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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기 어린 샘물

 

 "까악 까악."
  까마귀가 스님의 머리를 맴돌면서 계속해서 울어댔다. 황금까마귀였다. 의각스님은 몇 번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했다. 
  "오라! 너희가 절터를 안내하겠다는 뜻이로구나. 그렇다면 어서 앞장서거라."
  얼마를 날았을까. 까마귀는 덕봉산 기슭에 내려 않았다. 의각스님은 그곳에 불상을 내려 놓고 지세를 살펴보았다.
  '아! 이토록 훌륭한 절터가 있었나?'
  너무나도 뜻밖의 수확에 의각스님은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의각스님은 중국에 유학을 갔었다. 그는 특히 반야사상에 심취하여 전공을 반야학으로 정하고 연구를 거듭하여 위대한 학자가 되었다.
  그때는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641-660 재위)이 한참 주지육림에 빠져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을 시절이었다.
  중국에서 반야학을 전공한 스님은 늘 경전 읽기를 즐겨해 언제나 그의 요사채 앞에 가면 반야경 읽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의각스님의 키는 6자 훨씬 넘었고 준수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가사와 장삼을 수하면 그 풍채가 하도 훌륭해 많은 납자들의 귀의하고는 했다.
  하루는 의각스님 맞은편 방에서 잠자리에 들려던 의혜스님이 자신도 모르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의각스님 방에서 찬란한 빛이 새어 나와 요사채 마당을 환하게 비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발소리를 죽여 가며 의각스님 방 앞으로 갔다. 안에서 경을 읽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소리에 묻어 나오는 빛이었다. 경전 한 구절 한 구절 한 자 한 자마다 계속해서 빛이 묻어 나왔다.
  다음날 의각스님은 대중들이 모인 자리에서 지난밤 일을 얘기했다.
  "어젯밤 내가 반야경을 독송했습니다. 그런데 경을 읽다가 보니 사방의 벽이 뚫린 듯 밖이 훤히 보이더군요. 웬일인가 싶어 일어나 벽을 만져 보았으나 벽을 그대로였습니다. 경을 읽으면 다시 밖이 보이곤 했습니다. 생각건대 이는 반야의 불가사의한 묘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반야의 묘용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부처님의 지혜광명입니다."
  대중들은 의각스님의 말을 믿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때 의혜스님이 일어나 간밤에 의각스님 방에서 새어 나오던 빛 이야기를 해 주었다.
  대중들은 비로소 반야사상이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핵심임을 깨달았다.
  그 후 의각스님은 고국으로 돌아와 중국에서 갈고 닦은 불법을 펴리라 마음먹고 불살 3,053위와 삼존불상인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과 16나한상과 5백 나한상을 모시고 백제로 돌아왔다.
  그가 처음 당도한 곳이 충청도 예산이었다. 그는 삼존불과 삼천불과 53위의 불상을 모실 대가람 터를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금까마귀를 만났고 덕봉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중국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스님이 예산 땅에 왔다는 것은 당시 대단한 영광이었다. 예산 사람들은 의각스님을 친견하고 설법을 듣기 위해 덕봉산으로 모여들었다.
  의각스님은 힘이 솟았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불자들에게 법당을 지어야 할 것을 역설하였다.
  많은 사람들도 크고 작은 것을 떠나 한마음으로 절을 세우는 데 동참하겠다고 나섰다. 정치는 믿을 수가 없었고 이제 의지할 곳이라곤 부처님밖에 없다고들 했다. 세상이 어수선하니 부처님의 가피에 의존하려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이 한 사람이 새벽같이 찾아왔다.
  "아직 이른 시각인데 어인 일로 이렇게 찾아오셨는가?"
  "저도 스님께서 하시는 불사를 돕고 싶습니다. 하오나 저는 아직 총각인 데다가 몸져 누우신 늙은 어머님이 계십니다. 집안 형편은 말할 수도 없구요. 대신 저는 몸으로 스님의 불사를 돕고자 하오니 받아 주십시오."
  "허! 기특한 생각일세."
  "흙도 파고 나무도 다듬고 기와도 굽겠습니다.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시켜만 주십시오, 스님."
  의각스님은 참된 불자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 어떤 시주보다도 값진 것이었다.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 중 마음과 정성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네. 나를 만나고 싶어했던 그 마음이 이미 부처님 마음이요, 법당을 건립하는 이 불사현장에 오고자 했을 때, 이미 불국토는 자네 마음에서 완성되었네. 고맙네. 여기서 나를 도와주게나."
  "스님, 제 불효가 크옵니다. 법당이 완성되면 제 어머님의 병환이 속히 쾌차하길 빌어 드리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소원을 다 이루어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의각스님은 젊은이의 효심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참으로 장하네. 그대의 효심이 그러할진대 어찌 기도가 성취되지 않으랴?"
  의각스님은 젊은 총각에게 반야경 중에서도 가장 내용이 짧고, 또 핵심이랄 수 있는 '반야심경'을 봉독하라고 일렀다. 총각은 열심히 일했고, 또 열심히 '반야심경'을 외웠다.
  낮이 가고 밤이 가도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반야심경'을 읽었다. 낮에는 밤에도 총각의 방에서는 언제나 독경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쉬는 시간에도 그는 '반야심경'을 외웠다. 나중에는 일하는 중에도 그의 입에서 '반야심경' 외우는 소리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꼭 독경 끝에 그의 어머니를 위한 기도를 빼놓지 않았다.
  "부처님,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제가 불사를 돕고 '반야심경'을 읽는 공덕으로 이 불사가 원만히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리고 저의 늙으신 어머님 속히 쾌차하게 하옵소서. 저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얼마 후 법당이 완성되었다. 모든 시주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새로 지은 법당에 참배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새 옷을 갈아입었다. 총각도 인사를 드렸다.
  "어머니, 절이 이제 완성되어 오늘 낙성식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속히 다녀올 테니 그 동안 편안히 계십시오."
  그의 어머니가 느닷없이 아들의 옷자락을 붙들며 말했다.
  "얘야 나도 가겠다. 나 좀 일으켜라."
  "괜찮으시겠어요?"
  "괜찮다마다. 오늘 아침은 몸이 날아갈 듯 가볍구나."
  아들은 얼른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아들의 손을 잡더니 거뜬하게 일어나는 것이었다. 벌써 여러 해 동안 뒷간 출입조차 전혀 못 했었는데 아들의 손을 잡고 일어나는 모습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싶었다.
  "어머니, 부처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 주신 것입니다. 어머니가 이처럼 쾌차하시다니 말입니다."
  "그래, 그렇구나. 자, 내 옷이나 꺼내 주고 너 좀 먼저 나가 있으련? 옷 좀 갈아입어야겠구나."
  그들은 함께 낙성식에 참석했다. 삼월의 따스한 햇살은 모자의 앞길을 더욱 희망차게 했다.
  모자는 걸어서 덕봉산 새 절에 올랐다. 오랜만에 바깥나들이를 하는 노파는 모든 게 새로웠다. 새롭게 피어나는 새싹들이며, 상큼한 공기며,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벚꽃들도 마음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 그러나 그녀는 갈증을 느꼈다. 안 하던 운동을 갑작스레 했기 때문이었다.
  아들은 법당 옆에 솟아나는 샘물을 표주박으로 떠서 어머니에게 드렸다. 물을 마시던 어머니가 깜짝 놀라 말했다.
  "얘, 이 물맛 좀 보련. 어쩌면 이리도 향긋하드냐."
  아들은 어머니의 말대로 물을 떠서 한모금 마셨다. 난생 처음 맛보는 물맛이었다. 물맛이 향기롭다고 하니까 낙성법회에 참석했던 수백 명의 대중들이 다 같이 돌아가며 물을 마셨다. 그들도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향기로운 샘물이다. 처음 맛보는 물맛이다."
  의각스님은 낙성법회에서 대중들에게 말했다.
  "이곳에 법당이 이루어지고, 샘물에서 향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부처님께서 우리 절과 우리 절 신도님들에게 내리신 가피입니다. 이는 또한 반야의 불가사의한 묘용입니다. 앞으로 이 절 이름을 '향천사'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절을 짓기 위해 터를 찾을 때 금까마귀가 인도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이 산을 덕봉산이라 하지 않고 '금오산'이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금오산 향천사가 된 것이다. 그 뒤 이곳 사람들은 의각스님이 처음 배를 댄 곳을 '배논'이라 불렀고, 스님이 중국에서 배를 타고 와 포구에 닿았을 때가 한밤중이었지만 어디선가 은은한 종소리가 들렸다 하여 마을 이름을 '종성리'라 했다.
  또 그 바닷가는 석주포라 하였는데 이는 스님이 타고 온 배가 돌배였던 데서 기인하였으며, 향천사 아래 고함바위는 항소가 돌부처를 실어나르며 하도 힘에 겨워 소리를 질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향천사에는 1,516불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그러나 나머지 2천 불의 불상은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 지금은 모셔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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