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천서편 (天瑞篇)
열자의 삶과 철학
열자가 정나라의 동산에 살았는데, 40년 동안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라의 군주와 고관대작들도 그를 평범한 백성처럼 대했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자, 열자는 위나라로 떠나려 했다. 제자들이 말했다.
"스승님, 가시면 돌아오실 날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감히 여쭙겠습니다. 스승님께서는 무엇을 가르쳐 주시려 하십니까? 스승님은 호구자림의 말을 들으셨습니까?"
열자는 웃으며 말했다.
"호구자림이 무슨 말을 했겠는가? 비록 그러하지만, 그가 백혼모인에게 말한 것을 내가 곁에서 들었으니, 너희에게 전해 주겠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생명을 낳는 것이 생명을 낳지 않는 것이고, 변화를 이루는 것이 변화를 이루지 않는 것이다. 생명을 낳지 않는 것이 생명을 낳는 것이고, 변화를 이루지 않는 것이 변화를 이루는 것이다. 생명을 낳는 것은 생명을 낳지 않을 수 없고, 변화를 이루는 것은 변화를 이루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항상 생명을 낳고 항상 변화를 이룬다. 항상 생명을 낳고 항상 변화를 이루는 것은, 어느 때나 생명을 낳고 어느 때나 변화를 이루는 것이다. 음양이 그러하고, 사시(四時)가 그러하다. 생명을 낳지 않는 것은 의심스러운 홀로 존재하는 것이고, 변화를 이루지 않는 것은 왕복하는 것이다. 그 경계는 끝이 없고, 의심스러운 홀로 존재하는 그 도는 다할 수 없다. 《황제서》에 이르기를, "곡신(谷神)은 죽지 않으니, 이를 현빈(玄牝)이라 한다. 현빈의 문은 천지의 뿌리라 한다. 끊임없이 존재하는 듯하나, 쓰임에 지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므로 생명을 낳는 것은 생명을 낳지 않고, 변화를 이루는 것은 변화를 이루지 않는다. 스스로 생명을 낳고 스스로 변화를 이루며, 스스로 형체를 이루고 스스로 색깔을 내며, 스스로 지혜를 내고 스스로 힘을 내며, 스스로 소멸하고 스스로 쉰다. 이를 생화(生化), 형색(形色), 지력(智力), 소식(消息)이라 하는 것은 아니다.'"
천지의 생성과 변화
열자가 말했다.
"옛날 성인들은 음양을 통해 천지를 통일했다. 형체가 있는 것은 형체가 없는 것에서 나왔다. 그러면 천지는 어디에서 생겨났는가? 그러므로 태역(太易), 태초(太初), 태시(太始), 태소(太素)가 있다고 말한다. 태역은 아직 기운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이고, 태초는 기운이 시작된 상태이며, 태시는 형체가 시작된 상태이고, 태소는 질료가 시작된 상태이다. 기운과 형체와 질료가 갖추어졌지만 아직 서로 분리되지 않았으므로, 이를 혼륜(渾淪)이라 한다. 혼륜이란 만물이 서로 뒤섞여 있지만 아직 분리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이를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따라가도 얻을 수 없으므로, 이를 역(易)이라 한다. 역은 형체가 없고, 역이 변하여 하나가 되고, 하나가 변하여 일곱이 되고, 일곱이 변하여 아홉이 된다. 아홉이 변하는 것은 끝에 이르는 것이니, 다시 변하여 하나가 된다. 하나는 형체가 변하는 시작이다. 맑고 가벼운 것은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고, 탁하고 무거운 것은 아래로 내려가 땅이 된다. 충화(衝和)의 기운은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천지는 정기를 품고 만물이 변화하여 생겨난다."
천지와 만물의 역할
열자가 말했다.
"천지도 완전한 공능이 없고, 성인도 완전한 능력이 없으며, 만물도 완전한 쓰임이 없다. 그러므로 하늘의 직분은 생명을 덮어주는 것이고, 땅의 직분은 형체를 받쳐주는 것이며, 성인의 직분은 가르치고 변화시키는 것이고, 만물의 직분은 각각 적합한 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도 부족한 점이 있고, 땅도 뛰어난 점이 있으며, 성인도 부족한 점이 있고, 만물도 통달한 점이 있다. 왜냐하면 생명을 덮어주는 것은 형체를 받쳐주지 못하고, 형체를 받쳐주는 것은 가르치고 변화시키지 못하며, 가르치고 변화시키는 것은 각각 적합한 바를 어기지 못하고, 적합한 바를 이루는 것은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지의 도는 음양이 아니면 없고, 성인의 가르침은 인의(仁義)가 아니면 없으며, 만물의 적합한 바는 유연함과 강함이 아니면 없다. 이 모두는 각각 적합한 바를 따르면서도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을 낳는 것이 있고, 생명을 낳는 것을 낳는 것이 있으며, 형체를 이루는 것이 있고, 형체를 이루는 것을 이루는 것이 있으며, 소리를 내는 것이 있고, 소리를 내는 것을 내는 것이 있으며, 색깔을 내는 것이 있고, 색깔을 내는 것을 내는 것이 있으며, 맛을 내는 것이 있고, 맛을 내는 것을 내는 것이 있다. 생명을 낳는 것이 낳은 것은 죽지만, 생명을 낳는 것을 낳는 것은 끝나지 않는다. 형체를 이루는 것이 이루는 것은 실재하지만, 형체를 이루는 것을 이루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소리를 내는 것이 내는 것은 들리지만, 소리를 내는 것을 내는 것은 발하지 않는다. 색깔을 내는 것이 내는 것은 드러나지만, 색깔을 내는 것을 내는 것은 나타나지 않는다. 맛을 내는 것이 내는 것은 맛보지만, 맛을 내는 것을 내는 것은 드러나지 않는다. 이 모두는 무위(無爲)의 직분이다. 음양을 할 수 있고, 유연함과 강함을 할 수 있으며, 짧음과 길이를 할 수 있고, 둥글고 네모를 할 수 있으며, 생명과 죽음을 할 수 있고, 더위와 추위를 할 수 있으며, 뜸과 가라앉음을 할 수 있고, 궁(宮)과 상(商)을 할 수 있으며, 나오고 들어감을 할 수 있고, 검음과 노랑을 할 수 있으며, 달콤함과 쓴맛을 할 수 있고, 비린내와 향기를 할 수 있다. 알지 못하고, 할 수 없지만,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 할 수 없는 것이 없다."
열자의 위나라 여행
열자가 위나라로 가던 중, 길에서 식사를 하다가 백세 된 해골을 보았다. 그는 풀을 헤치며 가리키며 제자 백풍에게 말했다.
"나와 그만이 죽지도 않고 살지도 않음을 안다. 이것이 지나친 양육인가? 지나친 기쁨인가? 종류에는 몇 가지가 있다. 개구리가 되면 메추라기가 되고, 물을 얻으면 도롱뇽의 옷이 된다. 언덕에 나면 고사리가 되고, 고사리가 퇴비를 얻으면 오족(烏足)이 된다. 오족의 뿌리는 거저리(蠐螬)가 되고, 잎사귀는 나비가 된다. 나비는 곧 벌레가 되어 아궁이 아래에서 태어나는데, 그 모습은 벗은 듯하고, 이름은 구탈(句掇)이라 한다. 구탈은 천 일이 지나면 새가 되는데, 이름은 건여골(乾余骨)이라 한다. 건여골의 침은 사미(斯彌)가 되고, 사미는 식혜(食醯) 이로(頤輅)가 된다. 식혜 이로는 식혜 황광(黃軦)에서 나오고, 식혜 황광은 구유(九猷)에서 나온다. 구유는 모예(瞀芮)에서 나오고, 모예는 부환(腐蠸)에서 나온다. 양의 간은 지고(地皐)가 되고, 말의 피는 전린(轉鄰)이 된다. 사람의 피는 야화(野火)가 된다. 매는 참매가 되고, 참매는 뻐꾸기가 된다. 뻐꾸기는 오래되면 다시 매가 된다. 제비는 조개가 되고, 들쥐는 메추라기가 된다. 썩은 오이는 물고기가 되고, 늙은 부추는 비름이 된다. 늙은 염소는 원숭이가 되고, 물고기의 알은 벌레가 된다. 단원(亶爰)의 짐승은 스스로 임신하여 낳는데, 이를 류(類)라 한다. 강가의 새는 보기만 해도 낳는데, 이를 아조(兒鳥)라 한다. 순수한 암컷은 대요(大要)라 하고, 순수한 수컷은 치봉(穉蜂)이라 한다. 사모하는 남자는 아내가 없어도 감응하고, 사모하는 여자는 남편이 없어도 임신한다. 후직(后稷)은 거대한 발자국에서 나왔고, 이윤(伊尹)은 빈 뽕나무에서 나왔다. 궐소(厥昭)는 습기에서 나왔고, 식계(醯雞)는 술에서 나왔다. 양해(羊奚)는 불손(不荀)과 비슷하고, 구죽(久竹)은 청녕(靑寧)을 낳고, 청녕은 정(程)을 낳고, 정은 말을 낳고, 말은 사람을 낳는다. 사람은 오래되면 기계(機)에 들어간다. 만물은 모두 기계에서 나오고, 모두 기계에 들어간다."
《황제서》의 가르침
《황제서》에 이르기를, "형체가 움직여도 형체를 낳지 않고 그림자를 낳고, 소리가 움직여도 소리를 낳지 않고 울림을 낳으며, 무(無)가 움직여도 무를 낳지 않고 유(有)를 낳는다."고 했다. 형체는 반드시 끝나는 것이다. 천지는 끝나는가? 나와 함께 끝난다. 끝나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도는 끝나지만 처음이 없고, 나아가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생명이 있으면 다시 생명이 없어지고, 형체가 있으면 다시 형체가 없어진다. 생명이 없는 것은 본래 생명이 없는 것이 아니고, 형체가 없는 것은 본래 형체가 없는 것이 아니다. 생명은 이치상 반드시 끝나는 것이다. 끝나는 것은 끝나지 않을 수 없고, 생명이 있는 것은 생명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생명을 영원히 유지하려 하고, 끝을 그리려 하는 것은 수(數)에 미혹된 것이다. 정신은 하늘의 분배이고, 뼈는 땅의 분배이다. 하늘에 속한 것은 맑고 흩어지고, 땅에 속한 것은 탁하고 모인다. 정신이 형체를 떠나면 각각 그 진실로 돌아가므로, 이를 귀(鬼)라 한다. 귀는 돌아가는 것이다. 그 진실의 집으로 돌아간다. 황제가 말했다. "정신이 그 문으로 들어가고, 뼈가 그 뿌리로 돌아가면, 나는 아직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
인간의 삶과 변화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네 가지 큰 변화가 있다. 어린아이 시절, 젊은 시절, 늙은 시절, 죽음의 시절이다. 어린아이 시절에는 기운이 집중되고 뜻이 하나로 모여 조화의 극치에 이른다. 외물이 해치지 못하고, 덕이 더할 나위가 없다. 젊은 시절에는 혈기가 넘치고 욕심과 생각이 가득 차서, 외물이 공격하고 덕이 쇠퇴한다. 늙은 시절에는 욕심과 생각이 유연해지고 몸이 쉬려 하며, 외물이 앞서지 못한다. 비록 어린아이의 완전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젊은 시절에 비하면 한가한 것이다. 죽음의 시절에는 쉼에 이르고, 그 극에 돌아간다.
공자와 영계기의 대화
공자가 태산에서 노닐다가 영계기가 성(郕)의 들판에서 노니는 것을 보았다. 영계기는 사슴 가죽 옷을 입고 끈을 두르고,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공자가 물었다.
"선생님께서 즐거워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영계기가 대답했다.
"내가 즐거워하는 것이 매우 많습니다. 하늘이 만물을 낳았지만, 오직 사람이 가장 귀합니다. 내가 사람이 될 수 있었으니, 이것이 첫 번째 즐거움입니다. 남녀의 차이에서 남자가 존귀하고 여자가 비천하므로, 남자가 더 귀합니다. 내가 남자가 될 수 있었으니, 이것이 두 번째 즐거움입니다. 사람 중에는 태어나서 해와 달을 보지 못하고 강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죽는 이도 있습니다. 내가 이미 90세까지 살았으니, 이것이 세 번째 즐거움입니다. 가난한 것은 선비의 상례(常例)이고, 죽음은 사람의 마지막 귀착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안히 상례를 지키고 마지막 귀착점에 이르러 즐거워하는 것, 이것이 어찌 현명한 사람의 배려가 아니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좋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스스로 즐거움을 찾으시는 분이십니다."
영계기가 말했다.
"나는 가난한 것은 선비의 상례(常例)이고, 죽음은 사람의 마지막 귀착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안히 상례를 지키고 마지막 귀착점에 이르러 즐거워하는 것, 이것이 어찌 현명한 사람의 배려가 아니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도를 아십니다. 선생님께서는 도를 아십니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영계기를 기억하라. 그는 스스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다."
열자의 죽음에 대한 관점
열자가 말했다.
"옛날 성인들은 음양을 통해 천지를 통일했다. 형체가 있는 것은 형체가 없는 것에서 나왔다. 그러니 천지는 어디에서 생겨났는가? 그러므로 태역(太易), 태초(太初), 태시(太始), 태소(太素)가 있다고 말한다. 태역은 아직 기운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이고, 태초는 기운이 시작된 상태이며, 태시는 형체가 시작된 상태이고, 태소는 질료가 시작된 상태이다. 기운과 형체와 질료가 갖추어졌지만 아직 서로 분리되지 않았으므로, 이를 혼륜(渾淪)이라 한다. 혼륜이란 만물이 서로 뒤섞여 있지만 아직 분리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이를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따라가도 얻을 수 없으므로, 이를 역(易)이라 한다. 역은 형체가 없고, 역이 변하여 하나가 되고, 하나가 변하여 일곱이 되고, 일곱이 변하여 아홉이 된다. 아홉이 변하는 것은 끝에 이르는 것이니, 다시 변하여 하나가 된다. 하나는 형체가 변하는 시작이다. 맑고 가벼운 것은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고, 탁하고 무거운 것은 아래로 내려가 땅이 된다. 충화(衝和)의 기운은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천지는 정기를 품고 만물이 변화하여 생겨난다."
열자가 말했다.
"천지도 완전한 공능이 없고, 성인도 완전한 능력이 없으며, 만물도 완전한 쓰임이 없다. 그러므로 하늘의 직분은 생명을 덮어주는 것이고, 땅의 직분은 형체를 받쳐주는 것이며, 성인의 직분은 가르치고 변화시키는 것이고, 만물의 직분은 각각 적합한 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도 부족한 점이 있고, 땅도 뛰어난 점이 있으며, 성인도 부족한 점이 있고, 만물도 통달한 점이 있다. 왜냐하면 생명을 덮어주는 것은 형체를 받쳐주지 못하고, 형체를 받쳐주는 것은 가르치고 변화시키지 못하며, 가르치고 변화시키는 것은 각각 적합한 바를 어기지 못하고, 적합한 바를 이루는 것은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지의 도는 음양이 아니면 없고, 성인의 가르침은 인의(仁義)가 아니면 없으며, 만물의 적합한 바는 유연함과 강함이 아니면 없다. 이 모두는 각각 적합한 바를 따르면서도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을 낳는 것이 있고, 생명을 낳는 것을 낳는 것이 있으며, 형체를 이루는 것이 있고, 형체를 이루는 것을 이루는 것이 있으며, 소리를 내는 것이 있고, 소리를 내는 것을 내는 것이 있으며, 색깔을 내는 것이 있고, 색깔을 내는 것을 내는 것이 있으며, 맛을 내는 것이 있고, 맛을 내는 것을 내는 것이 있다. 생명을 낳는 것이 낳은 것은 죽지만, 생명을 낳는 것을 낳는 것은 끝나지 않는다. 형체를 이루는 것이 이루는 것은 실재하지만, 형체를 이루는 것을 이루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소리를 내는 것이 내는 것은 들리지만, 소리를 내는 것을 내는 것은 발하지 않는다. 색깔을 내는 것이 내는 것은 드러나지만, 색깔을 내는 것을 내는 것은 나타나지 않는다. 맛을 내는 것이 내는 것은 맛보지만, 맛을 내는 것을 내는 것은 드러나지 않는다. 이 모두는 무위(無爲)의 직분이다. 음양을 할 수 있고, 유연함과 강함을 할 수 있으며, 짧음과 길이를 할 수 있고, 둥글고 네모를 할 수 있으며, 생명과 죽음을 할 수 있고, 더위와 추위를 할 수 있으며, 뜸과 가라앉음을 할 수 있고, 궁(宮)과 상(商)을 할 수 있으며, 나오고 들어감을 할 수 있고, 검음과 노랑을 할 수 있으며, 달콤함과 쓴맛을 할 수 있고, 비린내와 향기를 할 수 있다. 알지 못하고, 할 수 없지만,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 할 수 없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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