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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증시랑 천유가 질문하는 글 

[그 잘못을 설명하고, 법의 요체를 공경히 청함]

1-01 
 제(開 : 증시랑의 이름)가 예전에 장사에 있을 때 원오극근 선사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원오 노사께서 스님을 언급하시며 늘그막에 서로 만났는데, 얻은 바가 매우 훌륭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번번이 떠올린지도 이제 8년이 되었습니다. 가르침*을 친견하고 듣지 못하는 것을 항상 한탄하면서 그저 우러르는 마음만 간절합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발심하여 선지식을 참례하고 이 본분사를 여쭈어 왔는데, 약관의 나이가 된 이후로는 혼인하고 벼슬하며 일에 매여 공부가 순일하지 못했습니다. 그렁저렁 지내다보니 이제 나이만 먹어서 들은 것은 없으니, 늘 스스로 부끄러워 한숨만 나옵니다.

1-02 
 그렇다고 제가 뜻을 세우고 발원한 것이 사실 얕은 지견(智見) 에 있지는 않습니다. 깨닫지 못하면 그만이겠지만, 깨닫기만 한다면 옛 사람들이 몸소 증득한 곳에 바로 이르러야 크게 쉬는 경지가 되어서 공부가 끝나겠지요. 이런 마음이 일찍이 한 순간도 물러난 적이 없었지만, 공부가 끝내 순일하지 못했음을 스스로도 알고는 있습니다. 의지와 원력은 컸지만 역량은 작다고 할 수 있습니다.

1-03
 지난날 원오 노스님께 간절히 구하였더니, 노스님께서는 여섯 종류의 법어를 보이셨습니다. 처음에는 이 본분사를 바로 보이셨고, 이후에는 조주 선사의 방하착과 운문 선사의 수미산 화두 인연을 들어서 미련하게 공부하도록 하셨습니다. 항상 스스로 거각하고 오래오래 하다보면 반드시 들어가는 곳이 있을 거라 하셨습니다. 노파심이 간절하게 이처럼 상세하게 알려주셨지만, 우둔하여 어리석음이 몹시 심하니 어찌하겠습니까.


1-04
 이제 다행히 집안의 번다한 인연들이 모두 마무리하고 한적하게 지내니 별다른 일은 없습니다. 정말로 사무치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처음 발심한 뜻을 이루고자 하니, 가까이에서 가르침을 받지 못한 것이 그저 한스러울 뿐입니다.
 일생의 잘못과 허물은 제가 하나하나 말씀드린 것과 같으니, 반드시 이 마음 환하게 아실 것입니다. 꼼꼼하게 이끌어 경책해 주시기 바랍니다. 평소 어떻게 공부를 이어가야 다른 길로 가지 않고 곧바로 본지풍광에 서로 계합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도 잘못과 허물이 적지 않겠지만, 그저 정성을 바칠 뿐입니다. 스스로 숨을 수도 도망갈 수도 없으니 참으로 불쌍하다 하겠습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여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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