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기벤라트

 

제프 기벤라트 씨는 중개업과 대리업을 했다. 다른 마을 사람들에 견주어볼 때, 그에게는 장점이나 특성이랄 것이 없었다. 그의 내면 생활은 속물적이었다. 그가 지녔던 정서는 이미 오래전에 먼지가 되어버렸다. 또한 그의 정신적인 역량은 엄격하게 한계가 그어진 타고난 교활함과 계산적인 술책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어쨌든 이 남자에게는 하나뿐인 아들이 있었다. 이제 바로 그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한스 기벤라트는 의심할 여지 없이 재능 있는 아이였다. 그가 얼마나 섬세하고 남다른지는, 다른 아이들 틈에 끼여 돌아다니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해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아직 한 번도 재간꾼이나 천재를 길러내지 못한 바로 이 오래된 작은 마을에 정말이지 하늘로부터 신비로운 불꽃이 내려온 셈이었다.

이상하게도 마을 사람들의 가장 큰 야심은 자기 아들이 가능하면 대학 공부를 마치고 관료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장래는 이미 결정된 거나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슈바벤 지역에서는 부모가 부유하지 않을 경우 재능 있는 아이들 앞에 단 하나의 좁은 길만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 길은 주 시험에 합격하여 신학교에 입학한 뒤, 거기서 다시 튀빙엔의 수도원에 들어가고, 나중에 목사가 되어 설교단에 서거나 아니면 대학의 강단에 서는 것이었다. 해마다 4,50명의 지방 소년들이 이처럼 평탄하고 안전한 길을 밟는다. 


신학교 시험, 공부가 빼앗은 유년시기

이제 시험날이 다가왔다. 그는 숨을 크게 내쉬며 교정을 나섰다. 소년 한스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광경처럼 여겨졌다. 한스 자신이 유혹에 빠질 만큼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였다. 한스는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오늘은 전혀 공부하지 않아도 괜찮았기 때문에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는 천천히 시장터를 가로질러 낡은 시청을 지나고, 시장 골목을 거쳐 대장간을 지나서 오래된 다리에 이르렀다. 거기에서 한동안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넓은 다리 난간에 걸터 않았다. 그는 여러 달에 걸쳐 매일 네 번씩이나 여기를 지나다녔었다. 그런데도 다리 위에 있는 자그마한 고딕식의 예배당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강물이나 수문, 둑이나 방앗간 등을 전혀 눈여겨보지도 않았었다. 수영터인 초원이나 수양버들이 늘어진 강변도 그냥 지나쳤었다. 그 강변에는 제혁 공장이 들어서 있었다. 강물은 호수처럼 깊고 푸르게, 그리고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끝이 뾰족한 버드나무 가지들은 휘어진 채 강물에 닿을 정도로 깊이 드리워져 있었다. 한스는 여기 보냈던 시간들을 다시 회상해 보았다. 예전에 그는 반나절, 혹은 하루 온종일 수영도 하고, 잠수도 하고, 노도 젓고, 낚시도 했다. 아, 낚시질! 지난해에는 시험 준비 때문에 낚시하는 법조차 거의 잊어버렸다.

소년은 입교식이 행해졌던 지난 일요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엄숙한 예식이 지행되는 동안에도 그리스어의 동사를 외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었다. 다른 경우에도 종종 그런 일이 벌어졌다. 그럴 때마다 한스의 생각은 뒤범벅이 되곤 했다. 학교에서도 그는 눈앞의 놓여 있는 공부 대신에 이미 했거나 아니면 나중에 해야 할 공부를 늘상 생각하고 있었다.
한스는 자기 자신과 교사들의 자랑거리가 된 뒤로 약간 교만해져 있었다. 

만일 시험에서 떨어지게 된다면, 한스는 그 앞에 얼굴도 내밀지 못할 것이다. 침울한 심정으로 집에 돌아온 한스는 언덕에 비스듬히 자리잡은 자그마한 정원에 들어섰다. 거기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하지 않아 거의 허물어져 버린 정자가 서 있었다. 예전에 그는 널빤지로 토끼 집을 만들어 3년 동안이나 토끼들을 길렀었다. 하지만 지난 가을에 그 토끼들도 모두 빼앗기고 말았다. 시험 공부 때문이었다. 그 뒤로 한스는 기분 전환을 위한 시간적인 영유를 좀처럼 갖지 못했다. 

구름의 그림자가 서둘러 골짜기 너머로 흘러가고, 해는 이미 산기슭에 거의 닿아 있었다. 잠시 한스는 몸을 내던진 채 울부짖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 대신에 헛간에서 손도끼를 들고 나와서는 가냘픈 팔로 마구 휘둘렀다. 토끼 집이 산산조각으로 쪼개져 버렸다. 나무 조각들은 이리저리 튕겨올랐고, 철못들은 삐걱 하는 소리를 내며 휘어지고 말았다 지난해 여름에 쓰다 남은 썩은 토끼 먹이들이 밖으로 드러났다. 한스는 닥치는 대로 손도끼를 휘둘러댔다. 마치 토끼와 친구 아우구스트, 그리고 어린 시절의 옛 추억들을 모두 지워버릴 수 있기나 한 것처럼. 

 한스는 자그마한 자기 방에서 불도 켜지 않은 채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자기만의 자그마한 방, 시험이 지금까지 그에게 가져다준 유일한 축복이었다 그 안에서 한스는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지배자였다. 여기서 그는 피곤과 졸음, 두통과 싸우며 시저와 크세노폰, 문법과 사전, 그리고 수학 숙제와 씨름하며 기나긴 저녁 나절을 보냈다. 때로는 공명심에 불타 고집을 부리며 끈덕지게 밀어 부치기도 했고 때로는 절망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도 이 방에서 그는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즐거움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시간들을 보냈었다. 그것은 자부심과 도취, 승리감에 가득 찬, 꿈과도 같은 기이한 시간들이었다. 그때에 그는 학교나 시험, 그리고 다른 모든 것들을 뛰어넘어 보다 높은 존재의 영역을 꿈꾸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뺨이 두툼하고 평범한 학교 친구들과는 다르다는, 더 나은 존재라는 예감이 한스를 사로잡았었다. 언젠가는 속세에서 벗어난 높은 곳에서 우쭐대며 이들을 내려다보네 되리라는, 건방지면서도 행복에 겨운 예감이었다. 

그는 눈에 익지 않은 주위의 환경, 숙모가 입고 있는 도시풍의 옷차림새, 벽에 걸려 있는 큰 무닉의 양탄자, 탁상시계, 벽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 그리고 창밖으로 펼쳐진 시끌벅적한 거리의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벌써 오래전에 집을 떠나온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힘들게 배운 지식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한스는 다시 한 번 불규칙동사를 외워보려고 했지만, 끔찍하게도 거의 아무것도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그 동안 외웠던 모든 지식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바로 내일이 주 시험인데! 

밤에 한스는 깊이 잠들기는 했지만, 힘에 겨울 정도로 무시무시한 꿈에 시달렸다. 그는 117명의 다른 동료들과 함께 시험장에 앉아 있었다.시험관은 고향의 마을 목사나 숙모와 비슷해 보였다. 한스 앞에는 자신이 먹어야 하는 초콜릿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가 눈물을 머금으며 초콜릿을 먹는 사이에 다른 수험생들은 차례로 일어나더니 좁은 문을 통해 나가는 것이었다. 모두들 주어진 초콜릿을 다 먹어치웠다. 하지만 한스의 눈 앞에 놓인 초콜릿 더미는 자꾸 커져갔다. 급기야는 책상과 의자 위로 넘친 나머지 당장이라도 그를 질식시킬 것만 같았다. 

날씨가 무척 무더웠다. 시험장 안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끈질기게 책상 사이를 오가던 감독 교수도 삼베로 만든 손수건으로 여러 차례 얼굴을 닦았다. 한스는 두꺼운 입교식 예복을 입은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따. 결국 그는 별로 달갑지 않은 심정으로 답안지를 제출하고 말았다. 마치 자신이 쓴 답안이 전부 틀리기라도 한 듯이, 그리고 이제 시험을 모두 망치기라도 한듯이. 어쨌든 한스는 시험을 망치고 말았다. 

그는 시내에서 훨씬 떨어진 ‘저울’로 발걸음을 옮겼다. 높이 솟은 덤불 사이로 수심이 깊은 강물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거기서 한스는 옷을 벗고, 조심스럽게 손과 발을 차가운 물 속에 담갔다. 추위에 약간 떨기는 했지만, 그래도 재빨리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한스는 약한 물살을 거슬러 천천히 헤엄쳤다. 요즈음 며칠 사이에 쌓였던 땀과 두려움이 미끄러지듯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강물이 그의 가냘픈 몸을 식히며 어루만지는 동안, 새로운 의욕으로 충만해진 한스의 영혼은 아름다운 고향을 되찾은 것이다. 

이제 한스는 이 모든 사람들에 대해 단지 이름만 기억할 뿐이었다. 이 어둡고 비좁은 골목길의 세계가 그로부터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 대신에 생동감이 넘치는 어떤 다른 체험도 달리 생겨나지는 않았다. 
소년은 현기증을 느끼며 길거리로 나섰다. 길가에 늘어선 보리수와 햇살 아래 펼쳐진 시장터가 시야에 들어왔다. 모든 것이 예전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더 아름답고, 의미깊고, 즐겁게 보였다. 그가 시험에 합격하다니! 더군다나 2등으로 말이다! 처음에 느꼈던 기쁨의 소용돌이가 서서히 걷히고, 차츰 감사의 메아리가 울려퍼졌다. 이제 그는 마을 목사를 피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그는 상급 학교에 올라가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치즈 가게나 사무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한스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눈망울을 번뜩이며 즐거운 기분으로 낚싯대를 다듬었다. 그 일은 낚시질 그 자체에 못지 않은 즐거움을 그에게 안겨주었다. 오후내내, 그리고 밤이 이슥해질 때까지 한스는 그 일에 매달렸다. 헝클어진 희색과 갈색, 녹색의 실을 나누어 꼼꼼하게 살핀 뒤, 끊겨진 실을 잇기도 하고, 서로 뒤엉켜진 매듭을 풀기도 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모양과 크기의 코르크 마개와 깃축을 살펴보기도 하고, 새로 깎기도 했다. 망치질을 해서는 무겁거나 가벼운 자그마한 납덩이들을 틈새를 갖춘 둥근 형태로 만들었다. 그 틈새에 낚싯줄을 끼워 무게를 붙이게 되어 있었다. 다음으로는 낚싯바늘 차례였다. 한스는 서너 개의 낚싯바늘을 보관해 두었었다. 그것들을 네 겹의 검은 재봉실이나 장막현, 그리고 꼬아 엮은 말총끈에 단단히 동여매었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작업이 모두 끝났다. 이제 한스는 7주나 되는 기나긴 방학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그에게는 낚싯대가 전부였다. 그것만 손에 들고 있으면, 혼자서 강가에 앉아 얼마든지 하루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풍경이 얼마나 오랜만이던가! 한스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마치 잃어버린 아름다운 시간을 이제 갑절로 다시 찾으려는 듯이. 그리고 전혀 거리낌이나 두려움 없이 다시 한 번 어린 시절의 세계로 되돌아가려는 듯이. 

 주위는 온통 적막으로 휩싸여 있었다. 다리 위를 달리는 차 소리나 물레방아의 덜그덕거리는 소리도 여기서는 아주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 단지 하이얀 거품이 이는 둑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부드러운 물 소리만이 들려왔다. 조용히, 서늘하게, 졸음에 잠긴 듯이. 그리고 뗏목의 말뚝을 스쳐 도는 물살의 나지막한 소리도 들려왔다. 그리스어와 라틴어, 문법과 문체론, 산수와 암기, 그리고 오랫동안 쉬지도 못한 채 쫓기는 듯이 살아온 1년이라는 세월. 이 모든 괴로운 방황도 졸음에 잠긴 따스한 한나절 속으로 조용히 잠겨버렸다. 

어린 녀석들은 존경어린 표정으로 살그머니 한스 옆으로 기어왔다. 그렇다, 이제 한스는 유명 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는 여느 아이들과는 전혀 달라 보였다. 햇빛에 그을린 가느다란 목덜미 위로 고운 머리가 자연스러우면서도 우아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영혼이 충만한 듯한 얼굴과 남을 압도하는 듯한 눈망울을 가지고 있었다. 
한스는 학교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모습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올해 우리 마을은 초급 신학교의 입학 시험에 단 한 명의 후보자인 한스 기벤라트를 보냈었다. 방금 우리는 그 소년이 2등으로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한스는 신문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가슴은 자부심과 환호성으로 터질 지경이었다.

신학교에서도 다른 학우들보다 앞서기 위해서는 야망과 인내심으로 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스는 꼭 그렇게 되고 싶었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 걸까? 그것은 한스 자신도 알 수 없었다. 
3년 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그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선생들과 마을 목사, 아버지, 특히 교장 선생까지도 격려의 채찍질로 한스를 숨가쁘게 몰아세웠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스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최우등생이었다. 맨 앞에 우뚝 서 있는 한스는 아무도 자기 곁에 다가서지 못하게 발버둥쳤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자부심을 느끼기까지 했다. 

 애당초 한스는 멀리까지 걸어볼 생각이었다. 적어도 뤼첼 저택이나 크로쿠스 초원까지는. 하지만 지금 그는 이끼위에 누워 산딸기를 먹으며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왜 자신이 이처럼 피곤한지 의아스러웠다. 예전에는 서너 시간을 산책하면서도 전혀 피곤을 느끼지 않았었다. 한스는 다시금 힘을 내어 멀리 한 번 걸어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그냥 주저앉아 버렸다. 왜 그런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끼 위에 누운 한스의 시선은 나무 줄기에서 나무 꼭대기로, 그리고 또 다시 푸른 잔디위로 헤매고 있었다. 이 숲의 공기가 왜 그를 이다지도 피곤하게 만드는 걸까! 

 주 시험에 대한 불안감과 승리감으로 인해 사라져버렸던 야망이 다시금 살아나서는 한스에게 조금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동시에 지난 몇 달 사이에 자주 느껴왔던 형용할 수 없는 야릇한 감정이 그의 머릿속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두통이 아니었다. 빠른 맥박과 흥분을 동반한 승리에 대한 조급함이었다. 또한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억제되지 못한 욕망이기도 하였다. 나중에는 어김없이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 시험을 잘 치르고 난 뒤에 별안간 뒤로 쳐지는 경우가 많이 생기는 법이란다. 신학교에선 새로운 과목들을 여러 가지 공부해야 한다. “ 어느새 한스는 또다시 숙제 더미에 깔려 있었다. 어느때는 밤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이를 악물며 과제물을 풀었다. 아버지 기벤라트는 열심히 공부하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지켜보았다. 


 수도원 신학교의 모범생, 한스

수도원의 신학교 문턱을 어머니와 함께 들어선 학생이라면 누구나 평생 동안 이날을 흐뭇한 감동을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되돌아본다. 하지만 한스 기벤라트는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날을 아무런 감동 없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한스 기벤라트는 아홉 명의 학우들과 함께 헬라스 방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날 밤, 처음으로 한스는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싸늘하고 공허한 침실에 들어가 비좁은 침대에 몸을 눕혔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가슴을 짓눌렀다. 한스는 거의 루치우스만큼이나 부지런했다. 그래서 하일너를 제외한 같은 방의 다른 모든 학우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한스는 이러한 일에 전혀 관심이 없어보였다. 카를 하멜이 감정에 겨워 분명하게 자신의 우정을 고백했을 때에도 한스는 깜짝 놀라 뒤로 무럴서고 말았다. 그 뒤에 하멜은 곧바로 스파르타 방에 있는 학우들과 친해졌다. 그래서 한스는 홀로 남게 되었다. 어머니도 없이 엄격한 소년시절을 보내야 했던 한스는 사랑할 수 있는 기질을 읽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겉으로 드러나는 열정에 대하여 일종의 두려움을 느꼈다. 게다가 그에게는 소년다운 자긍심과 하릴없는 공명심이 더해져갔다. 그러다가도 다른 학우들이 우정을 즐기는 모습을 볼 때면, 질투심을 억누르지 못한 채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이 하일너라는 친구는 정말이지 괴짜였다. 그는 시를 쓰는 공상가였다. 한스가 하일너에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한 적이 벌써 한두 번이 아니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하일너는 어지간히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매우 박식하여 어떤 질문에도 훌륭하게 대답할 줄 알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러한 지식을 경멸하고 있었다.

한스는 오후 내내 하일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 한스가 느끼는 고민이나 바람이 그 소년에게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하일너는 자기 나름대로의 사고와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남들보다 더 열정적이고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남다른 고민으로 괴로워하며, 자기를 애워싼 주위 환경을 경멸에 찬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는 낡은 기둥과 담장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있었다. 또한 자신의 영혼을 시구에 반영하고, 호나상에서 자기만의 허구적인 삶을 만들어내는 기이한 비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는 감정이 풍부할 뿐 아니라, 남에게 구속받기를 꺼렸다. 한스가 1년 동안에나 내뱉을 농담을 하일너는 단 하루만에 해내었다. 동시에 그는 우울한 소년이었다. 자기 자신의 슬픔을 낯설고 귀한, 값진 보물처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착하기만 한 기벤라트가 친구 하일너에게는 그저 손쉬운 장난감이나 집에서 애완용으로 기르는 고양이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스도 가끔 그렇게 느낄 때가 있었다. 하지만 하일너는 한스를 필요로 했고, 그래서 그에게 커다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하일너는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줄 누군가를 원했던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어른이 되어가면서 나타나는 이해하기 힘든 어두운 충동이었다. 그럴 때면 하일너는 누군가로부터 동정과 귀여움을 받고 싶은 병적인 욕구를 느꼈다. 예전에 그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던 귀여운 아이였다. 하지만 아직 여자들의 사랑을 받을 만큼 성숙하지 않은 지금에는 온순한 친구만이 그를 위로해 줄 유일한 가능성이었다. 

다음날 아침, 교장 선생은 청소년의 탈선에 대해 멋들어진 연설을 했다. 하일너에게는 무거운 금고형이 내려졌다. 
한스 기벤라트도 하일너의 편을 드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느끼면서도 차마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한스는 자신의 비겁한 행동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불행과 수치심으로 창가에 몸을 숨기고는 부끄러운 나머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친구를 찾아가고픈 마음은 간절했지만,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는 꽤나 신경을 써야 할 판이었다. 수도원에서 무거운 금고형에 처해진 학생이 오랫동안 낙인이 찍힌 거나 다름없었다. 

그는 친구로서의 의무감과 학생으로서의 공명심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다. 그러다가 끝내 지치고 말았다. 그가 지닌 미래의 이상은 남보다 앞서 나아가는 것, 시험에서 훌륭한 성적을 올리는 것, 그리고 나름대로의 주어진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이었다. 물론 감상적이거나 위험한 역할은 아니었다. 한스는 두려움에 싸인 채 방 구석에 틀어박혀 꼼짝도 않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용기를 내어 친구에게로 달려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더 어려워지고 말았다. 급기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배신은 이미 굳어져 버린 것이다. 

잠시 하일너는 기벤라트 곁에 멈추어 섰다. 그러고는 창백하면서 시건방진 모습으로 슬그머니 말을 던졌다. “ 넌 비열한 겁쟁이야, 기벤라트 나쁜놈! “ 그러고는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은 채 나지막이 휘파람을 불며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부끄럽고 아쉬운 감정도 고향에 돌아간다는 흥분과 기쁨으로 이내 뒤덮여버렸다. 한스는 거의 하루 온종일 밖으로 나돌아다녔다. 새옷을 차려 입고, 녹색의 신학교 모자를 쓰고서, 그는 예전에 함께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아주 높은 세계에 우뚝 올라선 것이었다. 

 수도원에서의 우정과 방황의 시작

4년에 걸친 수도원 생활에서 각 학년에 걸쳐 한두 명쯤은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마련이다. 누군가가 죽게 되면, 장송곡과 더불어 땅에 묻히거나 친구들에 의해 고향으로 호송되기도 한다. 때로는 제멋대로 수도원에서 도망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학칙에 어긋나는 엄청난 죄를 지어 퇴학 처분을 받는 학생도 있다. 매우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상급 학년에서는 청춘의 고뇌에 빠진 젊은이가 헤어날 수 없는 방황 끝에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거나 물에 뛰어들어 자살함으로써 짧고 어두운 출구를 찾기도 하는 것이다. 한스 기벤라트의 학년에서도 여러 동료 학우들이 사라져 갔다. 더구나 우연치고는 너무 이상하리만치 모두가 헬라스 방의 학우들이었다. 

1월의 어느 날, 힌딩어는 연못으로 스케이트를 타러 가는 친구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그곳에는 따스한 물이 제법 세차게 솟아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물 위에만 살짝 얼음이 얼어 있었다. 그는 갈대를 헤치고 그리로 들어갔다. 그는 몸집이 작고 가벼웠지만, 기슭 가까이에서 그만 얼음이 깨지고 말았다. 그는 발버둥을 치며 잠시 소리를 질러보았다. 하지만 남의 눈에 띄지도 않은 채 어둡고 차가운 물 속에 빠지고 말았다. 마침내 뻣뻣하게 굳어버린 소년의 자그마한 시체가 발견되어 눈 덮인 갈대 숲에서 들것에 실렸을 때에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뒤였다

슬픔과 추위에 떠는 일행 가운데 한스 기벤라트는 우연하게도 친구 하일너와 나란히 걷고 있었다. 두 소년은 울퉁불퉁한 들판길을 걷다가 그만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 그제서야 서로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죽음의 광경에 소스라친 한스는 잠시만이라도 부질없는 이기심을 떨쳐 버리려고 했을지 모른다. 아무튼 뜻하지 않게 친구의 창백한 얼굴을 가까이서 대하고 보니 말할 수 없이 처절한 마음의 고통이 느껴졌다. 그래서 일시에 치솟는 감정을 억누를 길이 없어 자기도 모르게 친구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하일너는 화를 내며 한스의 손을 뿌리치고는 기분이 상한 듯이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내 몸을 돌리더니 대열의 맨 뒤쪽으로 사라져버렸다. 모범 소년 한스는 가슴이 저리는 듯한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얼어붙은 들판길을 걸어 비틀거리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추위에 새파래진 뺨을 타고 하염없이 쏟아져 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잊을 수도 없고, 또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죄악과 태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재단사의 아들이 이닌, 바로 자신의 친구 하일너가 맨 앞에서 높이 들린 들것 위에 실려가는 것처럼 여겨졌다. 마치 한스의 배신에 대한 고통과 분노를 한몸에 지고 또 다른 세계로 떠나가듯이. 성적이나 시험이나 성공에 의해서가 아니라, 양심의 순결이나 오욕에 의하여 인간이 평가되는 그러한 세계로.

얼마 가지 않아 수도원에는 마법의 주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또다시 선생들의 야단치는 소리가 들리고, 학생들이 꽝 하고 문을 닫는 소리도 커져 갔다. 이미 사라진 헬라스 방의 옛 친구 힌두도 차츰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갔다. 

한스 기벤라트는 목이나 발에 아픈 데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불행한 그날 이후로 더욱 진지하고 성숙해 보였다. 아마도 그의 내면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것 같았다. 이제 그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변해 있었다. 이렇게 다른 세계로 옮겨진 그의 영혼은 낯선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불안에 휩싸인 채 이리저리 방황하며 아직 편히 쉴 곳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선량한 힌두를 잃은 슬픔이 아니었다. 단지 갑작스럽게 되살아난 하일너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 내 말 좀 들어봐” 한스가 말했다. “ 그때 난 겁쟁이였어. 널 그냥 모르는 척했지.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란걸 넌 잘 알고 있잖니. 난 여기 신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가능하다면 최우등생이 되려고 다짐해 왔어. 넌 그걸 공부벌레나 하는 짓이라고 비웃었지. 그래, 나도 네말이 옳다고 생각해. 하지만 어차피 그건 내가 품고 있던 이상이었어. 난 이것보다 더 나은 게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단 말이야” 하일너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한스는 아주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 여길 좀봐. 정말 미안해. 네가 다시 내 친구가 되어줄지 모르지만, 어쨌든 제발 날 용서해 줘!” 하일너는 그냥 눈을 감은 채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기쁨과 정직한 미소가 친구를 향하여 넘치고 있었다. 

그때서야 하일너는 한스의 손을 꼭 쥐며 눈을 떴다. 며칠 뒤에 하일너도 병실을 나섰다. 수도원에서는 새로이 맺어진 우정에 대하여 적지 않은 흥분이 일어났다. 이제 두 소년에게는 놀라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물론 전혀 색다른 경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서로의 존재에 대한 야릇한 행복감과 은밀한 무언의 일체감이 넘치는 그런 나날들이었다. 아무튼 예전과는 달라졌다. 오랫동안 서로 떨어져 있는 사이에 두 소년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한스는 한층 부드럽고, 온화하고, 열정적으로 바뀌었다. 하일너는 더욱 강인하고, 남성다운 기질을 띠게 되었다. 그 동안 두 소년 모두 서로를 무척 그리워해 왔다. 그래서 이들의 재결합은 하나의 커다란 체험이며 값진 선물과 같았다. 조숙한 두 소년은 그들의 우정 속에서 가슴 벅찬 수줍음을 지닌 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첫사랑의 달콤한 비밀을 다른 학우들에 앞서 맛본 것이다. 더욱이 이들의 동맹은 성숙해 가는 남성다움의 거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다른 학우들에 대한 반항심을 양념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이들은 하일너를 꺼리고, 한스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일너와의 우정이 깊어지고, 즐거워져 갈수록 학교는 한스에게 점점 더 낯설게만 여겨졌다. 새로운 행복감이 싱싱한 포도주처럼 용솟음치며 한스의 피와 사상을 꿰뚫고 퍼져나갔다. 지금까지 나무랄 데 없던 모범 학생 기벤라트가 수상쩍은 하일너의 몹쓸 영향 때문에 문제 학생으로 전락해 버린 사실에 대하여 선생들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남과는 다른 두 젊은 소년들의 행위를 위험하다고 여긴 학교 선생들은 이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대신에 어랫동안 유지되어 온 학교 규칙에 따라 곱절이나 엄하게 다스렸다. 히브리어에 가장 열심히었던 한스를 자랑거리로 여겨온 교장 선생만이 그를 구제하기 위하여 허튼 시도를 해보았다. 
한스는 새로이 공부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물론 예전처럼 그리 쉽게 진도가 나가지는 않았다. 그저 너무 뒤로 처지지 않으려고 힘겹게 따라갈 뿐이었다. 이 모두가 우정 때문이라는 사실을 하스 자신도 잘 아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일로 손해를 보았다거나 방해를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소홀하게 대한 모든 것을 보상해 조는 값진 보물처럼 여겼다. 그것은 이전의 무미건조한 의무적인 삶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맡큼 깊은 온정이 깃들인 고귀한 삶이었다. 거기서 한스 자신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처럼 느끼고 있었다. 

그리스어로 씌어진 복음서를 읽을 때에도 한스는 거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모습이 너무나 가깝고 분명하게 느껴진 나머지 놀라움과 두려움에 떨기까지 했다. 마가복음 6장에서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배에서 내리는 장면이 특히 그랬다. <그들은 예수를 곧 알아보고,그리로 달려가니라.> 이 대목에서 한스도 배에서 내리는 인간의 아들 예수를 보았다. 몸이나 얼굴에서가 아니라, 빛이 충만한 크고 빛나는 사랑의 눈으로, 그리고 가볍고 흔드는 가냘프고 아름다운 갈색의 손에서 그를 알아보았다. 그의 손은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영혼에 의해 만들어진 손, 바로 그 영혼이 살아 숨쉬는 손이었다. 그쪽으로 오라고 부르는 듯하기도 하고, 반갑게 반기는 듯하기도 했다. 파도가 일렁이는 호수의 가장자리와 무거워진 어선의 뱃머리가 잠시 한스의 눈앞에 떠 올랐다. 그리고는 겨울철에 연기처럼 내뿜어지는 입김과도 같이 모드 사라져버렸다. 이따금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어 나타났다. 책속에서 동경과 갈망에 사무친 인물이나 역사의 한 부분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살아나 자신의 시선이 생동하는 눈망울에 맺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었다. 한스는 놀라워하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쏟았다. 홀연히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현상들을 바라보며 한스는 자신이 심오한 변화를 겪은 듯한 이상야릇한 착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마치 자신이 검은 대지를 투명한 유리처럼 꿰뚫어보거나, 혹은 신이 자기를 쳐다보기라도 하듯이. 이런 귀중한 순간들은 예기치 않게 다가왔다가 하소연할 틈도 없이 얼른 사라져 버렸다. 낯설고 거룩한 그 무엇이 감도는 순례자나 친근한 스님처럼. 이들에게 말을 걸거나 억지로 머물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스는 이러한 체험들을 혼자 간직하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스는 즐겁지 않은 주위의 변화에 대하여 점점 관심을 잃어갔다. 한때는 촉망받는 학생이었던 한스가 이제는 교장 선생의 냉대와 고의적인 경멸을 감수해야만 했다. 
한스 또한 변해 있었다. 키나 덩치는 하일너와 비슷했지만, 나이는 오히려 더 들어보였다. 예전에는 투명할 정도로 부드럽게 빛나던 이마의 가장자리가 지금은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눈이 움푹 들어가고,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했다. 그리고 손발과 어깨는 뼈만 앙상할 정도로 말라 있었다. 한스는 학교 성적에 대한 불만이 쌓일수록 하일너의 영향을 받아 학우들로부터 차츰 더 멀어져 갔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모범 학생이나 장래의 최우등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학우들을 내려다볼 수도 없었다. 자만심이란 단어가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에게 그런 눈치를 주거나, 아니면 자기 자신이 마음속으로 그렇게 느낄 때면 한스는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예전에 라틴어 학교를 다니던 시절, 한스는 지금과는 다른 눈으로 봄을 바라보았다. 그때에는 생기발랄한 호기심으로 자연의 세계를 낱낱이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새들의 종류를 구별한다거나 움트는 싹을 통하여 관목의 종류를 식별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단지 자연의 커다란 움직임과 여기저기서 싹트는 색깔을 지켜볼 뿐이었다. 한스는 어린 잎사귀들의 향내음을 맡으며 부드럽게 피어오르는 산들 바람을 느꼈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놀라움에 사로잡힌 채 들판을 거닐었다. 

한스는 곧 피곤해졌다. 그래서 당장이라도 드러누워 잠들고 싶은 욕구에 자꾸 빠져들었다. 그는 거의 내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과는 다른 숱한 형상들을 보고 있었다. 한스 자신은 그것들의 정체를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밝고, 부드럽고, 색다른 꿈들이었다. 마치 초상처럼, 낯선 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가로수처럼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렇다고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바라보기 위하여 존재하는 순수한 그림들이 없었다. 하지만 이 그림들을 바라보는 것이 곧 한스에게는 하나의 체험이었다. 다른 공간과 다른 인간들에게 내맡겨진 느낌이었다. 낯선 대지, 밟기 편안한 부드러운 땅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 또한 가볍고 잔잔한, 꿈으로 가득 찬 향료가 스며든 낯선 공기를 호흡하는 느낌이기도 했다. 이러한 그림들 대신에 때로는 어두우면서도 따듯한 감정이 북받쳐올랐다. 마치 가벼운 손길이 그의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듯이.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때, 한스는 정신을 집중하기 위하여 무진 애를 썼다. 그가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 책들은 그림자처럼 그의 손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수업 시간에 히브리어의 단어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수업이 시작되기 30분 전에 예습을 시작해야 했다. 구체적인 관조의 순간들이 자주 나타나기도 했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그 안에 서술된 사물들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들은 바로 옆에 있는 사물보다도 훨씬 더 생동감이 넘치고, 현실에 가까웠다. 한스는 자신의 기억력이 전혀 말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느슨해지고, 희미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절망감에 빠지고 말았다. 

 한스의 학교 생활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엉망진창이 되어 갔다. 선생들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이상한 눈초리로 한스를 흘겨보았다. 한스의 동료들은 그가 너무나도 성적이 떨어진 나머지 결국 최우등생이 되려는 목표를 포기했다는 사실을 벌써부터 감지하고 있었다. 단지 하일너만이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동료 학우들 사이에서 두 소년은 여전히 따돌림을 받고 있었다. 

적지 않은 학생들과 두 명의 선생들까지도 어쩌면 하일너가 자살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이 시각, 하일너는 몇 마일 떨어진 숲속에 누워 있었다. 너무 추워 잠을 이룰 수는 없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자유를 만끽하며 차가운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마치 비좁은 새장에서 빠져나온 한 마리 새처럼 팔다리를 쭉 뻗어보았다. 하일너는 점심 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걸었다. 크니틀링엔에서 얻은 빵을 이따금 한 입씩 뜯어먹으며 봄날의 맑은 나뭇가지들 사이로 밤의 어둠과 별들과 분주하게 떠도는 구름을 쳐다보았다.. 하일너는 적어도 지긋지긋한 수도원에서 도망쳐 나온 것이며 자신의 의지가 그 어떤 지시나 금지령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교장 선생에게 보여준 것이다. 

탈주자 하일너가 붙잡혀 왔을 때, 수도원에는 엄청난 흥분이 일었다. 그는 고개를 꼿꼿하게 쳐들고 다녔다. 짧았던 천재다운 여행을 뉘우치는 기생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빌라는 요구를 거절했다. 교수회의의 비밀 재판에서는 전혀 주저하는 기색도 없이 매우 불손하게 행동했다. 선생들은 하일너를 붙들고자 했으나 그는 이미 도를 넘어버렸다. 그는 명예스럽지 못한 퇴교 처분을 받고, 저녁에 아버지와 함께 두 번 다시 돌아 오지 않을 머나먼 길을 떠났다. 친구 기벤라트와는 단지 악수를 나누며 이별을 아쉬워했을 뿐이었다. 하일너는 떠났고, 또 사라져버렸다. 이 인물과 탈주 사건은 차츰 지난날의 이야기가 되어갔고, 급기야는 하나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뒤에 남은 한스에게는 하일너의 도주를 알고 있었으리라는 의혹의 눈초리가 따라다녔다. 이로 인하여 한스에 대한 선생들의 호의도 이제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심지어 수업 시간에 어느 선생은 한스가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자,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 자넨 왜 그 잘난 친구 하일너와 함께 가지 않았나?” 

들쥐가 저장해 둔 먹이로 살아가듯이 한스는 예전에 익혀둔 지식으로 얼마간 버텨나갔다. 하지만 그것마저 바닥이 난 뒤에는 궁핍한 나날이 시작되었다. 비록 무기력하나마 다시금 새로이 땀을 흘려 곤경에서 잠시 벗어나보기도 했지만, 전혀 희망이 없는 절박한 상황 앞에서는 한스 자신도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성적은 <수>에서<우>로, <우>에서 <미>로, 급기야는 <가>로 내려앉고 말았다. 한스의 두통은 일상사처럼 되어버렸다.


 낙오생, 한스 고향으로 돌아오다

한스에게는 아버지의 편지가 더 큰 상처가 되었다. 교장 선생이 보낸 편지를 일고 너무 놀란 한스의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을 바로잡기 위하여 한스에게 애걸하는하는 투의 편지를 썼다. 한스에게 보낸 아버지의 천지에는 견실한 인간이 구사할 수 있는 모든 격렬와 도덕적인 분노를 담은 상투적인 문구들이 빠짐없이 적혀 있었다.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거기서 애절한 호소의 눈물이 구구절절 흘러나와 아들의 마음을 무척 아프게 했다. 동정심 많은 복습 교사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야윈 소년의 얼굴에 비치는 당혹스러운 미소 뒤로 꺼져가는 한 영혼이 수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불안과 절망에 싸인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학교와 아버지, 그리고 몇몇 선생들의 야비스러운 명예심이 연약한 어린 생명을 이처럼 무참차게 짓밟고 말았다는 사실을 생각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왜 그는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소년 시절에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를 해야만 했는가? 왜 그에게서 토끼를 빼앗아버리고, 라틴어 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동료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는가? 왜 낚시하러 가거나 시내를 거닐어보는 것조차 금지했는가? 왜 심신을 피곤하게 만들 뿐인 하찮은 명예심을 부추겨 그에게 저속하고 공허한 이상을 심어주었는가? 왜 시험이 끝난 뒤에도 응당 쉬어야 할 휴식조차 허락하지 않았는가? 이제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길가에 쓰러진 이 망아지는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오후 수업 시간에 한스는 선생으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들었다. 선생이 계속 욕설을 퍼부어대자, 한스는 그만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그러고는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더니 하염없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수업은 완전히 중단되고, 한스는 반나절이나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 다음날, 수학 선생은 벽에 걸려 있는 칠판에 기하 도형을 그리고 나서 이 도형을 증명하도록 한스를 호명했다. 한스는 그만 칠판앞에서 현기증을 일으키고 말았다. 백묵과 잣대를 들고 아무렇게나 칠판 위에 휘갈겨 쓰다가 필기 도구를 떨어뜨렸다. 그것을 주우려고 몸을 굽혀 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마을 의사는 자신이 돌보는 환자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다는 사실에 몹시 화를 내었다. 그는 한스가 즉시 요양을 위해 휴가를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교장선생은 한스가 요양을 위한 휴가를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혹시 완쾌된다 하더라도, 이미 한참 뒤로 처진 학생이 그 사이에 태만하게 보낸 몇 개월은커녕 몇 주일의 공부조차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교장 선생은 헤어지면서 한스의 힘을 북돋아주기 위하여 <또 만나세>라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헬라스 방에 들어가 텅 빈 세개의 책상을 볼 때마다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던 두 소년과의 이별에 대한 책임의 일부가 혹시라도 자신에게 있지나 않은지, 자못 우울한 생각에 빠져 들었다. 하지만 교장 선생은 담력이 세고 도덕적으로 강인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전혀 이롭지 않은 암울한 의구심을 마음속으로부터 떨쳐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고향 마을이 가까워지면서 문득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마중을 눈앞에 둔 당혹스러운 두려움이 자그마한 여행의 기쁨마저 송두리째 짓밟아버렸다. 시험을 치르기 위하여 슈투트가르트로 갔던 일, 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하여 마울브론으로 떠났던 일, 이러한 추억들이 그때의 긴장과 불안스러운 기쁨과 더불어 또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모든 일들을 해야만 했는가? 한스의 마음은 실망스럽게도 아버지의 바람을 저버렸다는 죄책감 때문에 우울하고 어두워졌다. 지금 한스는 그저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푹 자고, 마음껏 울고, 한없이 꿈에 잠기고 싶었다. 그리고 이 모든 번민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혼자 있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 집에서는 그러한 희망이 실현되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집에서의 첫날, 한스의 아버지의 꾸지람을 듣지 않아 무척이나 기뻤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스는 그것이 짐짓 꾸며진 아버지의 의도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버지는 걱정과 불안을 몰래 감추며 한스를 자상하게 대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이따금 아버지는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리만치 호기심어린 염탐꾼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일부러 누그러뜨린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네면서 한스 몰래 동정을 살폈다. 한스는 점점 더 움츠러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처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따금 호전된 기미가 보이기도 했지만, 아무튼 한스의 건강 상태는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자꾸 악화되어 가는 것만 같았다.

한스는 이제 비로소 지난 2년 동안의 라틴어 학교 시절에 친구를 한 명도 제대로 사귀지 못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당시의 동료 학우들은 이미 고향을 떠나버렸거나, 아니면 견습공이 되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한스는 이들 가운데 어느 누구와도 친분을 맺지 못했다. 그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고, 그들 또한 한스에게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라틴어 선생과 마을 목사도 길거리에서 한스를 만날 때에는 친근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하지만 한스는 그들에게 실상 무가치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무언가를 가득 채워넣을 수 있는 그릇도 아니었고, 다양한 종류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논밭도 아니었다. 한스를 위하여 시간을 낸다거나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아버지 기벤라트 역시 한스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기 위하여 나름대로 무진 애를 쓸 뿐, 한스의 친구나 위로자가 되지는 못했다. 

이렇듯 고통과 고독에 내맡겨진 병든 소년 한스에게 위로자의 가면을 쓴 또 다른 유령이 다가왔다. 그리고 점차 그와 친숙하게 되어 급기야는 자신과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것은 다름아닌 죽음에 대한 생각이었다. 권총을 구한다거나 숲속 어딘가에 밧줄을 매단다거나 하는 일은 물론 어렵지 않았다. 이러한 생각은 거의 매일 같이 한스의 산책길을 따라다녔다. 한스는 조용하고 외딴장소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던 끝에 편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곳을 발견하고는 죽음의 보금자리로 정해 놓았다. 그리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거기에 찾아갔다. 머지 않아 사람들이 멀리서 자신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리라는 상상을 하며 이상야릇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밧줄에 매달 나뭇가지도 마음속으로 정해 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몸무게를 충분히 지탱할 수 있는 지도 시험해 보았다. 이제는 한스의 가는 길에 아무런 장애물도 놓여 있지 않았다. 시간을 두고 아버지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와 헤르만 하일너에게 보내는 무척 긴 편지를 썼다. 나중에 이 편지들은 한스의 주검 옆에서 발견될 것이다. 이제 모든 준비가 확실하게 갖추어졌기 때문에 한스에게는 여느 때와는 달리 평안이 깃들이기 시작했다.
<숙명적인>나뭇가지 아래 앉아 있노라면, 여지껏 그를 짓누르던 압박감은 어느새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기쁨에 넘치는 환희가 그에게로 몰려들었다. 왜 진작 저 나뭇가지에 목을 매달지 않았던가! 그의 생각은 돌처럼 굳어졌고, 이미 죽음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한스는 얼마 동안이나마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구라도 먼 여행길을 떠나지 전에 기꺼이 그러하듯이, 이 마지막 날들의 아름다운 햇빛과 고독한 몽상을 마음껏 맛보려고 했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도록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예전부터 낯익은 주위 환경에 여전히 머물면서 자신의 위험천만한 결심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은 남다른 쓰라린 쾌감을 주었다. 

어느 날, 한스는 나른하고 울적한 심정으로 정원에 있는 잣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그리고 지금 막 머릿속에 시구 하나가 떠올랐다. 그는 라틴어 학교 시절에 배운 오래된 시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꾸 흥얼거렸다. 아, 나는 피곤합니다. 아, 나는 지쳤습니다. 지갑에는 돈 한 푼 없고, 주머니에도 없습니다. 그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선율에 맞춰 아무 생각도 없이 스무 번씩이나 이 시구를 주절거렸다. 때마침 창가에 서 있던 아버지는 이 노래를 듣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단조로운 가락에 무의미해 보이는 이런 노래가 감정이 메마른 아버지에게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며 아들의 증세를 정신박약의 불치병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랑, 그리고 상처

하지만 그녀를 볼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미로움과 따스함이 느껴졌던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서글프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모든 것들이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훨씬 더 아름답고, 즐거웠으며, 활기가 넘쳐흘렀다. 벌써 오래전부터 한스는 라틴어와 역사, 그리스어와 시험, 신학교, 그리고 두통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동화책도 있었고, 도둑 이야기가 적힌 책도 있었다. 자그마한 정원에는 한스가 손수 매달아놓은 절구 물레방아가 돌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 무렵이면 나숄트 집안의 현관 앞에 모여 리제의 모험담을 듣기도 했다. 

조숙한 소년 한스는 이제 병든 나날 속에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또 하나의 유년기를 체험하게 되었다.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아쉬워하는 그의 동심은 지금 갑자기 끓어오르는 동경과 더불어 저 꿈결같이 아름다운 시절을 향하여 다시 줄달음쳤다. 그리고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듯이 추억의 숲을 헤매고 다녔다. 그 추억은 지나치리만치 강하고 뚜렷한 나머지 병적이기까지 했다. 한스는 자신이 직접 몸으로 체험했던 과거에 못지 않은 애정과 열정으로 이 모든 것들은 다시 받아들였다. 기만과 억압에 짓눌린 한스의 소년 시절은 마치 오랫동안 막혀 있던 샘물이 터져나오듯이 그의 마음속에서 솟구쳐 올랐다. 줄기를 잘라낸 나무는 뿌리 근처에서 다시 새로운 싹이 움터 나온다. 이처럼 왕성한 시기에 병들어 상처입은 영혼 또한 꿈으로 가득 찬 봄날 같은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마치 거기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내어 끊어진 생명의 끈을 다시금 이을 수 있기라도 한 듯이. 뿌리에서 움튼 새싹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지만, 그것은 단지 겉으로 보여지는 생명에 불과할 뿐, 결코 다시 나무가 되지는 않는다. 한스 기벤라트도 그랬다.

예전에 신학교 학생이었던 한스는 여전히 창백한 얼굴로 날마다 밖으로 돌아다녔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이웃과 어울릴 수 있었지만, 그는 전혀 내키지도 않았고, 몸도 무척이나 피곤했기 때문에 일부러 교제를 피했다. 의사는 그의 건강을 위해 물약, 간유, 달걀과 냉수욕을 권했다. 
처음에 느꼈던 혼란스러운 상념들도 차분하게 가라앉고, 한스 자신도 더 이상 자살을 염두에 두지 않게 되었다. 그 뒤로 한스는 변덕스러운 흥분과 불안 상태로부터 잔잔한 우울증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녀와 스칠 때마다 그의 심장은 두려움에 가득 찬 기쁨으로 인해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달콤한 행복감에 온몸이 나른해졌다. 그의 무릎이 약간 떨리고, 그의 머릿속에서는 뭔가 윙윙 소리를 내며 도는 것 같은 현기증이 났다. 한스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그녀와 이야기를 주고받던 한스는 그녀가 웃을때면 같이 웃고, 그녀가 엉뚱한 소리를 할 때면 손가락을 내뻗으며 짐짓 겁을 주기도 했다.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기껏해야 그저 어렴풋이 예감할 뿐이었다. 그의 가슴속에 타오르는 불안과 달콤한 고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뇌와 환희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하지만 그의 쾌락은 참신한 사랑의 힘, 그리고 생동감이 넘치는 생명에 대한 최초의 예감을 의미했다. 그의 고통은 아침의 평화가 깨어지고, 자신의 영혼이 두 번 다시 찾지 못할 어린 시절의 세계를 이미 떠나버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난파를 간신히 벗어난 한스의 가벼운 조각배는 이제 새로운 폭풍과 입을 벌린 채 기다리고 있는 심연, 그리고 극도로 위험한 암초에 점점 가까이 빠져들고 있었다. 지금까지 올바른 지도를 받아온 젊은이라 할지라도 이제는 안내자의 도움 없이 자기 자신의 힘으로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한스는 가슴속에서도 이상하리만치 굳건한 감정과 처음 느껴보는 눈부신 희망의 파도가 세차게, 불안하게, 그리고 달콤하게 굽이쳤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단지 하나의 꿈에 지나지 않으며 결코 실현될 수 없다는 겁에 질린 절망적인 불안감이 그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이 모순적인 감정은 희미하게 솟구치는 샘물이 되어 있었다. 몹시도 강렬한 그 무엇이 한스의 가슴 깊숙이 묶여진 사슬을 끊고, 자유를 만끽하려는 듯했다. 그것은 아마도 흐느낌이거나 노래거나 부르짖음이거나, 아니면 떠들썩한 웃음이었을 것이다. 이 흥분된 감정은 겨우 집에 돌아와서야 조금 가라앉았다.

저녁 식사 때, 한스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버린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예전부터 익숙해져 있는 환경 한가운데 자신이 앉아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이상하게 여겨졌다. 아버지와 늙은 하녀, 식탁, 그리고 방 안에 있는 모든 세간살이들이 갑자기 낡아빠진 것처럼 생각되었다. 마치 긴 여행에서 방금 집에 돌아온 사람처럼 놀랍고, 서먹하면서도 다정스러운 느낌으로 이 모든 것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죽음을 부르는 나뭇가지에 추파를 던질 때만해도 한스는 작별을 고하는 자의 애절한 우월감을 가지고, 지금과 다름없는 사람들과 사물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금 과거로 되돌아와 놀라움에 미소지으며 잃었던 현실을 되찾은 것이다. 

너, 무슨 일이지?” “ 아무것도 아냐” 그녀가 한스에게 <너>라고 불렀을 때, 그는 마치 그녀의 손이 자신의 살갗을 어루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한테 뽀뽀해 주겠니?” 그녀의 밝은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마치 한스의 생명을 삼켜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녀의 입이 자신의 입을 내리누르며 탐욕스럽게 빨아대는 것이었다. 한스는 나락에 빠져드는 듯한 나른한 느낌이 들었다. 낯선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그처럼 전율에 휩싸인 환희는 견디기 힘든 피곤과 고통으로 변해 있었다. 엠마가 그의 입술을 자유롭게 놓아주었을 때, 한스는 비트적거리며 경련을 일으키는 듯한 손가락으로 울타리를 꼬옥 붙들었다. 

한스는 왜 하필이면 오늘 그날 밤이 생각나는지, 왜 그 추억이 이처럼 아름답고 강렬한지, 왜 그 추억이 자신을 이다지도 비참하고 슬프게 만드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별을 고하기 위하여, 이미 흘러가 버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큰 행복의 가시바늘을 남기기 위하여 자신의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이 추억의 옷을 입고 즐겁게 미소지으며 자기 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단지 그는 이 추억이 어젯밤에 있었던 엠마에 대한 기억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옛날의 행복과 일치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가만히 앉아 그녀가 하는 대로 자신을 내맡겼다. 달콤한 전율과 행복한 불안이 그를 휘감았다. 이따금씩 열병을 앓는 환자처럼 가냘프게 몸을 떨기도 했다. “ 넌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를 애인이야! “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 너무 겁이 많은 거 아니니!” 

“ 이젠 집에 가봐야 돼” 비틀거리며 일어서려다가 하마터면 지하실의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질 뻔했다. “ 왜 그래?” 엠마가 놀라서 물었다. “ 나도 모르겠어. 너무 피곤해” 한스는 그녀가 정원 울타리까지 자기를 꽉 껴안고, 부축해 주었다는 사실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녀가 작별 인사를 하는 소리도, 그의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도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골목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어떻게 왔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다리위에서 한스는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너무나도 피곤한 나머지 어쩌면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난간에 걸터앉아 강물이 다리 기둥에 부딪히는 소리와 둑에서 거품이 이는 소리, 그리고 물레방아가 도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손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가슴과 목구멍에서는 피가 막혀 있다가 갑자기 터져 나왔다. 눈앞이 캄캄해지기도 했다. 피가 다시 심장을 향해 용솟음칠 때는 어지러웠다. 

그녀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작별인사도 없이 떠나버린 것이다. 한스가 어젯밤에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벌써 언제 떠날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미소와 입맞춤, 그리고 그녀의 능숙한 몸놀림을 떠올려보았다. 그녀는 한스를 전혀 진실된 마음으로 대하지 않았다. 분노에 찬 고통과 더불어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사랑의 힘은 흥분과 불안에 감싸인 채 음울한 번민으로 바뀌었다. 한스는 집에서 정원으로, 정원에서 거리로, 거리에서 숲으로, 그리고 다시 숲에서 집으로 헤매며 다녔다. 이렇게 해서 한스는 자신 속에 숨겨져 있던 사랑의 비밀을 너무나도 빨리 알고 말았다. 그것은 달콤하다기보다는 차라리 쓰디쓴 맛이었다. 한스는 불안에 싸인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려고 발버둥쳤다. 


 일탈과 최후

처음에는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금요일이 마침내 다가왔다. 지금 한스는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푸른 작업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게르버 거리를 따라 일터로 향했다. 한스는 제법 새까매진 자신의 손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작업장이 마음에 들기는 했지만, 피곤에 지친 나머지 그저 쉬고 깊은 생각뿐이었다. 두 손은 타는 듯이 아팠고, 물집은 더 커져 버렸다. 주인은 기분이 나빴는지 사소한 일에도 툭하면 욕설을 퍼부어댔다. 아우구스트는 며칠만 지나면 물집이 없어진다고 한스를 위로해 주었다

 몇 달만에 처음으로 일요일이 주는 기쁨을 실컷 맛보았다. 평일에 손이 시꺼매지고, 팔다리가 피곤해지도록 일을 하고 난 뒤라야 일요일의 거리는 축제 분위기로 들뜨고, 태양은 더욱 밝게 빛나고, 모든 것이 보다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었다.한스 또한 그것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이 이들 무리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다. 맥주 맛은 일품이었다. 상큼하고, 그리 쓰지도 않았다. 한스도 즐거이 자기 술잔을 비웠다. 인생을 알고 즐길 줄 아는 사람들과 함께 주점의 식탁에 앉아, 당연히 그럴 만한 자격을 지닌 사람처럼 유쾌한 일요일을 보낸다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함께 웃기도 하고, 간혹 용기를 내어 농담을 던져보는 것도 신나는 일이었다. 술을 다 들이키고 나서 잔을 식탁위에 힘껏 내리치며 아무 거리낌 없이 소리를 질러대는 것도 신나는 일이었다. “ 

한스는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술에 취한 김에 용기를 내어 모자를 약간 삐딱하게 쓰고 나니 정말이지 건달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온 직공은 다시금 용감무쌍하게 휘파람을 불어대기 시작했고, 한스는 그 휘파람 박자에 발걸음을 맞추려고 했다. 그는 갑자기 몸이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방이며 식탁, 술병이며 술잔, 그리고 동료들이 부드러운 갈색의 구름 속으로 자꾸만 녹아들고 있었다. 한스가 정신을 바짝차릴 때에난 희미하게 윤곽이 드러날 뿐이었다. 이따금 이야기나 웃음이 드높아질 때면, 한스도 큰 소리로 함께 웃거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주절거렸다. 또한 건배를 하려고 함께 술잔을 부딪치기도 했다. 한 시간 가량이 지난 뒤, 놀랍게도 그의 술병은 비어 있었다. “ 제법 마시는데” 아우구스트가 말했다. “ 한 잔 더 할래?” 한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처럼 마셔대는 것이 적이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해 오던 터였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온 직공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모두들 함께 노래를 불렀다. 한스도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러댔다. 
하지만 한스에게는 주위의 말소리가 서로 뒤섞여 가물거릴 뿐이었다. 술을 거의 두 병째 비울 즈음에는 말하는 것뿐 아니라, 웃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그는 새장으로 가서 곤줄박이새를 놀려주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두 발짝을 채 디디기도 전에 머리가 어지러워져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한없이 들떠 있던 흥겨운 기분도 차츰 가라앉기 시작했다. 한스는 자신이 거나하게 취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술을 마셔대는 것도 더 이상 즐겁지가 않았다. 저 멀리서 온갖 불행이 한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버지와의 한바탕 말다툼,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작업장에 출근해야 하는 일. 차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한스는 남아 있던 나머지 술을 들이켰다. 목구멍에서는 타는 듯한 느낌이 올라오고,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지고, 또 구역질이 나기도 했다. 그는 혼자서 비틀거리며 계단을 내려와서는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마을로 나왔다. 가옥이며 울타리, 뜰이 모두 기울어진 채 그의 곁을 빙빙 돌며 스쳐 지나갔다. 한스는 사과나무 아래 이슬에 젖은 풀밭에 드러누웠다. 온갖 불쾌한 감정과 고통스러운 불안감, 혼돈에 싸인 상념 때문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자신이 더럽혀지고, 모욕을 당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 갈 수 있을까?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내일 나는 어찌 될 것인가? 그는 너무나도 낙심하여 자신이 처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영원히 쉬고, 잠들고, 또 부끄러워해야 할 것만 같았다.

노래가 채 끝나기도 전에 가슴이 저리도록 아파왔다. 어렴풋한 상념과 추억들, 수치심과 자책감이 음울하게 물결치며 한스를 뒤덮었다. 한스는 큰 소리로 흐느끼며 풀밭에 쓰러졌다. 한 시간 뒤에는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한스는 몸을 일으켜 불안한 걸음걸이로 힘겹게 언덕을 내려갔다. 

기벤라트 씨는 저녁 식사 때가 되었는데도 아들이 돌아 오지 않자, 혼자서 욕설을 퍼부었다. 9시가 되어도 한스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10시에 아버지는 현관문을 잠가버렸다.

 같은 시각, 아버지가 마음속으로 그토록 꾸짖던 한스는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검푸른 강물을 따라 골짜기 아래로 조용히 떠내려가고 있었다. 구역질이나 부끄러움이나 괴로움도 모두 그에게서 떠나버렸다. 어둠 속에서 흘러 내려가는 한스의 메마른 몸뚱이 위로 푸른 빛을 띤 차가운 가을밤의 달빛이 비치고 있었다. 시꺼먼 강물은 그의 손과 머리, 그리고 창백한 입술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날이 밝기 전에 먹이를 구하려고 나선 겁많은 수달이 교활한 눈초리를 번뜩이며 그의 곁을 소리없이 지나갔을 뿐, 어느 누구도 그를 보지 못했다. 그가 어떻게 물에 빠지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길을 잃고, 가파른 언덕에서 발을 헛디뎠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다가 몸의 중심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혹시나 아름다운 강물에 이끌려 그 위로 몸을 굽혔는지도 모른다. 평화와 깊은 안식이 가득한 밤, 그리고 창백한 달빛이 그를 향해 비추었기 때문에 피곤함과 두려움에 지친 나머지 어찌할 수 없이 죽음의 그림자가 휘말려들었는지도 모른다. 
한낮이 되어서야 사람들은 한스를 찾아내어 집으로 데리고 왔다. 깨끗한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아들은 변함없이 고운 이마와 창백하고 영리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여느 사람들과 다른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신의 천부적인 권리라도 되는 듯이. 이마와 두 손의 살갗은 약간 푸르스름하고 불그레하게 긁혀져 있었다. 곱상한 얼굴은 고이 잠들어 있었다. 두 눈은 하이얀 눈꺼풀로 덮여 있었고, 꼭 다물어지지 않은 입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거의 즐겁게 보이기까지 했다. 이 소년은 한창 피어오르는 꽃다운 나이에 갑자기 꺾여 즐거운 인생의 행로에서 억지로 벗어난 듯한 모습이었다. 피곤과 외로운 슬픔에 지친 한스의 아버지도 미소짓는 무언의 환멸 속으로 빠져들었다. 

 구둣방 아저씨는 묘지 문을 나서는 프록코트의 신사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 저기 걸어가는 신사 양반들 말입니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 저 사람들도 한스를 이 지경에 빠지도록 도와준 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