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
00:00

제 1장 아르쥬나의 고민 
 
드리타라슈트라 말하기를 
 
1. 산쟈야여, 올바름의 들, 쿠루 들에 내 사람들과 판두의 아들들은 싸움을 하려고 모였다. 그들은 어찌하고 있느냐? 
 
산쟈야(Sanjaya) 드리 타라슈트라(Dhritarashtra) 왕의 마부. 
 
올바름의 들(Dharma-kshetra) 다르마(dharma)는 매우 넓은 뜻을 가지는 말이다. 불법(佛法)이라 할 때의 법(法)은 그것을 뜻으로 옮긴 것이고, 달마대사(達磨大師)라 할 때의 달마(達磨)는 음으로 옮긴 것으로 영어로는 법(Law) 혹은 의무(duty)라 번역한다. 종교, 도덕에서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는 올바른 일이다. 
 
쿠루 들(Kury-kshetra) 본래 이것이 그 지명, 델히(Deli) 부근의 넓은 평원, 옛날의 하스티나푸라(Hastinapura)이다. 지금 여기서 전쟁을 하게 되는 쿠루족(Kauravas)과 판두족(Pandavas)의 조상인 쿠루가 그곳을 개척하고는 그들을 쿠루 들이라 불렀다. 크쉐트라(Kshetra)는 들이라는 뜻과 행동의 무대, 거룩한 지역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샤타파다 브라마나경」(Shatapatha Brahmana)에는 태고 시대부터 거룩한 희생을 드리던 지역으로 나타나 있고,「마하바라타」 (Mahabharata)에서는 타파크쉐트라(Tapah-Kshetra)라 해서 고행 (苦行)을 하던 곳으로 되어 있다. 
 
인간의 몸은 선과 악의 영원한 대립의 전장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유에의 문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죄에서 났으므로 죄의 밭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쿠루 들이라 한다. 쿠루족은 악의 힘을 나타내는 것이고, 판두 족은 신의 힘을 나타낸다. 어떤 사람이 제 가슴속에 날마다 선악의 두 힘이 싸우고 있는 것을 경험하지 않을 수 있을까? — 간디 
 
이 세계가 곧 올바름의 들, 도덕적 싸움의 전쟁터다. 결정적인 문제는 그 싸움이 날마다 시간마다 되어가고 있는 인간의 가슴속에 있다. 땅에서 하늘로, 고난에서 정신으로 올라가는 길은 다르마의 길에 있다. 이 세계는 다르마의 들이다. 성자의 훈련소다. 거기서는 거룩한 불길이 꺼질 날이 없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업(karma)을 다 치러 우리의 영(靈)을 닦 아낸다. — 라다크리슈난 
 
「기타」는 역사적인 토론이 아니다. 그것은 형제들 사이의 싸움의 기록이 아니라 사람 속에 있는 두 성질, 곧 선과 악 사이의 싸움의 기록이다. 크리슈나는 우리의 안에 계시어서 언제나 맑은 양심에 속삭여주시는 이 이다. 一간디 
 
「기타」의 목적은 이론을 가르치자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실행의 힘을 주자는 데에 있다. 생활 속에 가를 수 없이 있는 것을 우리는 이론으로써 갈라놓을 수 없다. 정치적 사회적 생활의 여러 가지 의무는 우리의 종교에 대해 일거리와 기회를 마련해준다. 다르마는 세속적인 번영과 정신적인 자유를 다 준다.「기타」는 인간의 내적 생활만을 생각하는 신비주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의무나 생활 관계를 허망한 것이라고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도리어 정신적 자유를 실현하는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다.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온전히 영화(靈化)시키게 하기 위해서다. 
 
전장을 ‘다르마의 들’ 혹은 ‘올바름의 들’이라고 한 것은, 거기 다마를 지켜주시는 주께서 사실로 와 계시기 때문이다. ‘올바름의 들, 곧 쿠루 들’ 이라는 말은 죽음에 의해서 생명의 법칙을 보여주는 말이다. 아르쥬나가 전장에서 보는 환상의 일면은 두려움의 하나님이다. 생명은 싸움이다. 악령에 대한 싸움이다. 창조의 과정은 서로 적대해서 서는 힘의 영원한 긴장 속에 있다. 그 충돌에 의해서 발전은 이루어지고 우주적 목적이 달성된다. 이 세계에는 불완전한 원소 곧 죄악과 비합리적인 것이 있다. 그것을 우리는 행동 곧 다르마에 의해서 변화시켜 아직은 이성(理性)에 대해 불투명한 그 원소를 뚫어 비치는 사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전쟁은 보응적인 심판인 동시에 또 하나의 훈련이다. 쿠루크쉐트라를 또 타파크쉐트라라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쟁은 벌인 동시에 또 인간의 정화이다. 하나님은 심판자요 또 구주다. 그는 파괴하면서 또 창조하신다. 그는 시바(Shiva)요 또 비슈누(Vishnu)다.
  ᅳ라다크리슈난 
 
내 사람이란 생각은 아함카라(ahamkara) 때문이다. 그것이 악의 근본이다. 바로 그 이기심 때문에 쿠루족들은 권력을 탐하고 또한 지배하기를 좋아한다. — 라다크리슈난 
 
산자야 말하기를 
 
2. 무료다나 왕은 판두족의 무리가 전열(戦列)을 별여섬을 보고 그 스승에게로 나아가 말했습니다. 
 
두료다나(Duryodhana) 드리타라슈트라 왕의 맏아들로 판다바스들이 쫓겨나 있는 동안 왕위에 올라 다스리고 있었는데 그들이 돌아오자 본래의 약속대로 영토를 돌려줄 것을 요구했으나 왕이 그것을 거절했고 화해시키려는 모든 노력들도 다 헛되이 되었으므로 판다바스들은 부득이 전쟁을 하게 됐다. 
 
스승 아차랴(acarya), 경전의 뜻을 통달해서 남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여기 드로나(Drona) 스승은 양쪽 군대에 전쟁하는 법 특히 활쏘기를 가르쳤다. 
 
3. 스승님, 저 판두족의 큰 군대를 보십시오. 당신의 어진 제자 드루파다의 아들이 지휘를 하고 있습니다. 
 
드루파다(Drupada) 드라우파디(Draupadi)의 아버지이므로 판다바스들의 장인이요, 그의 아들 드리슈타줌나(Shrishtadyumna)는 판두군의 총사령이다. 
 
4. 거기는 잘난 장수들, 전쟁에서 비마나 아르쥬나와 대등한 자리에 가는 유유다나, 비라타 그리고 큰 전차의 원수인 드루파다가 있습니다. 

비마(Bhima) 판두군의 사실상의 총사령이다. 명의는 비록 드리슈타줌나가 가졌지만. 
 
유유다나(Yuyudhana) 크리슈나의 전차를 모는 전사. 
 
비라타(Virata) 마차(Matsya)국의 임금, 판다바스들이 변장하고 떠돌아다닌 때에 그들을 숨겨주고 보호했다. 
 
원수 곧 마하라다(Maharatha)라는 칭호는 군인의 최고 지위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한번 싸움에 10만 활량들을 지휘할 수 있는 사람에게 준다. 
 
5. 드리슈타케투, 체키타나, 카쉬라쟈, 준티보쟈, 푸투지트, 그리고 사람 중의 으뜸인 샤이뱌. 
 
드리슈타케투(Shrishtaketu) 체디스(Chedis)의 왕. 
 
체키타나(Chekitana) 판다바스의 위대한 전사. 
 
카쉬라쟈(Kashiraja) 위대한 전사. 
 
쿤티보쟈(Kuntibhoja) 푸투지트의 형. 판다바스의 세 사람, 곧 유디슈트라와 비마, 아르쥬나의 어머니인 준티(Kunti) 부인을 양녀로 삼았다. 
 
푸루지트(Purujit) 푸루지트와 쿤티보쟈는 형제이지만 가끔 푸투지트 쿤티보쟈라 하여 동일인으로 다루기도 한다. 
 
샤이뱌(Shaibya) 시비(Shibi)족의 족장이요 그 나라의 임금. 
 
6. 강한 유다마뉴, 용감한 우타마우쟈, 그리고 또 수바드라의 아들, 드라우파디의 아들들, 그들은 다 큰 장수들입니다. 
 
유다마뉴(Yudhamanyu) 위대한 전사. 
 
우타마우쟈(Uttamauja) 위대한 전사. 
 
수바드라(Subhadra) 아르쥬나의 둘째 부인, 아들은 아비마뉴(Abhimanyu) 
 
드라우파디 다섯 판다바스에게서 각각 한 아들을 낳았다. 
 
7. 두번 난 이 중의 가장 높으신 이여, 또 내 군대되 우두머리들, 곧 우리 중 가장 잘난 것들도 아셔야 합니다. 내가 그 이름들을 불러드릴 것입니다. 
 
두번 난 이 중의 가장 높으신 이(dvijottama) 사람은 우선 자연의 아들로 나지만 참 사람이 되려면 다시 정신의 아들로 나야 한다. 교육의 목적은 거기 있다. 자라 정신적으로 어른이 됐다 인정되면 그 표적으로 거룩한 실(sacred thread)을 받는다. 그것은 배꼽 줄을 의미한다. 
 
8. 어르신부터 시작해서, 비슈마와 카르나와 싸움을 하면 언제나 이기는 크리파, 아슈바타만과 비카르나와 그리고 소마다 타의 아들. 
 
어르신 드로나를 가리킴. 
 
비슈마(Bhishma) 글자 그대로는 무섭다는 뜻. 일생 독신을 지키겠다는 무서운 맹세를 하고 자기의 배 다른 동생의 아들들과 또 그들의 아들을. 곧 판다바스와 카우라바스들을 길러낸 늙은 성자 장수이다. 
 
카르나(Karna) 쿤티 부인이 결혼하기 전에 낳은, 판다바스 중 세 사람 유디슈트라, 비마, 아르쥬나와 배다른 형제가 된 사람. 
 
크리파(Kripa) 드로나의 이종 사촌. 
 
아슈바타만(Ashvattaman) 드로나의 아들. 
 
비카르나(Vikarna) 두료다나의 동생. 
 
소마다타(Somadatta) 바히카스여(Bahikas) 왕. 그 아들 이름은 소마다티(Somadatti)이다. 
 
이 모든 이름들을 부른 것은 이것이 동족 사이의 싸움일 뿐 아니라 또 전인도의 싸움인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9. 그리고 그 밖에도 많은 용사들이 가지가지의 무기로 몸을 갖추고 싸움에 능숙한 사람들인데 이제 바야흐로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 하고 있습니다. 
 
10. 비슈마가 이끌고 있는 우리의 이 군대는 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비마가 이끄는 저들의 저 군대는 한이 있습니다. 
 
‘한이 없다’(aparyaptam)와 절 끝에 오는 ‘한이 있다’(paryaptam)를 라다크리슈난과 간디는 각각 다르게 번역하는데 (라다크리슈난은 unlimited, limited로 간디는 inadequate로 번역한다) 그러면 뜻이 서로 반대가 된다. 그 밖의 번역들도 역자에 따라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로 갈려 있다. 즉 어느 군대를 강하다고 어느 군대를 약하다고 보느냐가 서로 반대가 된다. 라다크리슈난같이 하면 카우라바스가 강하고 판다바스가 약한 것이 되고, 간디같이 하면 판다바스가 강하고 카우라바스가 약한 것이 된다. 그런데 그때의 사실로 하면 두료다나 편이 훨씬 강했으니 라다크리슈난 번역이 옳다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 두료다나 왕이 자기 부하들보고 다음 절에서 하는 말, 주의해서 잘 지키라고 하는 말과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여간 뜻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취할 수 있다. 한이 있다 한이 없다로도 할 수 있고, 부족하다 족하다로도, 당해낼 수 없다 당해낼 수 있다로도, 할 수 없다 할 수 있다로도 할 수 있다. 
 
11.그러니 너희 모두는 다 제 자리에 굳게 서서 제 직분을 지켜 오직 비슈마를 지키라. 
 
12.그의 기분을 돋우기 위해 쿠루족의 늙은이 곧 그의 영웅 적인 할아버지는 사자같이 크게 부르짖고 그의 소라나팔을 불었습니다. 
 
쿠루족의 늙은이 비슈마를 가리킴. 
 
13. 그러자 소라나팔과 큰 북과 심벌즈와 트럼펫이 일시에 울려 무서운 소리를 냈습니다. 
 
14. 그때에 마다바와 판다바는 흰 말을 메운 큰 전차 위에 서서 그 하늘 나팔을 불었습니다. 
 
마다바(Madhava) 크리 슈나를 가리 키 는 말. 
 
판다바(Pandava) 곧 아르쥬나. 
 
힌두교나 불교문헌에서는 언제나 전차는 정신·물리적 탈 물건을 의미한다. 그 말은 감각이고 고삐는 그것을 부림이지만 차부 곧 그것을 이 끌어가는 이는 영 혹은 자아 곧 아트만(atman)이다. 차부인 크리슈나는 우리 속에 계시는 영이시다. — 라다크리슈난 
 
15.크리슈나는 그의 판차야냐를 불고, 아르쥬나는 그의 데바다타를 불고, 승냥의 밥집을 가지는 사나운 비바는 그의 큰 나팔 파운드라를 불었습니다. 
 
판차야냐(panchajanya) 소라나팔의 일종. 
 
데바다타(devadatta) 소라나팔의 일종. 
 
파문드라(paundra) 큰 나팔. 
 
이것은 싸움이 곧 붙을 것을 의미한다. 
 
16. 쿤티의 아들 유디슈트라 왕은 그의 아난타비쟈야를 불고 나클라와 사하데바는 그들의 수호샤와 마니 무슈파카를 불고, 
 
아난타비자야(anantavijaya) 소라나팔. 
 
수호샤(sughosha) 소라나팔. 
 
마식푸슈파카(manipushpaka) 소라나팔. 
 
유디슈트라, 비마, 아르쥬나는 판두 왕외 첫째 왕비 준티 부인이 낳 은 아들들이고, 나쿨라(Nakula), 사하데바(Sahadeva)는 둘째 왕비 마드리(Madri)의 소생이다. 
 
17. 큰 활을 쏘는 카쉬 왕과 큰 장수 쉬칸디와 드리슈타줌나와 비라타와 이길 자 없는 사차키. 
 
카쉬(Kashi) 바라나시의 왕. 
 
쉬칸디(Shikhandi) 위대한 전사. 
 
사챠키(Satyaki) 유유다나. 
 
18. 드라우파디의 아들 드루파다, 그리고 억센 팔 가진 수바드라의 아들, 이 모든 이들이 다 제 나팔을불었습니다. 오, 대왕이시여. 
 
19. 그 넋을 잃게 하는 소리가 하늘 땅을 뒤흔들고 드리타라슈트라의 아들들의 간담이 떨어지게 했습니다. 
 
20. 그러자, 저 잔나비 기를 세우는 판두의 아들은 드리타라 슈트라의 아들들이 싸움의 진을 벌이고 서서 화살이 바야흐로 날려 하는 것을 보자 그 활을 든 다음, 
 
잔나비 기 아르쥬나의 기에는 잔나비 신을 섬기는 하누만(Hanuman)의 형상이 그려 있다. 그것은 몸 바쳐 섬김, 정결, 용맹의 화신이다. 
 
판두의 아들 아르쥬나. 
 
21. 오, 대왕이시여, 그는 흐리쉬케샤를 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아츄타여, 내 차를 두 군대 사이에 세웁소서!” 
 
흐리쉬케샤(Hrishikesha) 머리털 거슬린 주님이란 뜻, 곧 크리슈나. 
 
아츄타(Acyuta) 움직임 없으심의 님이여 하는 뜻, 현재 차부로 있는 크리슈나. 
 
그 밖에 크리슈나에 대한 이름으로 마두수다나(Madhusudana, 악마 마두를 죽 이시는 이), 아리수다나(Arisudana,대적을 죽이시는 이), 고빈다(Govinda, 목자, 혹은 깨달음을 주시는 이), 바수데바(Vasudeva, 바수스의 아들), 야다바(Yadava, 야두의 자손), 케샤바(Keshava, 아름다운 머리털을 가진 이), 마다바(라크슈미의 남편), 흐리쉬케샤(감각의 주), 쟈나르다나(인간 해방자)가 있다. 
 
22.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싸움을 하려고 섰는 그 사람들을 볼 수 있게, 이 싸움에서 나는 누구와 싸워야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하옵소서! 
 
23. 나는 저 모진 마음 먹은 드리타라슈트라의 아들이 바라는 것을 성취해주려고 싸움에 열이 나서 모여 있는 저 사람들을 좀 똑똑히 보고 싶습니다. 
 
싸움이 이제 붙으려는 바로 그날 아침 유디슈트라는 비슈마가 쌓아놓은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진지를 보고 겁이 나서 떨며 아르쥬나를 보고 말했다. “이러한 군대에 맞서서 우리는 어떻게 승리를 얻을 수 있을까?” 아르쥬나는 그 형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옛날 시를 인용해서 대답했다. “승리를 바라는 사람이 대적을 정복하는 것은 힘이나 재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참과 자비와 경건과 덕으로야만 된다. 승리는 크리슈나가 있는 곳에야 있을 수 있다. 승리는 그의 한 속성이다. 또 마찬가지로 겸비도 그렇다.” 크리슈나는 아르쥬나를 보고 재계하고 두르가(Durga) 앞에 승리를 간구하라고 가르쳐주었다. 아르쥬나는 전차에서 내려 노래를 부르면서 여신을 찬양했다. 그 믿음을 가상히 여겨 여신은 아르쥬나를 축복해 주었다. “오, 판두의 아들아, 너는 네 대적을 즉시로 부술 것이다. 너는 나라야나(Narayana) 자신의 도움을 얻을 것이다.” 그렇지만 행동의 사람인 아르쥬나는 자기 할 일의 뜻을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의 스승이 옆에 계심과 그 거룩한 생각이 그를 도와 그로 하여금 자기가 맞서 싸우려는 그 대적은 자기의 사랑하는 자요 거룩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그는 정의를 지키고 무법한 포악을 누르기 위해 사회의 유대를 끊어야만 했다. 하나님의 나라를 땅 위에 세우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합작으로야 된다. 인간은 창조의 협력자다. — 라다크리슈난 
 
24. 그렇게 구다케샤가 말하는 것을 듣고, 오 바라타시여, 흐리쉬케샤는 이 세상에 그 이상 없는 전차를 두 군대 사이에 세우고, 
 
구다케샤(Gudakesha) 머리카락이 많으신 이. 아르쥬나를 가리킴. 
 
바라타(Bharata) 드리타라슈트라불 가리킴. 
 
25. 비슈마와 드로나와 모든 높은 이들 앞에서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파르다여, 쿠루족들이 여기 모여 있습니다.” 
 
파르다(Parth) 프리다 부인의 아들, 곧 아르쥬나. 
 
26. 아르쥬나는 거기 양쪽의 아버지들과 할아버지들과 스승들과 백숙부들과 형제들, 아들들, 손자들, 동무들이 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27. 그리고 장인들과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 이 줄을 지어 서 있는 것을 보았을 때, 
 
28. 쿤티의 아들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 사로잡혀 슬픔으로 부르짖었습니다. 
 
아르쥬나 말하기를 
 
내 사람들이 진을 벌이고 서서 서로 싸우려는 것을 보았을 때, 오, 크리슈나여, 
 
29. 내 사지는 맥이 풀리고, 입은 타 마르고, 몸서리치고 머리털이 곤두섰습니다. 
 
30. 간디바는 내 손에서 떨어지고 내 살갗에는 불이 일고 몸을 버티고 섰을 수 없고, 내 마음은 비틀거렸습니다. 
 
간디바(Gandiva) 인드라 신의 하늘에서 아르쥬나에게 선물로 내려준 활의 이름. 
 
31. 불길한 징조가 내다뵈고 오, 케샤바여,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친족과 싸움해 죽이고 좋은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케샤바(Keshava) 크리슈나를 가리킴. 
 
‘징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아르쥬나의 정신이 약해지고 흔들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 라다크리슈난 
 
32. 크리슈나님, 나는 승리도 왕국도 쾌락도 다 원치 않습니다. 나라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오, 크리슈나여, 즐거움인들 생명인들 무엇이겠습니까? 
 
33. 우리가 권세를 원하는 것도, 향락과 쾌락을 원하는 것도 그들 때문인데, 그 사람들이 여기 생명과 재산을 내던지고 싸움을 하겠다고 섰습니다. 
 
34. 스승들, 아버지들, 할아버지들, 아들들, 손자들까지 그리고 백숙부들, 장인들, 내외종형제들, 그 밖의 여러 친척들, 
 
35. 그들을 내가 즉일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내가 그들 손에 죽을지언정. 오, 마두를 멸하시는 이여, 삼계의 왕권을 준다해도 나는 못합니다. 하물며 이 티끌 세상의 나라를 위해서겠습니까? 
 
마두를 열하시는 이 크리슈나. 
 
삼계 「베다」에서 말하는 천계(天界), 지계(地界), 기계(氣界), 혹은 천계. 지계, 음부(陰府), 또 혹은 인계(人界), 신계(神界), 반신계(半神界). 
 
36. 오, 쟈나르다나, 이들 드리타라슈트라의 아들들을 죽이고 무슨 쾌락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들이 비록 흉악범이기는 하더라도 그들을 죽인다면 우리는 오직 죄를 지을 뿐입니다. 
 
쟈나르다나(Janardana) 크리슈나의 명칭의 하나, 사람을 괴롭히시는 이. 
 
아르쥬나는 사회 일반적으로 하는 도덕이나 풍속에 따라 할 뿐이지 자기 개인적인 참에 대한 확신으로 하는 것이 못된다. 그는 이러한 외적도 덕의 상징을 죽이고 내적인 힘을 발휘해야 한다. 그가 혼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이때까지 그의 인생을 지도해주었던 전날의 스승들을 죽여버려야 한다. 아르쥬나는 아직 유식한 이기주의(enlightened selfishness)의 테두리 안에서 말하고 있다. 
 
우리 대적이 아무리 침략자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를 죽여서는 아니된다. 죄를 앙가품하기 위해 또 하나의 죄를 지어서는 아니된다. “다른 사람의 노(怒)를 노하지 않음으로써 정복하라. 악을 행하는 자를 성스러움으로써 정복하라. 구두쇠를 선물로 정복하라. 그리고 거짓을 참으로 정복 하라.” — 라다크리슈난 
 
37. 그러므로 우리의 친족인 드리타라슈트라의 아들들을 죽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오, 마다바여, 우리가 제 친족들을 죽이면서 참말 어떻게 행복할 수 있습니까? 
 
38. 비록 그들의 마음이 탐욕에 미치고, 가족을 멸망시키는 것이 잘못인 줄 모르고, 친구를 배반하는 것을 죄로 생각지 않았다 하더라도, 
 
39. 어찌 우리가 이 죄에서 돌이킬 줄을 몰라서 되겠습니까? 오, 쟈나르다나, 가족을 파괴하는 것이 잘못임을 아는 이 우리가 말입니다. 
 
아르쥬나가 걱정하는 것은 ‘한 가족’ 혹은 여러 가족의 멸망이 아니라 동족이 서로 죽임으로 인해 오는 ‘가족제도’의 멸망이다. 헨리 드럼먼드(Henry Drummond)는 “생리적으로 심리적으로 도덕적으로 가족이란 진화의 한 걸작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세계의 도덕과 사회 발달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힘의 발전소요 저장의 보고이다. 가족은 몇 세기만이 아니라 수천 년을 살아온 것이다. 시간이 이것을 퇴색시키지 못했고 최근의 예술이 그 위에 개량을 더한 것도 없다. 그리고 어떤 천재도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지 못했고, 어떤 종교도 이보다 더 성스러운 것을 찾아 내지 못했다.” 
 
「기타」의 저자에게도 가족은 분명히 이러한 모든 것을 의미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하데브 데자이 
 
40. 가족이 파괴되면 예로부터 항상 있어온 가족도덕이 없어지고, 그 도덕이 쇠퇴되면 가족의 전규범이 무법에 빠지게 됩니다. 
 
전쟁은 우리를 가정환경에서 뺏아가버리고, 인간의 성숙된 의지와 경험의 짬인 사회 전통에서 우리를 뿌리뽑아버린다. — 라다크리슈난 
 
41. 그리고 무법이 판을 치게 될 때, 오, 크리슈나여, 가족의 여자들은 타락하고, 여자가 타락되면 계급은 혼란에 빠집니다. 
 
계급(varna) 보통 영어로 카스트(caste)라 하는 것. 후대에 와서는 그것이 너무 고정되어 사회 발달을 방해하게 됐고 피해가 많아서 간디도 그 제도 타파에 힘을 썼지만, 본래 그때 사회로서는 안전과 발전을 유지해가기 위한 가장 어진 제도로 알고 그것을 지켰다. 그러므로 지금에 와서 타락된 계급제도와「기타」에서 생각하는 이상적인 계급과의 사이에는 차이가 많다. 
 
42. 이 혼란은 그 가족의 파괴자와 가족을 다 같이 지옥에 떨어뜨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조상의 혼은 떡과 물의 제사가 끊어짐으로써 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떡과 물 제사를 말하는 것이다. 옛날 사람은 사람이 죽은 후에도 그 혼이 살아 있기 위해 먹을 것이 필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때때로 그것을 바쳤다. 그것이 제사다. 당시에 일반적으로 지켜졌던 의식이다. 
 
43. 이 가족 파괴자들의 죄로 인해 바르나가 혼란에 빠져 부족 가족의 영원한 법이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44. 우리는 전해오는 말을 듣습니다. 오, 쟈나르다나, 가족 도덕이 망해버린 집 사람은 지옥에 빠집니다. 
 
45. 아, 왕권의 복락을 탐해서 동족을 죽이려고 했을 때 우리는 얼마나 큰 죄를 지으려고 결심한 것입니까? 
 
46. 차라리 드리타라슈트라의 아들들이 손에 무기를 들고 나를 전쟁마당에서 때려서 내가 아무 반항함도 없이 무기를 든 것도 없이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더 행복한 일입니까? 
 
산쟈야 말하기를 
 
47. 그렇게 말하면서 아르쥬나는 전쟁마당에서 활과 살을 손에서 떨어뜨리고 전차 안에 주저앉아 슬픔에 빠졌습니다. 
 
아르쥬나의 말은 고뇌와 사랑에서 나온다. 그의 마음은 두 세계의 경계선에 서 있다. 그는 태고부터 사람이 분투해온 것처럼 자기도 무엇을 해야 한다고 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는 아직 자기가 무엇이며 자기 동료는 무엇이며 자기가 놓여 있는 이 우주의 참 성격은 무엇인지를 이해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는 전쟁 때문에 오는 육체적 고통과 물질적 불행을 크게 걱정하고 있다. 인생의 주목적은 물질적 행복의 추구에 있지 않다. 우리는 생애의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거기 일어나는 늙음, 쇠약. 죽음, 이런 것 때문에 그 구경의 목적을 잃어버리기 쉽다. 이상을 위하고 정의와 사랑을 위해서는 우리는 압박자와 고통과 죽음에 직면하여 일어서지 않으면 아니된다. 아르쥬나는 전쟁의 턱 밑에 다가선 때에 용기를 잃고 세속적인 생각에 쓸려 전쟁을 회피 할 생각을 했다. 그는 아직도 제자나 스승, 친척은 그들 자체 때문에 소중한 것이 아니고 자아 때문에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아르쥬나는 아직도 스승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는 가르치기를 행동의 뿌리를 욕망에 두지 않는 살림을 해야 한다 하고, 니슈카마 카르마(nishkama-karma) 곧 욕망 없는 행동이란 것이 있다고 한다. 
 
아르쥬나의 어려움은 영원히 반복되는 고난을 연극화해 생각하는 데 있다. 인간은 고상한 생활의 문턱에서 속세의 소란한 소리를 듣고 실망을 하게 되는 것이고, 그러면서도 환상이 떠나지 않고 매달려 있어 놓지 못하는 법이다. 그는 자기의 근본이 거룩한 조상에게서 나온 것을 잊고 자기 개체에 집착해서 서로 얼크러지는 세상 힘에 흔들리고 있다. 그는 정신세계에 눈이 뜨여 그로부터 자기에게 주어지는 의무를 받아들이기 전에 이기심, 어리석음의 대적과 싸우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리하여 자기중심의 에고(ego)의 깜깜한 무지를 정복해야 한다. 영성(靈性)을 떠난 인간은 그것을 도로 찾지 않으면 아니된다. 여기 그려진 것은 인간 영혼의 진화 모습이다. 거기는 시간 공간의 제한이 없다. 그 싸움은 인간의 혼속에서 시시각각으로 벌어진다. — 라다크리슈난 
 
이것이「바가바드기타」라는「우파니샤드」(Upanishad), 절대의 학문, 요가의 경전, 크리슈나와 아르쥬나 사이의 대화의 제 1장, 아르쥬나의 고민 편이다.

다른 화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