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2 오온[蘊] ⑧ 삼켜버림 73-82
■ SN 22.73 - 맛 경
73.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물질적 요소의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차리지 못한다. 감수작용의 … 지각작용의 … 형성작용들의 … 식별작용의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차리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적 요소의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차린다. … 감수작용의 … 지각작용의 … 형성작용들의 … 식별작용의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차린다.”
■ SN 22.74 - 일어남 경 ①
74.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물질적 요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차리지 못한다. 감수작용의 … 지각작용의 … 형성작용들의 … 식별작용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차리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적 요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 차린다. 감수작용의 … 지각작용의 … 형성작용들의 … 식별작용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 차린다.”
■ SN 22.75 - 일어남 경 ②
75. "비구들이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적 요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 차린다. 감수작용의 … 지각작용의 … 형성작용들의 … 식별작용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 차린다.”
■ SN 22.76 - 아라한들 경 ①
76. “비구들이여, 물질적 요소는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고,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바른 지혜로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감수작용의 … 지각작용의 … 형성작용들의 … 식별작용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고,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바른 지혜로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적 요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감수작용에 대해서도 … 지각작용에 대해서도 … 형성작용들에 대해서도 … 식별작용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는 자는 탐욕이 떠난다. 탐욕의 떠남으로부터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나는 해탈했다.'라는 앎이 있다.
‘태어남은 끝났다. 청정범행(梵行)은 완성되었다. 해야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가 되지 않는다.’라고 안다.
비구들이여, 중생의 거처에 관한 한, 존재의 으뜸에 관한 한, 아라한들이 으뜸이고(최상이고), 세상에서 으뜸이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승이신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게송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라한들은 행복하다. 그들에게는 갈애가 없다.
‘나는 있다.’라는 자만은 뿌리 뽑혔고, 어리석음의 그물은 찢어졌다.
그들은 갈망에서 자유를 얻었고, 그들에게 마음은 동요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오염되지 않은 그들은 번뇌가 없는 성스러운 존재다.
오온을 철저하게 알기 위해 일곱 가지 정법을 행동영역으로 하는
세존의 아들인 고결한 사람들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일곱 가지 보배를 구족하고, 삼학(계.정.혜)의 닦음을 실천한 사람
두려움과 공포가 버려진 영웅. 그들은 유행한다.
열 가지 요소를 구족하고 삼매를 닦은 큰 용들
그들은 세상에서 으뜸이다. 그들에게 갈애가 없다.
‘이것은 마지막 몸이다.’라는 무학의 앎이 생겨서
청정범행의 핵심에 대해 남들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다시 태어남에서 벗어나고, 제어된 경지에 도달하였고,
세상에서 승리자인 그들은
자만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사자후를 토한다. ‘세존들은 세상에서 위없는 분이다.’라고.”
■ SN 22.77 - 아라한 경 ②
77. “비구들이여, 물질적 요소는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고,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바른 지혜로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감수작용의 … 지각작용의 … 형성작용들의 … 식별작용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고,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바른 지혜로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적 요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감수작용에 대해서도 … 지각작용에 대해서도 … 형성작용들에 대해서도 … 식별작용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는 자는 탐욕이 떠난다. 탐욕의 떠남으로부터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나는 해탈했다.'라는 앎이 있다.
‘태어남은 끝났다. 청정범행(梵行)은 완성되었다. 해야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가 되지 않는다.’라고 안다.
비구들이여, 중생의 거처에 관한 한, 존재의 으뜸에 관한 한, 아라한들이 으뜸이고(최상이고), 세상에서 으뜸이다.”
■ SN 22.78 - 사자 경
78. “비구들이여, 동물의 왕 사자가 저녁무렵에 거주하는 곳에서 나온다. 거주하는 곳에서 나와서는 기지개를 켜고, 기지개를 켠 뒤 사방을 두루 살펴본다. 사방을 두루 살펴본 뒤 세 번 사자후를 토한다. 세 번 사자후를 토한 뒤 자기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비구들이여, 동물의 왕인 사자의 포효하는 소리를 들은 짐승들은 어떤 것이든 대부분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고 공포를 느낀다. 동굴에 사는 것은 동굴에 들어가고 물에 사는 것은 물에 들어가고 숲에 사는 것은 숲으로 들어가고 새들은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비구들이여, 마을이나 성읍에서 견고한 밧줄에 묶인 왕의 코끼리도 역시 두려움에 떨면서 그 밧줄을 자르거나 끊고서 두려움에 이리저리 날뛴다(오줌똥을 싸면서 달아난다). 비구들이여, 동물의 왕인 사자는 짐승들 가운에서 이처럼 크나큰 힘이 있고 이처럼 크나큰 위력이 있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어떤 때 아라한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이시며, 위 없으신 분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시며, 깨달은 분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이신 여래가 세상에 출현한다. 그는 법을 설한다.
‘이렇게 물질적 요소가 있다. 이렇게 물질적 요소의 일어남이 있다. 이렇게 물질적 요소의 사라짐이 있다. 이렇게 감수작용이 있다. 이렇게 감수작용의 일어남이 있다. 이렇게 감수작용의 사라짐이 있다. 이렇게 지각작용이 있다. 이렇게 지각작용의 일어남이 있다. 이렇게 지각작용의 사라짐이 있다. 이렇게 형성작용들이 있다. 이렇게 형성작용들의 일어남이 있다. 이렇게 형성작용들의 사라짐이 있다. 이렇게 식별작용이 있다. 이렇게 식별의 일어남이 있다. 이렇게 식별작용의 사라짐이 있다.’라고.
비구들이여, 긴 수명을 가진, 수려한 용모를 갖춘, 많은 행복을 가진, 높은 천상의 궁전에서 오랜 시간을 머무는 신들도 여래의 설법을 들은 뒤에 대부분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고 공포를 느낀다.
‘존자들이여, 항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참으로 우리는 무상합니다. 존자들이여, 견고하다고 생각했는데 참으로 우리는 견고하지 못합니다. 존자들이여, 영원하다고 생각했는데 참으로 우리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존자들이여, 참으로 우리는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고, 영원하지 않고, 자기 존재(유신.有身)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여래는 신을 포함한 세상에서 이처럼 크나큰 능력이 있고 이처럼 크나큰 힘이 있고 이처럼 크나큰 위력이 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승이신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게송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신들을 포함한 세상의 견줄 수 없는 스승인 자는
완전한 지혜로 알아 법의 바퀴를 굴렸으니
자기 존재와 자기 존재의 일어남과 소멸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성스러운 여덟 가지 길이다.
긴 수명과 수려한 용모와 명성을 가진 신들도
잘 해탈해서 원만한 아라한의 말씀을 들은 뒤에
‘자기 존재를 넘어서지 못한 우리는 참으로 무상하다.’라고
사자 앞에서 떠는 짐승들처럼, 두려움 때문에 공포를 느꼈다.'
■ SN 22.79 - 삼켜버림 경
79. “비구들이여, 여러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하는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모두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오취온.五取蘊)이나 그것 중에서 어떤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무엇이 다섯인가?
비구들이여, ‘과거에 나는 이러한 물질적 요소(色)를 가진 자였다.’라고 기억하는 그가 물질적 요소를 기억한다. 비구들이여, ‘과거에 나는 이러한 감수작용(受) 을 가진 자였다.’라고 기억하는 그가 감수작용을 기억한다. 비구들이여, ‘과거에 나는 이러한 지각작용(想)을 가진 자였다.’라고 기억하는 그가 지각작용을 기억한다. 비구들이여, ‘과거에 나는 이러한 형성작용(行)들을 가졌다.’라고 기억하는 그가 형성작용들을 기억한다. 비구들이여, ‘과거에 나는 이러한 식별작용(識)을 가졌다.’라고 기억하는 그가 식별작용을 기억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무엇을 물질적 요소(色)라고 말해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변형된다고 해서 물질적 요소라고 불린다. 무엇에 의해서 변형되는가? 차가움에 의해서도 변형되고, 더움에 의해서도 변형되고, 배고픔에 의해서도 변형되고, 목마름에 의해서도 변형되고, 파리, 모기, 바람, 햇빛, 파충류들의 닿음에 의해서도 변형된다. 비구들이여, 변형된다고 해서 물질적 요소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무엇을 감수작용(受)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느낀다고 해서(경험한다고 해서) 감수작용이라고 불린다. 무엇을 느끼는가? 즐거움도 느끼고 괴로움도 느끼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도 느낀다. 비구들이여, 느낀다고 해서 감수작용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무엇을 지각작용(想)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함께 안다고(지각) 해서 지각작용이라고 불린다. 무엇을 아는가? 푸른색을 알기도 하고(푸른 것도 지각하기도 하고), 노란색을 알기도 하고, 빨간색을 알기도 하고, 흰색을 알기도 한다. 비구들이여, 함께 안다고 해서 지각작용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무엇을 형성작용들(行)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형성된 것을 계속해서 형성한다고 해서 형성작용들이라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형성된 것을 계속해서 형성하는가? 물질적 요소가 물질적 요소이게끔 형성된 것을 계속해서 형성한다. 감수작용이 감수작용이게끔 형성된 것을 계속해서 형성한다. 지각작용이 지각작용이게끔 형성된 것을 계속해서 형성한다. 형성작용이 형성작용이게끔 형성된 것을 계속해서 형성한다. 식별작용이 식별작용이게끔 계속해서 형성한다.
비구들이여, 형성된 것을 계속해서 형성한다고 해서 형성작용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무엇을 식별작용(인식)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식별(분별해서 안다)한다고 해서 식별작용이라고 불린다. 무엇을 식별(인식)하는가? 신 맛을 식별하기도 하고, 쓴 맛을 식별하기도 하고, 매운 맛을 식별하기도, 달콤한 맛을 식별하기도 하고, 떫은 맛을 식별하기도 하고, 떫지 않은 맛을 식별하기도 하고, 짠 맛을 식별하기도 하고, 싱거운 맛을 식별하기도 한다. 비구들이여, 식별한다고 해서 식별작용이라고 불린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물질적 요소가 지금 나를 삼키고 있다. 현재의 물질적 요소가 지금 나를 삼키듯이, 이처럼 과거의 물질적 요소도 나를 삼켰다. 만약 내가 미래의 물질적 요소를 기뻐하면, 현재의 물질적 요소가 지금 나를 삼키듯이, 이처럼 미래의 물질적 요소도 나는 삼킬 것이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면서 과거의 물질적 요소에 대해 갈망하지 않고, 미래의 물질적 요소를 기뻐하지 않고, 현재의 물질적 요소를 염오하고 탐욕이 떠나고 소멸하기 위해 닦는다.
'감수작용이 지금 나를 삼키고 있다. 현재의 감수작용이 지금 나를 삼키듯이, 이처럼 과거의 감수작용도 나를 삼켰다. 만약 내가 미래의 감수작용을 기뻐하면, 현재의 감수작용이 지금 나를 삼키듯이, 이처럼 미래의 감수작용도 나는 삼킬 것이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면서 과거의 감수작용에 대해 갈망하지 않고, 미래의 감수작용을 기뻐하지 않고, 현재의 감수작용을 염오하고 탐욕이 떠나고 소멸하기 위해 닦는다.
'지각작용이 지금 나를 삼키고 있다. … '형성작용들이 지금 나를 삼키고 있다. 현재의 형성작용들이 지금 나를 삼키듯이, 이처럼 과거의 형성작용들도 나를 삼켰다. 만약 내가 미래의 형성작용들을 기뻐하면, 현재의 형성작용들이 지금 나를 삼키듯이, 이처럼 미래의 형성작용들도 나를 삼킬 것이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면서 과거의 형성작용들에 대해 갈망하지 않고, 미래의 형성작용들을 기뻐하지 않고, 현재의 형성작용들을 염오하고 탐욕이 떠나고 소멸하기 위해 닦는다.
'식별작용이 지금 나를 삼키고 있다. 현재의 식별작용이 지금 나를 삼키듯이, 이처럼 과거의 식별작용도 나를 삼켰다. 만약 내가 미래의 식별작용을 기뻐하면, 현재의 식별작용이 지금 나를 삼키듯이, 이처럼 미래의 식별작용도 나는 삼킬 것이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면서 과거의 식별작용에 대해 갈망하지 않고, 미래의 식별작용을 기뻐하지 않고, 현재의 식별작용을 염오하고 탐욕이 떠나고 소멸하기 위해 닦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적 요소는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 감수작용은 … 지각작용은 … 형성작용은 … 식별작용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물질적 요소이건 간에,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혹은내부나 외부의,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철저히 알아차려야 한다. … 어떠한 감수작용이건 간에 … 어떠한 지각작용이건 간에 … 어떠한 형성작용이건 간에 … 어떠한 식별작용이건 간에, 의식이건,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혹은 내부나 외부의,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성스러운 제자는 허물지 쌓지 않는다. 버리지 집착하지 않는다. 풀지 묶지 않는다. 맛을 떠나지 맛을 즐기지 않는다.라고 불린다. 그러면 무엇을 허물지 쌓지 않는가?
물질적 요소를 허물지 쌓지 않는다. 감수작용을 … 지각작용을 … 형성작용들을 …식별작용을 허물지 쌓지 않는다.
그러면 무엇을 버리지 집착하지 않는가?
물질적 요소를 버리지 집착하지 않는다. 감수작용을 … 지각작용을 … 형성작용들을 …식별작용을 버리지 집착하지 않는다.
그러면 무엇을 풀지 묶지 않는가?
물질적 요소를 풀지 묶지 않는다. 감수작용을 … 지각작용을 … 형성작용들을 …식별작용을 풀지 묶지 않는다.
그러면 어떤 맛을 떠나지 즐기지 않는가?
물질적 요소의 맛을 떠나지 즐기지 않는다. 감수작용의 … 지각작용의 … 형성작용들의…식별작용의 맛을 떠나지 즐기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적 요소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감수작용에 대해서도 … 지각작용에 대해서도 … 형성작용들에 대해서도 … 식별작용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는 자는 탐욕이 떠난다. 탐욕의 떠남으로부터(탐욕이 떠나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끝났다. 청정범행(梵行)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가 되지 않는다.’라고 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는 쌓지도 않고 허물지도 않고 허문 뒤에 머문다. 버리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고 버린 뒤에 머문다. 풀지도 않고 묶지도 않고 푼 뒤에 머문다. 맛을 떠나지도 않고 맛을 즐기지도 않고 맛을 떠난 뒤에 머문다.'라고 불린다. 무엇을 쌓지도 않고 허물지도 않고 허문 뒤에 머무는가? 물질적 요소를 쌓지도 않고 허물지도 않고 허문 뒤에 머문다. … 감수작용을 … 지각작용을 … 형성작용들을 …식별작용을 쌓지도 않고 허물지도 않고 허문 뒤에 머문다. 무엇을 버리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고 버린 뒤에 머무는가? 물질적 요소를 버리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고 버린 뒤에 머문다. … 감수작용을 … 지각작용을 … 형성작용들을 … 식별작용을 버리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고 버린 뒤에 머문다. 무엇을 풀지도 않고 묶지도 않고 푼 뒤에 머무는가? 물질적 요소를 풀지도 않고 묶지도 않고 푼 뒤에 머문다. … 감수작용을 … 지각작용을 … 형성작용들을 … 식별작용을 풀지도 않고 묶지도 않고 푼 뒤에 머문다. 어떤 맛을 떠나지도 않고 즐기지도 않고 떠난 뒤에 머무는가? 물질적 요소의 맛을 떠나지도 않고 즐기지도 않고 떠난 뒤에 머문다. … 감수작용의 … 지각작용의 … 형성작용들을 … 식별작용의 맛을 떠나지도 않고 즐기지도 않고 떠난 뒤에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탈된 마음을 가진 비구에게 인드라와 함께하고 범천과 함께하고 빠자빠띠와 함께하는 신들은 멀리서도 공경을 할 것이다.
‘놀라운 분이여, 그대에게 귀의합니다. 최상의 분이여, 그대에게 귀의합니다.
그대는 어떤 것을 의지하여 선(禪)을 닦는데, 우리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합니다.’라고.
■ SN 22.80 - 탁발 경
80. 한때에 세존께서는 삭까에서 까삘라왓투에 있는 니그로다 원림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세존께서는 어떤 특별한 이유 때문에 비구 승가를 해산한 뒤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시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시고 탁발을 위해서 까삘라왓투로 들어가셨다. 까삘라왓투에서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오셔서 낮 동안의 홀로 머묾을 위해서 큰 숲으로 가셨다. 큰 숲으로 들어간 뒤에 작은 웰루와 나무 밑에서 낮 동안의 홀로 머묾을 위해 앉아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홀로 머무는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마음에 일어났다.
‘나는 비구 승가를 해산하였다. 그 가운데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근래에 이 법과 율에 들어온 신참 비구들이 있다. 만일 그들이 나를 보지 못하면 그들 중에는 달라지는 자도 있을 수 있고, 변하는 자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미를 보지 못하는 어린 송아지 중에는 달라지는 송아지도 있을 수 있고, 변하는 송아지도 있을 수 있다. 이처럼 그 가운데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근래에 이 법과 율에 들어온 신참 비구들이 있다. 나를 보지 못하면 그들 중에는 마음이 달라지는 자도 있을 수 있고, 변하는 자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물을 얻지 못하는 어린 씨앗 가운데는 달라지는 것도 있을 수 있고, 변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이처럼 그 가운데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근래에 이 법과 율에 들어온 신참 비구들이 있다. 그러니 나는 이전에 내가 비구 승가를 보호하였듯이 이제 비구 승가를 보호해야겠다.’라고.
그때 사함빠띠 범천이 세존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 차리고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구부리는 것처럼 빠른 시간에 범천의 세계에서 사라져서 세존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사함빠띠 범천은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윗옷을 입고 세존을 향해 합장하고 이렇게 말씀드렸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선서시여.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를 해산하셨습니다. 그 가운데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근래에 이 법과 율에 들어온 신참 비구들이 있습니다. 세존을 뵙지 못하면 그들 중에는 달라지는 자도 있을 수 있고, 변하는 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미를 보지 못하는 어린 송아지 중에는 달라지는 송아지도 있을 수 있고, 변하는 송아지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 가운데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근래에 이 법과 율에 들어온 신참 비구들이 있습니다. 세존을 뵙지 못하면 그들 중에는 달라지는 자도 있을 수 있고, 변하는 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물을 얻지 못하는 어린 씨앗 가운데는 달라지는 것도 있을 수 있고, 변하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 가운데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근래에 이 법과 율에 들어온 신참 비구들이 있습니다. 세존을 뵙지 못하면 그들 중에는 달라지는 자도 있을 수 있고, 변하는 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를 기쁘게 하십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를 반갑게 맞아 주십시오. 이전에 비구 승가를 보호하셨듯이 이제 비구 승가를 보호하십시오.”라고.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동의하셨다. 그러자 사함빠띠 범천은 세존의 동의를 알고서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공경의 의미로 세존의 오른쪽으로 돈 뒤에 그곳에서 사라졌다.
저녁 무렵에 홀로 머묾에서 나온 세존께서는 니그로다 숲으로 가셨다. 가셔서는 준비된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으신 세존께서는 ‘그 비구들이 혼자서나 둘씩 뉘우치는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오기를’이라고 신통의 지혜를 두루 행하셨다. 그러자 비구들은 혼자서나 둘씩 뉘우치는 모습으로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비구들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탁발이라는 것은 삶을 영위하는 가장 미천한 수단이다. 세상에서 ‘그대는 손에 그릇을 들고 탁발을 다니는구나'라는 것을 욕하는 말이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좋은 가문의 아들들은 성취를 위한 힘을 구하는 사람들이어서 바른 목적을 위하여 이러한 탁발하는 삶을 산다. 왕에게 이끌려서도 아니고 도둑에게 이끌려서도 아니며, 빚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서 이러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오직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에 빠져 있고 속박되었다. 그러나 이제 나에게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끝이 드러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이러한 삶을 사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출가한 좋은 가문의 아들이 있다. 그러나 그는 간탐하고, 감각적 쾌락들에 깊이 탐닉하고, 악의에 찬 마음을 가졌고, 잘못된 마음의 사유를 하고,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분명한 알아차림[正知]이 없고, 삼매를 닦지 않고, 산란한 마음을 가졌고, 감각기능을 제어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양쪽에 불탄 흔적이 있고 가운데는 오물이 묻은 시체를 태운 나무토막은 마을에서도 땔감으로 사용하지 않고, 숲에서도 땔감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 비유를, 비구들이여, 나는 재가의 쾌락과 욕망을 버렸지만 사문 생활의 결실을 성취하지 못한 이 사람에게 말한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선하지 않은 생각이 있다. 그것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생각과 악의에 대한 생각과 남을 해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선하지 않은 생각은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하는가?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에 마음이 확고하게 머물거나 표상 없는 삼매(드러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삼매)를 닦는 자에게 남김없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닦고 많이 행한 표상 없는 삼매는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다.
비구들이여,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견해와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견해이다. 거기에서, 비구들이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내가 집착하여도 결점(비난)을 가지지 않는 것은 세상에 어떤 것이라도 있을까?'라고 숙고한다. 그는 이렇게 철저히 알아차린다.
‘내가 집착하여도 결점을 가지지 않는 것은 세상에 어떤 것도 없다.(비난 받지 않고 집착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집착하는 자로서 물질적 요소를 집착할 것이고, 감수작용을 … 지각작용을 … 형성작용들을 … 집착하는 자로서 식별작용을 집착할 것이다. 그런 나에게 집착의 조건으로부터 존재가, 존재의 조건으로부터 태어남이, 태어남의 조건으로부터 늙음·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생길 것이다. 이렇게 이 모든 괴로움의 무더기가 발생할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적 요소는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 감수작용은 … 지각작용은 … 형성작용들은 … 식별작용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물질적 요소이건 간에,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혹은 내부나 외부의,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철저히 알아차려야 한다. …
어떠한 감수작용이건 간에 … 어떠한 지각작용이건 간에 … 어떠한 형성작용이건 간에 … 어떠한 식별작용이건 간에, 의식이건,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혹은 내부나 외부의,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차려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적 요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감수작용에 … 지각작용에 … 형성작용들에 … 식별작용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는 자는 탐욕이 사라진다. 탐욕이 사라지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끝났다. 청정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가 되지 않는다.’라고 안다."
■ SN 22.81 - 빠릴레이야 경
81. 한때에 세존께서는 꼬삼비에서 고시따 원림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시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시고 탁발을 위해서 꼬삼비로 들어가셨다. 꼬삼비에서 탁발을 하여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오셔서 스스로 거처를 정리한 뒤에 발우와 가사를 지니시고, 초청도 없이, 시중드는 사람(시자)들과 비구 승가에게 알리지도 않고, 동행하는 자도 없이 혼자서 유행을 떠나셨다.
그러자 세존께서 떠나신 지 오래지 않아서 어떤 비구가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아난다여, 세존께서 스스로 거처를 잘 정리한 뒤에 발우와 가사를 지니시고, 초청도 없이, 시중드는 사람들과 비구 승가에 알리지도 않고, 동행하는 자도 없이 혼자서 유행을 떠나셨습니다.”라고.
“도반이여, 세존께서 스스로 거처를 잘 정리한 뒤에 발우와 가사를 지니시고, 초청도 없이, 시중드는 사람들과 비구 승가에 알리지도 않고, 동행하는 자도 없이 혼자서 유행을 떠나셨을 때는 세존께서 홀로 머물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누구라도 세존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세존께서는 차례차례 유행을 하시어 이윽고 빠릴레이야에 도착하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빠릴레이야에 있는 상서로운 살라 나무 아래 머무셨다. 그 무렵 많은 비구들이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비구들은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아난다여, 우리가 세존의 앞에서 직접 설법을 들은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도반 아난다여, 우리는 세존의 앞에서 직접 설법을 들었으면 합니다.”라고.
그러자 아난다 존자는 그 비구들과 함께 상서러운 살라 나무 아래 머무시는 세존께서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비구들에게 세존께서는 법다운 이야기로 가르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셨다. 그때 어떤 비구에게 이런 생각이 마음에 일어났다.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는 자에게 즉시에 번뇌들이 소멸할까(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는 자에게 뒤따라 번뇌들이 부서질까)?’라고.
그때 세존께서 그 비구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 차리시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나에 의해 분명하게 구분하여 설해진 법이 있다. 나는 분명하게 구분하여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사념처.四念處)을 설하였고, 나는 분명하게 구분하여 네 가지 바른 노력(사정근.四正勤)을 설하였고, 나는 분명하게 구분하여 네 가지 신통의 요소(사여의족.四如意足)를 설하였고, 나는 분명하게 구분하여 다섯 가지 근(오근.五根)을 설하였고, 나는 분명하게 구분하여 다섯 가지 힘(오력.五力)을 설하였고, 나는 분명하게 구분하여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칠각지.七覺支)를 설하였고, 나는 분명하게 구분하여 여덟 가지 구성 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바른 길(팔정도.八正道)을 설하였다. 이렇게 나에 의해 분명하게 구분하여 설해진 법이 있다. 그런데도 여기 어떤 비구에게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즉시에 일어나는 번뇌들이 소멸할까?’라는 생각이 마음에 일어났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는 자에게 즉시에 번뇌들이 소멸하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거룩한 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거룩한 가르침(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가르침을 배우지 못한 배우지 못한 범부가 있다. 그는 훌륭한 스승을 알아보지 못하고,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배우지 못해, 그는 물질적 요소(色)를 나(我)로 간주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간주하는 (삿된) 견해는 형성작용[行]일 뿐이다. 그러면 이런 형성작용은 무엇이 그 인연이며,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무엇으로부터 생기며, 무엇이 그 근원인가?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무명과 함께 하는 감각접촉(닿음)에서 생긴 느낌에서 갈애가 일어나고 이런 형성작용은 바로 이 갈애에서 생긴다. 그런데 이 갈애도 무상하고 유위[有爲]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이 감각접촉도 무상하고 유위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이 느낌도 무상하고 유위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이 무명도 무상하고 유위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자에게 즉시에 일어나는 번뇌들이 소멸한다.
그는 물질적 요소(色)를 나(我)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를 물질적 요소를 지닌 자로 간주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간주하는 견해는 형성작용일 뿐이다. 그러면 이런 형성작용은 그 인연이며,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무엇으로부터 생기며, 무엇이 그 근원인가?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무명과 함께 하는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갈애가 일어나고 이런 형성작용은 이 갈애에서 생긴다. 그런데 이 갈애도 무상하고 유위[有爲]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이 감각접촉도 무상하고 유위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이 느낌도 무상하고 유위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이 무명도 무상하고 유위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자에게 즉시에 일어나는 번뇌들이 소멸한다.
그는 물질적 요소(色)를 나(我)로 간주하지 않는다. 나를 물질적 요소를 지닌 자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는 나에게 물질적 요소가 있다고 간주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간주하는 견해는 형성작용일 뿐이다. 그러면 이런 형성작용은 무엇이 그 인연이며,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무엇으로부터 생기며, 무엇이 그 근원인가?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무명과 함께 하는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갈애가 일어나고 이런 형성작용은 이 갈애에서 생긴다. 그런데 이 갈애도 무상하고 유위[有爲]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이 감각접촉도 무상하고 유위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이 느낌도 무상하고 유위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이 무명도 무상하고 유위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자에게 즉시에 일어나는 번뇌들이 소멸한다.
그는 물질적 요소(色)를 나(我)로 간주하지 않는다. 나를 물질적 요소를 지닌 자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는 나에게 물질적 요소가 있다고 간주하지 않는다. 물질적 요소에 내가 있다고 간주하지 않는다. 그러나 감수작용(受)을 나로 간주한다. 나를 감수작용을 지닌 자로 간주한다. 그는 나에게 감수작용이 있다고 간주한다. 감수작용에 내가 있다고 간주한다. 지각작용을 … 그는 형성작용들을 나로 간주한다. 나를 형성작용들을 지닌 자로 간주한다. 그는 나에게 형성작용들이 있다고 간주한다. 형성작용들 속에 내가 있다고 간주한다. 식별작용(識)를 나로 간주한다. 나를 식별작용을 지닌 자로 간주한다. 그는 나에게 식별작용이 있다고 간주한다. 식별작용 속에 내가 있다고 간주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간주하는 견해는 형성작용일 뿐이다. 그러면 이런 형성작용은 무엇이 그 인연이며,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무엇으로부터 생기며, 무엇이 그 근원인가?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무명과 함께 하는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갈애가 일어나고 이런 형성작용은 이 갈애에서 생긴다. 그런데 이 갈애도 무상하고 유위[有爲]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이 감각접촉도 무상하고 유위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이 느낌도 무상하고 유위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이 무명도 무상하고 유위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자에게 즉시에 일어나는 번뇌들이 소멸한다.
그는 물질적 요소를 나로 간주하지 않는다. 감수작용을 나로 간주하지 않는다. 지각작용을 … 형성작용들을 … 식별작용을 나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나(我)이고, 그것이 세상이다. 그는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 것이 될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 영원하다는 견해[상견(常見)]는 형성작용일 뿐이다. 그러면 이런 형성작용은 무엇이 그 인연이며,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무엇으로부터 생기며, 무엇이 그 근원인가?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무명과 함께 하는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갈애가 일어나고 이런 형성작용은 이 갈애에서 생긴다. 그런데 이 갈애도 무상하고 유위[有爲]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이 감각접촉도 무상하고 유위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이 느낌도 무상하고 유위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이 무명도 무상하고 유위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자에게 즉시에 일어나는 번뇌들이 소멸한다.
그는 물질적 요소를 나로 간주하지 않는다. 감수작용을 … 지각작용을 … 형성작용들을 … 식별작용을 나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이런 견해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이 나(我)이고, 그것이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 것이 될 것이다.’라고.
그러나 그는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내가 아니고 나의 것도 아니라면,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이러한 단멸한다는 견해는 하나의 형성작용일 뿐이다. 그러면 이런 형성작용은 무엇이 그 인연이며,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무엇으로부터 생기며, 무엇이 그 근원인가?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무명과 함께 하는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갈애가 일어나고 이런 형성작용은 이 갈애에서 생긴다. 그런데 이 갈애도 무상하고 유위[有爲]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이 감각접촉도 무상하고 유위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이 느낌도 무상하고 유위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이 무명도 무상하고 유위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자에게 즉시에 일어나는 번뇌들이 소멸한다.
그는 물질적 요소를 나로 간주하지 않는다. 감수작용을 … 지각작용을 … 형성작용을 … 식별작용을 나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이런 견해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이 나(我)이고, 그것이 세상이다. 그것은 죽은 뒤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그리고 그는 이러한 견해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아니고 나의 것도 아니라면,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그런데 그는 회의하는 자이고, 의심하는 자이고, 정법에 대해 의지하지 않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그 회의하고, 의심하고, 정법에 대해 의지하지 않는 것은 하나의 형성작용일 뿐이다. 그러면 이런 형성작용은 무엇이 그 인연이며,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무엇으로부터 생기며, 무엇이 그 근원인가?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무명과 함께 하는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갈애가 일어나고 이런 형성작용은 이 갈애에서 생긴다. 그런데 이 갈애도 무상하고 유위[有爲]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이 감각접촉도 무상하고 유위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이 느낌도 무상하고 유위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이 무명도 무상하고 유위이며 연기(緣起)된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자에게 즉시에 일어나는 번뇌들이 소멸한다."
■ SN 22.82 - 보름밤 경
8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많은 비구 대중과 함께 동쪽 숲에 있는 미가라마따(녹자모)의 강당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세존께서는 보름 포살일 밤에 비구 대중들과 함께 포살법회 장소에 앉아 계셨다. 그때 어떤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윗옷을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입고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약 세존께서 저를 위해 질문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면, 저는 세존께 어떤 부분을 질문드리고자 합니다."라고.
"그렇다면, 비구여, 그대는 그대의 자리에 앉아서 묻고 싶은 것을 질문하라."
그러자 그 비구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물질적 요소(色)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감수작용(受)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지각작용(想)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형성작용(行)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식별작용(識)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의 이런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五取蘊. 오취온]이 있지 않습니까?"
"비구여, 물질적 요소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감수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지각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형성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식별작용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의 이런 다섯가지 집착에 의한 온이 있다."
"감사합니다, 세존이시여."라고 그 비구는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에 세존께 이어지는 질문을 했다. 이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五取蘊]의 뿌리는 무엇입니까?"
"비구여, 이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의 뿌리는 갈애이다."
"세존이시여, 집착과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은 같은 것입니까, 아니면 집착과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은 다른 것입니까?"
"비구여, 집착과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집착과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은 다른 것도 아니다. 비구여,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에 대한 욕탐(欲貪)이 거기서 집착이다."
"세존이시여,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에 대한 욕탐은 차이가 있습니까?"
"있다, 비구여."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여기, 비구여, 어떤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미래에 나는 이런 물질적 요소를 가지기를, 미래에 나는 이런 감수작용을 가지기를, 미래에 나는 이런 지각작용을 가지기를, 미래에 나는 이런 형성작용을 가지기를, 미래에 나는 이런 식별작용(의식)을 가지기를' 라고.
이렇게, 비구여,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에 대한 욕탐은 차이가 있다."
"세존이시여, 왜 온(蘊)들에게 온이라는 이름이 있습니까?"
"비구여, 어떤 물질적 요소이건 간에,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혹은 내부나 외부의,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그것은 물질적 요소의 온(색온.色蘊)이라 불린다. 어떤 감수작용이건 간에,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혹은 내부나 외부의,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그것은 감수작용의 온(受蘊)이라 불린다. 어떤 지각작용이건 간에,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혹은 내부나 외부의,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그것은 지각작용의 온(想蘊)이라 불린다. 어떤 형성작용이건 간에, 즉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혹은 내부나 외부의,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그것은 형성작용의 온(行蘊)이라 불린다. 어떤 식별작용이건 간에, 즉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혹은 내부나 외부의,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그것은 식별작용의 온(識蘊)이라 불린다.
이렇게, 비구여, 온들에게 온이라는 이름이 있다."
"세존이시여, 물질적 요소의 온(色蘊)의 선언을 위해서는(드러나기 위해서는) 어떤 원인,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감수작용의 온(受蘊)의 선언을 위해서는 어떤 원인,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지각작용의 온(想薀)의 선언을 위해서는 어떤 원인,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형성작용의 온(행온.行蘊)의 선언을 위해서는 어떤 원인,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을 조건하여 식별작용의 온(識蘊)의 선언을 위해서는 어떤 원인,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비구여, 물질적 요소의 온의 선언을 위해서는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이 원인이고, 네 가지 근본물질이 조건이다. 감수작용의 온의 선언을 위해서는 감각접촉[觸]이 원인이고 감각접촉이 조건이다. 지각작용의 온의 선언을 위해서는 감각접촉이 원인이고 감각접촉이 조건이다. 형성작용의 온의 선언을 위해서는 감각접촉이 원인이고 감각접촉이 조건이다. 식별작용의 온의 선언을 위해서는 정신과 물질(名色)이 원인이고 정신과 물질이 조건이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서 불변하는 자아(有身見)가 있다는 견해가 생겨납니까?"
"여기, 비구여, 거룩한 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거룩한 가르침(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가르침을 배우지 못한 무지한 보통사람이 있다. 그는 훌륭한 스승을 알아보지 못하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배우지 못해, 물질적 요소(色)을 나로 간주한다거나, 나를 물질적 요소를 지닌 자로, 혹은 나에게 물질적 요소가, 혹은 물질적 요소에 내가 있다고 여긴다. … 감수작용(受)을 나로 간주한다거나, 나를 감수작용을 지닌 자로, 혹은 나에게 감수작용이, 혹은 감수작용에 내가 있다고 여긴다. … 지각작용(想)을 나로 간주한다거나, 나를 지각작용을 지닌 자로, 혹은 나에게 지각작용이, 혹은 지각작용에 내가 있다고 여긴다. … 형성작용(行)을 나로 간주한다거나, 나를 형성작용을 지닌 자로, 혹은 나에게 형성작용이, 혹은 형성작용에 내가 있다고 여긴다. … 식별작용(識)을 나로 간주한다거나, 나를 식별작용을 지닌 자로, 혹은 나에게 식별작용이, 혹은 식별작용에 내가 있다고 여긴다.
이렇게, 비구여, 불변하는 자아가 있다는 견해가 생긴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떻게 해서 불변하는 자아가 있다는 견해[有身見]가 생기지 않습니까?"
"비구여, 여기에 거룩한 이를 알아보고, 거룩한 가르침을 알아 보고, 거룩한 가르침을 배운 성스러운 제자가 있다. 그는 훌륭한 스승을 알아 보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알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배웠기 때문에, 물질적 요소를 나로 간주하지 않고, 나를 물질적 요소를 지닌 자로, 혹은 나에게 물질적 요소가, 혹은 물질적 요소에 내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 감수작용을 나로 간주하지 않고, 나를 감수작용을 지닌 자로, 혹은 나에게 감수작용이, 혹은 감수작용에 내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 지각작용을 나로 간주하지 않고, 나를 지각작용을 지닌 자로, 혹은 나에게 지각작용이, 혹은 지각작용에 내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 형성작용을 나로 간주하지 않고, 나를 형성작용을 지닌 자로, 혹은 나에게 형성작용이, 혹은 형성작용에 내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 식별작용을 나로 간주하지 않고, 나를 식별작용을 지닌 자로, 혹은 나에게 식별작용이, 혹은 식별작용에 내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렇게, 비구여, 불변하는 자아가 있다는 견해가 생기지 않는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물질적 요소에 대한 맛이고 무엇이 잘못됨(위험)이며 무엇이 그것에서 벗어남입니까? 무엇이 감수작용에 대한 맛이고 무엇이 잘못됨이며 무엇이 그것에서 벗어남입니까? 무엇이 지각작용에 대한 맛이고 무엇이 잚소됨이며 무엇이 그것에서 벗어남입니까? 무엇이 형성작용에 대한 맛이고 무엇이 잘못됨이며 무엇이 그것에서 벗어남입니까? 무엇이 식별작용에 대한 맛이고 무엇이 잘못됨이며 무엇이 그것에서 벗어남입니까?"
"비구여, 물질적 요소를 조건하여 일어난 즐거움과 기쁨이 물질적 요소에 대한 맛이다. 물질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는 것이기에 이것이 물질에 대한 잘못됨이다. 물질적 요소에 대한 욕탐을 떠나고 욕탐을 버리는 것이 물질에서 벗어남이다.
감수작용을 조건하여 일어난 즐거움과 기쁨이 감수작용에 대한 맛이다. 느낌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는 것이기에 이것이 감수작용에 대한 잘못됨이다. 감수작용에 대한 욕탐을 떠나고 욕탐을 버리는 것이 느낌에서 벗어남이다.
지각작용을 조건하여 일어난 즐거움과 기쁨이 지각작용에 대한 맛이다. 지각작용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는 것이기에 이것이 지각작용에 대한 잘못됨이다. 지각작용에 대한 욕탐을 떠나고 욕탐을 버리는 것이 지각작용에서 벗어남이다.
형성작용을 조건하여 일어난 즐거움과 기쁨이 형성작용에 대한 맛이다. 형성작용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는 것이기에 이것이 형성작용에 대한 잘못됨이다. 형성작용에 대한 욕탐을 떠나고 욕탐을 버리는 것이 형성작용에서 벗어남이다.
식별작용을 조건하여 일어난 즐거움과 기쁨이 식별작용에 대한 맛이다. 식별작용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는 것이기에 이것이 식별작용에 대한 잘못됨이다. 식별작용에 대한 욕탐을 떠나고 욕탐을 버리는 것이 식별작용에서 벗어남이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는 자에게 의식을 가진 이 몸과 외부의 모든 표상(相)들 가운데서 나라는 생각과 내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비구여, 어떤 물질적 요소이건 간에,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혹은 내부나 외부의,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다. … 어떤 감수작용이건 간에 … 어떤 지각작용이건 간에 … 어떤 형성작용이건 간에 … 어떤 식별작용이건 간에,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혹은 내부나 외부의,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다.
비구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자에게 의식을 가진 이 몸과 외부의 모든 표상들 가운데서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비구에게 '이렇게, 참으로, 물질은 무아다. 감수작용은 무아다. 지각작용은 무아다. 형성작용은 무아다. 식별작용은 무아다. 무아에 의해 지어진 업들은 어떤 자아와 접촉하는가?'라는 생각이 일어났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그 비구의 생각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차린 뒤에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알지 못하고 무명에 빠진 어떤 쓸모없는 자가 갈애에 지배되어 마음으로 스승의 가르침을 능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런 경우가 있다. '이렇게, 참으로, 물질은 무아다. 감수작용은 무아다. 지각작용은 무아다. 형성작용은 무아다. 식별작용은 무아다. 무아에 의해 지어진 업들은 어떤 자아와 접촉하는가?'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을 위해서 여기저기서 거듭하여 그 법들에 대하여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설명한 나의 가르침이 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적 요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한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 감수작용은 … 지각작용은 … 형성작용은 …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식별작용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한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물질적 요소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간에,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혹은 내부나 외부의,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 감수작용이라고 하는 것은 … 지각작용이라고 하는 것은 … 형성작용이라고 하는 것은 …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식별작용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간에, 즉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혹은 내부나 외부의, 혹은 거칠거나 미세한, 혹은 열등하거나 수승한,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적 요소를 염오하고, 감수작용을 염오하고, 지각작용을 염오하고, 형성작용을 염오하고, 식별작용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긴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라고 안다."
'두 가지는 온에 관한 것이며
술어와 원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두 가지는 자기 존재에 대해서이고,
맛과 식별작용을 가진 몸에 대해서 각각 한가지이다.
이렇게 하여 모두 열 가지를 비구는 세존께 말씀드렸다.'
제8장 삼켜버림 품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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