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을 설하게 된 배경
이와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서 천이백오십인의 큰 비구 제자들과 함께 계시었다. 이날도 세존께서는 공양시간이되자, 가사를 입으신 뒤 바루를 들고 사위성으로 가셔서 한집한집 차례대로 밥을 빌어 마치시고 본처로 돌아와 공양을 하시었다. 그리고 가사와 바루를 제자리에 정돈해 놓으시고 발을 씻은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 수보리의 질문 :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고자 한다면 어떻게 그 마음을 조복받을 수 있습니까?
그때 장로 수보리존자가 대중과 함께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에 옷을 벗어메고 오른쪽 무릎을 꿇어 합장하며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언제나 모든 보살들을 잘 보살펴주시며 모든 보살들에게 잘 당부하고 계십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다음, 마땅히 어떻게 그 마음을 유지하여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도다 수보리여. 네 말과 같이 여래는 모든 보살들을 두루 잘 보살피며, 모든 보살들에게 언제나 잘 당부하느니라. 너희는 이제 자세히 들으라. 내 너희를 위해 설해 주리라. 선남자 선여인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 다음에는 마땅히 이와같이 그 마음을 유지하고, 이와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느니라.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기쁜 마음으로 듣고자 하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마땅히 이와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할 것이니, 이른바 온갖 중생들, 곧 난생·태생·습생·화생의 중생과 형태가 있는 중생·형태가 없는 중생·생각이 있는 중생·생각이 없는 중생·생각이 있는 것도 아닌(非有想)
중생·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非無想)
중생 모두를 나는 무여열반에 들어 해탈하게 하느니라. 이와같이 한량없고 수가 없고 끝이 없는 중생을 해탈시키지만, 실은 한 중생도 해탈을 얻게 하였다는 생각이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여, 만약 보살에게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진정한 보살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또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그 어디에도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해야하나니, 이른바 모양에 얽매임없이 보시를 해야하며 소리나 냄새나 맛이나 감촉이나 생각에 얽매임없이 보시를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이와같이 보시하여 어떠한 상(相)에도 집착을 하지말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에 집착을 하지않고 보시를 하면 그 복덕이 가히 헤아릴 수 없이 크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여, 네 생각은 어떠하냐? 동쪽 허공의 크기를 가히 헤아릴 수 있겠느냐?
헤아릴 수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수보리여, 남쪽·서쪽·북쪽 등의 허공과 동남·서남·동북·서북쪽과 위·아래 허공의 크기는 가히 헤아릴 수 있겠느냐?
헤아릴 수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보살이 상에 집착함이 없이 베푸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의 복덕 또한 이와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지금 내가 가르쳐 준 대로 마음을 유지하여야 하느니라.
수보리여, 네 생각은 어떠하냐? 가히 몸의 겉모습(身相)을 통하여 여래를 볼 수 있느냐 없느냐?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몸의 겉모습, 곧 신상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나이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오신 신상 또한 신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셨다.
“무릇 있는 바 상(相)은 다 헛되고 망령된 것이니
만약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보면 곧바로 진실한 여래를 보게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자못 어떤 중생이 이와같은 말씀이나 글귀를 보고 진실한 믿음을 낼 수 있겠나이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한 말을 하지말라. 여래가 열반에 든 뒤 후오백세에 계를 지키고 복을 닦는 자는 이 가르침에 대해 능히 바른 신심을 내고 이를 진실로 삼으리라.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한 부처님이나 두 부처님·셋·넷·다섯 부처님께만 선근을 심은 것이 아니라 이미 한량이 없는 천만 부처님께 갖가지 선근을 심었으므로, 이 가르침을 듣고 한 생각에 깨끗한 믿음을 내느니라.
수보리여, 여래는 이러한 모든 중생이 한량없는 복덕을 얻음을 능히 다 알고 보시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이 모든 중생에게 다시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고, ‘법이라는 상[’도 없으며, 또한 ‘법이 아니라는 상’도 없기 때문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이 모든 중생이 마음에 어떤 상을 취하게 되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한 것이 되느니라. 또 무슨 까닭인가? 만약’법이라는 상’을 취하게 되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한 것이 되며, 만약 ‘법이 아니라는 상’을 취하여도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한 것이 되느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법도 취하지 말고 법 아닌 것도 취하지 말지니라. 이러한 까닭에 여래는 항상 ‘비구들이여, 너희는 내가 설한 법을 뗏목처럼 여겨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렇듯 법도 오히려 놓아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닌 것이랴.
수보리여, 네 생각은 어떠하냐?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하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제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의 뜻을 알기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이름할만한 정해진 법이 없으며, 여래께서 설하시는 정해진 법 또한 없나이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하시는 법은 가히 다 취할 수도 없고 가히 다 말할 수도 없으며, 법도 아니요 법 아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모든 현성들은 다 무위법으로 차별을 삼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여, 네 생각은 어떠하냐?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찰 만큼의 일곱 가지 보배로써 보시를 하였다면, 그 사람의 얻은 바 복덕이 많겠느냐 적겠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매우 많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복덕은 복덕성(福德性)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복덕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 속의 사구게만이라도 받아 지녀서 남을 위하여 설해 준다면, 그 복덕은 앞에서 말한 복덕보다 훨씬 더 뛰어나니라.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여, 모든 부처님과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이 모두 이 경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여, 이른바 불법이라는 것은 곧 불법이 아니니라.
수보리여, 네 생각은 어떠하냐? 수다원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수다원과를 얻었노라’고 하겠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수다원을 이름하여 입류(入流)라고 하나 들어간 바가 없으니, 색성향미촉법에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수다원이라 이름하옵니다.
수보리여, 네 생각은 어떠하냐? 사다함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사다함과를 얻었노라’고 하겠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사다함을 이름하여 일왕래(一往來)라 하지만, 실제로는 가고 옴이 없으므로 사다함이라 이름하옵니다.
수보리야 네 생각은 어떠하냐? 아나함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아나함과를 얻었노라’고 하겠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아나함을 이름하여 불래(不來)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오지 않음이 없으므로 아나함이라 이름하옵니다.
수보리여, 네 생각은 어떠하냐? 아라한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아라한과를 얻었노라’고 하겠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실제의 진리에는 아라한이라는 이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아라한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아라한과를 얻었노라’고 하면, 그것은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함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저를 ‘무쟁삼매를 얻은 사람들 중에 최고요 욕심을 떠난 제일의 아라한’이라고 하시지만, 제 스스로는 ‘나는 욕심을 떠난 아라한’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약 ‘나는 아라한도를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세존께서 ‘수보리는 아란나행을 즐기는 이’라고 말씀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수보리의 행하는 바가 실로 없기 때문에 ‘수보리는 아란나행을 즐기는 이’라고 말씀하시나이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그 옛날에 여래가 연등불의 처소에서 법을 얻은 바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연등불의 처소에서 실로 법을 얻은 바가 없습니다.
수보리여, 네 생각은 어떠하냐? 보살이 불국토를 장엄하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것은 곧 장엄이 아니요 그 이름이 장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수보리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같이 청정한 마음을 내어야 하나니,
마땅히 색(色)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 것이요,
소리와 냄새와 맛과 느낌과 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 것이며,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야 하느니라.
수보리여, 비유하건데 어떤 사람의 몸이 수미산 만하다면, 네 생각은 어떠하냐? 그 몸이 크다고 하겠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매우 크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몸 아닌 것을 말씀하시어 큰 몸이라고 이름하셨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여, 항하에 있는 모래알 수 만큼이나 많은 항하가 또 있다고 한다면, 네 생각은 어떠하냐? 이 모든 항하들의 모래가 얼마나 많겠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매우 많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단지 모든 항하의 수만 하여도 오히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이거늘, 하물며 그 모래알의 수이겠나이까?
수보리여, 내 이제 진실한 말로 그대에게 이르노니,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칠보로써 저 항하의 모래알 수만큼이나 많은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차도록 보시를 한다면, 그 얻을 바 복덕이 얼마나 많겠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매우 많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 가운데 사구게만이라도 받아지니고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한다면, 이 복덕은 앞의 칠보보시의 복덕보다 더 수승하니라.
또한 수보리여, 마땅히 알지어다. 이 경의 사구게만을 설할지라도, 일체 세간의 천상·인간·아수라 등이 그를 공양하기를 부처님의 탑과 절에 공양하듯 하느니라. 하물며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모두 수지(受持)하고 독송함에 있어서랴.
수보리여, 마땅히 알지어다. 이 사람은 가장 높은 법, 제일가는 법, 희유한 법을 성취하게 되나니, 이 경전이 있는 곳에는 곧 부처님과 존중받는 제자들이 함께 계심이니라.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며, 저희들이 어떻게 받들어 지니오리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이니, 마땅히 이러한 이름대로 너희들은 받들어 지닐지니라.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여, 여래가 설하는 반야바라밀은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요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이니라. 수보리여, 네 생각은 어떠하냐? 여래가 설한 바 법이 있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설한 바가 없나이다.
수보리여, 네 생각은 어떠하냐? 삼천대천세계에는 티끌이 얼마나 많겠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매우 많나이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여래는 모든 티끌이 티끌이 아니요 그 이름이 티끌이라고 말하며, 여래는 세계도 세계가 아니라 그 이름이 세계라고 말하느니라. 수보리여, 네 생각은 어떠하냐? 가히 삼십이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다고 하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삼십이상으로는 여래를 보지 못하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삼십이상은 곧 삼십이상이 아니요, 그 이름이 삼십이상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여,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항하의 모래알 수 만큼이나 많은 몸과 목숨을 바쳐 보시를 할지라도, 어떤 사람이 이 경 속의 사구게만이라도 받들어 지니고 남을 위해 설해 준다면, 그 복이 훨씬 더 뛰어나니라.
그때 수보리가 이 경을 설하심을 듣고 깊이 그 뜻을 깨달아 눈물을 흘리고 울며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심히 이와같이 깊은 경전을 설하심은 제가 예로부터 얻은 바 지혜의 눈으로는 일찍이 한 번도 듣지 못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신심이 청정하면 곧 실상을 깨달으리니, 마땅히 이 사람이 제일 희유한 공덕을 성취한 줄로 알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실상은 곧 상(相)이 아니오며, 그러한 까닭으로 여래께서는 실상이라고 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이 경전을 얻어 듣고 믿고 받아지니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사오나, 만약 앞으로 다가올 후오백세 뒤의 중생들이 이 경전을 얻어 듣고 믿고 받아 지닌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가장 희유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아상도 없고, 인상·중생상·수자상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상이 곧 상(相)이 아니요, 인상·중생상·수자상도 곧 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일체의 모든 상을 떠난 것을 이름하여 부처님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고 또 그러하도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놀라지도 않고 겁내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매우 희유한 사람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여, 여래가 말하는 제일바라밀은 제일바라밀이 아니요, 그 이름이 제일바라밀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여, 인욕바라밀도 여래는 인욕바라밀이 아니라고 설하나니, 그 이름이 인욕바라밀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여, 옛날 가리왕이 나의 몸을 베고 끊었을 때,나는 아상도 없었고 인상이 없었으며, 중생상도 없었고 수자상도 없었느니라. 나는 마디마디 사지가 끊기는 때, 아상이나 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었더라면, 마땅히 원망하는 마음을 내었을 것이니라.
수보리여, 또 생각하니, 과거 오백세 동안 인욕선인이 되었던 그 때에도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었느니라.
그러므로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일체의 상(相)을 떠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여야 하나니,
응당 색(色)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고,
응당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과 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지니,
응당 머무르는 바 없이 마음을 낼지니라.(應無所住 而生其心)
만약 마음에 머무르는 바가 있으면 곧바로 머무름을 지울지니,
그러므로 부처님들이 ‘보살은 응당 색에 얽매이지 않는 보시를 해야한다’고 설하시는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은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마땅히 이와같이 보시를 해야 하나니,
그래서 여래는 일체의 모든 상이 곧 상(相)이 아니요, 일체의 중생이 곧 중생이 아니다’라고 설하는 것이니라.
수보리여 여래는 참다운 말을 하는 자이며 진실된 말을 하는 자이며, 한결같은 말을 하는 자이며, 속임수 없는 말을 하는 자이며, 사실과 다르지 않은 말을 하는 자이니라.
수보리여, 여래가 얻은 이 법에은 실(實)도 없고 허(虛)도 없느니라.
수보리여 만약에 보살이 마음을 그 무엇에 집착하여 보시를 하게되면, 그는 마치 어둠속에 들어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과 같게 되느니라. 만약에 보살이 마음을 그 무엇에 집착하지 않고 보시를 하게되면, 그는 마치 눈밝은 사람이 밝은 햇빛 아래에서 가지가지의 색을 분명히 보는 것과 같게 되느니라.
수보리여 장차 오는 세상의 선남자 선여인이 능히 이 경을 받아지니고 읽고 외우면, 여래는 곧 부처의 지혜로써 그 사람을 다 알고 다 보아, 그로 하여금 한량없고 가없는 공덕을 성취하게 하느니라.
수보리여,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아침에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를 하고, 낮에 다시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를 하고, 저녁에 또한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를 하되 한량없는 백천만겁 동안 몸으로 보시를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믿는 마음으로 거역하지 아니하였다면 그 복덕이 저 몸을 보시한 복덕보다 수승하니라.
하물며 경을 베껴 쓰거나, 받들어 지니고 독송하거나, 남을 위해 해설을 해주는 공덕이랴.
수보리여, 요점만 말한다면 이 경은 불가사의하여 가히 측량할 수 없고 가없는 공덕을 지니고 있나니, 여래는 대승의 마음을 발한 자를 위하여 이 경을 설하며 최상승의 마음을 발한 자를 위하여 이 경을 설하느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이 경을 받들어 지니고 독송하고 널리 남을 위해 설하여 주면 여래는 이 사람을 다 알고 다 보나니, 이 사람은 가히 헤아릴 수 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한없이 불가사의한 공덕을 모두 얻어 성취하게 되느니라.
이러한 사람은 곧바로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짊어지고 나아가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작은 법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견과 인견과 중생견과 수자견에 집착하기 때문에 이 경을 능히 들으려 하지 않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며, 독송을 하거나 남을 위해 해설을 해주지 못하느니라.
수보리여, 어느 곳이든지 이 경이 있는 곳이면 일체 세간의 천인과 인간과 아수라가 응당 공양을 하느니라.
마땅히 알아라. 이 경이 있는 곳은 곧 탑이 되나니, 모두가 공경하여 예배를 드리고 주위를 돌며 갖가지 꽃과 향을 뿌리느니라.
또 수보리여,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면서도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면, 이 사람은 전생의 죄업으로 마땅히 악도에 떨어질 것이로되, 금생에 업신여김을 받는 까닭으로 전생의 죄업이 곧 소멸되어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느니라.
수보리여, 내가 과거의 헤아릴 수 없는 아승지겁을 생각해 보니, 연등불을 뵙기 전에 팔백사천만억 나유타 수의 많은 부처님을 만나 모두 다 공양하고 받들고 섬기어 헛되이 지냄이 없었느니라.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있어 앞으로 오는 말세에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독송을 하면, 내가 모든 부처님께 공양한 공덕으로는 그 공덕의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천만억분의 일 내지 숫자의 비유로는 도저히 미칠 수가 없느니라.
수보리여,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앞으로 오는 말세에 이 경을 받아 지니고 독송함으로써 얻게 되는 공덕을 다 갖추어 말한다면, 혹 어떤 사람은 듣고 마음이 산란해져서 여우처럼 의심하고 믿지 않을 것이니라.
수보리여, 마땅히 알아라. 이 경은 뜻도 불가사의 하지만 그 과보 또한 불가사의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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