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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결박과 해탈을 밝히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비록 둘째 뜻의 문을 말씀해 주셨으나, 이제 세상의 매듭 푸는 사람을 생각해 보니, 만일 매듭의 근원을 알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끝내 풀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와 이 법회의 배울것이 남아있는 성문스님들도 이와 마찬가지며, 시작 없는 옛날부터 무명과 더불어 함께 생하고 함께 멸해왔으니, 비록 이렇게 많이 듣고 아는 선근으로 출가했다고 하나, 마치 하루걸러 발병하는 학질병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부디 큰사랑으로 생사에 빠져 허덕이는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지금의 몸과 마음이 어째서 번뇌에 얽혔는지, 무엇으로 풀어야 하는지를 가리켜 주시고, 미래의 괴로운 중생들도 윤회를 벗어나서 삼계에 떨어지지 않게 하옵소서.”
이렇게 말하고 대중과 함께 온몸을 땅에 엎드려 비 오듯 눈물을 흘리면서 정성을 다하여 부처님의 더없이 높은 가르침을 기다렸다.

이때 세존께서 아난과 법회의 유학 성문들을 가엾게 여기시는 한편, 미래의 중생들을 위하여 세간을 벗어나는 원인으로서 장래의 안목을 삼으시려고, 염부단의 자금색 광명이 빛나는 손으로 아난의 이마를 만지셨다.
이때 시방의 드넓은 부처님의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면서, 그 세계에 계시는 티끌처럼 많은 여래께서 각각 이마에서 보배광명을 놓으시자, 그 광명이 동시에 저 세계에서 기타림 숲으로 와서 여래의 이마를 비추시니, 법회의 대중은 이전에 본적이 없는 광경을 보았다.
여기서 아난과 대중은 다 함께 티끌처럼 많은 시방 여래께서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아난에게 일러주시는 말씀을 들었다.
“참으로 좋은 질문이다. 아난이여, 네가 구생무명이 어떻게 너를 생사에 윤회하도록 뿌리 맺혔는지를 알고자 한다면, 오직 너의 여섯 감관 외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네가 또 더없이 높은 보리가 어떻게 너에게 빨리 안락한 해탈의 고요하고 미묘하고 영원한 경지를 깨닫게 하는지를 알고자 할지라도, 역시 너의 여섯 감관 외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아난이 이러한 법문을 들었으나 마음은 오히려 분명하지 않아서,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께 아뢰었다.
“'나를 생사에 윤회케 하거나 안락하고 미묘하고 영원한 경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 다 같이 여섯 감관 외에 다른 것이 없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감관과 대상은 근원이 같고, 얽힘과 해탈은 둘이 아니며, 식의 성품은 허망하여 허공 꽃과 같으니라.
아난아, 경계로 인하여 아는 작용을 일으키고, 감관을 따라 모양이 있으며, 모양과 보는 작용은 제 성품이 없으니 여러 줄기로 기댄 갈대이니라.
그러므로 네가 지금 지견으로 지견을 세우면, 바로 무명의 근본이며, 지견에서 지견을 떠나면, 이것이 곧 번뇌 없는 열반의 진실하고 청정한 경지이니라. 그러니 이 가운데 어찌 다른 것을 용납하겠느냐?”
이때 세존께서는 거듭 이 뜻을 설명하시기 위하여 게송으로 설하셨다.

참 성품은 유위법(有爲法)이 모두 다 공(空)했으나
인연 따라 생기기에 환상처럼 변화한다.
무위법(無爲法)은 나타나고 사라지는 생멸(生滅) 인연 일체 다 떠났으니
실속 없이 허망함은 허공에 피어난 허깨비 꽃과 다름없다.

허망으로 말하면서 온갖 진실 밝혀봐도
허망이나 진실이나 모두 다 허망하다.
참이나 참 아님을 아예 떠난 자리이니
보거나 보이는 곳이 어디에 있겠느냐?

속으로 들어가도 진실된 성품 아니고,
이를 비겨 줄기 기댄 빈 갈대와 같다한다.
맺힌 곳과 푸는 일은 그 자리가 똑같으니
성인이나 범부거나 두 갈래길 따로 없다.

줄기 기댄 갈대 속을 깊이깊이 살펴보라.
공한 법과 존재 법을 둘 다 함께 떠났으니
미혹하여 모른다면 그게 바로 무명(無明)이요
밝혀내어 깨달으면 그게 바로 해탈이다.
 
맺힌 원인 하나 하나 차례대로 풀고 나면
여섯 자리 다 풀리어 하나까지 없어지니
여섯 감관 두루 살펴 원통(圓通) 감관 골라내면
성인 반열 들어서서 바른 깨침 이루리라.

미세하기 그지없어 알기 힘든 아뢰야식
쌓인 습기 흘러내려 폭포수를 이뤘으니
진실인지 참 아닌지 미혹할까 염려하여
지금까지 조심하여 설명하지 않았노라.

자기 본래 마음에서 그 마음을 취한다면
환상 아닌 바른 법이 환상 법을 이루지만
취함 없이 그냥 두면 환이 아닌 법도 없어지고
환상 아닌 바른 법도 생겨나지 않을 텐데

실체 없는 환상 법이 어느 곳에 서겠느냐?
이를 일러 청정하고 미묘한 연꽃이며
견고한 금강의 보배로운 깨달음이며
환술처럼 자유로운 삼매라 이름하니

손 퉁기는 잠깐 사이 무학(無學) 자리 넘으리라
무엇과도 비교 못할 아비달마 바른 법은
티끌처럼 한량없는 시방세계 여래께서
한 길 따라 수행하여 열반하신 문이니라.  

이때 아난과 대중은 여래께서 더 없는 자비로운 가르침을 들으니, 기야와 가타가 잘 어울려 정교하게 빛나는 묘한 이치가 맑게 사무쳐, 모두들 마음과 눈이 환하게 열리어 이전에 들어본적 없는 법문을 감탄하였다.
아난은 머리를 조아려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지금 부처님께서 차별 없는 대비로 설하신 성품이 맑고 묘하고 영원하고 진실한 구절을 들었으나, 제 마음은 아직도 여섯이 풀려서 하나까지 없어지려면 그 매듭을 어떤 순서로 풀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대자비의 마음으로 이 법회의 대중과 미래 중생들 가엾이 여기시고, 다시 한번 법문을 베푸셔서 깊게 잠긴 번뇌를 씻어주옵소서.”
그러자 여래께서는 사자좌에서 열반승을 바르시고 승가리를 거둬 여미시며 손으로 칠보 책상을 끌어당기시더니, 겁바라 천신이 바친 꽃수건을 잡으시고, 대중 앞에 매듭 하나를 맺고 아난에게 보이시며 말씀하셨다.

“이것이 무엇이냐?”
아난과 대중은 함께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것은 매듭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여래께서 꽃수건에 또 한 매듭을 맺으시고 거듭 아난에게 물으셨다.
아난과 대중은 또 함께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것도 매듭이라고 합니다.”
여래께서는 이렇게 꽃 수건에 차례로 맺어 모두 여섯 매듭을 맺으시면서 매듭을 하나하나 맺을 때마다 맺힌 매듭을 손에 들고 아난에게 '이것은 무엇이냐'고 물으셨으며, 아난과 대중도 그 때마다 부처님께 차례로 '그것은 매듭이라 합니다'라고 답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처음 수건을 맺었을 때 너는 매듭이라고 하였다. 이 꽃 수건은 본래 하나뿐인데,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어째서 너희들은 또 매듭이라고 하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보배 꽃 실로 짠 수건은 비록 본래는 하나이나, 제 생각으로는 여래께서 한 번 맺으시면 한 매듭이라고 하며, 백 번 맺는다면 백 매듭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수건에는 단지 여섯 매듭뿐이어서, 결국 일곱 매듭은 되지 못했으나, 다섯 매듭은 이미 넘었는데, 여래께서는 어째서 단지 처음 하나만을 인정하시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매듭이 아니라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알다시피 이 보배 꽃 수건은 원래 하나 뿐인데, 내가 여섯 번 맺었기 때문에 여섯 매듭이라고 하였다. 너는 자세히 살펴보아라. 수건 자체는 같지만 맺었기 때문에 달라졌느니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처음 맺은 매듭을 첫 번째라 하고, 이렇게 여섯 번째 매듭까지 생겼는데, 내가 이제 여섯 번째의 매듭을 첫 번째라고 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답했다.
“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여섯 번째 매듭을 그대로 두고는 이 여섯 번째의 이름은 절대로 첫 번째가 될 수 없습니다. 제가 여러 생을 지내면서 변명한들, 어떻게 이 여섯 번째 매듭의 이름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여섯 매듭이 똑같지는 않으나 근본 원인을 돌아보면, 한 수건에서 만들어졌으나 끝내 어지럽게 뒤섞을 수 없듯이, 너의 여섯 감관도 이와 같이 끝까지 같은 데서 끝까지 다른 것이 생겼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 여섯 매듭이 하나로 되어있지 않음을 싫어하여 반드시 하나 되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가 되겠느냐?”
아난이 말했다.
“이 매듭을 그대로 둔다면 시비가 무성하게 일어나서 그 안에 저절로 '이 매듭은 저 매듭이 아니다' '저 매듭은 이 매듭이 아니다'라고 하겠으나, 여래께서 지금 당장 모두 다 풀어버리시고 매듭이 생기지 않게 하신다면, 이 매듭 저 매듭이 다 없어져서, 오히려 하나라고 이름할 것도 없는데, 어찌 여섯이 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섯이 풀려서 하나까지 없어지는 뜻도 이와 마찬가지니라. 네가 시작 없는 옛날부터 심성이 어지럽게 날뛰기 때문에, 알고 보는 작용이 허망하게 발생하여 쉴 새 없이 허망함이 일어나서, 보는 작용이 피로하여 티끌번뇌를 일으켰느니라. 마치 피로한 눈에 어지러운 헛꽃이 나타나듯, 고요하여 정밀하게 밝은데서 까닭 없이 일체 세간의 산과 강과 넓은 땅과 생사와 열반이 어지럽게 일어났으니, 모두 다 미친 피로에서 나온 뒤바뀐 헛꽃 모양이니라.”
아난이 말했다.
“이 피로가 매듭과 같다면 어떻게 풀어야 하겠습니까?”
여래께서 손에 매듭 맺힌 수건을 들고 왼쪽으로 당기시면서 아난에게 물으셨다.
“이렇게 하면 풀리겠느냐?”
아난이 말했다.
“그러면 풀리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곧 다시 손을 돌려 오른쪽으로 당기시면서 또 아난에게 물으셨다.
“이렇게 하면 풀리겠느냐?”
아난이 말했다.
“그래도 풀리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손으로 왼쪽과 오른쪽을 각각 당겨 보았으나, 결국 풀 수 없었다. 네가 방법을 내 보아라. 어떻게 하면 풀리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맺힌 복판에 맞춰 푼다면 풀리겠습니다.”
부처님께 아난에 일러주셨다.
“그렇다. 그래야 한다. 매듭을 없애려면 맺힌 복판에 맞춰야 하느니라.
내가 '불법이 인연을 따라 생긴다'고 설한 것은, 세간의 화합한 거친 모양을 가지고 한 말이 아니다. 여래는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밝혀서, 그 본래 원인이 연할 곳을 따라 나오는 이치를 알고, 이와 같이 내지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세계 안에 내리는 빗방울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그 숫자를 다 알며, 지금 눈앞의 가지가지에서도 어째서 소나무는 곧고 가시나무는 굽고 따오기는 희고 까마귀는 검은지 그 원래의 까닭을 다 분명하게 아느니라.
아난아, 네 마음대로 여섯 감관에서 선택하여라. 감관의 맺힌 자리를 풀어버린다면, 경계의 모양은 저절로 없어지리라. 온갖 허망함이 소멸하여 없어져 버리면 진리 아닌 그 무엇이 너를 기다리겠느냐?
아난아, 나는 이제 너에게 묻겠노라. 지금 네 눈앞에 있는 이 겁바라천 수건의 여섯 매듭을 동시에 풀어서 맺힘을 한꺼번에 없앨 수 있겠느냐?”
아난이 답했다.
“동시에 없앨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매듭들은 본래 차례로 맺혀 생겼으므로, 지금도 마땅히 차례로 풀어야 합니다. 여섯 매듭의 본체는 같으나, 매듭의 맺힘이 동시가 아닌데, 매듭을 풀 때인들 어찌 동시에 없애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섯 감관을 푸는 일도 마찬가지니라. 이 감관이 처음 풀리면 먼저 아공(我空)을 얻고, 공(空)의 본질이 뚜렷이 밝아지면 법에서 해탈하며, 법에서 해탈하고 나서 아공과 법공이 함께 공한 경계마저 생기지 않아야 이를 '보살이 삼마지에서 얻는 무생법인'이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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