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념처경[大念處經] ②
1.7 「몸에 대한 마음챙김」의 열 가지 이익
비구들이여, 몸에 대한 마음챙김(身念)을 거듭 닦고, 향상시키며, 계발하고, 수레[수행법]로 쓰며, 기반으로 하고, 확고하게 하며, 강화시켜, 잘 수행한다면, 다음의 열 가지 이익이 기대될 것이다.
[1]불쾌함과 즐거움을 제어하게 되어 불쾌함이 그를 정복하지 못하게 된다. 불쾌함이 생겨날 때 [즉각 알아차림으로써] 불쾌함을 극복하며 지낸다.
[2]공포와 두려움을 제어하게 되어 공포와 두려움이 그를 정복하지 못하게 된다. 공포와 두려움이 생겨날 때 [즉각 알아차림으로써] 공포와 두려움을 극복하며 지낸다.
[3]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갈증, 등에, 모기, 바람, 햇빛, 기어다니는 벌레등과 접촉할 때 견디어 내게 되며, 험담이나 불쾌한 말, 고통스럽고 통증이 심하며, 살을 애는 듯한 괴로움이나, 뼈를 깍아내는 듯한 괴로움, 의견의 불일치, 고뇌 그리고 생명에의 위협을 견디어 내게 된다.
[4]어려움이나 곤란함 없이 자신의 의지의 따라서 네 가지 마음집중(四禪)을 얻을 수 있다, 사선은 마음이 정화된 높은 경지이며, 사선을 얻으면 바로 여기에서 안락하게 지내게 된다.
[5]여러 가지의 신통력을 얻게 된다. 몸이 하나의 상태에서 여럿이 되기도 하며, 여럿인 상태에서 하나로 되기도 한다.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하며, 벽이나 사방이 가로막힌 곳을 가로질러 아무런 장애 없이 통과하기도 하고, 마치 빈 공간을 지나가듯이 산을 뚫고 지나가며, 마치 물 속으로 잠수하듯이 땅 속으로 들어가며, 마치 땅 위를 걷듯이 물위를 빠지지 않고 걸어간다. 가부좌를 한 채로 새처럼 공중을 날아가며, 손으로 달과 태양을 만질 정도로 신통력이 생긴다. 범천의 세계와 같이 멀리 떨어진 곳에까지 그의 신통력이 미치게 된다.(神足通)
[6] 인간의 귀를 뛰어넘는 청정한 천상의 귀[청각기관]로 천상과 인간세계의 소리를 듣는다. 멀리서 나는 소리나 가까이에서 나는 소리나.(天耳通)
[7] 다른 존재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마치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이해하게 된다. 그는 [다른 사람의] 탐심에 물든 마음을 탐심에 물들어 있다고 알며, 탐심이 없는 마음을 탐심이 없다고 안다. 성내는 마음을 성내는 마음이라고 알며 성냄이 없는 마음을 성냄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어리석음에 덮여 있는 마음을 어리석음에 덮여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을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인색한 마음을, 인색한 마음이라고 알며, 인색한 마음이 없어지면 인색한 마음이 없어졌다고 안다. [색계와 무색계의 선정에 의해] 고양된 마음을 고양된 마음이라고 알며, 고양된 마음이 없으면, 고양된 마음이 없다고 안다. 보다 뛰어난 마음을 뛰어난 마음이라고 알며, 보다 뛰어난 마음이 없으면 보다 뛰어난 마음이 없다고 안다. 집중이 되어 있는 마음을 집중이 되어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 집중이 안된 마음을 집중이 안된 마음이라고 안다.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이라고 알며,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지 못한 마음이라고 안다.(他心通)
[8] 자신의 수많은 과거 전생에 대해서 기억한다. 즉, 한 생이나 두 생 .....등등의 과거생의 자신의 이름, 태생, 모습, 생전의 경험 내용,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것 등을 기억하게 된다.(宿命通)
[9] 인간의 눈을 뛰어넘는 청정한 천상의 눈[시각 기관]으로 뭇 중생들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본다. 좋은 곳에 태어나는가 나쁜 곳에 태어나는가, 잘 생겼는가 추하게 생겼는가, 행복한가 불행한가를 보게 된다. 이처럼 그는 중생들이 자신의 행위(業).에 따라서 받게 되는 삶의 양태를 알게 된다.(天眼通)
[10] 모든 번뇌를 없애 버려서,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바로 이 생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증득해서 깨달아 완성을 이루어 지낸다.(漏盡通)
비구들이여,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거듭 닦고, 향상시키며, 계발하고, 수레[수행법]로 쓰며, 기반으로 하고, 확고하게 하며, 강화시켜, 잘 수행한다면, 위와 같은 열 가지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2.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受念處)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즐거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즐거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괴로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괴로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육체적인 즐거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육체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정신적인[비육체적인] 즐거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정신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육체적인 괴로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육체적인 괴로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정신적인 괴로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정신적인 괴로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육체적인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육체적인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정신적인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정신적인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느낌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느낌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느낌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느낌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3. 마음에 대한 마음챙김 (心念處)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탐욕이 있는 마음(有貪心)을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 또는 탐욕이 없는 마음(無貪心)을 탐욕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또는 성냄이 있는 마음(有瞋心)을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 성냄이 없는 마음(無瞋心)을 성냄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또는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有癡心)을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無癡心)을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또는 침체된 마음을 침체된 마음이라고 알며, 산만한 마음을 산만한 마음이라고 안다. [선정 수행으로] 커질 수 있는 마음을 커질 수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 [선정 수행을 완성해서 더 이상] 커질 수 없는 마음을 커질 수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또는 [색계 선정과 무색계 선정 수행이] 향상된 마음을 향상된 마음이라고 알며, 향상이 안된 마음을 향상이 안된 마음이라고 안다. [선정에 의해] 잘 집중된 마음을 잘 집중된 마음이라고 알며, 집중이 안된 마음을 집중이 안된 마음이라고 안다. [선정 수행에 의해 일시적으로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진 마음(解脫心)을 자유로워진 마음이라고 알며, 자유로워지지 않은 마음(非解脫心)을 자유로워지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마음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마음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마음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마음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4. 법에 대한 마음챙김 (法念處)<다섯 가지 종류의 육체적∙정신적 현상에 대한 마음챙김>
4.1 다섯 가지 덮개(五蓋)에 대한 마음챙김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다섯 가지 덮개(五蓋)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다섯 가지 덮개(五蓋)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내적으로 감각적 욕망이 있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감각적 욕망이 있다’라고 안다. 또는 내적으로 감각적 욕망이 없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감각적 욕망이 없다’라고 안다. 그리고 생겨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이 일어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감각적 욕망이 사라지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감각적 욕망이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을 안다.
또는 내적으로 악의[惡意, 분노]가 있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악의[惡意]가 있다’라고 안다. 또는 내적으로 악의가 없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악의가 없다’라고 안다. 그리고 생겨나지 않은 악의가 일어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악의가 사라지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악의가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을 안다.
또는 내적으로 혼침과 졸음이 있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혼침과 졸음이 있다’라고 안다. 또는 내적으로 혼침과 졸음이 없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혼침과 졸음이 없다’라고 안다. 그리고 생겨나지 않은 혼침과 졸음이 일어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혼침과 졸음이 사라지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혼침과 졸음이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을 안다.
또는 내적으로 들뜸과 회한[우울]이 있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들뜸과 회한이 있다’라고 안다. 또는 내적으로 들뜸과 회한이 없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들뜸과 회한이 없다’라고 안다. 그리고 생겨나지 않은 회한이 일어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들뜸과 회한이 사라지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들뜸과 회한이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을 안다.
또는 내적으로 회의적 의심이 있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회의적 의심이 있다’라고 안다. 또는 내적으로 회의적 의심이 없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회의적 의심이 없다’라고 안다. 그리고 생겨나지 않은 회의적 의심이 일어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회의적 의심이 사라지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회의적 의심이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을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법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4.2. 다섯 가지 집착된 무더기(五取蘊)에 대한 마음챙김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다섯 가지 집착된 무더기(五取蘊)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다섯 가지 집착된 무더기(五取蘊)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비구가 ‘이것은 물질(色)이다’, ‘이것은 물질의 발생이다’, ‘이것은 물질의 소멸이다’라고 안다. ‘이것은 느낌(受)이다’, ‘이것은 느낌의 발생이다’, ‘이것은 느낌의 소멸이다’라고 안다. ‘이것은 지각(想)이다’, ‘이것은 지각의 발생이다’, ‘이것은 지각의 소멸이다’라고 안다. ‘이것은 의지(行)이다’, ‘이것은 의지의 발생이다’, ‘이것은 의지의 소멸이다’라고 안다. ‘이것은 의식(識)이다’, ‘이것은 의식의 발생이다’, ‘이것은 의식의 소멸이다’라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법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집착된 무더기(五取蘊)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4.3. 여섯 가지 인식 기관과 인식 대상에 대한 마음챙김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여섯 가지 내적인 인식 기관과 외적인 인식 대상(六內外處)이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여섯 가지 내적인 인식 기관과 외적인 인식 대상이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내는가? 여기에 비구가 눈(眼; 시각 기관)을 알아차리고, 색(色; 시각 대상으로서의 모양과 색깔)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해서 생겨난 [번뇌의] 족쇄(結)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족쇄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족쇄가 끊어지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끊어진 족쇄가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귀(耳; 청각기관)를 알아차리고, 소리(聲)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해서 생겨난 [번뇌의] 족쇄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족쇄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족쇄가 끊어지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끊어진 족쇄가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코(鼻; 후각기관)를 알아차리고, 냄새(香)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해서 생겨난 [번뇌의] 족쇄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족쇄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족쇄가 끊어지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끊어진 족쇄가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혀(舌; 미각기관)를 알아차리고, 맛(味)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해서 생겨난 [번뇌의] 족쇄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족쇄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족쇄가 끊어지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끊어진 족쇄가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몸(身; 촉각 기관)을 알아차리고, 접촉(觸)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해서 생겨난 [번뇌의] 족쇄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족쇄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족쇄가 끊어지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끊어진 족쇄가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마음(意; 사고 기관)을 알아차리고, 마음의 현상(法)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해서 생겨난 [번뇌의] 족쇄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족쇄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족쇄가 끊어지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끊어진 족쇄가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법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내적인 인식 기관과 외적인 인식 대상(六內外處)이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4.4.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에 대한 마음챙김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念覺支)가 있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擇法覺支)가 있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精進覺支)가 있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喜覺支)가 있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輕安覺支)가 있을 때,‘나에게 내적으로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定覺支)가 있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捨覺支)가 있을 때,‘나에게 내적으로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법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4.5. 네 가지 고귀한 진리에 대한 마음챙김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네 가지 고귀한 진리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네 가지 고귀한 진리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올바르게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은 괴로움의 발생[원인]이다’라고 올바르게 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올바르게 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올바르게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법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네 가지 고귀한 진리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4.6. 네 가지 마음챙김의 이익 - 마음챙김 수행에 의한 깨달음의 보증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을 이와 같이 7년간 닦는다면, 그에게는 두 가지의 결실 가운데 어느 하나의 결실이 기대될 것이다. 즉, 지금 이 생에서 [아라한의] 지혜를 이루거나, 집착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아나가미(不還)의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7년은 그만 두어도 좋다 [7년은 걸리지 않아도 좋다].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을 이와 같이 6년간…, 5년간…, 4년간…, 3년간…, 2년간…, 1년간 닦는다면, 그에게는 두 가지의 결실 가운데 어느 하나의 결실이 기대될 것이다. 즉, 지금 이 생에서 [아라한의] 지혜를 이루거나, 집착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아나가미의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1년은 그만 두어도 좋다.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을 이와 같이 7개월간 닦는다면, 그에게는 두 가지의 결실 가운데 어느 하나의 결실이 기대될 것이다. 즉, 지금 이 생에서 [아라한의] 지혜를 이루거나, 집착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아나가미의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7개월은 그만 두어도 좋다. 이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을 이와 같이 6개월간…, 5개월간…, 4개월간…, 3개월간…, 2개월간…, 1개월간…, 반달간 닦는다면, 그에게는 두 가지의 결실 가운데 어느 하나의 결실이 기대될 것이다. 즉, 지금 이 생에서 [아라한의] 지혜를 이루거나, 집착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아나가미의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반달은 그만 두어도 좋다. 이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을 이와 같이 7일간 닦는다면, 그에게는 두 가지의 결실 가운데 어느 하나의 결실이 기대될 것이다. 즉, 지금 이 생에서 [아라한의] 지혜를 이루거나, 집착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아나가미의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은 모든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기 위한, 괴로움과 마음의 언짢음을 없애기 위한, 올바른 길에 이르기 위한, 열반을 깨닫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 바로 그것은 네 가지의 마음챙김이다라고 앞에서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연유로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세존은 설하셨다. [설법을 들은] 그 비구들은 만족해하며, 세존의 설법에 대해 환희에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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