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 처세장(處世章)
옛날의 학자들은 일찍이 벼슬을 구하지 않았으되 학문이 이루어지면 윗사람이 된 자가 천거해서 등용하였으니, 벼슬하는 것은 남을 위하는 것이요,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세상은 그렇지 아니하여, 과거로써 사람을 뽑아, 비록 하늘의 이치를 통달한 학문과 남보다 빼어난 행실이 있더라도 과거가 아니면 치도를 실천할 수 있는 지위에 나아갈 길이 없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아들에게 〈과거공부를〉 시키고 형은 아우에게 〈과거공부를〉 권하여, 과거 이외에는 다시 다른 방법이 없으니, 선비들의 습관이 각박해지는 것은 오로지 이에 연유한다. 다만 요즘 선비가 된 자들은 대부분 부모의 바람과 가문의 계책을 위하여 과거공부를 함을 피할 수 없으나, 또한 마땅히 그 기구를 갈고 닦으며 그때를 기다려, 급제와 낙방을 천명에 맡길 것이요, 벼슬을 탐하고 조급해 하고 마음을 끓어오르게 해서 자신의 뜻을 손상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과거공부에 매여서 학문을 할 수 없다.”고 하니 이 또한 미루어 핑계 대는 말이요 성심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옛날 사람은 부모를 봉양함에 몸소 밭을 갈았던 이도 있었으며,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품팔이한 이도 있었으며, 쌀가마니 지는 일을 한 이도 있었으니, 몸소 밭 갈고, 다니며 품팔이하고, 쌀가마니를 질 때에 근고가 심하였을 것이니, 어느 겨를에 글을 읽었겠는가.
오직 그 부모를 위해 수고로움을 자임하여 이미 자식의 직분을 닦고 남은 여가에 글을 배웠는데도, 또한 덕에 나아갈 수가 있었거든, 요즈음 선비된 자들은 어버이를 위하여 수고로움을 맡기를 옛날 사람과 같이 하는 자를 보지 못하겠고, 다만 과거공부 한 가지 일이 곧 어버이의 마음이 바라는 것이라 하여 이제 이미 과거공부함을 면하지 못하니, 그렇다면 과거공부가 비록 이학과는 같지 않으나 역시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짓는 것이어서 몸소 밭 갈고, 다니며 품팔이하고, 쌀가마니를 지는 일보다 편함이 백배일 뿐만이 아니다.
하물며 남은 여가에 성리에 관한 책을 읽을 수 있음에랴.
다만 과거공부를 하는 자들은 으레 과거에 급제하느냐 낙방하느냐에 동요되어 마음이 항상 조급하고 다투어, 도리어 수고롭게 일함이 마음을 수양하는 공부를 해치지 않는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선현의 말씀에 “〈과거공부가〉 공부에 방해될까를 걱정하지 말고, 오로지 뜻을 빼앗길까를 걱정해야 한다.”고 하셨으니, 만약 과거공부하는 일을 하면서도 지켜야 할 것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과거공부와 이학공부를 병행해도 서로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말로는 과거공부를 한다 하나 실제로는 과거공부를 하지 않고, 말로는 이학공부를 한다 하나 실제로는 착수하지 아니하여, 만약 과거공부로써 질책하면 말하기를
“나는 이학에 뜻을 두고 있어서 이런 데에 연연해 할 수 없다.”고 하며,
만약 이학공부로써 질책하면 말하기를
“나는 과거공부에 얽매여서 실지에 힘을 쓸 수가 없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와 같이 양쪽으로 편리한 처지를 차지하여 하는 일 없이 하루하루 세월만 보내다가 마침내는 과거공부와 이학공부 두 가지 다 이루는 바가 없음에 이르니, 늙은 뒤에 비록 뉘우친들 어찌 미칠 수 있겠는가.
아!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아직 벼슬하지 않을 때에는 오직 벼슬하는 것을 급무로 여기고, 이미 벼슬에 오른 뒤에는 또 벼슬을 잃을까 걱정하니, 이와 같이 골몰하여 그 본심을 잃는 자가 많다.
어찌 두려워할 만하지 않겠는가?
지위가 높은 자는 도를 베푸는 것을 중심으로 삼아야 하니, 도가 베풀어질 수 없으면 물러나야 할 것이요, 만일 집이 가난하여 녹봉을 받기 위한 벼슬을 면치 못한다면, 모름지기 내직을 사양하고 외직으로 나가며, 높은 자리를 사양하고 낮은 자리에 머물러서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뿐이다. 비록 녹봉을 받기 위한 벼슬이라고 하나 또한 마땅히 청렴하고 부지런히 공무를 받들어 행하여 그 직무를 다해야 할 것이요, 직분을 버려두고 먹고 마시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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