선한 행위라는 이런 세 가지 선한 법들을 버린 뒤에 몸의 나쁜 행위, 말의 나쁜 행위, 마음의 나쁜 행위라는 이런 세 가지 선하지 않은 법들을 받아들여 실천할 것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선하지 않은 법들의 위험과 퇴보와 오염 그리고 선한 법들의 출리에 대한 이익과 청정한 측면을 보지 못합니다. 결실 있음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실이 없다.'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삿된 견해입니다. 결실 있음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실이 없다.'라고 사유합니다. 그것은 삿된 사유입니다. 결실 있음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실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삿된 말입니다. 결실 있음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실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결실 있음을 말하는 아라한들에게 반대하는 행위입니다. 결실 있음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실이 없다.'라고 남을 가르칩니다. 그것은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입니다. 그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깁니다. 이렇게 이전의 좋은 계행은 버려지고 나쁜 계행은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삿된 견해 삿된 사유, 삿된 말, 성자에게 반대하는 행위,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 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삿된 견해를 조건으로 이런 다양한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들이 생깁니다.
장자들이여, 거기서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숙고합니다.
'만약 결실 있음이 없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그 자신은 안전할 것이다. 만약 결실 있음이 있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그 사문‧바라문들의 말이 사실이어서 결실 있음이 없다고 인정해 보자. 그래도 이 사람은 지금‧여기에서 지혜로운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다. '계를 경시하고, 삿된 견해를 가졌고, 원인 없음을 말하는 자이다.'라고. 만약 원인이 있다면 이렇게 이 사람에게 양쪽 모두에서 나쁜 결과가 있을 것이다. '지금‧여기에서는 지혜로운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라고. 이처럼 이 흠 없는 법을 균형을 잡지 못하고 실천하는 자는 유익한 경우를 배제하고 한쪽 부분만 채우고 서 있습니다."
7. "장자들이여, 거기서 '행하는 자와 행하게 하는자, 절단하는 자와 절단하게 하는 자, 고문하는 자와 고문하게 하는 자, 슬퍼지는 자와 슬퍼하게 하는 자, 지친 자와 지치게 하는 자, 전율하는 자와 전율하게 하는 자, 생명을 해침 당하게 하는 자,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자, 집을 부수는 자, 약탈하는 자, 도둑질하는 자, 노상강도질을 하는 자, 남의 아내를 범하는 자, 거짓을 말하는 자 등에게 악은 지어진다. 만약 면도날 같은 끝을 가진 바퀴로 이 땅의 생명을 하나의 고깃덩어리로 으깨고 하나의 살점으로 만든다면 그것 때문에 악이 있고 악의 결과가 있다. 만약 강가 강의 남쪽 기슭에 가서 죽이는 자, 살육하는 자, 절단하거나 절단하게 하는 자, 고문하거나 고문하게 하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악이 있고 악의 결과가 있다. 강가 강의 북쪽 기슭에 가서 보시하는 자, 보시하게 하는 자, 자선을 베푸는 자, 자선을 베풀게 자에게 그것 때문에 공덕이 있고, 공덕의 결과가 있다. 보시를 하고 자신을 길들이고 진실을 말함에 의한 공덕이 있고, 공덕의 결과가 있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에게는 이런 것이 기대됩니다. 즉 몸의 나쁜 행위, 말의 나쁜 행위, 마음의 나쁜 행위라는 이런 세 가지 선하지 않은 법들을 버린 뒤에 몸의 좋은 행위, 말의 좋은 행위, 마음의 좋은 행위라는 이런 세 가지 선한 법을 받아들여 실천할 것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선하지 않은 법들의 위험과 퇴보와 오염 그리고 선한 법들의 출리에 대한 이익과 청정한 측면을 봅니다. 분명히 있는 결실 있음을 두고 '결실 있음이 있다.'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른 견해입니다. 분명히 있는 결실 있음을 두고 '결실 있음이 있다.'라고 사유합니다. 그것은 바른 사유입니다. 분명히 결실 있음을 두고 '결실 있음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른 말입니다. 분명히 있는 결실 있음을 두고 '결실 있음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결실 있음을 말하는 아라한들에게 반대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분명히 결실 있음을 두고 '결실 있음이 있다.'라고 남을 가르칩니다. 그것은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입니다. 그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전의 나쁜 계행은 버려지고 좋은 계행은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성자에게 반대하지 않는 행위,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이런 다양한 선한 법들이 생깁니다.
장자들이여, 거기서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숙고합니다.
'만약 결실 있음이 있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의 말이 사실이어서 결실 있음이 없다고 인정해 보자. 그래도 이 사람은 지금‧여기에서 지혜로운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것이다. '계를 중시하고 바른 견해를 가졌고 결실 있음을 말하는 사람이다.'라고. 만약 결실 있음이 있다면, 이렇게 이 사람에게 양쪽 모두에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지금․여기에서 지혜로운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이처럼 이 흠 없는 법을 잘 균형 잡고 실천하는 자는 유익하지 않는 경우를 배제하고, 양쪽 부분을 채우고 서 있습니다."
8. "장자들이여,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중생들의 오염을 위한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 원인 없음-조건 없음으로부터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 원인 없음-조건 없음으로부터 중생들은 청정해진다. 힘도 없고, 정진도 없고, 남자의 활력도 없고, 남자의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 모든 생명, 모든 존재, 모든 삶은 권한도 없고, 힘도 없고, 정진도 없이 운명과 종(種)과 본성에 의해 익어서 오직 여섯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한다.'라고.
장자들이여,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정반대의 주장을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중생들의 오염을 위한 원인도 있고 조건도 있다. 원인과 함께 조건과 함께로부터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원인도 있고 조건도 있다. 원인과 함께 조건과 함께로부터 중생들은 청정해진다. 힘도 있고, 정진도 있고, 남자의 활력도 있고, 남자의 분발도 있다. 모든 중생, 모든 생명, 모든 존재, 모든 삶은 권한도 없고, 힘도 없고, 정진도 없이 운명과 종(種)과 본성에 의해 익어서 오직 여섯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장자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들 사문․바라문들은 서로간에 정반대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9. "장자들이여, 거기서 ‘중생들의 오염을 위한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 원인 없음-조건 없음으로부터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 원인 없음-조건 없음으로부터 중생들은 청정해진다. 힘도 없고, 정진도 없고, 남자의 활력도 없고, 남자의 분발도 없다. 모든 중생, 모든 생명, 모든 존재, 모든 삶은 권한도 없고, 힘도 없고, 정진도 없이 운명과 종(種)과 본성에 의해 익어서 오직 여섯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한다.'라는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이런 것이 기대됩니다. 즉 몸의 좋은 행위,말의 좋은 행위, 마음의 좋은 행위라는 이런 세 가지 선한 법들을 버린 뒤에 몸의 나쁜 행위, 말의 나쁜 행위, 마음의 나쁜 행위라는 이런 세 가지 선하지 않은 법들을 받아들여 실천할 것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선하지 않은 법들의 위험과 퇴보와 오염 그리고 선한 법들의 출리에 대한 이익과 청정한 측면을 보지 못합니다. 원인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인이 없다.'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삿된 견해입니다. 원인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인이 없다.'라고 사유합니다. 그것은 삿된 사유입니다. 원인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인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삿된 말입니다. 원인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인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원인을 말하는 아라한들에게 반대하는 행위입니다. 원인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인이 없다.'라고 다른 사람을 가르칩니다. 그것은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입니다. 그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깁니다. 이렇게 이전의 좋은 계행은 버려지고, 나쁜 계행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삿된 견해, 삿된 사유, 삿된 말,에게 반대하는 행위,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삿된 견해를 조건으로 이런 다양한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들이 생깁니다.
장자들이여, 거기서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숙고합니다.
'만약 원인이 없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그 자신은 안전할 것이다. 만약 원인이 있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의 말이 사실이어서 원인이 없다고 인정해 보자. 그래도 이 사람은 지금‧여기에서 지혜로운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다. '계를 경시하고, 삿된 견해를 가졌고, 원인 없음을 말하는 자이다.'라고. 만약 원인이 있다면 이렇게 이 사람에게 양쪽 모두에서 나쁜 결과가 있을 것이다. '지금‧여기에서는 지혜로운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라고. 이처럼 이 흠 없는 법을 균형을 잡지 못하고 실천하는 자는 유익한 경우를 배제하고 한쪽 부분만 채우고 서 있습니다."
10. "장자들이여, 거기서 ‘중생들의 오염을 위한 원인도 있고 조건도 있다. 원인과 함께 조건과 함께하여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원인도 있고 조건도 있다. 원인과 함께 조건과 함께하여 중생들은 청정해진다. 힘도 있고, 정진도 있고, 남자의 활력도 있고, 남자의 분발도 있다. 모든 중생, 모든 생명, 모든 존재, 모든 삶은 권한도 없고, 힘도 없고, 정진도 없이 운명과 종(種)과 본성에 의해 익어서 오직 여섯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이런 것이 기대됩니다. 즉 몸의 나쁜 행위, 말의 나쁜 행위, 마음의 나쁜 행위라는 이런 세 가지 선하지 않은 법들을 버린 뒤에 몸의 좋은 행위, 말의 좋은 행위, 마음의 좋은 행위라는 이런 세 가지 선한 법들을 받아들여 실천할 것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선하지 않은 법들의 위험과 퇴보와 오염 그리고 선한 법들의 출리에 대한 이익과 청정한 측면을 봅니다. 분명히 있는 원인을 두고 '원인이 있다.'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른 견해입니다. 분명히 있는 원인을 두고 '원인이 있다.'라고 사유합니다. 그것은 바른 사유입니다. 분명히 있는 원인을 두고 '원인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른 말입니다. 분명히 있는 원인을 두고 '원인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원인을 말하는 아라한들에게 반대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분명히 있는 원인을 두고 '원인이 있다.'라고 다른 사람을 가르칩니다. 그것은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입니다. 그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에 의해서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전의 나쁜 계행은 버려지고, 좋은 계행은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성자에게 반대하지 않는 행위,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이런 다양한 선한 법들이 생깁니다.
장자들이여, 거기서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숙고합니다.
'만약 원인이 있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의 말이 사실이어서 원인이 없다고 인정해 보자. 그래도 이 사람은 지금‧여기에서 지혜로운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것이다. '계를 중시하고, 바른 견해를 가졌고, 원인을 말하는 사람이다.'라고. 만약 원인이 있다면, 이렇게 이 사람에게 양쪽 모두에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지금․여기에서 지혜로운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이처럼 이 흠 없는 법을 잘 균형 잡고 실천하는 자는 유익하지 않는 경우를 배제하고 양쪽 부분을 채우고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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