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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 논서와 『구사론』에 대한 소개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Abhidharmakosa-sastra)』은 소승 제부파 중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Sarvasti vada)의 아비달마 논서 중 가장 중요한 저작입니다. 그렇다면 '아비달마'란 무엇일까요? 부처님이 입멸하신 후, 성문(聲聞) 제자들은 '부처님의 교법을 어떻게 정확히 이해하고 설명할 것인가'에 집중하였고, 그 결과로 아비달마 논장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불교의 교법에 대한 정리와 해석은 이미 경장(經藏)에서도 이루어졌지만(이를 論母 또는 본母, matrka라고 부릅니다), 부파의 분열 이후 더욱 활발히 진행되어 결국 경장에 포함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하였고, 이로 인해 아비달마장(阿毘達磨藏, abhidharma pitaka)이라는 새로운 불교 성전의 장르가 형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제부파의 경장과 율장은 부처님으로부터 유래되었기 때문에 유사한 점이 있지만, 논장은 그 내용이 완전히 다르며, 이로 인해 이 시기의 불교를 아비달마불교라고 부르게 됩니다.

부처님은 성도한 후 자신이 깨달은 법을 설하지 않으려 하셨습니다. 이는 세간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으로, 무지와 탐욕에 가려진 이들에게는 드러낼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궁극적으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며, 세속적인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범천(梵天)의 간곡한 권유로 부처님은 결국 법을 설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설법이 바로 깨달음[勝義正法]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방편[世俗正法]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부처님의 모든 교법은 해석이 필요합니다.

설일체유부에 따르면, 부처님이 발성한 모든 언설은 설법이 아니며, 설사 그것이 깨달음과 관련된 법문이라 하더라도, 법문은 듣는 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에 궁극적인 경[了義經]과 그렇지 않은 경[不了義經]이 존재합니다. 또한 요의경 역시 그 자체로는 깨달음이 아니므로, 이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기준에 의해 정리되고 해석되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아비달마'입니다. 아비달마는 궁극적으로 불지(佛智) 그 자체인 무루혜를 본질로 하여, 진정한 불설(佛說)로 여겨집니다.

전통적으로 아비달마라는 용어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됩니다. 유부에서는 '부처님의 교법(dharma)에 대향(對向)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팔리상좌부에서는 '뛰어난 법(勝法 혹은 增上法)'으로 해석됩니다. 두 가지 해석은 결국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설한 교법에 대한 논의는 뛰어난 이해와 판단력, 즉 부처님의 깨달음인 무루간택(無漏簡擇)의 정혜(淨慧)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는 부처님의 교법을 초월하는 뛰어난 법이기 때문입니다. 남북 양전이 전하는 아비달마는 부처님의 교법에 대한 해석 체계로, 유부의 학장 중현(衆賢, Samghabhadra)의 말을 빌리자면, 해석되어 본지(本旨)를 드러내지 않은 교법은 진정한 불설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아비달마 논서는 세 단계의 발전 과정을 거칩니다. 첫 번째 단계는 아비달마적인 경향을 띠는 경장(經藏)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증일아함경』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나 증지부 경전, 또는 『중집경(衆集經, Sangiti suttanta)』과 『십상경(十上經, Dasuttara suttanta)』과 같은 단경(單經)에서는 불타교법을 법수(法數)에 따라 1법에서 10법, 혹은 11법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또한 『잡아함경』이나 상응부 경전은 경의 주제나 내용의 유형에 따라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독립된 논서가 형성되며, 이때 논서는 아비달마적 성향을 강하게 띠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유부의 『집이문족론(集異門足論)』은 『중집경』의 내용을 부연 해석한 것이고, 『법온족론(法蘊足論)』은 아함경전 중에서 21가지 중요한 교설을 선정하여 각 장에서 해당 교설을 담은 경문을 제시한 후 상세히 해석하는 형태의 논서입니다.

따라서 이 단계의 논서는 아직 경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 않았으며, 불타교법에 대한 해석 정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부파와 공통되는 요소도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팔리상좌부의 『담마상가니(Dhammasangani)』와 『비방가(Vibhanga)』는 앞의 두 논서와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종합 해설된 각 교설은 점차 부파에 따라 복잡한 체계로 해석되며, 각 술어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도 매우 자세한 분석이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아비달마발지론(阿毘達磨發智論)』(20권)에서는 이전의 개별적인 논의를 바탕으로 유부학설 전반을 주요 범주에 따라 8장으로 정리하여 논술하고 있으며,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200권)과 같은 방대한 분량의 백과사전식 주석서도 작성됩니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르면 아비달마는 더 이상 불타교법의 해석이나 조직에 머물지 않고, 이전 시대의 여러 아비달마를 기초로 하여 독자적인 교의체계를 구축하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설일체유부의 『구사론(俱舍論)』과 남방 상좌부의 『청정도론(淸淨道論, Visuddhimagga)』이 있습니다.

본론의 작자는 서기 400-480년(혹은 320-400년) 무렵에 출세한 바수반두(Vasubandhu)로, 세친(世親) 또는 천친(天親)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바수반두(婆藪槃豆)로 음사되기도 합니다. 546년 남해를 거쳐 중국에 와 본론의 구역인 『구사석론(俱舍釋論)』을 번역한 진제(眞諦, Paramartha)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불멸(佛滅) 900년 무렵 간다라의 푸루샤푸르(현재의 페샤와르)에서 카우시카(Kausika)라는 성을 가진 바라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형은 유부에 출가하였다가 대승으로 전향하여 유가유식(瑜伽唯識)을 개창한 아상가(Asanga)이며, 동생은 역시 유부에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얻은 비린치밧사(Virincivatsa)입니다.

그는 설일체유부에 출가하여 당시 굽타왕조의 수도였던 아요디야에 머물렀으며, 박학하고 다문하며, 신재가 뛰어나고 계행이 청고하기로 유명했습니다. 이후 스승 붓다미트라(Buddha-mitra)가 수론(數論, Samkhya)의 외도 빈드야바신(Vindhya vasin)에게 논쟁에서 패배하자, 그를 논파하기 위해 『칠십진실론(七十眞實論)』을 저술하였고, 또한 『대비바사론』을 배워 그 교의에 깊이 통달한 뒤 대중들에게 강의하였습니다.
이 내용을 정리하여 유부의 본고장인 카슈미르의 비바사사에게 전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이해하기 어려워 장행의 해석을 요청하였고, 이에 따라 저술된 것이 바로 『아비달마구사론』입니다. 이 글에서는 설일체유부의 교의를 중심으로 논의하였지만, 그 의미에 치우친 부분은 경부의 교의로 반박하고 있어 카슈미르의 비바사사들은 그들의 종의가 훼손될까 우려하였습니다.

당시 아요디야국은 비크라마디트야 왕이 통치하고 있었고, 불교를 지지하던 태자 바라디트야와 왕비는 법사를 초청하여 공양하였습니다. 이때 바라문인 태자의 매부 바수라타는 문법학의 교의로 『구사론』의 문구를 비판하다가 오히려 반박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수치를 느낀 그는 천축의 상가바드라에게 『구사론』을 논파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중현 법사는 1만 송으로 이루어진 『광삼마야론』을 저술하여 『대비바사론』의 교의를 설명하였으며, 12만 송으로 이루어진 『수실론』을 통해 비바사의 교의를 옹호하면서 『구사론』을 반박하였습니다. 두 논문이 완성되자 세친과 직접 논의하고자 하였으나, 세친은 나이가 많아 응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본론의 역자인 현장의 제자로서 현장역장의 최고의 필수자였던 보광은 그의 『구사론기』에서 본론의 제작과 관련된 더욱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를 전하고 있습니다.

"세친은 원래 간다라 출신으로, 일찍이 유부에 출가하여 삼장을 수지하였으나, 후에 경부를 배우고 진실을 깨닫고자 유부학설을 취사선택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부학설을 깊이 연구하기 위해 본고장인 카슈미르에 익명으로 잠입하여 4년간 수학하였고, 매번 경부의 이의로 유부를 논란하고 비판하였습니다. 그때 중현의 스승인 스칸디라라는 아라한이 그의 신비로운 능력을 이상하게 여기고 선정에 들어 관찰하였으며, 그가 간다라의 세친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세친에게 은밀히 말하였습니다. '급히 본국으로 돌아가라. 장로가 이곳에 와서부터 계속 자신의 뜻으로 타종을 논란하고 비판하니, 대중 가운데 미이욕자가 있어 그대의 신분을 알아차려 해코지할까 두렵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세친은 본국으로 돌아와 바로 『구사론』 600송을 지어 카슈미르에 보내자, 국왕과 모든 승중이 유부의 종의를 널리 편 것이라 하여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칸디라가 대중들에게 말하길, '이는 유부종의를 편 것이 아닌데 무엇 때문에 기뻐하는가? 본송에 전설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유부종의와 서로 유사할 뿐이다. 만약 이를 믿지 않는다면 석론을 청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국왕과 승중이 사신을 보내어 석론을 청하니, 논주 세친은 본문을 평석하여 8천 송을 지어 보냈고, 과연 스칸디라가 말한 바와 같았습니다. 논주의 뜻은 경부와 가까웠고, 유부의 학설에 의혹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즉 세친은 『구사론』 송문에서 자주 '전설'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직접 듣지 않은 것임을 나타내었던 것입니다."
세친보다 훨씬 이전인 불멸 500년 무렵, 아요디야국의 바사수발타라(婆沙須拔陀羅, Vasasubhadra)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전설(kila)'이라는 용어는 주로 경량부의 관점에서 카슈미르 비바사(毘婆沙, vibhasa)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구사론』은 다양한 카슈미르 비바사의 대표적인 요강서이지만, 경량부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저술되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법보(法寶)의 말씀처럼 '이장위종(理長爲宗)'이라는 원칙에 따라, 이치에 맞는 좋은 이론이라면 유부의 학설이든 누구의 교설이든 종의로 삼는다는 개방적이고 비평적인 정신이 논문 전체에 담겨 있습니다. 즉, 세친은 특정 부파의 견해에 얽매이지 않고 비판적인 입장에서 『구사론』을 저술하였으며, 그 바탕에는 경량부적 사유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적으로 원담(鳳潭)의 경부위종설(經部爲宗說)이나 원휘(圓暉)의 현밀양종설(顯密兩宗說)로 『구사론』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경량부적 사유를 통해 유부 비바사의 교학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세친 자신도 본론 8장을 마무리하면서 이 논문이 전적으로 카슈미르의 비바사에 의존하지 않았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진제 삼장의 제자인 혜개(慧愷)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범문 『본송』에서는 이 용어가 여덟 차례 사용되지만, 현장역본에서는 세 번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장행의 주석에서는 60회에 걸쳐 유부 비바사사의 설을 'kila'로 언급하고 있으며, 현장역본에서는 이를 '전설(傳說)', '전(傳)', '세전유언(世傳有言)', '위(謂)', '자위(自謂)', '피위(彼謂)', '작여시설(作如是說)', '작여시석(作如是釋)' 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전설'로 번역된 것은 20여 회이며, 본 역에서는 '전(傳)하는 설(說)'로 번역하였습니다.

현장역본 『구사론』에서 경부(經部)의 기명(記名) 기사는 18회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100여 곳에 걸쳐 언급되고 있습니다. 졸고, 「구사론상에 나타난 경량부 설」(졸저, 『유부아비달마와 경량부철학의 연구』, 서울 : 경서원, 1994), pp. 417-589.

"법사(세친)의 덕업(德業)은 별전(別傳, 즉 『바수반두법사전』)에 실려 있는 것처럼 먼저 살바다부(薩婆多部)에 출가하여 그 부파에서 확립된 삼장을 배웠으며, 그 후 그들의 법에 다수의 어긋난 점이 있음을 보고 이 논(『구사론』)을 지어 그들의 주장을 모두 서술한 후 잘못된 부분마다 경부(經部)로써 그것을 논파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논의 본종(本宗)은 바로 살바다부이지만 그 중의 취사선택은 경부로써 정량(正量)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카슈미르 유부의 종장이었던 중현은 본론에 대한 비판서인 『구사박론』 혹은 『순정리론』(진제 전승에서의 『수실론』?)을 저술하게 되었으며, 실제로 『순정리론』에서는 본론의 작자 세친을 경주(經主, sutrakara)라 일컬으면서 이 같은 '전설'이라는 말을 포함하여 장행의 일언일구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며 카슈미르의 유부종의를 변호하고 있습니다. 구사논주에서 세친이 왜 '경주'로 불리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경부의 주(主)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습니다.
『순정리론』에서 세친이 경주로 언급된 횟수는 168회이며, 그 중 경량부설을 최선설로 비판한 횟수는 36회입니다.

3. 본론의 제목과 구성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부에 따르면 아비달마는 불설입니다. 즉, 무루정혜의 택법은 세간의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뛰어난 방편이자 궁극적인 목표(불타진지로서 승의 아비달마)지만, 이는 직접적으로 드러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불타는 세간이 이를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아비달마를 설하였고, 이를 통해 사리자와 같은 위대한 성문들이 다시 이를 결집하고 편찬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세간의 4혜(듣고, 생각하고, 수행하여 얻는 지혜와 생득지혜)와 세속의 아비달마(즉, 여러 논서) 또한 '자비의 방편도 자비라고 할 수 있듯이' 승의 아비달마(즉, 무루정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친은 '아비달마가 바로 불설'이라는 유부 비바사사의 주장을 믿지 않았습니다.

"저(세친)는 아비달마를 불설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해 듣기로 존재 가다연니자 등이 그것을 지었고, 또한 불타께서 그것을 소의로 삼았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세존께서는 아난다에게 '세속 아비달마는 [작자나 부파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된 것이므로] 각기 그 종의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마땅히 지식의 근거인 경에 의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비달마구사론』은 이러한 사유에서 비롯된 명칭입니다. 즉, 본론의 제목을 다른 유부의 논서처럼 '대법의 논'이라고 하지 않고, '대법장의 논'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세간의 4혜와 제론이 승의 아비달마의 자량이 되기 때문에 '아비달마'라고 할 수 있다면, 『구사론』도 궁극적으로 아비달마 즉 '대법의 논'이라고 해야 하지만, 이는 단지 '아비달마를 포섭한 곳간'으로 아비달마의 정수를 간추린 논이거나, '아비달마를 소유한 곳간'의 의미로 아비달마는 코샤의 근거가 될 뿐입니다. 다시 말해 세친은 본론을 유부에서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아비달마라기보다는 단지 그것의 요지를 간추린 텍스트로 간주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논주 세친은 여기서 유부 종의와 함께 다양한 이사와 이파의 교의를 논하며 서로의 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결국 『구사론』은 기본적으로 아비달마 족신의 7론이나 『대비바사론』을 근거로 하면서도 이전의 논서와는 다른 체계를 가진 법승의 『아비담심론』과 이를 개량한 『아비담심론경』, 그리고 법구의 『잡아비담심론』의 조직과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된 논서입니다. 예를 들어 『아비담심론』은 먼저 게송으로 학설의 요점을 간결히 설명한 후, 산문으로 이를 해석하는 형식을 취하며 총 10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행품(行品)에서는 유부교의 핵심인 법의 이론을 설명하고 있으며, 제3 업품(業品)과 제4 사품(使品)에서는 미혹한 세계의 원인인 업과 번뇌를 밝혀냅니다. 제5 현성품(賢聖品), 제6 지품(智品), 제7 정품(定品)에서는 깨달음의 경지와 그에 이르는 방편인 지혜와 선정에 대해 논의하고 있으며, 뒤의 3품은 보유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사론』에서도 이와 유사한 형식으로 뒤의 3품을 정리하여 앞의 7품에 포함시키고, 미혹한 현실 세계의 실상을 밝힌 세간품(世間品)을 추가하여 총 8품으로 본론을 구성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유아론(有我論)을 비판한 파집아품(破執我品)을 부록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본론의 조직은 『아비담심론』에 따라 철저하게 4성제를 기초로 하여, 계품(界品)과 근품(根品)에서 제법의 본질과 작용을 설명한 후, 세간품(世間品), 업품(業品), 수면품(隨眠品)에서 고(苦)의 실상과 그 원인 및 조건이 되는 업과 번뇌를 밝혀내고, 다시 현성품(賢聖品), 지품(智品), 정품(定品)에서 고멸(苦滅)의 열반과 그 원인 및 조건이 되는 지(智)와 선정(禪定)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유부의 아비달마는 『집이문족론』과 『법온족론』 등의 6족론(足論)에서 시작하여 『발지론』에서 학설의 전모를 드러내고, 『대비바사론』에서 깊이 심화되었으며, 『아비담심론』에서 조직적인 논술의 정형을 갖추었습니다. 결국 본론에 이르러 정점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보광은 본론을 평가하며 "6족의 강요를 빠짐없이 갖추고 8온의 묘문을 드러내어 마치 손바닥을 보는 것과 같다"고 찬탄하였습니다.

본론의 조직과 내용을 전체적으로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중관학파의 철학을 일체개공(一切皆空)이나 팔부중도(八部中道)로, 유가행파의 그것을 유식무경(唯識無境)으로 규정하듯이 유부 아비달마의 그것을 제법분별(諸法分別)이라는 명제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즉, 유부 아비달마의 제법분별은 유위(有爲)와 고(苦)로 전제되는 현상의 모든 존재를 성립하게 하는 다양한 조건들을 논리적으로 분별하여 인간의 다양한 존재 양식을 밝힘으로써 괴로움의 존재로부터 벗어난 무위 고멸(苦滅)의 상태를 획득하려는 교설입니다.

다시 말해 아비달마의 목적은 무루정혜(無漏淨慧)를 드러내어 이를 통해 생사로 유전하게 하는 번뇌와 업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제법분별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제법은 현상 세계를 구성하는 원인과 조건, 혹은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로서 자상(自相)을 지닌 자기 원인적 존재들을 의미합니다.

본론 제1 분별계품에서는 만유의 근본이 되는 제법의 본질에 대해 분별하고 있으며, 먼저 실천적 입장에서 유루법과 무루법을, 이론적 입장에서 유위법과 무위법을 분류합니다. 그리고 다시 제법을 5온(蘊)과 12처(處)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이 텍스트는 불교의 다양한 개념과 이론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1장에서는 18계에 대한 해석을 통해 유견과 무견, 유대와 무대, 선과 불선, 무기 등 여러 측면에서 그 특징을 설명합니다.

제2장 '분별근품'에서는 만유를 구별짓는 제법의 작용에 대해 논의하며, 유정의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22가지 존재를 '근'으로 분류하고, 이들의 성질을 다양한 갈래로 설명합니다. 또한, 제법을 색, 심, 심소, 불상응행, 무위의 5위로 나누어 인과적 관계를 논의합니다.

제3장 '분별세간품'에서는 인연에 의해 형성된 현실 세계에 대해 설명하며, 유정세간의 다양한 형태와 윤회전생을 12인연의 인과로 설명합니다. 또한, 기세간의 구조와 세간의 성, 주, 괴, 공의 과정을 논의합니다.

제4장 '분별업품'에서는 현실 세계의 원인인 업에 대해 설명하며, 선과 악의 업을 분류하고, 다양한 업의 종류에 대해 논의합니다.

제5장 '분별수면품'에서는 불선업의 근본 원인인 번뇌에 대해 설명하며, 98수면의 성질과 작용을 논의하고, 번뇌의 단멸과 이계의 증득에 대해 다룹니다.

제6장 '분별현성품'에서는 번뇌소멸의 이상인 현자와 성자에 대해 설명하며, 4성제와 성자의 준비단계, 수행법에 대해 논의합니다.

제7장 '분별지품'에서는 이상 세계의 원인인 지에 대해 설명하며, 번뇌의 단멸과 이계의 증득을 가능하게 하는 인과 지에 대해 논의합니다.

제8장 '분별정품'에서는 지를 획득하는 조건인 선정에 대해 설명하며, 여러 선정과 그 공덕에 대해 논의합니다.

제9장 '파집아품'에서는 무아설에 기반한 법의 이론을 통해 해탈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다양한 철학적 관점에 대한 비판과 업의 인과상속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와 같은 내용은 불교의 깊은 이해를 돕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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