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무는 설악산 울산바위
오악명산
가운데 눈 덮인 절경이 유명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설악산은 옛부터 아름다운 전설들을 참으로 많이 간직하고 있다.
설악산에는 울산바위가 있는데 이는 바위가 태어난 고향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울산에서 시집을 왔으니 자연 울산댁이요 울산바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울산바위에는 기막힌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설악산에서 북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금강산이 있다. 금강산은 불교경전 가운데 '금강경'이라는 경전에서 따온 이름인데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장엄한 산으로 정평이 나있다.
산신령이 금강산을 만들고 있을 때다. 산신령은 처음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을 만들리라 생각하고 설계에 들어갔다. 그 설계의 특징은 금강산에 1만 2천 개의 봉우리를 각기 다른 형태로 설치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화엄경'을 읽던 산신령에게 묘안이 떠올랐다. 화엄경의 내용 가운데 법기보살이 1만 2천의 많은 보살들에 에워싸여 설법하는 내용을 그대로 현실에 옮겨 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처럼 많은 봉우리에 그처럼 각기 다른 형태를 지니게 하려면 바위가 턱없이 모자랐다. 산신령은 결국 전국 각지에 공문을 띄웠다.
"내가 지금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을 만들려고 한다. 봉우리의 숫자는 '화엄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1만 2천 개로 정했다. 하지만 그처럼 많은 각기 다른 형태의 바위가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에 청하는 바이니 기기묘묘하게 생긴 바위들은 모두 내게로 오라."
산신령의 명을받은 전국 각지의 바위들은 금강산을 향해 모여들었다.
뭇중생의 생김새와 개성이 천차만별이듯 바위들의 생김새도 참으로 다양했다.
이때 경상도 울산에 있던 한 바위도 금강산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바위는 덩치가 워낙 커서 걸음이 느렸다.
부지런히 걸었지만 땅거미가 질녘에야 겨우 설악산에 당도하였다. 다리도 지치고 피곤하여 설악산에서 하룻밤 쉬어 가기로 했다. 그날 밤 그는 생각했다.
'각기 다른 1만 2천 개의 형태의 바위가 모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만2천이란 숫자는 굉장히 많은 수다. 설마 다 차지는 않았을 테지.'
울산에서 온 바위는 설악산에서 하룻밤을 편히 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하려 하였다. 그때였다. 금강산의 산신령이 보냈다는 사자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나는 금강산 산신령이 보낸 사자요. 산신령의 말씀으로는 어젯밤 자정을 기해1만 2천의 봉우리가 다 찼다고 합니다. 아울러 이제는 더 이상 오지 말라는 분부요."
울산바위는 기가 막히고 힘이 쭉 빠져 버렸다. 울산서 예까지 그 험난한 산길을 얼마나 힘들여 올라왔던가. 그런데 이제와서 숫자가 다 찼으므로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억울하고 분하고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울산바위가 사자에게 말했다.
"1만 2천 개의 봉우리가 다 찼다고 하니 할 수 없는 일이오만, 울산에서 여기까지 온 공로를 생각해서 덤으로 나를 끼워 달라고 할 수는 없을까요?"
사자가 말했다.
"그것은 힘듭니다. 산신령은 설계대로 하실 뿐 다르게 변경하시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미안하지만 어쩌겠소이까?"
"그렇지만 1만 2천 개에 하나 정도 더 들어간다고 해서 뭐 그리 큰 표야 나겠습니까. 한번 말씀이나 드려 보십시오. 그래도 정 안된다면 할 수 없는 일이겠지요."
사자는 울산바위가 하도 불쌍해서 금강산으로 돌아가 산신령에게 사실을 보고했다. 산신령은 말했다.
"내가 금강산을 설계한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화엄경'에 기초하였다. 거기에 의하면 1만 2천만이 있을 뿐이다.
덤이란 없느니라."
사자는 울산 바위의 실망하는 모습이 눈에 선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더 간청했다.
"화엄경이라면 법계연기를 무애의 바탕 위에서 설한 게 아니겠습니까. 큰 것과 작은 것이 걸림이 없고, 아릅답고 추함이 걸림이 없으며, 부처님과 중생이 걸림이 없고, 현실과 이상이 걸림이 없습니다. 숫자가 많고 적음에도 구애됨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쯤 더 많다고 해서 그리 해로울 것은 없다고 생각되는데요."
"허, 그놈. 말은 잘하는구나. 하지만 이제 완공된 상태에서 다시 설계변경까지 해 가며 덧붙일 생각은 없느니라. 가서 그대로 전하거라."
금강산 사자가 설악산에 오니 울산에서 온 바위는 그때까지 울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위가 흘린 눈물은 내가 되어 바위앞을 흥건하게 적시며 흘러가고 있었다. 하도 보기가 딱하여 금강산 사자는 바위의 어깨를 툭툭치며 말했다.
"이 설악산이 금강산 보다야 못하겠지만 그래도 울산 보다는 나을 것이요.
더욱이 걸음을 되돌려 울산으로 내려가 봐야 체면도 안 설 것이고 하니 그냥 이 설악산에 머무는 것이 어떻겠소?"
그렇게 해서 울산바위는 설악산에 그대로 자리를 잡았다. 그후로 사람들은 그바위를 울산에서 이사 온 바위라 하여 울산바위라 불렀으며 그 바위 앞에 흐르는 물은 바위가 흘린 눈물이라 하여 눈물개울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배불숭유 정책으로 불교의 탄압이 극에 달하던 시대였다.
울산바위에 대한 얘기를 들은 울산 군수는 심사가 뒤틀려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설악산이 금강산 보다 못하다는 것도 화가 난 일이었지만, 울산은 설악산보다도 못하다는 데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그는 묘책을 생각하느라 며칠째 밤잠을 설쳤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야지.'
설악산에 가다 보면 가는 도중에라도 어떤 묘안이 떠오를 것이라 생각하고 군수는 아전들을 대동하고 설악산을 향해 길을 떠났다. 동해를 한쪽 옆구리에 끼고 있는 산천은 온통 그대로 별천지 였다.
'아, 이토록 아름다운 세계도 있구나. 그런데 설악산은 이보다 더 아름답다고 하니 과연 어떤 곳일까?'
군수 일행은 강릉을 지나 속초로 올라가다 양양에 들렀다. 양양에는 낙산사가 유명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낙산사도 낙산사려니와 홍련암은 더욱 장관이었다.
'이놈의 중들, 좋은 곳이란 곳은 다 차지하고 있군. 어디 한번 두고 보자.
끙.'
낙산사에서 점심을 잘 얻어먹은 군수 일행이 다시 설악산으로 향해 떠났다. 속초 조금 못 미처 왼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신흥사, 말로만 듣던 신흥사에 도착했다.
군수가 신흥사 주지를 찾았다.
한편 신흥사에서는 울산 군수가 온다고 하자 경내가 갑자기 술렁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또 무슨일이 벌어질까?"
한 스님이 말하자 다른 스님이 말을 받았다.
"골치 아픈 일이 있을 꺼야. 벼슬하는 양반들치고 우리 스님네 안 괴롭힌 사람이 있어야지."
"참 큰일은 큰일이구먼. 어찌해야 한다? 뭐 좋은 묘안이 없을까?"
"묘안이 있으면 그치들이 들어주기나 한다던? 그냥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지."
그러고 있는데 누가 밖에서 급히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지금 울산 군수가 막 절에 당도하였답니다. 스님들 빨리들 나오십시오."
울산 군수 일행이 신흥사 주지를 찾고 있었다. 주지는 무슨 죄인이나 되는 듯 군수 앞에서 두 순을 맞잡고 다소곳이 서 있었다. 군수는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흰 수염을 이리저리 쓸어 내렸다.
"여기 신흥사 뒷편 설악산에 울산바위가 있다지? 나는 울산에서 온 울산 군수요. 어서 그리 안내하시오."
수인사도 생략한 채 울산바위에 대한 얘기부터 꺼내는 군수에게 주지는 벌벌 떨면서 말했다.
"때가 이미 저녁인지라 거기까지 가시면 어두워서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저녁 공양을 마치시고,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저희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좋소. 그럼 우리를 이 절에서 가장 좋은 방으로 안내하시오."
가장 좋은 방을 찾는 군수에게 어린 사미 하나가 대중들 틈을 헤집고 나오면서 말했다.
"따라오십시오. 가장 좋고 훌륭한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군수는 기가 막혔다. 아무리 그렇기로 이렇게 어린 사미에게 안내를 맡기다니, 웃음이 먼저 나왔다. 군수가 사미를 따라가 보니 그곳은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이었다. 군수가 소리를 질렀다.
"이런 어린 놈이 무엄하구나. 내 가장 좋은 방으로 안내하라 했더니, 여기는 법당이 아니냐?"
사미가 태연하게 말했다.
"우리 절에서 가장 좋은 방에 부처님을 모십니다. 원님께서 가장 훌륭한 방을 찾으시니, 법당으로 모셔야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군수는 할 말을 잊어버렸다. 내심 사미의 기지에 놀라며 다른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저녁 공양이 끝나고 군수는 주지와 마주 앉았다. 주지는 여전히 죄인 듯 했고 군수는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군수의 뇌리에 묘책이 하나 떠올랐다.
'음, 그렇지. 바윗세를 받아내야 하는거야. 두고 봐라, 이놈들.'
"이보시오, 주지."
"예, 군수 영감님. 말씀하시지요."
"내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금년부터는 바윗세를 꼬박꼬박 바치도록 하시오."
"바윗세라고요? 그것이 얼마나 되옵니까?"
"그야 바위의 크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여간 내일 올라가 보고 내 정하겠소."
신흥사 주지는 어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항변을 했다가는 묵숨이 열 개라도 성치 못할 것이었다. 일단 절에 들어오는 시주금을 몽땅 털어서라도 그 세금은 바쳐야 했다.
"그래, 그 바위의 크기는 얼마나 된다고 하오?"
"군수 영감님, 아마 적어도 둘레가 10리는 될 것 같습니다."
군수는 뭔가 생각하는 것 같더니 주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누굴 바보인 줄 아시오. 내가 알기로는 30리가 넘는다고 하던데 세금을 적게 내려고 무엄하게도 나를 속이다니."
주지가 사시나무 떨듯하면서 말했다.
"사실입니다. 추호도 속이지 않았습니다."
"좋소. 하여간 내일 정하겠소."
다음날 울산바위에 오른 울산 군수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이전에 알고 있기로는 둘레가 5리 남짓 된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주지의 말처럼 적어도 십 리는 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해부터 신흥사 스님들은 꼬박꼬박 울산 군수에게 바윗세를 바쳤다. 몇 년이 흐르고 나니 절 살림은 말이 아니었다. 새로 부임해 오는 주지들은 너나할것없이 바윗세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다. 그러나 묘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한 사미가 근심하는 주지의 표정을 살피면서 물었다.
"스님, 요즈음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주지가 대답했다.
"아닐세. 아무것도 아니야."
"제가 알면 안 될까요?"
"네가 해결할 일이 아닌 것 같구나."
"그래도 혹시 압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사미의 끈질긴 질문에 주지는 바윗세에 대해 자조지정을 얘기했다. 얘기를 다 듣고 난 사미가 당당하게 말했다.
"그럼, 만일 또 울산 군수가 바윗세를 받으러 오거든 제게 보내십시오."
"보내면?"
"제게 다 생각이 있습니다."
"생각이 있다? 무슨 생각?"
"하여간 그때 가서 자연히 아시게 될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제 말씀대로 군수를 작접 상대하지 마시고 제게 보내기만 하십시오. 제가 다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래도 주지는 안심이 안 되어 말했다.
"그러다가 만일 뒤탈이라도 생기면 네가 책임질 수 있겠느냐?"
"제게도 다 생각이 있사오니 더 이상은 묻지 마옵소서."
며칠 후 울산 군수 일행이 바윗세를 받기 위해 신흥사에 이르렀다. 그때 주지는 지난날 사미의 당당한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사미를 불렀다.
"원님이 오셨으니, 그럼 자네만 믿네."
"알겠습니다."
동자승 사미가 나타난 것을 보고는 울산 군수가 거드럭거리면서 말했다.
"주지는 어디 가고 어린 네가 나오느냐? 이 절에는 그렇게도 중이 없더냐?"
사미가 당당하게 맞섰다.
"모두들 지금 정진중이라 제가 대신 나왔으니 제게 하명하옵소서."
"일없다. 네게 할 말이 아니다. 어서 주지더러 우리 일행을 영접하라 일러라."
사미가 군수에게 따지듯 말했다.
"사람은 겉모습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상상인에게도 하하의 어리석음이 있고 하하인에게도 상상의 지혜가 있는 법입니다. 그런것을 알 만한 분일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겉보기와는 매우 다르군요."
"뭣이? 저 어린 놈이."
군수가 핏대를 올리며 사미에게 일격을 가하려는 찰나 갑자기 천지를 찢어 버릴 듯한 천둥이 울렸다. 하늘을 쳐다보았지만 맑게 개어 있었다. 군수가 나졸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뭣들 하는 게냐? 당장 저 어린 중놈을 결박하지 않고."
나졸들이 우르르 사미에게 달려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다시 한 번 번개가 번쩍하는가 싶더니 고막이 찢어지도록 또 한 번 천둥이 일었다. 나졸들은 주춤했고 울산 군수가 소리쳤다.
"잠깐! 비록 어리기는 하지만 이 사미에게 얘기해도 좋겠으니 그만들 두라."
사미가 말했다.
"우리 절에서는 울산바위가 쓸모가 없습니다. 그 바위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그 자리에 강냉이나 조, 옥수수 따위를 심어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안되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러니 세를 받기로 하면 우리 절에서 받아야만 합니다."
"무엇이? 세를 우리 보고 내라고? 그래, 무슨 세 말이더냐?"
"오물세입니다."
"오물세라. 그렇게 필요 없는 거더냐?"
"게다가 손해배상도 함께 청구하겠습니다. 그 동안 우리 절에서 군수 영감님께 올린 세금을 환불해 달란 말씀은 올리지 않겠습니다. 하오나 수확을 얻지 못한 수십 년 동안의 손해배상만은 꼭 해주셔야겠습니다."
울산 군수로서는 혹 떼러 왔다가 오히려 혹을 하나 더 붙인격이었다.
군수는 꾀를 내었다.
"좋다. 그러면 우리가 그 바위를 울산으로 가져 갈 테니 재로 새끼를 꼬아 그바위를 묶어 놓아라."
"재로 새끼를 꼬아 묶어 놓으라고요?"
"그렇느니라. 한 달 뒤 쯤 우리가 가져 가겠다. 명심해라. 꼭 재로 꼰 새끼라야 하느니라. 어험."
군수는 자기의 입에서 어떻게 그러한 조건이 나오게 되었는지 자신이 생각해도 꽤나 대견스러웠다.
'제까짓 중놈들이 무슨 수로 재로 새끼를 꼬며 또 어떻게 묶는단 말인가.
이쯤되면 우리가 손해배상을 물지 않아도 되리라.'
군수일행이 떠나고 나서 신흥사 대중들은 공사(모임)를 시작했다.
대중공사를 알리는 목탁소리가 길게 세 번 내렸다. 대중들은 모두 큰 방으로 모여들었다. 무슨 얘기가 나오게 될지 다들 불안한 표정들이었다. 이윽고 주지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 울산 군수가 바윗세를 받으러 왔다갔습니다. 우리 절 사미가 말을 잘해서 앞으로는 세금을 바치지 않아도 되게되었습니다."
대중들이 모두 환호성을 올렸다. 그러자 주지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러나 여러분, 거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즉, 재로 새끼를 꼬아 울산바위를 묶어 놓으면 군수가 와서 바위를 가져 가겠다는 겁니다."
"재로 새끼를 꼬아 묶어 놓으라고요?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이제 수세에 몰리자 손해배상을 내지 않겠다는 수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대중들이 한마디씩 했다. 잠자코 있던 주지가 운을 떼었다.
"그러니 여러분들 중에 무슨 묘안이 있으면 서슴치 말고 얘기해 보십시오."
대중들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는데 지난번 군수가 왔을때 일을 저지른 사미가 불쑥 나서며 말했다.
"그거야 쉬운 일이지요."
"쉬운 일이라고?"
"예, 다만 아쉬운 것은 기한이 겨우 한 달밖에 안 남았다는 것이 문제이기는 합니다만, 우리 대중들이 협력만 잘하면 못할 것도 없으리라 봅니다."
주지를 비롯해 모든 대중들이 사미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묘안이 있긴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사람들은 많이 사야 될 겁니다. 우리 대중들만으로는 힘에 부치니까요. 그렇게 해서 새끼를 꼬아야 합니다. 둘레가 십리나 되는 바위를 몇바퀴 두르려면 새끼의 양도 많아야 하니까요."
"그리고?"
"그것은 나중에 말씀드리지요."
대중들은 그 시각부터 모두 새끼꼬기에 들어갔다. 또 많은 장정들을 사 20여일 동안 꼰 새끼를 올산바위로 이동했다. 여러 겹의 새끼로 바위의 허리를 둘렀다. 그렇게 하는 데도 며칠이 걸렸다. 그리고 나자 사미가 말했다.
"이제는 소금물을 풀어 새끼가 골고루 젖도록 뿌려 주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미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일을 했다. 소금물을 다 뿌려 새끼가 흥건하게 되었을때 그들은 산에서 내려왔다.
다음날 다시 사람들은 산으로 올랐다. 이미 바위를 두른 새끼는 소금에 절대로 절었고 초가을의 신선한 바람과 함께 말라가고 있었다.
한낮을 조금 넘기니 바람이 잤다. 사미는 불을 붙이도록 명했다.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새끼에 불을 붙이니 새끼는 소금에 절어 있었기 때문에 속은 타지 않고 거죽만 새까맣게 그을러 누가 보더라도 새끼검정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윽고 한달이 다 차자 울산 군수가 거들먹거리며 찾아왔다.
"그래, 재로 꼬은 새끼로 바위는 다 묶어 놓았겠지?"
주지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분부대로 가져 가실 수 있도록 묶어 놓았습니다."
군수는 내심 크게 놀랐다. 그러나 태연하게 말했다.
"분명히 재로 새끼를 꼬았겠지요?"
주지도 담담하게 말했다.
"누구의 안전이라고 감히 거짓을 말씀드리겠습니까?"
그들은 함께 산으로 올라갔다. 바위를 바라보니 과연 재로 꼬은 새끼가 분명했다. 스님네들은 당당했고 울산 군수는 금방 힘이 빠져 버렸다. 재로 꼰 새끼로 묶어 놓기만 하면 가져 가겠다고 했는데 이제 자기가 그토록 큰소리쳤던 일이 일시에 무너져 내리게 되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군수가 사정을 했다.
"스님네 도력이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사실은 내가 바위를 가져 가려 한 것은 아니었고 스님들의 도력을 알아보고 싶어서 한 것이니 과히 허물치는 마시오."
사미가 나서며 말했다.
"그럼, 바위는 가져 가시는 거지요?"
군수가 어정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그만한 도력이 없네. 미안하네. 그 대신 앞으로는 어느 누구라도 바윗세를 물지 못하도록 조처해 놓겠네. 그리고 손해배상은 내 힘자라는 데까지 해 줌세. 그렇게 해 주겠는가?"
본디 신흥사 스님들은 손해배상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 지긋지긋하던 세금을 물지 않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울산바위처럼 장엄하고 훌륭한 바위를 잃는다는 것은 신흥사에 사는 스님들로서는 생각도 안 해 본 일이었다.
어쨌든 그 후로 바윗세에 대한 시비는 완전히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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