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16장 가섭 ② SN16:6-SN16:9
16.6-가르침 경
149. 라자가하의 웰루와나에서(웰루와나에서 설해짐). 그 무렵 마하깟사빠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다가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마하깟사빠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깟사빠여, 비구들을 가르쳐라.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라. 깟사빠여, 나 또는 그대가 비구들을 가르쳐야 하고, 나 또는 그대가 비구들에게 법을 설해야 한다.”라고.
“세존이시여, 지금의 비구들은 훈계하기 어려운 성품들을 지니고 있고, 인욕하지 못하고, 가르침을 받아들임에 능숙하지 않습니다.세존이시여, 저는 아난다에게 믿음을 가지고 머무는 반다 비구와 아누룻다에게 믿음을 가지고 머무는 아비지까 비구가 서로간의 배움의 뛰어남을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오시오, 비구여. 우리 중에 누가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는지, 누가 더 잘 말할 수 있는지, 누가 더 오래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라고.'”
그러자 세존께서는 어떤 비구에게 “오라, 비구여. 그대는 나의 이름으로 아난다에게 믿음을 가지고 머무는 반다 비구와 아누룻다에게 믿음을 가지고 머무는 아비지까 비구에게 ‘비구들이여, 스승께서 존자들을 부르십니다.’라고 말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그 비구는 세존께 대답한 뒤 그 비구들에게 갔다. 가서는 그 비구들에게 “스승께서 존자들을 부르십니다.”라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도반이여.”라고 그들은 그 비구에게 대답한 뒤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비구들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서로서로 경쟁하여 말하기를 ‘오시오, 비구여. 우리 중에 누가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는지, 누가 더 잘 말할 수 있는지, 누가 더 오래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라고 서로 간에 뛰어남을 말한 것이 사실인가?”라고.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내가 ‘오라,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오시오, 비구여, 누가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는지, 누가 더 잘 말할 수 있는지, 누가 더 오래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라고 서로 간에 배움의 뛰어남을 말하라'라고 설한 법을 알고 있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내가 그러한 법을 설하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어리석은 자들이여,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기 때문에 이처럼 잘 설해진 법과 율에 출가한 그대들이 이제 ‘오시오, 비구여, 누가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는지, 누가 더 잘 말할 수 있는지, 누가 더 오래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라고 서로 간에 배움의 뛰어남을 말할 수 있는가?”
그러자 그 비구들은 세존의 발에 이마를 대고 절한 뒤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는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가 어리석고 미혹하고 신중하지 못해서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이처럼 잘 설해진 법과 율에 출가한 저희가 ‘오시오, 비구여, 누가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는지, 누가 더 잘 말할 수 있는지, 누가 더 오래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라고 서로 간에 배움의 뛰어남을 말한 저희에게,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저희가 미래에 다시 이와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고 저희들 자신을 단속할 수 있도록 저희의 잘못에 대한 참회를 받아 주십시오(미래의 단속을 위해서 잘못에 대한 참회를 받아주십시오).”라고.
“참으로, 비구들이여, 어리석고 미혹하고 신중하지 못해서 이처럼 잘 설해진 법과 율에 출가한 그대들이 ‘오시오, 비구여, 누가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는지, 누가 더 잘 말할 수 있는지, 누가 더 오래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라고 서로 간에 배움의 뛰어남을 말한 그대들은 잘못을 범했다(저질렀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잘못을 잘못으로부터 본 뒤에 법답게 바로잡았기 때문에 그대들을 우리는 받아들인다. 비구들이여, 이 성스러운 율에서 잘못을 잘못으로부터 본 뒤에 법답게 바로잡고, 미래에 단속하는자는 향상한다.”
16.7-가르침 경2
150. 라자가하의 웰루와나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마하깟사빠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다가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마하깟사빠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깟사빠여, 비구들을 가르쳐라.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라. 깟사빠여, 나 또는 그대가 비구들을 가르쳐야 하고, 나 또는 그대가 비구들에게 법을 설해야 한다.”라고.
“세존이시여, 지금의 비구들은 훈계하기 어려운 성품들을 지니고 있고, 인욕하지 못하고, 가르침을 받아들임에 능숙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누구든지 유익한 법들에 대한 믿음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노력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지혜가 없는 자에게,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 있어서 퇴보가 기대되고 향상이 기대되지 않습니다(늘어남이 아니라 줄어듦이 예상됩니다).
예를 들면, 세존이시여, 그믐으로 가는 보름 동안에 (하현)달은,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색은 퇴색되고, 원둘레는 줄어들고, 빛은 약해지고, 높이와 둘레는 줄어 듭니다. 이처럼, 세존이시여, 유익한 법들에 대한 믿음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노력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지혜가 없는 자에게,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퇴보가 기대되고 향상이 기대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퇴보(쇠퇴)이고, 세존이시여,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없는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퇴보이고, 세존이시여,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는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퇴보이고, 세존이시여, '게으른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퇴보이고, 세존이시여, '지혜가 없는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퇴보이고, 세존이시여, '화내는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바로 퇴보이고, 세존이시여, '원한을 품은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퇴보이고, 세존이시여, '가르치는 비구들이 없다'라는 것이 퇴보입니다.
세존이시여, 누구든지 유익한 법들에 대한 믿음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노력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지혜가 있는 자에게,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향상이 기대되고 퇴보가 기대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세존이시여, 보름으로 가는 보름 동안에 (상현)달은,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색깔이 선명해지고, 원둘레는 늘어나고, 빛은 강해지고, 높이와 둘레는 늘어납니다. 이처럼, 세존이시여, 누구든지 유익한 법들에 대한 믿음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노력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지혜가 있는 자에게,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향상이 기대되고 퇴보가 기대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향상이고, 세존이시여,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있는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향상이고, 세존이시여,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는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향상이고, 세존이시여,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향상이고, 세존이시여,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향상이고, 세존이시여, '화내지 않는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향상이고, 세존이시여, '원한을 품지 않은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향상이고, 세존이시여, '가르치는 비구들이 있다'라는 것이 향상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깟사빠여. 누구든지 유익한 법들에 대한 믿음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노력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지혜가 없는 자에게,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퇴보가 기대되고 향상이 기대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깟사빠여, 그믐으로 가는 보름 동안에 달은, 밤이 오건 낮이 오건,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색은 퇴색되고, 원둘레는 줄어들고, 빛은 약해지고, 높이와 둘레는 줄어든다. 이처럼, 깟사빠여, 유익한 법들에 대한 믿음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노력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지혜가 없는 자에게,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퇴보가 기대되고 향상이 기대되지 않는다.
깟사빠여,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퇴보(쇠퇴)이고, 깟사빠여,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없는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퇴보이고, 깟사빠여,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없는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퇴보이고, 깟사빠여, '게으른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퇴보이고, 깟사빠여, '지혜가 없는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퇴보이고, 깟사빠여, '화내는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바로 퇴보이고, 깟사빠여, '원한을 품은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퇴보이고, 깟사빠여, '가르치는 비구들이 없다'라는 것이 퇴보이다.
깟사빠여, 누구든지 유익한 법들에 대한 믿음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노력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지혜가 있는 자에게,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향상이 기대되고 퇴보가 기대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깟사빠여, 보름으로 가는 보름 동안에 (상현)달은,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색깔이 선명해지고, 원둘레는 늘어나고, 빛은 강해지고, 높이와 둘레는 늘어난다. 이처럼, 깟사빠여, 누구든지 유익한 법들에 대한 믿음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노력이 있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지혜가 있는 자에게, 밤이 오건 낮이 오건, 유익한 법들에서 향상이 기대되고 퇴보가 기대되지 않는다.
깟사빠여,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향상이고, 깟사빠여, '뉘우칠 줄 아는 힘이 있는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향상이고, 깟사빠여,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이 있는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향상이고, 깟사빠여,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향상이고, 깟사빠여,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향상이고, 깟사빠여, '화내지 않는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향상이고, 깟사빠여, '원한을 품지 않은 사람'이라 불리는 것이 향상이고, 깟사빠여, '가르치는 비구들이 있다'라는 것이 향상이다.“
16.8-가르침 경3
151. 라자가하의 웰루와나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마하깟사빠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다가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마하깟사빠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깟사빠여, 비구들을 가르쳐라.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라. 깟사빠여, 나 또는 그대가 비구들을 가르쳐야 하고, 나 또는 그대가 비구들에게 법을 설해야 한다.”라고.
“세존이시여, 지금의 비구들은 훈계하기 어려운 성품들을 지니고 있고, 인욕하지 못하고, 가르침을 받아들임에 능숙하지 않습니다."
“그러하다, 깟사빠여, 예전에 장로 비구들은 숲에 머물면서 숲에 머무는 것을 칭송하였고, 탁발하면서 탁발하는 것을 칭송하였고, 분소의를 입으면서 분소의를 입는 것을 칭송하였고, 세 벌의 가사로 살면서 세 벌의 가사로 사는 것을 칭송하였고, 원하는 것이 적으면서 원하는 것이 적다는 것을 칭송하였고, 만족하면서 만족하는 것을 칭송하였고, 홀로 머물며 삼매를 닦으면서 홀로 머물며 삼매를 닦는 것을 칭송하였고,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으면서 교제하지 않는 것을 칭송하였고, 열심히 정진하면서 열심히 정진하는 것을 칭송하였다.
그 당시, 숲에 머물면서 숲에 머무는 것을 칭송하였고, 탁발하면서 탁발하는 것을 칭송하였고, 분소의를 입으면서 분소의를 입는 것을 칭송하였고, 세 벌의 가사로 살면서 세 벌의 가사로 사는 것을 칭송하였고, 원하는 것이 적으면서 원하는 것이 적다는 것을 칭송하였고, 만족하면서 만족하는 것을 칭송하였고, 홀로 머물며 삼매를 닦으면서 홀로 머물며 삼매를 닦는 것을 칭송하였고,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으면서 교제하지 않는 것을 칭송하였고, 열심히 정진하면서 열심히 정진하는 것을 칭송하는 비구를 장로 비구들은 자리를 준비하고 '오시오, 비구여. 이 비구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 비구는 훌륭합니다. 이 비구는 정진을 합니다. 오시오, 비구여. 자리에 앉으십시오.’라며 초대했다.
그때, 깟사빠여, 신참 비구들에게 이런 생각이 일어날 것이다.
‘참으로 숲에 머물면서 숲에 머무는 것을 칭송하였고, 탁발하면서 탁발하는 것을 칭송하였고, 분소의를 입으면서 분소의를 입는 것을 칭송하였고, 세 벌의 가사로 살면서 세 벌의 가사로 사는 것을 칭송하였고, 원하는 것이 적으면서 원하는 것이 적다는 것을 칭송하였고, 만족하면서 만족하는 것을 칭송하였고, 홀로 머물며 삼매를 닦으면서 홀로 머물며 삼매를 닦는 것을 칭송하였고,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으면서 교제하지 않는 것을 칭송하였고, 열심히 정진하면서 열심히 정진하는 것을 칭송하는 비구를 장로 비구들이 자리를 준비하고 ‘오시오, 비구여, 자리에 앉으십시오.’라며 초대한다. 그들은 그런 것을 뒤따른다. 그것은 그들을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으로 이끈다.
깟사빠여, 그러나 지금의 장로 비구들은 숲에 머물지 않으면서 숲에 머무는 것을 칭송하지 않고, 탁발하지 않으면서 탁발하는 것을 칭송하지 않고, 분소의를 입지 않으면서 분소의를 입는 것을 칭송하지 않고, 세 벌의 가사로 살지 않으면서 세 벌의 가사로 사는 것을 칭송하지 않고, 원하는 것이 적지 않으면서 원하는 것이 적다는 것을 칭송하지 않고, 만족하지 않으면서 만족하는 것을 칭송하지 않고, 홀로 머물며 삼매를 닦지 않으면서 홀로 머물며 삼매를 닦는 것을 칭송하지 않고, 교제하면서 교제하지 않는 것을 칭송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지 않으면서 열심히 정진하는 것을 칭송하지 않는다.
그때, 가사와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을 얻는 명성이 있고 잘 알려진 비구를 장로 비구들은 자리를 준비하고 ‘오시오, 비구여. 이 비구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 비구는 훌륭합니다. 이 비구는 동료수행자를 좋아합니다. 오시오, 비구여. 이 자리에 앉으십시오.’라며 초대한다.
그때, 깟사빠여, 신참 비구들에게 이런 생각이 일어날 것이다.
‘참으로 가사와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을 얻는 명성이 있고 잘 알려진 비구를 장로 비구들은 자리를 준비하고 ‘오시오, 비구여, 이 비구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 비구는 훌륭합니다. 이 비구는 동료수행자를 좋아합니다. 오시오, 비구여. 자리에 앉으십시오.’라며 초대한다.'라고. 그들은 그런 것을 뒤따른다. 그것은 그들을 오랜 세월 불이익과 괴로움으로 이끈다. 깟사빠여, 참으로 바르게 말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정범행을 닦는 자가 청정범행을 망가뜨려서 망가졌다. 청정범행을 닦는 자가 청정범행에 패배해서 패퇴하였다.’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16.9-선(禪)과 완전한 지혜 경
152.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비구들이여, 나는 원하는 만큼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희열.喜]과 즐거움[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치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깟사빠도 원하는 만큼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을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성취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나는 원하는 만큼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깟사빠도 원하는 만큼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나는 원하는 만큼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성자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깟사빠도 원하는 만큼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성자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나는 원하는 만큼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깟사빠도 원하는 만큼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을 지닌 제4선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나는 원하는 만큼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깟사빠도 원하는 만큼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나는 원하는 만큼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깟사빠도 원하는 만큼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나는 원하는 만큼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깟사빠도 원하는 만큼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나는 원하는 만큼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깟사빠도 원하는 만큼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나는 원하는 만큼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깟사빠도 원하는 만큼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나는 원하는 만큼 다양한 종류의 신통을 체험한다. 하나가 된 후 여럿이 된다. 여럿이 된 후 하나가 된다.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다.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 속에서와 같다.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 위에서와 같다.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달린) 새와 같다. 대신변과 대위덕을 지닌 달과 태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브라흐마(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몸으로써 위력을 미친다.
비구들이여, 깟사빠도 원하는 만큼 다양한 종류의 신통을 체험한다. 하나가 된 후 여럿이 된다. 여럿이 된 후 하나가 된다.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다.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 속에서와 같다.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 위에서와 같다.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달린) 새와 같다. 대신변과 대위덕을 지닌 달과 태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브라흐마(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몸으로써 위력을 미친다.
비구들이여, 나는 인간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과 같은 귀의 계를 통해 멀거나 가까운 하늘과 사람의 소리를 듣는다.
비구들이여, 깟사빠도 인간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과 같은 귀의 계를 통해 멀거나 가까운 하늘과 사람의 소리를 듣는다.
비구들이여, 나는 다른 중생, 다른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차린다. 탐냄을 지닌 마음을 탐냄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탐냄을 떠난 마음을 탐냄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성냄을 지닌 마음을 성냄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성냄을 떠난 마음을 성냄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을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을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집중된 마음을 집중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산란한 마음을 산란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광대한 마음을 광대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광대하지 못한 마음을 광대하지 못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위가 있는 마음을 위가 있는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위가 없는 마음을 위가 없는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삼매을 얻은 마음으로 삼매를 얻은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을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지 못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깟사빠도 다른 중생, 다른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차린다. 탐냄을 지닌 마음을 탐냄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탐냄을 떠난 마음을 탐냄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성냄을 지닌 마음을 성냄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성냄을 떠난 마음을 성냄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을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을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집중된 마음을 집중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산란한 마음을 산란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광대한 마음을 광대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광대하지 못한 마음을 광대하지 못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위가 있는 마음을 위가 있는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위가 없는 마음을 위가 없는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삼매을 얻은 마음으로 삼매를 얻은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을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지 못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나는 여러 전생을 기억한다.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
비구들이여, 깟사빠도 여러 전생을 기억한다.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
비구들이여, 나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영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깟사빠도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영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세계에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나는 모든 번뇌가 소멸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에 의한 해탈[慧解脫]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깟사빠도 모든 번뇌가 소멸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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