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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8 위대한 사자후의 경 ①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우준냐에서 깐나깟탈라에 있는 녹야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나체수행자 깟사빠가 세존께 다가왔다. 와서는 세존과 힘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섰다. 

2. 한 곁에 서서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사문 고따마는 모든 고행을 비난한다. 그는 난행고행의 삶을 사는 고행자를 전적으로 비난하고 힐난하고 비방한다.'라고. 
고따마 존자시여, '사문 고따마는 모든 고행을 비난한다. 그는 난행고행의 삶을 사는 고행자를 전적으로 비난하고 힐난하고 비방한다.'라고 말하는 자들은 고따마 존자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하는 자들입니까? 혹시 거짓으로 고따마 존자를 헐뜯는 것은 아닙니까? 그들은 법에 따라서 법을 설명한 것입니까? 누구든 함께 법을 닦는 동료가 이것을 따라 말하더라도 비난받아야 할 경우를 만나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저는 고따마 존자를 비난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3. "깟사빠여, '사문 고따마는 모든 고행을 비난한다. 그는 난행고행의 삶을 사는 고행자를 전적으로 비난하고 힐난하고 비방한다.'라고 말하는 자들은 내가 말한 대로 말하는 자들이 아니다. 그 대신 그들은 있지도 않는 거짓으로 나를 헐뜯는 것이다. 
깟사빠여, 나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천안통으로, 난행고행의 삶을 살았던 어떤 고행자는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 불행한 상태(苦界), 나쁜세계(惡趣),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깟사빠여, 나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천안통으로, 난행고행의 삶을 살았던 어떤 고행자는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 좋은 세계(善處), 하늘 세계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깟사빠여, 나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천안통으로, 적은 고통으로 머물렀던 어떤 고행자는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 불행한 상태(苦界), 나쁜세계(惡趣),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깟사빠여, 나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천안통으로, 적은 고통으로 머물렀던 어떤 고행자는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 좋은 세계(善處), 하늘 세계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깟사빠여, 나는 이런 고행자들의 온 곳과 갈 곳과 죽고 태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고 있는데 어찌 내가 모든 고행을 비난하고 난행고행의 삶을 사는 고행자를 전적으로 힐난하고 비방하겠는가?" 

4. "깟사빠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현명하고 영리하고 다른 자들과의 논쟁에 뛰어나고 화살로 머리카락조차 맞힐 수 있는 지경이라서 그들은 예리한 통찰지로써 다른 견해들을 단번에 잘라버린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나는 어떤 점들에 있어서는 일치하고, 어떤 점들에 있어서는 일치하지 않는다. 그들이 어떤 때에 '옳다'고 말하는 것을 나도 어떤 때는 '옳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들이 어떤 때에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나도 어떤 때는 '옳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때에 '옳다'고 말하는 것을 어떤 때 나는 '옳지 않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들이 어떤 때에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어떤 때 나는 '옳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어떤 때에 '옳다'고 말하는 것을 그들도 어떤 때는 '옳다'고 말하기도 하고 내가 어떤 때에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그들도 어떤 때는 '옳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어떤 때에 '옳다'고 말하는 것을 어떤 때 그들은 '옳지 않다'고 말하기도 하고 내가 어떤 때에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어떤 때 그들은 '옳다'고 말하기도 한다.

5.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한다. 
'도반들이여, 서로 일치하지 않는 점들에 대해서는 일단 그대로 두도록 합시다. 서로 일치하는 점들에 대해서는 이제 현자들이 스승은 스승끼리, 집단(sangha)은 집단끼리,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하게 합시다. 즉 '존자들이여, 우리 사이에 일치하는 점들 가운데서 해로운 것이고 해로운 것이라 불리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라 불리고,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 불리고, 성자들에게 적합하지 않는 것이고 성자들에게 적합하지 않는 것이라 불리고, 검은 것이고 검은 것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들이 있습니다. 이제 누가 이러한 법들을 남김없이 버렸습니까? 사문 고따마입니까, 아니면 다른 스승들입니까?라고."6. "깟사빠여, 그런데 현자들이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해서 이와 같이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존자들이여, 우리 사이에서 서로 일치하는 점들 가운데서 해로운 것이고 해로운 것이라 불리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라 불리고,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 불리고, 성자들에게 적합하지 않는 것이고 성자들에게 적합하지 않는 것이라 불리고, 검은 것이고 검은 것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들이 있습니다. 사문 고따마가 이런 법들을 남김없이 버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스승들은 부분적으로만 버렸습니다.'라고.
깟사빠여, 이와 같이 여기서 현자들이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하면 대부분은 내가 칭송된다."

7. "깟사빠여, 또 현자들이 스승은 스승끼리, 집단은 집단끼리,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하도록 하자. 
즉 '존자들이여, 우리 사이에 일치하는 점들 가운데 유익한 것이고 유익한 것이라 불리고, 비난받지 않는 것이고 비난받지 않는 것이라 불리고,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이고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이라 불리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것이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것이라 불리고, 흰 것이고 흰 것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들이 있습니다. 이제 누가 이런 법들을 남김없이 성취하였습니까? 사문 고따마입니까, 아니면 다른 스승들입니까?'라고. 

8. "깟사빠여, 그런데 현자들이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해서 이와 같이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존자들이여, 우리 사이에 일치하는 점들 가운데 유익한 것이고 유익한 것이라 불리고, 비난받지 않는 것이고 비난받지 않는 것이라 불리고,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이고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이라 불리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것이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것이라 불리고, 흰 것이고 흰 것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들이 있습니다. 사문 고따마가 이런 법들을 남김없이 성취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스승들은 부분적으로만 성취하였습니다.'라고.
깟사빠여, 이와 같이 여기서 지자들이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하면 대부분은 내가 칭송된다."

9. "깟사빠여, 또 다시 현자들이 스승은 스승끼리, 집단은 집단끼리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하도록 하자. 
즉 '존자들이여, 우리 사이에 일치하는 점들 가운데서 해로운 것이고 해로운 것이라 불리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라 불리고,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 불리고, 성자들에게 적합하지 않는 것이고 성자들에게 적합하지 않는 것이라 불리고, 검은 것이고 검은 것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들이 있습니다. 이제 누가 이러한 법들을 남김없이 버렸습니까? 사문 고따마의 제자들의 모임입니까, 아니면 다른 스승들의 제자들의 모임입니까?라고." 

10 ."깟사빠여, 그런데 현자들이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해서 이와 같이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존자들이여, 우리 사이에 일치하는 점들 가운데서 해로운 것이고 해로운 것이라 불리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라 불리고,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 불리고, 성자들에게 적합하지 않는 것이고 성자들에게 적합하지 않는 것이라 불리고, 검은 것이고 검은 것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들이 있습니다. 사문 고따마의 제자들의 모임이 이런 법들을 남김없이 버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스승들의 제자들의 모임은 부분적으로만 버렸습니다.'라고.
깟사빠여, 이와 같이 여기서 현자들이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하면 대부분은 내가 칭송된다."

11. "깟사빠여, 또 현자들이 스승은 스승끼리, 모임은 모임끼리,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하도록 하자. 
즉 '존자들이여, 우리 사이에 일치하는 점들 가운데 유익한 것이고 유익한 것이라 불리고, 비난받지 않는 것이고 비난받지 않는 것이라 불리고,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이고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이라 불리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것이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것이라 불리고, 흰 것이고 흰 것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들이 있습니다. 이제 누가 이런 법들을 남김없이 성취하였습니까? 사문 고따마의 제자들 모임입니까, 아니면 다른 스승들의 제자들 모임입니까?'라고. 

12. "깟사빠여, 그런데 현자들이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해서 이와 같이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존자들이여, 우리 사이에 일치하는 점들 가운데 유익한 것이고 유익한 것이라 불리고, 비난받지 않는 것이고 비난받지 않는 것이라 불리고,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이고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이라 불리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것이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것이라 불리고, 흰 것이고 흰 것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들이 있습니다. 사문 고따마의 제자들 모임은 이런 법들을 남김없이 성취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스승들의 제자들의 모임은 부분적으로만 성취하였습니다.'라고.
깟사빠여, 이와 같이 여기서 현자들이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하면 대부분은 내가 칭송된다."

13. "깟사빠여, 도가 있고 도닦음이 있나니 그대로 수행을 하면 '사문 고따마는 시기에 맞는 말을 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는 자다'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되고 스스로 보게 된다. 그러면 어떤 도가 있고 어떤 도 닦음이 있기에 그대로 도 닦으면 '사문 고따마는 시기에 맞는 말을 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는 자다'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되고 스스로 보게 되는가?
그것은 바로 팔정도이니,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마음챙김(正念), 바른 삼매(正定), 이다. 이것이 바로 그 도요, 바로 그 도닦음이니, 그대로 수행을 하면 '사문 고따마는 시기에 맞는 말을 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는 자다'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되고 스스로 보게 된다."

14. 이와 같이 말하자 나체 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도반 고따마시여, 다음과 같은 고행을 닦는 것도 이러한 사문·바라문들에게는 사문의 본업이라 불리고, 바라문의 본업이라 불립니다.
 도반 고따마시여, 그는 나체수행자이고, 관습을 거부하며 살고, 손으로 핥아서 먹고, 오라 하면 가지 않고, 서라 하면 서지 않으며, 가져온 음식을 받지 않고, 받지 않으며, 초청에 응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릇으로 주면 받지 않고, 접시로 주면 받지 않고, 문지방을 넘어서 주는 것, 막대기에 꿰어진 것, 절구공이 안에 있는 것을 받지 않으며, 두 사람이 먹을 때, 임신부로부터, (아이에게 젖을) 억이는 여자로부터, 남자 (품에) 안겨 있는 여자로부터 받지 않으며, (보시한다고) 널리 알릴 때 받지 않으며, 개가 옆에 있을 때 받지 않으며, 술, 과즙주, 발효주를 마시지 않습니다. 그는 한 집만 가서 한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두집만 가서 두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일곱 집만 가서 일곱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한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두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일곱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며, 하루에 한 번만, 이틀에 한 번만…, 이런 식으로 반달에 한 번만 방편으로 음식을 먹으며 삽니다. 
도반 고따마시여, 다음과 같은 고행을 닦는 것도 이러한 사문, 바라문들에게는 사문의 본업이라 불리고, 바라문의 본업이라 불립니다. 그는 채소를 먹는 자이고, 수수, 니바라 쌀, 닷둘라 쌀, 수초, 등겨, 뜨물, 깻가루, 풀, 소똥을 먹는 자이며, 야생의 풀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해서 살고, 떨어진 열매를 먹는 자입니다. 
도반 고따마시여, 다음과 같은 고행을 닦는 것도 이러한 사문, 바라문들에게는 사문의 본업이라 불리고, 바라문의 본업이라 불립니다. 그는 삼베로 만든 옷을 입고, 마포로 된 거친 옷을 입고, 시체를 싸맨 헝겊으로 만든 옷을 입고, 넝마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영양 가죽을 입고, 영양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입고, 꾸사 풀로 만든 외투를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외투를 입고, 판자로 만든 외투를 입고, 머리카락으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꼬리털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올빼미 털로 만든 옷을 입습니다.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수행에 몰두한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자이고,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는 자이며, 쪼그리고 앉는 수행에 몰입한 쪼그리고 앉는 자이며, 가시를 가까이 하는 자이어서 가시로 된 침상을 사용하며, 밤에 세 번을 물에 들어가는데 몰두하며 지냅니다."
"깟사빠여, 비록 그가 나체수행자이고, 관습을 거부하며 살고, 손으로 핥아서 먹고, 오라 하면 가지 않고, 서라 하면 서지 않으며, 가져온 음식을 받지 않고, (자기 몫으로 지칭된 것을) 받지 않으며, 초청에 응하지 않고, 그가 그릇으로 주면 받지 않고, 접시로 주면 받지 않고, 문지방을 넘어서 주는 것, 막대기에 꿰어진 것, 절구공이 안에 있는 것을 받지 않으며, 두 사람이 먹을 때, 임신부로부터, (아이에게 젖을) 억이는 여자로부터, 남자 (품에) 안겨 있는 여자로부터 받지 않으며, (보시한다고) 널리 알릴 때 받지 않으며, 개가 옆에 있을 때 받지 않으며, 술, 과즙주, 발효주를 마시지 않고, 그가 한 집만 가서 한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두집만 가서 두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일곱 집만 가서 일곱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한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두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일곱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며, 하루에 한 번만, 이틀에 한 번만…,이런 식으로 반달에 한 번만 방편으로 음식을 먹으며 살더라도, 그는 단지 방편으로 음식을 먹기에만 몰두하여 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계의 구족과, 마음의 구족과, 통찰지의 구족을 수행하지 못하고 실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는 사문의 본업으로부터 멀리 있고, 바라문의 본업으로부터 멀리 있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마음의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통찰지의 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깟사빠여, 비록 그가 채소를 먹는 자이고, 수수, 니바라 쌀, 닷둘라 쌀, 수초, 등겨, 뜨물, 깻가루, 풀, 소똥을 먹는 자이며, 야생의 풀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해서 살고, 떨어진 열매를 먹는 자라 할지라도, 그는 계의 구족과, 마음의 구족과, 통찰지의 구족을 수행하지 못하고 실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는 사문의 본업으로부터 멀리 있고, 바라문의 본업으로부터 멀리 있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마음의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통찰지의 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깟사빠여, 비록 그가 삼베로 만든 옷을 입고, 마포로 된 거친 옷을 입고, 시체를 싸맨 헝겊으로 만든 옷을 입고, 넝마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영양 가죽을 입고, 영양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입고, 꾸사 풀로 만든 외투를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외투를 입고, 판자로 만든 외투를 입고, 머리카락으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꼬리털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올빼미 털로 만든 옷을 입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수행에 몰두한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자이고,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는 자이며, 쪼그리고 앉는 수행에 몰입한 쪼그리고 앉는 자이며, 가시를 가까이 하는 자이어서 가시로 된 침상을 사용하며, 밤에 세 번을 물에 들어가는데 몰두하며 지낸다 할지라도, 그는 계의 구족과, 마음의 구족과, 통찰지의 구족을 수행하지 못하고 실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는 사문의 본업으로부터 멀리 있고, 바라문의 본업으로부터 멀리 있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마음의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통찰지의 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16.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습니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습니다."
"깟사빠여,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다.'라는 것은 세속에서는 당연하다. 
깟사빠여, 그런데 만일 나체수행자이고, 관습을 거부하며 살고, 손으로 핥아서 먹고, 오라 하면 가지 않고, 서라 하면 서지 않으며, 가져온 음식을 받지 않고, (자기 몫으로 지칭된 것을) 받지 않으며, 초청에 응하지 않고, 그가 그릇으로 주면 받지 않고, 접시로 주면 받지 않고, 문지방을 넘어서 주는 것, 막대기에 꿰어진 것, 절구공이 안에 있는 것을 받지 않으며, 두 사람이 먹을 때, 임신부로부터, (아이에게 젖을) 억이는 여자로부터, 남자 (품에) 안겨 있는 여자로부터 받지 않으며, (보시한다고) 널리 알릴 때 받지 않으며, 개가 옆에 있을 때 받지 않으며, 술, 과즙주, 발효주를 마시지 않고, 그가 한 집만 가서 한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두집만 가서 두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일곱 집만 가서 일곱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한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두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일곱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며, 하루에 한 번만, 이틀에 한 번만…,· , 이런 식으로 반달에 한 번만 방편으로 음식을 먹으며 사는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고 너무나 행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지 못하다.
깟사빠여,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심지어는 물 긷는 하녀까지도 '오, 참으로 나는 나체수행자가 되어야지, 관습을 거부하며 살아야지, 손으로 핥아서 먹어야지, 오라 하면 가지 않고, 서라 하면 서지 않으며, 가져온 음식을 받지 않고, (자기 몫으로 지칭된 것을) 받지 않으며, 초청에 응하지 않고, 그가 그릇으로 주면 받지 않고, 접시로 주면 받지 않고, 문지방을 넘어서 주는 것, 막대기에 꿰어진 것, 절구공이 안에 있는 것을 받지 않으며, 두 사람이 먹을 때, 임신부로부터, (아이에게 젖을) 억이는 여자로부터, 남자 (품에) 안겨 있는 여자로부터 받지 않으며, (보시한다고) 널리 알릴 때 받지 않으며, 개가 옆에 있을 때 받지 않으며, 술, 과즙주, 발효주를 마시지 않고, 그가 한 집만 가서 한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두집만 가서 두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일곱 집만 가서 일곱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한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두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일곱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며, 하루에 한 번만, 이틀에 한 번만…,이런 식으로 반달에 한 번만 방편으로 음식을 먹으며 살아야지.'라고 하면서 이렇게 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깟사빠여, 그러나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과는 다른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고 너무나 행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마음의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통찰지의 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깟사빠여, 그런데 채소를 먹는 자이고, 수수, 니바라 쌀, 닷둘라 쌀, 수초, 등겨, 뜨물, 깻가루, 풀, 소똥을 먹는 자이며, 야생의 풀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해서 살고, 떨어진 열매를 먹는 자라는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고 너무나 행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지 못하다.
깟사빠여,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심지어는 물 긷는 하녀까지도 '오, 참으로 나는 채소를 먹는 자가 되어야지,수수, 니바라 쌀, 닷둘라 쌀, 수초, 등겨, 뜨물, 깻가루, 풀, 소똥을 먹는 자이며, 야생의 풀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해서 살고, 떨어진 열매를 먹는 자가 되어 살아야지.'라고 하면서 이렇게 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깟사빠여, 그러나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과는 다른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고 너무나 행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마음의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통찰지의 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깟사빠여, 그런데 삼베로 만든 옷을 입고, 마포로 된 거친 옷을 입고, 시체를 싸맨 헝겊으로 만든 옷을 입고, 넝마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영양 가죽을 입고, 영양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입고, 꾸사 풀로 만든 외투를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외투를 입고, 판자로 만든 외투를 입고, 머리카락으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꼬리털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올빼미 털로 만든 옷을 입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수행에 몰두한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자이고,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는 자이며, 쪼그리고 앉는 수행에 몰입한 쪼그리고 앉는 자이며, 가시를 가까이 하는 자이어서 가시로 된 침상을 사용하며, 밤에 세 번을 물에 들어가는데 몰두하며 지낸다 할지라도,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고 너무나 행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지 못하다.
깟사빠여,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심지어는 물 긷는 하녀까지도 '오, 참으로 나는 삼베로 만든 옷을 입고 살아야지, 마포로 된 거친 옷을 입고 살아야지, 시체를 싸맨 헝겊으로 만든 옷을 입고, 넝마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영양 가죽을 입고, 영양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입고, 꾸사 풀로 만든 외투를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외투를 입고, 판자로 만든 외투를 입고, 머리카락으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꼬리털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올빼미 털로 만든 옷을 입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수행에 몰두한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자이고,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는 자이며, 쪼그리고 앉는 수행에 몰입한 쪼그리고 앉는 자이며, 가시를 가까이 하는 자이어서 가시로 된 침상을 사용하며, 밤에 세 번 물에 들어가는 데 몰두하여 살아야지.'라고 하면서 이렇게 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깟사빠여, 그러나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과는 다른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고 너무나 행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마음의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통찰지의 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17.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사문의 본업은 알기가 어렵습니다.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가 어렵습니다." 
"깟사빠여, '사문의 본업은 알기가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가 어렵다.'라는 것은 세속에서는 당연하다. 깟사빠여, 그런데 만일 나체수행자이고, 관습을 거부하며 살고, 손으로 핥아서 먹고, 오라 하면 가지 않고, 서라 하면 서지 않으며, 가져온 음식을 받지 않고, (자기 몫으로 지칭된 것을) 받지 않으며, 초청에 응하지 않고, 그가 그릇으로 주면 받지 않고, 접시로 주면 받지 않고, 문지방을 넘어서 주는 것, 막대기에 꿰어진 것, 절구공이 안에 있는 것을 받지 않으며, 두 사람이 먹을 때, 임신부로부터, (아이에게 젖을) 억이는 여자로부터, 남자 (품에) 안겨 있는 여자로부터 받지 않으며, (보시한다고) 널리 알릴 때 받지 않으며, 개가 옆에 있을 때 받지 않으며, 술, 과즙주, 발효주를 마시지 않고, 그가 한 집만 가서 한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두집만 가서 두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일곱 집만 가서 일곱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한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두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일곱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며, 하루에 한 번만, 이틀에 한 번만…, 이런 식으로 반달에 한 번만 방편으로 음식을 먹으며 사는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고 너무나 알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지 못하다.
깟사빠여,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심지어는 물 긷는 하녀까지도 '오, 참으로 나는 나체수행자가 되어야지, 관습을 거부하며 살아야지, 손으로 핥아서 먹어야지, 오라 하면 가지 않고, 서라 하면 서지 않으며, 가져온 음식을 받지 않고, (자기 몫으로 지칭된 것을) 받지 않으며, 초청에 응하지 않고, 그가 그릇으로 주면 받지 않고, 접시로 주면 받지 않고, 문지방을 넘어서 주는 것, 막대기에 꿰어진 것, 절구공이 안에 있는 것을 받지 않으며, 두 사람이 먹을 때, 임신부로부터, (아이에게 젖을) 억이는 여자로부터, 남자 (품에) 안겨 있는 여자로부터 받지 않으며, (보시한다고) 널리 알릴 때 받지 않으며, 개가 옆에 있을 때 받지 않으며, 술, 과즙주, 발효주를 마시지 않고, 그가 한 집만 가서 한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두집만 가서 두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일곱 집만 가서 일곱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한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두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일곱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며, 하루에 한 번만, 이틀에 한 번만…, 이런 식으로 반달에 한 번만 방편으로 음식을 먹으며 산다.'라고 하면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깟사빠여, 그러나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과는 다른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고 너무나 알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마음의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통찰지의 해탈을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깟사빠여, 그런데 채소를 먹는 자이고, 수수, 니바라 쌀, 닷둘라 쌀, 수초, 등겨, 뜨물, 깻가루, 풀, 소똥을 먹는 자이며, 야생의 풀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해서 살고, 떨어진 열매를 먹는 자라는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고 너무나 알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지 못하다.
깟사빠여,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심지어는 물 긷는 하녀까지도 '오, 참으로 나는 채소를 먹는 자가 되어야지, 수수, 니바라 쌀, 닷둘라 쌀, 수초, 등겨, 뜨물, 깻가루, 풀, 소똥을 먹는 자이며, 야생의 풀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해서 살고, 떨어진 열매를 먹는 자다.'라고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깟사빠여, 그러나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과는 다른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고 너무나 알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마음의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통찰지의 해탈을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깟사빠여, 그런데 삼베로 만든 옷을 입고, 마포로 된 거친 옷을 입고, 시체를 싸맨 헝겊으로 만든 옷을 입고, 넝마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영양 가죽을 입고, 영양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입고, 꾸사 풀로 만든 외투를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외투를 입고, 판자로 만든 외투를 입고, 머리카락으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꼬리털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올빼미 털로 만든 옷을 입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수행에 몰두한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자이고,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는 자이며, 쪼그리고 앉는 수행에 몰입한 쪼그리고 앉는 자이며, 가시를 가까이 하는 자이어서 가시로 된 침상을 사용하며, 밤에 세 번을 물에 들어가는데 몰두하며 지낸다 할지라도,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고 너무나 알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지 못하다.
깟사빠여,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심지어는 물 긷는 하녀까지도 '오, 참으로 나는 삼베로 만든 옷을 입고 살아야지, 마포로 된 거친 옷을 입고 살아야지,시체를 싸맨 헝겊으로 만든 옷을 입고, 넝마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영양 가죽을 입고, 영양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입고, 꾸사 풀로 만든 외투를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외투를 입고, 판자로 만든 외투를 입고, 머리카락으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꼬리털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올빼미 털로 만든 옷을 입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수행에 몰두한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자이고,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는 자이며, 쪼그리고 앉는 수행에 몰입한 쪼그리고 앉는 자이며, 가시를 가까이 하는 자이어서 가시로 된 침상을 사용하며, 밤에 세 번 물에 들어가는 데 몰두하며 지낸다.'라고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깟사빠여, 그러나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과는 다른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고 너무나 알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마음의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통찰지의 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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