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질과 속죄
내가 육식을 하던 시기, 또는 그 조금 전에 저지른 나의 실수에 관해서 말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내 결혼 직전 또는 직후에 시작된다.
내 친척 한 사람과 나는 담배를 피우게 됐다. 담배 피우는 것이 무슨 좋은 점이 있다거나, 또는 담배 냄새가 좋아서 한 짓이 아니었다. 다만 입으로 연기를 푹푹 내뿜는 것이 재미있는 듯해서 한 짓이었다. 우리 아저씨가 그 습관이 있었는데, 그것을 보고 우리도 그대로 해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돈이 없었다. 그래서 아저씨가 내버린 꽁초를 훔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꽁초를 늘 얻을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그것으로는 연기가 많이 뿜어지지 않았다. 그래 우리는 인도 궐련을 사기 위해 머슴의 주머니에서 동전을 훔쳐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담배를 어디에 두느냐가 문제였다. 물론 우리는 어른들 앞에서 피울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이 훔친 돈을 가지고 몇 주일을 그럭 저럭 피울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어떤 식물의 줄기가 구멍이 많아 담배와 같이 피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그것을 구해서 피워도 보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가지고는 만족이 되지 않았다. 자립을 못하는 것이 몹시 원통하게 생각되기 시작했다. 어른들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마침내 완전히 정이 떨어져 우리는 자살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실행할까? 어디서 그 독약을 구할 수 있을까? 다투라의 씨가 독이 강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 우리는 정글속을 찾아 다녀서 그것을 얻었다. 저녁때가 적당하리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케다르지 만디르로 가서 절간 등에다 기름을 치고 다르샨*을 한 후 조용한 구석을 찾았다. 그러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내 죽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또 죽어서 좋을 것이 무엇이냐? 차라리 자립을 못하더라도 참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두서너 알을 삼켰는데 더이상 삼킬 용기가 나지 않았다. 둘 다 죽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람지만디르로 가서 마음을 고쳐먹고 자살할 생각을 씻어 버리기로 했다.
나는 자살이란 것이 생각처럼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 다음부터 언제나 누가 자살한다고 위협하는 것을 들어도 거의 또는 전혀 겁내지 않게 되었다.
자살하려던 생각 때문에 결국 우리 둘은 담배 꽁초를 피우는 습관과 담배피울 목적으로 머슴의 돈을 훔쳐내던 습관은 끝을 내고 말았다.
그 이후로는 나이든 후에도 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고, 담배를 피우는 습관은 야만적이고 더럽고 해로운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도대체 전세계를 통해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왜 그렇게 성행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람이 가득 들어앉아 담배를 피워대는 차간에서 여행을 하기란 참 힘드는 일이다.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심한 도둑질은 좀더 후에 내가 저지른 것이었다. 내가 동전을 훔친 것은 열두세살 아니면 그보다 어린 때의 일이었다. 그 다음 도둑질은 내가 열다섯살에 저지른 것이다. 이번에는 육식하던 형의 팔찌에서 금 한조각을 훔쳐냈다. 그 형님은 약25루피의 빚을 지고 있었는데, 팔에 순금 팔찌를 끼고 있었다. 거기서 한 조각을 떼어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도둑질을 했고, 그 빚은 청산이 됐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때릴까봐 무서워서가 아니다. 아니, 아버지가 언제 우리에게 매질을 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나 때문에 아버지가 당할 고통이 두려워서였다. 그러나 나는 두려움을 무릅쓰고라도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깨끗한 자백없이 결백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침내 자백서를 써서 그것을 아버지에게 바치고 용서를 빌기로 작정했다. 나는 종이조각에 그것을 써서 내 손으로 아버지께 바쳤다. 이 글속에서 나는 내 잘못을 자백했을 뿐만 아니라 거기 대하여 적당한 벌을 달라고 했고, 내 죄 때문에 아버지 자신을 벌하지는 말아달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나는 또 앞으로는 절대로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아버지께 자백서를 바칠 때 나는 벌벌 떨었다. 그때 아버지는 누관을 앓고 계셨으므로 침대를 떠나지 못했다. 그의 침대는 편편한 나무판자였다. 나는 종이조각을 드리고 판자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그가 그것을 다 읽었을 때 구슬 같은 눈물이 두 뺨을 흘러 떨어져 종이를 적시었다. 잠시동안 눈을 감고 생각한 다음 종이를 찢어 버렸다. 그는 읽기 위해 일어나 앉았던 몸을 다시 침대 위에 눕혔다. 나도 울었다. 나는 아버지가 고민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만일 화가라면 오늘이라도 그 광경을 그대로 그릴 수 있겠다. 내 마음속에 아직껏 그렇듯 생생하다.
그 사랑의 구슬방울들이 내 양심을 정화시켰고, 내 죄를 씻어 버렸다. 그러한 사랑을 경험한 사람만이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찬송가에 있는 대로,
사랑의 화살을 맞은 자만이
그만이 그 힘을 안다.
이것은 내게 있어서 아힘사 의 실물교육이었다. 그 당시에는 나는 거기서 한 아버지의 사랑을 볼 뿐이었지만, 오늘날 나는 그것이 순수한 아힘사 임을 안다. 그러한 아힘사 가 모든 것을 쓸어안게 될 때 그에게 닿는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그 힘에는 한계가 없다.
이러한 종류의 숭고한 용서는 우리 아버지에게 보통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가 노해서 몹시 나무라며 자기 이마를 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놀랍게도 평화스러웠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나의 깨끗한 자백 때문이라고 믿는다. 죄를 다시 범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들어 있는 순결한 고백은 그것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 앞에 바쳐졌을 때 가장 순수한 타입의 회개가 된다. 나는 내 고백이 아버지로 하여금 내게 대하여 절대로 안심하게 하였고, 내게 대한 사랑을 무한히 더하게 했다는 것을 안다.
아버지의 돌아가심과 내 이중의 수치
지금 얘기하려는 것은 내가 열여섯 살 때의 일이다. 이미 말한 대로 아버지는 누를 앓아서 자리에서 꼼짝 못하셨다. 어머니와 우리집의 늙은 종과 그리고 내가 주로 곁에서 돌보아 드렸다. 나는 간호의 임무를 맡고 있었는데, 주로 상처를 싸매고, 아버지께 약을 갖다 드리고, 그리고 약을 집에서 장만할 때 그것을 조제하는 일이었다. 밤마다 나는 다리를 주물러 드렸는데, 아버지가 가라고 하거나 잠이 든 뒤에야 나는 물러나왔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을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한번도 소홀히 생각한 적이 없었다. 매일의 임무를 다한 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을 둘로 나누어 학교에 가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 곁에 가 있었다. 아버지가 허락을 하거나 또는 그가 조금 평안한 것을 본 때에만 나는 저녁 산책을 하러 나갔다.
이때는 또한 내 아내가 만삭중이었는데, 이런 일은 오늘에 와서 돌이켜 보면 내게 이중의 부끄러움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가지는 내가 그때 아직 학생의 몸으로 자제해야 할 때에 자제하지 못한 것이요, 둘째는 나의 정욕이 내가 의무로 생각하는 공부를, 그리고 어려서부터 슈라바나를 이상으로 삼는 나로서, 그보다도 더 큰 의무로 생각해야 하는 부모에 대한 효도를 눌러 버린 것이다. 밤마다 손은 아버지의 다리를 주무르기에 바쁜 동안에도 내 마음은 침실 곁을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뿐 아니라 그때는 종교적.의학적 견지에서 보나, 상식에 비추어 보나, 성교는 할 수 없는 때였다. 나는 항상 그 임무를 어서 마치고 나오고 싶었고,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는 곧장 침실로 가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에 아버지의 병세는 날로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아유르베다의 의사들은 그들의 여러가지 고약으로 치료를 하였고, 이슬람교의 의사들도 그들의 고약을 발랐으며, 지방의 돌팔이 의사들은 그들대로의 비방을 썼다. 한 영국 외과의사도 또한 그의 의술을 써보았다. 마지막이요, 또 유일한 방법으로 그 의사는 외과수술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주치의가 반대했다. 아버지가 연만하여 수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주치의는 유능하고 유명한 분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충고가 마침내 이겼다. 수술은 포기하였고 수술에 사용할 목적으로 사들였던 약은 못쓰고 말았다. 만일 주치의가 수수을 허락했더라면 상처는 쉬 나았으리라는 생각을 나는 가지고 있다. 또한 수술은 그당시 봄베이에서 유명한 외과의의 손으로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은 달랐다. 죽음이 임박하였는데 사람이 바른 치료를 생각할 수 있을까? 아버지는 수술에 쓰일 여러가지 기구를 가지고 봄베이에서 돌아왔으나 이제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다. 그는 이 이상 더 살 것을 단념했다. 그는 점점 쇠약하여져서 마침내 식사와 대소변을 침대 위에서 하도록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까지 그렇게 하기를 거절하고 언제나 애를 쓰며 침대를 떠나서 하기를 주장했다. 바이슈나바교의 교리는 외적 정결에 관하여서 그렇듯 엄격하였다.
그러한 정결은 절대로 필요한 요소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서양의학이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 그런 모든 일을 목욕까지도 포함해서, 정결을 유지하면서도 침대 위에서 할 수 있으며, 환자에게 조금도 불편을 주지 않고 자리에 얼룩 하나 내지 않고 늘 깨끗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정결은 바이슈나바 교리에 아주 일치한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굳이 자리를 떠나는 것을 볼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며, 칭찬해 드릴 수 밖에 없었다.
무서운 밤이 왔다. 그때 숙부는 라지코트에 있었다. 내 희미한 기억으로는 그는 아버지가 점점 위독해진다는 소식을 듣고 라지코트에 왔다. 두 분 형제는 정이 매우 두터웠다. 숙부는 온종일 아버지의 침대 가까이 앉아 있었으며, 우리를 자러 보내고는 자기는 굳이 아버지 침대 곁에서 주무시는 것이었다. 이것이 운명의 밤일 줄은 누구나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위험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밤10시30분이나 11시쯤, 나는 안마를 하고 있었다. 숙부는 내게 그만두고 가보라고 하셨다. 나는 좋아서 곧장 침실로 갔다. 가엾은 아내는 잠이 깊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왔는데 어떻게 잠을 자고 있을 수 있을까? 나는 그녀를 깨웠다. 그러나 5,6분도 지나지 않아서 하인이 문을 두드렸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일어나세요. 그는 말했다. 아버님께서 매우 위독하십니다. 나는 아버지가 매우 위독한 줄을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그 순간에 매우 위독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았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일이냐? 빨리 말해라!
아버님께서 운명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은 다 끝났다. 나는 다만 두 손을 비빌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고, 앞이 캄캄했다. 나는 아버지 방으로 달려갔다. 만일 동물적 정욕이 내 눈을 어둡게 하지만 않았던들 아버지의 임종을 못지키는 형벌은 면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됐다. 내가 아버지께 안마를 해드리고 있었어야 할 것이고, 그래서 내 팔에 안겨 돌아가셨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특권은 숙부에게로 돌아갔다. 그는 자기 형에게 극진하였으므로 자기 형에게 최후의 봉사를 해드릴 수 있는 영예를 차지하였다. 아버지께서는 다가오는 죽음을 미리 예감하시고 종이와 펜을 가져오라는 시늉을 하셨다. 그러고는 쓰셨다. 마지막 예배를 준비하라. 그러고는 팔에서 호신패를 끄르시고 툴라시 염주의 금목걸이를 끌러서 떼어 놓았다. 그러고는 곧 숨지셨다.
앞장에서 내가 수치라고 말한 것은, 정신차려 봉사해야 하는 아버지의 임종의 순간에도 이기지 못하였던 이 정욕의 수치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워 버릴 수도 잊어버릴 수도 없는 나의 흠이다. 내 효성이 아무리 지극하고 아버지를 위하여 어떤 것이라도 달게 버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그와 동시에 정욕에 붙들려 있었으니 그것은 용서받을 수 없을 만큼 결함이 있는 것으로 알아야 한다고 나는 늘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항상 나 자신을 충실은 하지만 정욕적인 남편이라 인정해 왔다. 내가 정욕의 얽매임에서 해방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많은 시련을 겪고 난 뒤에야 고쳤다.
나는, 내 이중의 수치에 관한 이 장을 끝내기 전에 내 아내에게서 태어난 그 가련한 꼬마는 3,4일도 못살고 죽었다는 것을 말해 둔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결혼하는 모든 사람은 내 일을 참고해서 깨우침을 받기를 원한다.
종교의 어렴풋한 모습
나는 예닐곱 살 때부터 열여섯 살 때까지 학교에 다니는 동안 갖가지 것들을 다 배우면서도 종교만은 배우지 못하였다. 선생들이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내게 줄 수 있었던 것을 내가 배우지 못하고 말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나는 주위에서 이것저것을 주워 넣고 있었다. 여기서 내가 종교 라고 하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 하는 말로서, 자기 실현 또는 자아의 깨달음을 뜻하는 것이다.
바이슈나바 신앙 속에 태어났기 때문에 나는 자주 하벨리에 갔었지만 별 감동은 못받았다. 나는 그 화려와 사치가 싫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부도덕한 일들이 행해지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모든 흥미를 잃어버렸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하벨리에서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거기서 얻지 못한 것을 나는 우리 집에서 오랫동안 종살이해 온 늙은 유모에게서 얻었다. 그녀의 애정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내가 유령이나 귀신에 무서움을 탄다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바 있다. 람바는 나에게 그 무서움을 없애는 방법으로 라마나마*를 외우라고 가르쳐 주었다. 나는 가르쳐 준 그 방법보다도 가르쳐 준 그 사람을 더 믿었으므로 어릴적부터 유령과 귀신에 대한 무서움을 이기기 위해 라마나마를 외우기 시작했다. 이것은 물론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어려서 뿌려진 그 선한 씨는 헛되지 않았다. 내게 있어서, 라마나마가 틀림없이 고쳐 주는 힘을 지금까지도 가지고 있는 것은 이 착한 여자가 심어준 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때쯤해서 라마야나*의 신자였던 내 사촌 한사람이 내 둘째 형과 나를 위해 람 라크샤를 배울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우리는 그것을 따로 외워가지고 아침마다 목욕후에 외우곤 하였다. 우리가 포르반다르에 있는 동안 그것은 계속됐다. 그러나 라지코트에 오자마자 잊어버렸다. 나는 거기에 대한 깊은 신앙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것을 외웠던 것은 한편으로는 내가 람 라크샤를 저확한 발음으로 외울 수 있다는 자랑에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 앞에서 라마야나를 외우던 일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가 병석에 계시던 한동안은 포르반다르에 계셨는데, 거기서 그는 매일 저녁마다 라마야나를 듣고 있었다. 그것을 외운 사람은 라마*의 독실한 신자였던 빌레슈바의 라다 마하라즈였다. 그에 관해서는 이런 말이 있다. 그는 문둥이였는데, 아무 약도 쓰지 않고, 빌레슈바 사원에 있는 마하데바 신상앞에 들렀다가 내버린 빌바 잎사귀를 아픈 데 붙이고, 라마나마를 규칙적으로 외움으로써 나았다는 것이다. 그의 믿음이 그를 온전케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일 수도,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어쨌거나 그 이야기를 믿는다. 그리고 라다 마하라즈가 라마야나를 읽기 시작하자 그의 몸에서 문둥병이 온전히 없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는 아주 음악적인 목청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도하스와 쵸파이스를 부르고는 그것을 설명하곤 했는데, 그때는 자기를 잊어버리고 또 듣는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아마 열세 살이었을 텐데, 그 읽는 소리에 황홀해 했던 것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것이 나의 라마야나에 대한 깊은 신앙의 기초가 되었다. 오늘날 나는 툴라시다스의 라마야나를 모든 신앙문서 중에서 최대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몇달 후 우리는 라지코트로 왔다. 거기서는 라마야나를 읽는 일은 없었지만, 에카다쉬* 날마다 바가바트를 읽었다. 이따금 그걸 읽는데 나도 참석했었으나, 읽는 사람을 별로 영감을 받는 것이 없었다. 지금 나는 바가바트는 신앙의 불길을 일으킬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구자라트어로 읽었는데, 한없는 흥미를 가지곤 했다. 그러나 내가 21일간 단식하는 동안 판디트 마단 모한 말라비야가 그 부분부분을 원어로 읽는 것을 들었을 때는 내가 어린 시절에 그같은 신앙 깊은 이에게서 그것을 들을 수 있었더라면, 그래서 내가 어릴 적부터 그 책을 좋아하게 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에 형성되는 인상은 인간의 본선에 깊이 뿌리를 박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에 그런 종류의 좋은 책을 좀더 많이 얻어 들을 수 없었던 것이 나의 잊을 수 없는 한이다.
그러나 라지코트에서 나는 힌두교의 모든 종파와 여러 자매 종교에 대해서 관대한 태도를 가질 수 있는 기반을 닦게 되었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벨리뿐 아니라 시바*와 라마의 절에도 다녔는데, 우리 어린이들을 데리고 거기에 가기도 했고 우리더러 가라고 보내 주시기도 했기 때문이다. 또 자이나교 중들이 때때로 아버지를 찾아오기도 했는데, 그러면 자기네의 규칙을 떠나서 비자이나 교도로서 우리의 음식을 들기까지 했다. 그들은 아버지와 종교에 관한 이야기와 세속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그는 그밖에 이슬람교와 파르시교*의 친구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은 아버지께 자기네 종교 이야기를 했고, 그러면 아버지는 언제나 존경하는 태도로, 때로는 아주 흥미를 가지고 들었다. 나는 아버지를 간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대화에 참여할 기회가 많았다. 이 여러가지 일들이 작용하여서 내 안에 모든 종교에 대해 관용하는 태도를 심어 주었다.
다만 기독교만은 그때에 예외였다. 나는 그리스도교에 대해 일종의 싫어하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때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이 중학교 가까이의 거리 모퉁이에 서서 힌두교도와 그들의 신에 대해 욕설을 퍼붓곤 하는 일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꼭 한번 서서 들은 일이 있었는데, 그 한번만으로 다시 들을 생각이 없어졌다. 같은 무렵에 어떤 유명한 힌두교인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는 말을 들었다. 읍내에 돌아다니는 말로는, 그는 세례를 받자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고, 그 복장을 고쳐 양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들으니 화가 치밀었다. 나는 과연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고 옷을 바꿔 입기를 강요하는 종교는 종교라 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또 그 개종자가 제 조상의 종교와 풍속과 제 나라를 비방한다는 말도 들었다. 이 모든 것이 내 속에 그리스도교를 싫어하는 생각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나 내가 다른 종교에 대해 관용하기를 배웠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하느님에 대한 어떤 산 신앙을 가졌다는 말은 아니다. 그 무렵, 어떻게 해서 아버지가 수집해 둔 수집품 가운데서 우연히 마누스므리터*를 본적이 있었는데, 그 속의 창조 설화와 그와 비슷한 설화들은 내게 별로 깊은 인상을 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도리어 어느 정도 무신론적인 경향을 내 속에 만들어 주었다.
내게 사촌이 한 사람 있다. 아직 살아 있는데, 나는 그의 지식을 높이 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내 의심을 털어 놓았지만 그도 그것을 풀어 주지 못했다. 그리고 나를 보내면서 하는 말이 이러했다. 네가 자라면 그 의심을 너 자신이 풀 수 있을 것이다. 너희 나이에는 그런 의심은 일으키지 않는 것이 좋을게다. 나는 잠잠했지만, 속이 시원치는 못했다. 마누스므리티의 음식, 또는 그밖의 그런 것들에 대한 장은 내 눈에는 일상의 실제와는 역행하는 것 같이 보였다. 이것들에 대한 나의 의문에 대해서도 나는 같은 해답을 얻었다. 지식이 더 자라고 책을 더 많이 읽으면 나는 이것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하고 나는 스스로 생각했다.
하여튼 마누스므리티는 그때 내게 아힘사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는 앞서 육식 이야기를 했지만, 마누스므리티는 그것을 지지하는 듯이 보였다. 나는 또 뱀.빈대따위를 죽이는 것은 온전히 도덕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빈대나 그따위 벌레들을 죽이면서 그것은 의무라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내 속에 깊이 뿌리를 박았다. 즉, 도덕이 모든 사물의 근본이요, 진리가 모든 도덕의 알짬이라는 확신이다. 진리만이 나의 목적이 됐다. 그것은 나날이 광대한 것으로 자라갔고 그것에 대한 나의 정의도 갈수록 넓어갔다.
구자라트의 한 교훈시가 내 마음과 심정을 함께 사로잡았다. 선으로써 악을 갚으라는, 그 교훈이 나의 지도 원리가 됐다. 그것이 점점 나의 열정으로 되어 갔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여러 가지로 실험해 보게 되었다. 이것이 그 놀라운 귀절이다.
물 한 잔을 밥 한 상으로 갚고
한마디 정다운 인사에 넙죽이 절을 하며,
피천 한 푼을 금으로 갚고
네 목숨을 건져 주었거든 목숨도 아끼지 마라.
모든 어진말과 행동을 그렇게 존중하고
조그만 섬김도 그 갚음은 열 곱으로 하라.
그러나 참 성자는 만인을 하나로 알고
기쁘게 선으로써 악을 갚느니라.
* 다르샨(Darashan) : 어떤 위대한 것을 대함으로써 얻는 감격.
* 라마나마(Ramanama) : 염불처럼 라마신의 이름을 외우는 것
* 라마야나(Ramayana) : 마하바라타와 함께 인도 고대의 유명한 서사시
* 라마(Rama) : 비뉴수 신의 화신의 하나.
* 에카다쉬(Ekadashi) : 음력에서, 초하루와 보름에서부터 각각 열하루째 날
* 시바(Shiva) : 브라라마, 비슈누와 더불어 힌두교의 3대 신격의 하나
* 파르시교(Parsi) : 조로아스터교의 페르시아 계통의 한 종파
* 마누스므리터(Manusmriti) : 마누의 법전, 힌두교에서 권위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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