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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세계유람기 ①

  • - 관정 법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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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정 법사는 중국 복건성 보전현 성관진 동대로 140호에서 태어났다. (1924년갑자년 7월7일 태어남)
그의 아버지는 부처님을 믿는 번씨 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태어날 때, 서쪽 하늘에 금광이 빛나고 대지가 황금빛을 발했기 때문에 번금영이라 이름 지어졌다.

어려서 총명하여 일곱 살때 복건성 고출사로 출가했고 15살에 허운 노화상을 스승으로 섬겼다.
17살에 광동성 남화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강서성 운고산에서 허운 노화상의 정법안장을 계승하여 제49대 전법 제자가 되었다.
여러 절 주지를 역임하다가 1980년 복건성 선유현 선회사 주지로 있을 때 12월 23일 참선수행에 들어가서 29일날 출정하셨다. (6일 동안)
그때 선유현이 진동해서 귀의한 제자가 3000여명이 되었고, 1982년 미국에 가서 불교를 선양하여 북미 불교회의회장을 역임하셨다.

중국의 생불 관정 법사가 1967년 음력 10월 25일 복건성 덕화현 미륵동에서 좌선 할 때, 홀연히 관세음보살의 이끌림을 받아서 그 자취가 사라져 서방정토 구품연화경을 참관했는데 그 기간이 하루를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세상에 돌아와보니 1973년 4월8일 이었다고 한다.
장장 6년 5개월간이었다. 이 책의 주요내용은 그 기간에 보고 들은 바를 소개한 것이다.

당시 인간 세상에서는 법사가 행방불명 되어서 모든 절 승속이 찾아다녔으나 전후 수년 동안 소식을 알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법사가 이미 왕생하여 가셨다고 비통해했다.
그러나 법사는 저 미륵동을 반걸음도 떠나지 않았으니 부처님의 가호로 신체가 미륵동내에서 6, 7년간을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법사께서 서방 극락세계를 유람한 과정은 꿈이 아니다.
법사는 도를 이룬 고승으로 거짓말을 할 인격이 아니다. 법사가 보고 들은 바의 경계는 선정 중에서 본 경계도 아니다. 법사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의 뜻을 받들어 극락세계에서 보고 들은 바를 공개하게 된 것으로 그곳을 다녀온 산증인 되셨을 뿐이다.

관정 법사의 증언으로 우리는 인간세계 이외에 다른 세계인 극락세계가 있고 또 그곳은 불국정토로서 모두 실재에 속함을 확인하게 되었다.
종교적인 관점을 떠나서도 다른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1. 1987년 4월 싱가포르 신가파 남해 보타산 강연


"여러 스님과 거사님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부처님 인연으로 한 곳에 모였습니다. 이것은 전세 혹은 금세에 맺은 인연입니다. 이 인연으로 제가 서방 정토에 대해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께 알리게 되었습니다." 
* 제가 이야기 할 바의 요점은 다섯가지입니다. 
(1) 나는 어떻게 극락세계에 가게 됐는가? -무슨 인연으로 극락세계에 가게 되었는가?
(2) 서방정토에 도달하기 전에, 내가 먼저 도달한 나한동 도리천, 도솔천 그리고 극락세계 3개 지점의 경계는 어떤 모습인가? 
(3) 구품 왕생의 실제 정황은 어떤 모습인가? 즉, 중생은 사바세계에서의 수행공덕으로 구품에서 일품으로 가는데, 매일품 연화의 실재 생활정경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저들의 신체적 특징, 의복, 안색, 음식기구, 연화의 크고 작음 등) 
(4) 극락세계 중생은 어떠한가? 그곳에 왕생한 자는 어떤 종류의 수행으로 일품 일품 아래에서 위로 올라 불도를 이루는가를 설명하려 합니다. 
(5)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내가 아는 사람들로부터 부탁받은 것으로 이곳 사바세계에 살고 있는 그들의 친한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하고자 합니다. 

 


2. 관음에 이끌려 들어감


이것은 1967년 10월 25일의 일이다.
내가 맥사암사에서 좌선 중이었을 때, 어떤 사람이 내 이름을 부른 후 갑자기 그가 나를 잡고 앞으로 달리는데, 나는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기분이 황홀하여졌고 왜 달리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사원을 나오니 나의 마음에, 내가 이미 복건성 덕화현에 도달했음을 알수 있었다. 
 절 밖으로 나와 짐작하기로 200리 떨어진 복건선의 덕화현에 도달하였다.

계속 걷고 또 걸었지만 가는 동안 조금도 힘들지 않았으며 배가 고프지 않았다.  
다만 목이 마를 때 양손으로 받쳐 샘물을 먹었을 뿐이며, 며칠을 걸었는지 알 수 없었다.  
길이 매우 가팔랐으나 힘든 줄 알지 못했고 또한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졸립지도 않았다. 단지 당시에 날이 매우 밝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때 중국은 문화혁명 시기였다. 
내가 덕화현을 지나 구선산이 드러나는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단지 정신이 맑아 옴을 느꼈다.  
내가 그날의 날짜가 며칠이었는가를 안 것은 지나가던 행인의 말 때문이었다.
그 행인이 말하길 그 날은 10월25일이고 문화혁명기라 지방에서 난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야밤을 택해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새벽3시쯤에 내가 길에서 한 노승을 만났는데, 그의 옷이 나와 똑같아 서로 합장배례 하였다.
이 노사가 자기를 소개하되 "나의 법호는 원관이요. 오늘 인연이 있어서 서로 만났으니 같이 구선산에 가서 노니는 것이 어떻겠소?"하여 같은 불제자의 말씀이므로 나 또한 동의하였다.

우리는 함께 계속 위쪽으로 걸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노장은 나의 과거 일을 세세하게 이야기하였다.
지어는 어느 생에는 어디 태어나고, 어느 생에는 어느 곳에 태어났는지까지도 알고 있었다.
후에 노사가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여 7년 후 그 장소에 가서 물어본즉, 각 생의 그 사람이 실제로 다 그 시절, 그 장소에 있었고, 그 분들은 모두 스님이었다.
단지 한 번은 거사였는데 이 사람은 청조의 강희시대에 용방계격촌에 살았고, 이름은 정원사로서 6남 2녀를 낳았다.
그 중 한 사람은 진사를 지냈는데 나중에 그곳에 가서 살펴보니 시간, 묘지 등이 다 실제였으며 현재 자손이 121가에 450여명 이였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순식간에 구선산에 도달했는데 (이 산은 복건성에서 최고로 높은 산이다.)
이 산 가운데 큰 동굴이 있으니 이름하여 미륵동이었다. 굴 안에는 단지 방 한 칸이 있었고 미륵불상을 모시고 있어서 미륵동이라 하였다.
우리가 구선산 정상을 반 정도 올라갔을 즈음, 기이한 경치가 나타나며 눈앞의 길이 돌연 변해버렸다.
주변의 돌은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고 눈앞에 일찍이 본적이 없는 큰 절이 나타나는데 매우 웅장하며 화려한 모습이었다.
대문 위에 금으로 쓴 큰 액자가 하나 보이는데 예전에 보지 못한 글씨였다.

멀리서 네 분의 스님이 홍색의 긴 옷으로 몸을 감고 허리에는 금대를 메고 서계셨다. 그 스님들은 우리 두 사람이 도달하자 일제히 우리를 향해 합장하고 영접하였다. 우리들 또한 함께 인사를 하였다. 이 때 나의 마음속에 '이 스님들의 모습은 내가 일찍이 본적이 없었으니 아마도 라마승이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이 때 그들이 웃으면서 환영하며 우리를 앞으로 인도했다. 산중에 들어서니 몇 개의 전각이 있는데 기이하게도 이 건축물들은 다 빛을 내고 있었다.
각 전각의 장엄함도 가히 볼만하였다.

우리들이 앞으로 나아가자 긴 화랑을 지나게 되었는데, 화랑 양쪽에 여러가지 보지 못한 초목 과실이 울창했다.
얼마가지 않아 우리 일행은 큰 법당에 도달했는데 큰 법당위에는 금 글자가 빛을 내고 있었는데, 이 글은 중국글도 영국글도 아니었다.
원관노사께서 '중천나한' 이라고 일러 주셨다.
이곳은 아마도 나한의 수행장소 같았다. 이 가운데 글자하나는 0모양이었느데 나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원관 노사를 만났을 때는 새벽 3시쯤 이었는데 그때는 이미 하늘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전각 안팎에는 많은 사람이 출입하였으며 피부색이 황, 백, 흑, 청 등 다양하였는데 그 중에 황인종이 제일 많았다.
그들의 기이한 점은 입은 옷이 모두 빛을 내고 있었고, 어떤 이는 무술을 연마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노래하며 춤추기도 하고, 또 어떤이는 정신 수양을 하고, 또 어떤이는 그 모습이 기쁨에 가득차 있었다. 우리들이 그곳에 도착하자 모두 친절함을 나타내고 환영을 표시하였다.

큰 법당 앞으로 나아가자 큰 글자 네 개가 보이는데, 노사께서 '대웅보전'이라는 뜻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두 분의 늙은 화상이 우리를 영접했는데, 한 분 노장은 백발이셨고 한 분은 수염이 많으셨다.
그분들이 원관 노사를 뵙자, 몸을 굽혀 오체투지로써 큰 절을 하였다. 나는 '원관 노사는 틀림없이 보통분이 아닌가보다' 하고 생각하였다. 

법당에 들어가자 기이하게도 단 하나의 불상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공양물만이 가득 놓여있었을 뿐이었다.
객청에 나오니 한 동자승이 두 잔의 물을 가지고 왔는데,
동자의 머리는 두 가락으로 따았으며 몸은 녹색 옷을 걸치고, 허리는 금대를 메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좋아보였다.
그 물은 흰색인데 청량하고 감미로웠다. 내가 반 잔 정도 먹자 원관노사께서도 마시셨다.
그 물을 마신 후 정신이 맑아지고 온몸은 가뿐하여 조금의 피로감도 느끼지 못하였다.
잠시 후 동자가 동으로 된 물통을 가지고 왔기에 세수를 했는데, 심신의 쾌활함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정말 성스러운 경계에 들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객청으로 올라와서 내가 나한동의 노승에게 합장 배례하고 "불교의 장래가 어떻습니까?"라고 간절히 물었다.
노화상께서 묵묵히 글을 쓰셨는데 '佛自心作 敎由魔主불자심착 교유마주'라는 여덟 글자였다.
이것을 상하로 맞추면 36개의 글자가 되는데 불교의 백년 후의 정황이 이 안에 다 있으며 36개의 글자를 연결해 840구가 되면 전 세계의 불교의 장래를 볼 수 있고 불교가 사라진 후에 이것이 멈출 것이라고 설명 하셨다.
이야기를 마친 후, 노승이 나를 다른 방으로 안내하시어 쉬게 하셨다.
방안에 들어서니 침구는 없고 부드럽고 우아하게 생긴 높은 좌대가 여러개 있었다. 그 위에는 자수를 수놓은 보가 덮여있었고, 그 위에 앉아 있으니 몸이 날아갈 듯 상쾌하였다.
 조금 후 원관 조사께서 나를 불러 이야기 하시기를
"내가 너를 데리고 도솔천에 가서, 미륵보살을 친견케하고 너의 스승 허운 화상을 만나도록 해주겠다." 라고 하셨다. 
내가 대답하기를
“매우 좋습니다. 고생이 많으신데, 고맙습니다” 했다.

 대전을 떠날 때 먼저 그 두명의 노화상에게 떠난다는 말을 하려고 생각했는데, 원관법사는 도리어 시간이 없다며 도솔천을 향해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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