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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는 길 02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우리가 꿈에서는 그것이 꿈인 줄 모르듯이, 우리가 경험하는 소위 현실이라는 것도 그대로 꿈이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다. 지금 살고 있는 생시가 바로 꿈이라고 하면 펄쩍 뛰면서 아니라고 대들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그 꿈(생시)이 영원한 꿈인데도 꿈인 줄 모르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도 똑같기 때문이다. 꿈에서도 연애해 가지고 아들딸 낳아서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또 장가들이고 시집보내서 손자를 보고 하여 잘 산다. 이처럼 우리가 꿈속에서 겪는 세계나 생시의 일들이 너무도 같기 때문에 그 꿈을 깨기 전까지는 그게 꿈인 줄 모르는 것이다. 꿈속에서도 태양이 ㄴ고 지구가 있고, 산소 수소가 있으며 온 우주가 다 거기있다, 꿈에서도 설타은 달고 소금은 짜고 춘하추동 사시절이 있어서 날씨가 차고 더우며 어린애들 낳아서 키워보면 어려서부터 점점 자라서 커간다. 그러니 아러한 것을 어떻게 꿈인 줄로 알 수 있는냐는 말이다. 그렇게 하다가 꿈을 깨어볼라치면 시간은 불과 몇 분도 채 안된다. 인생이 꿈같은 것이 아니라 그대로 꿈이다. 꿈으로 한 일, 그게 사실로 한게 아니고 모두 거짓말로 한 것이다. 성불했다는 것도 역시 거짓말이다. 성불 아닌 것 때문에 상대적으로 성불했다는 말이 있는 거지 성불해야겠다는 말까지도 그게 꿈이다. 정말 실상자리에서 보련 제대로 돼있으니 꿈꿀 사람도 없다. 사람이 자는 시간도 대체로 하룻밤에 일곱 시간 내지 여덟 시간이므로 내가 잠이 든 전시간 동안에 꿈을 꾸었다고 해도 여덟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꿈속에 들어가서는 여덟 시간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잠자는 동안 꿈속에서 경험한느 시간은 닷새 사는 때도 있고 한 달 사는 때, 한 해 사는 때,몇 해 사는 때 까딱 잘못하면 한평생을 사는 때도 있다. 그러니까 밤을 새워가며 꿈을 꾸었다 하더라도 여덟 시간밖에 소요되지 않았는데 그것이 꿈에 들어가서는ㄴ 일평생이 되는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루나 반나절 꾸도 꾸지마는 저녁마다 일평생 꿈을 꿀 수도 있는 것이므로 생시에 반나절 꿈도 꾸지마는 저녁마다 일평생 꿈을 꿀 수도 있는 것이므로 생시에 반 시간보다 꿈속에서 사는 시간이 훨씬 더 많게 된다. 꿈과 현실이 똑같은 것은 다 한마음이 세계이기 때문이다. 꿈을 꿀 때에도 이 몸뚱이 처자 재산을 다 그대로 놓아두고 마음만 나아가서 꿈세계를 창조헤 놓는다. 꿈울 깰 때에도 꿈속에 있던 몸뚱이 재산 처자를 만들어서 꿈하고 똑같은 세계를 만든다.

꿈만 꿈이 아니라 꿈 아닌 것도 꿈이다. 망상은 꿈을 이룬다. 이것은 곧, 주관은 객관을 조화한다는 실증을 말하는 것이다. 주관밖에 개관이 따로 있을 수 없는 것이므로 주관이 곧 객관이며 객관이 곧 주관이다. 뜨겁고 찬 것이 불과 물에 있을 수 없다. 주객이 둘이 아니므로 우리의 인식밖에 기둥과 기둥이 있을 수 없으며 기둥과 기둥의 모양 밖에 인식이 따로 있을수 없다. 그러나 주관을 쉬어버린 때에는 객관도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주관을 쉰 이 청정한 본래의 마음법에는 기둥도 기둥 모양도 없다.

그러므로 저 기둥한 가지를 볼 때에는 곧 기중이 나타나는 이치와 그 기둥을 나타낸 이 마음의 본연면목을 동시에 깨달을 수 있으리라. 이와 같이 저 만물을 다루면 된다. 꿈이 아무리 헛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꿈을 깨기 전에는 꼼짝없이 사실인 고와 낙을 받는 것과 같이 이 마음을 깨치지 못한 종생들을 업습에서 일어나는 천당 지옥의 꿈을 벗어날 길이 없다. 꿈에서 죽고 꿈에서 태어난다. 우리 승려들은 꿈이 없다는 소리를 한다. 거짓말이 아니다 중 노릇을 제대로 하는 수자들느 꿈이 없다. 또 대인들, 수양이 되어 있는 사람들도 확실히 꿈이 적다. 수양이 되면 마음이 비어서 번뇌망상이 적으므로 꿈이 적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낮꿈은 평생 살아봐도 70년,80년밖에 안된다. 그것도 잠자는 시간, 병 앓는 시간 다 빼고 나면 몇 십년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밤꿈은 몇 백년 몇 천년을 산다. 따라서 생시는 얼마 안되는 시간을 산 것이고 밤꿈은 낮꿈의 몇 배, 몇 십배를 더 사는 결과가 되므로 정말 꿈은 밤꿈이 아니라 생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밤꿈에만 우주를 창조해 내는 것이 아니라,꿈을 깬 낮꿈에도 우주를 창조해 내고 있다. 그러므로 꿈이라고 하면 낮꿈 밤꿈이 다 꿈이다. 밤 낮 금생 내생이 다 꿈인데 이 꿈 가운데 꿈이 아닌 것은 꿈을 꾸고 우주를 창조해 내는 우리의 마음뿐이다. 밤꿈에는 이 마음 이대로이고, 낮꿈에더 이 마음 이대로이다. 그런데 생각은 그 때 그때 환경에 따라서 추우면 춥다,더우면 덥다 라고 느낀다. 생각은 이렇게 달라질 수 있지만 추우면 추운지 알고, 더우면 더운지 아는 이 마음은 불변의 나다. 생사의 변천이 없고 질량의 변화가 있을 수 없는 이 나는 모든 지식의 주체인데, 이 마음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지가지고 큰 것은 크다, 작은 것은 작다고 하는 것이다. 육신도 마음이 만든 피조물인데 중생들이 육신을 주인으로, 마음을 육신의 종으로 삼아서 주객을 뒤엎고 있다. 지금 우리의 눈앞에서 주관 대 객관으로 벌어져 있는 이 우주와 인생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 그러나 우리들은 이것을 다루려고 드는 통에 온 우주의 주인공인 유아독존의 자아가 깜빡하는 순간에 도리어 창해일속으로 한 개의 적은 육체의 인간으로 전락되어서 이 생사대몽을 이루어서 윤회와 인과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안생이 사는 것도 꿈이요, 죽는 것도 또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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