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 범망경 - 범천의 그물 견해의 그물③
[2. 부분적 영원주의·부분적 비영원주의 4가지]
38.
[세존]
“수행승들이여,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부분적 영원주의자·부분적 비영원주의자로서 4가지 근거를 통해서 자아의 세계가 부분적으로는 영원하고 부분적으로는 영원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수행승들이여, 그 존귀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거하여 부분적 영원주의자·부분적 비영원주의자로서, 4가지 근거를 통해서 자아와 세계가 부분적으로는 영원하고 부분적으로는 영원하지 않다고 주장하는가?
39.
그러면 첫 번째로 존귀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거하여 부분적 영원주의자·부분적 비영원주의자로서, 자아와 세계가 부분적으로는 영원하고 부분적으로는 영원하지 않다고 주장하는가?
수행승들이여, 언제 어느 땐가 오랜 세월이 지나가면, 세계는 괴멸되는 때가 있다. 세계가 괴멸될 때에 대부분의 뭇 삶들은 빛이 흐르는 신들의 하느님 세계에 태어난다. 그들은 그곳에서 마음으로 만들어진 존재로서 기쁨을 먹고 살고 스스로 빛나고 공중으로 날아다니고 영광스럽게 살면서 오랜 세월을 지낸다.
수행승들이여, 언제 어느 땐가 오랜 세월이 지나가면, 세계가 생성되는 때가 있다. 세계가 생성될 때에텅 빈 하느님의 궁전이 나타난다. 그 때 어떤 뭇 삶이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하여 빛이 흐르는 신들의 하느님 세계에서 죽어서 텅 빈 하느님의 궁전에 태어난다. 그는 거기서 마음으로 만들어진 존재로서 기쁨을 먹고 살고 스스로 빛나고 공중으로 날아다니고 영광스럽게 살면서 오랜 세월을 지낸다.
그는 그곳에서 오랜 세월 홀로 살았기 때문에 ‘오, 다릇 뭇 삶들이 이곳에 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불만을 갖고 동요를 일으킨다. 그러자 다른 뭇 삶이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하여 빛이 흐르는 신들의 하느님 세계에서 죽어서 그 뭇 삶의 권속으로서 하느님의 궁전에 태어난다. 그들은 거기서 마음으로 만들어진 존재로서 기쁨을 먹고 살고 스스로 빛나고 공중으로 날아다니고 영광스럽게 살면서 오랜 세월을 지낸다.
수행승들이여, 거기서 먼저 태어난 한 뭇 삶이 있는데, 그는 이와같이 ‘나는 하느님, 우대한 하느님, 정복자, 정복되지 않는 자, 모든 것을 보는 자, 지배자, 주재자, 작자, 창조주, 최상자, 조물주, 전능자,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의 아버지이다. 이 뭇 삶들은 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나는 예전에 ‘다릇 뭇 삶이라도 이곳에 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바랬는데, 그러한 내 마음의 서원 때문에 이 뭇 삶들이 여기에 태어났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한다.
수행승들이여, 나중에 태어난 한 뭇 삶들이 있는데, 그들는 이와같이 ‘이 존귀한 자는 하느님, 우대한 하느님, 정복자, 정복되지 않는 자, 모든 것을 보는 자, 지배자, 주재자, 작자, 창조주, 최상자, 조물주, 전능자,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의 아버지이다. 우리는 이 존귀한 하느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우리는 여기 먼저 태어난 자를 보았고 우리는 나중에 태어났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한다.
수행승들이여, 거기서 뭇 삶이 먼저 태어나면, 더 수명이 길고 용모가 아름답고 더 힘이 세다. 그러나 뭇 삶이 나중에 태어나면, 더 수명이 짧고 더 용모가 추하고 더 힘이 약하다.
수행승들이여, 그런데 어떤 뭇 삶은 그 무리에서 죽어서 이 세상에 오는 경우가 있다. 이 세상에 와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다.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정근하고 수행하고 방일을 여의고 올바로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일으켜서 마음의 삼매를 경험하여 바로 전생의 삶의 형태를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이와같이 ‘이 존귀한 자는 하느님, 우대한 하느님, 정복자, 정복되지 않는 자, 모든 것을 보는 자, 지배자, 주재자, 작자, 창조주, 최상자, 조물주, 전능자,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의 아버지이다. 우리를 창조한 이 존귀한 하느님은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여 전변하는 것이 없이 영구적으로 그대로 존속할 것이다. 그러나 이 존귀한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우리는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고 오래 살지 못하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로 여기에 온 것이다.’라고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그것 때문에 그것에 의거하여 부분적 영원주의자·부분적 비영원주의자로서, 자아와 세계가 부분적으로는 영원하고 부분적으로는 영원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첫 번째 근거이다.
40.
그러면 두 번째로 존귀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거하여 부분적 영원주의자·부분적 비영원주의자로서, 자아와 세계가 부분적으로는 영원하고 부분적으로는 영원하지 않다고 주장하는가?
수행승들이여, 킷다빠도시까라는 신들이 있는데, 그들은 오랜 세월 웃고 놀고 쾌락을 즐기는데 빠져 지낸다. 오랜 세월 웃고 놀고 쾌락을 즐기는데 빠져 지내면서 그들은 새김을 잃어버린다. 새김을 잃고 그 신들의 무리에서 죽는다.
수행승들이여, 그런데 어떤 뭇 삶은 그 무리에서 죽어서 여기에 오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와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다.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정근하고 수행하고 방일을 여의고 올바로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일으켜서 마음의 삼매를 경험하여 바로 전생의 삶의 형태를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이와같이 ‘이 킷다빠도시까가 아닌 존귀한 신들은 오랜 세월 웃고 놀고 쾌락을 즐기는데 빠져 지내지 않는다. 오랜 세월 웃고 놀고 쾌락을 즐기는데 빠져 지내지 않으므로 그들은 새김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새김을 잃어버리지 않아서 그들은 그 무리에서 죽지 않으며,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여 전변하는 것이 없이 영구적으로 그대로 존속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킷다빠도시까였는데, 오랜 세월 웃고 놀고 쾌락을 즐기는데 빠져 지냈다. 오랜 세월 웃고 놀고 쾌락을 즐기는데 빠져 지내면서 우리는 새김을 잃어버렸다. 새김을 잃어버려서 우리는 그 무리에서 죽어서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고 오래 살지 못하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로 여기에 온 것이다.’라고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그것 때문에 그것에 의거하여 부분적 영원주의자·부분적 비영원주의자로서, 자아와 세계가 부분적으로는 영원하고 부분적으로는 영원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두 번째 근거이다.
41.
그러면 세 번째로 존귀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거하여 부분적 영원주의자·부분적 비영원주의자로서, 자아와 세계가 부분적으로는 영원하고 부분적으로는 영원하지 않다고 주장하는가?
수행승들이여, 마노빠도씨까라는 신들이 있는데, 그들은 오랜 세월 서로 질시하며 지낸다. 오랜 세월 질시하며 지내면서 그들은 서로 마음을 퇴락시킨다. 서로 마음이 퇴락되자 몸이 피로해지고 마음이 피로해져서 그들은 그 신들의 무리에서 죽는다.
수행승들이여, 그런데 어떤 뭇 삶은 그 무리에서 죽어서 여기에 오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와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다.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정근하고 수행하고 방일을 여의고 올바로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일으켜서 마음의 삼매를 경험하여 바로 전생의 삶의 형태를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이와같이 ‘이 마노빠도씨까가 아닌 존귀한 신들은 오랜 세월 서로 질시하지 않고 지낸다. 오랜 세월 질시하지 않고 지내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마음을 퇴락기키지 않고 서로 마음이 퇴락하지 않아서 몸이 피로해지지 않고 마음이 피로해지지 않는다. 몸이 피로해지지 않고 마음이 피로해지지 않아서 그들은 그 신들의 무리에서 죽지 않으며,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여 전변하는 것이 영구적으로 그대로 존속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노빠도씨까였는데, 오랜 세월 서로 질시하며 지냈다. 오랜 세월 질시하며 지내면서 우리는 서로 마음을 퇴락시켰다. 서로 마음이 퇴락하자 몸이 피로해지고 마음이 피로해졌다. 우리는 그 무리에서 죽어서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고 오래 살지 못하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로 여기에 온 것이다.’라고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그것 때문에 그것에 의거하여 부분적 영원주의자·부분적 비영원주의자로서, 자아와 세계가 부분적으로는 영원하고 부분적으로는 영원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세 번째 근거이다.
42.
그러면 네 번째로 존귀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거하여 부분적 영원주의자·부분적 비영원주의자로서, 자아와 세계가 부분적으로는 영원하고 부분적으로는 영원하지 않다고 주장하는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는 추론자이자 탐구자이다. 그는 추론으로 두드리고 탐구로 뒤쫓아서 스스로 이해한 것을 이와같이 ‘시각이라고도 하고 청각이라고도 하고 후각이라고도 하고 미각이라고도 하고 촉각이라고도 하는 그 자아는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고 영원하지 않아서 전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라거나 정신이라거나 의식이라고 하는 그 자아는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전변하는 것이 없이 항구적으로 그대로 존속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그것 때문에 그것에 의거하여 부분적 영원주의자·부분적 비영원주의자로서, 자아와 세계가 부분적으로는 영원하고 부분적으로는 영원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네 번째 근거이다.
43.
수행승들이여, 이와같이 그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부분적 영원주의자·부분적 비영원주의자로서, 네 가지 근거를 통해서 자아와 세계가 부분적으로는 영원하고 부분적으로는 영원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부분적 영원주의자·부분적 비영원주의자로서, 자아와 세계가 부분적으로는 영원하고 부분적으로는 영원하지 않다면, 모두가 이러한 네 가지 근거나 그들 가운데 어느 하나에 의해서 주장하는 것이다. 그 밖에 다른 근거는 없다.
44.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이와같이 파악되고 이와같이 집착된 견해의 토대는 이와 같은 운명, 이와 같은 미래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여래는 이것을 분명히 알 뿐만 아니라 그 이상도 분명히 안다. 그러나 그는 그 분명히 아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을 여의고 그는 적멸을 자각한다.
수행승들이여, 느낌들의 생성과 소멸과 유혹과 위험과 여윔을 있는 그대로 알아서 여래는 집착없이 해탈한다.
45.
수행승들이여, 이것들이 여래가 스스로 여래가 스스로 곧바로 알고 깨달아 선언한,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듣기 어렵고, 고요하고, 탁월하고, 사고의 영역을 뛰어넘고, 극히 미묘하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만 알려지는 것으로, 그것으로써 여래를 있는 그대로 올바로 칭찬할 수 있는, 그 가르침이다.”
[3. 유한·무한론 4가지]
46.
[세존]
“수행승들이여,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유한·무한자로서 4가지 근거를 통해서 세계가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주장한다. 그 고귀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거하여 유한·무한자로서, 4가지 근거를 통해서 세계가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주장 주장하는가?
47.
그러면 첫 번째로 그 고귀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거하여 유한·무한자로서, 세계가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주장 주장하는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는 열심히 노력하고 정근하고 수행하고 방일을 여의고 올바로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일으켜서 마음의 삼매를 경험하여 세계에 관하여 유한하다고 지각한다. 그는 이와같이 ‘이 세계는 유한하고 둘레를 갖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정근하고 수행하고 방일을 여의고 올바로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일으켜서 마음의 삼매를 경험하여 세계에 관하여 유한하다고 지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세계가 유한하고 둘레를 갖는 사실을 그대로 분명히 안다.’라고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그 고귀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그것 때문에 그것에 의거하여 유한무한자로서 세계가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주장하는 첫 번째 근거이다.
48.
그러면, 두 번째로 그 고귀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거하여 유한·무한자로서, 세계가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주장 주장하는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는 열심히 노력하고 정근하고 수행하고 방일을 여의고 올바로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일으켜서 마음의 삼매를 경험하여 세계에 관하여 무한하다고 지각한다. 그는 이와같이 ‘이 세계는 유한하고 둘레를 갖는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이 세계는 무한하고 한계가 없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정근하고 수행하고 방일을 여의고 올바로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일으켜서 마음의 삼매를 경험하여 세계에 관하여 무한하다고 지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세계가 무한하고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그대로 분명히 안다.’라고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그 고귀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그것 때문에 그것에 의거하여 유한·무한자로서 세계가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주장하는 두 번째 근거이다.
49.
그러면, 세 번째로 그 고귀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거하여 유한·무한자로서, 세계가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주장 주장하는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는 열심히 노력하고 정근하고 수행하고 방일을 여의고 올바로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일으켜서 마음의 삼매를 경험하여 세계에 관하여 위아래로 유한하다고 지각하고 옆으로 무한하다고 지각한다. 그는 이와같이 ‘이 세계는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이 세계는 무한하고 한계가 없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이 세계는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정근하고 수행하고 방일을 여의고 올바로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일으켜서 마음의 삼매를 경험하여 세계에 관하여 위아래로 유한하다고 지각하고 옆으로 무한하다고 지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세계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는 사실을 그대로 분명히 안다.’라고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그 고귀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그것 때문에 그것에 의거하여 유한·무한자로서 세계가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주장하는 세 번째 근거이다.
50.
그러면, 세 번째로 그 고귀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거하여 유한·무한자로서, 세계가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주장 주장하는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는 추론자이자 탐구자이다. 그는 추론으로 두드리고 탐구로 뒤쫓아서 스스로 이해한다. 그는 이와같이 ‘이 세계는 유한한 것도 아니고 무한한 것도 아니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 ‘이 세계는 유한하고 둘레를 갖는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이 세계는 무한하고 한계가 없다.’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거짓이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이 세계는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거짓이다. 이 세계는 유한한 것도 아니고 무한한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그 고귀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그것 때문에 그것에 의거하여 유한·무한자로서 세계가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주장하는 네 번째 근거이다.
51.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유한·무한론자로서, 네 가지 근거를 통해서 세계가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주장한다.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유한·무한론자로서, 세계가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주장한다면, 모두가 이러한 네 가지 근거나 그들 가운데 어느 하나에 의해서 주장하는 것이다. 그 밖에 다른 근거는 없다.
52.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이와같이 파악되고 이와같이 집착된 견해의 토대는 이와 같은 운명, 이와 같은 미래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여래는 이것을 분명히 알 뿐만 아니라 그 이상도 분명히 안다. 그러나 그는 그 분명히 아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을 여의고 그는 적멸을 자각한다.
수행승들이여, 느낌들의 생성과 소멸과 유혹과 위험과 여윔을 있는 그대로 알아서 여래는 집착없이 해탈한다.
53.
수행승들이여, 이것들이 여래가 스스로 여래가 스스로 곧바로 알고 깨달아 선언한,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듣기 어렵고, 고요하고, 탁월하고, 사고의 영역을 뛰어넘고, 극히 미묘하여 슬기로운 자들에게만 알려지는 것으로, 그것으로써 여래를 있는 그대로 올바로 칭찬할 수 있는, 그 가르침이다.”
[4. 회의주의 4가지]
54.
[세존]
“수행승들이여,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회의주의자로서 이러저러한 것에 관하여 질문을 받으면 네 가지 근거를 통해서 말의 꼬리를 잡아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 고귀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거하여 회의주의자로서 이러저러한 것에 관하여 질문을 받으면 네 가지 근거를 통해서 말의 꼬리를 잡아 궤변을 늘어놓는가?
55.
그러면, 첫 번째로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회의주의자로서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거하여 이러저러한 것에 관하여 질문을 받으면 말의 꼬리를 잡아 궤변을 늘어놓는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는 ‘이것은 착하고 건전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고 ‘이것은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한다. 그는 이와같이 ‘나는 '이것은 착하고 건전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고 ‘이것은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한다. 만약 내가 ‘이것은 착하고 건전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고 ‘이것은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면서 ‘이것은 착하고 건전한 것이다.’라고 해명하거나 ‘이것은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다.’라고 해명하면, 그것은 나에게 거짓이 될 것이다. 나에게 거짓인 것은 나에게 고뇌가 될 것이고 나에게 고뇌가 되는 것은 나에게 장애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그는 거짓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거짓을 말하는 것을 혐오하여 ‘이것은 착하고 건전한 것이다.’라고 해명하지 못하고 ‘이것은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다.’라고 해명하지 못하고 이러저러한 것에 관하여 질문을 받으면 ‘나는 이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다르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닌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의 꼬리를 잡아 궤변을 늘어놓는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회의주의자로서 그것 때문에 그것에 의거해서 이러저러한 것에 관하여 질문을 받으면 말의 꼬리를 잡아 궤변을 늘어놓는 첫 번째의 근거이다.
56.
그러면, 두 번째로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회의주의자로서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거하여 이러저러한 것에 관하여 질문을 받으면 말의 꼬리를 잡아 궤변을 늘어놓는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는 ‘이것은 착하고 건전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고 ‘이것은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한다. 그는 이와같이 ‘나는 ‘이것은 착하고 건전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고 ‘이것은 악착하고 불건전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한다. 만약 내가 ‘이것은 착하고 건전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고 ‘이것은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면서 ‘이것은 착하고 건전한 것이다.’라고 해명하거나 ‘이것은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다.’라고 해명하면, 그것은 나에게 욕망이나 탐욕이나 성냄이나 분노를 일으킬 것이다. 나에게 욕망이나 탐욕이나 성냄이나 분노를 일어나면, 그것은 나에게 집착이 될 것이고 나에게 집착이 되는 것은 고뇌가 될 것이고 나에게 고뇌가 되는 것은 나에게 장애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그는 집착을 두려워하고 집착을 혐오하여 ‘이것은 착하고 건전한 것이다.’라고 해명하지 못하고 ‘이것은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다.’라고 해명하지 못하고 이러저러한 것에 관하여 질문을 받으면 ‘나는 이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다르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닌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의 꼬리를 잡아 궤변을 늘어놓는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회의주의자로서 그것 때문에 그것에 의거해서 이러저러한 것에 관하여 질문을 받으면 말의 꼬리를 잡아 궤변을 늘어놓는 두 번째의 근거이다.
57.
그러면, 세 번째로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회의주의자로서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거하여 이러저러한 것에 관하여 질문을 받으면 말의 꼬리를 잡아 궤변을 늘어놓는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는 ‘이것은 착하고 건전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고 ‘이것은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한다. 그는 이와같이 ‘나는 '이것은 착하고 건전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고 ‘이것은 악착하고 불건전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한다. 만약 내가 '이것은 착하고 건전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고 ‘이것은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면서 '이것은 착하고 건전한 것이다.'라고 해명하거나 '이것은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다.'라고 해명하면, 생각건대 박식하고 총명하고 논쟁에 밝고 털끝을 맞추어 쪼갤 정도의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지혜로써 사견을 척파하면서 돌아다니는데, 그들이 나에게 그것에 관하여 반대로 힐문하고 이유를 묻고 질책할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 그것에 관하여 반대로 힐문하고 이유를 묻고 질책하면, 나는 그들에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지 못한다면, 고뇌가 될 것이고 나에게 고뇌가 되는 것은 나에게 장애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그는 힐문을 두려워하고 힐문을 혐오하여 ‘이것은 착하고 건전한 것이다.’라고 해명하지 못하고 ‘이것은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다.’라고 해명하지 못하고 이러저러한 것에 관하여 질문을 받으면 ‘나는 이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다르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닌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의 꼬리를 잡아 궤변을 늘어놓는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회의주의자로서 그것 때문에 그것에 의거해서 이러저러한 것에 관하여 질문을 받으면 말의 꼬리를 잡아 궤변을 늘어놓는 세 번째의 근거이다.
58.
그러면, 네 번째로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회의주의자로서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거하여 이러저러한 것에 관하여 질문을 받으면 말의 꼬리를 잡아 궤변을 늘어놓는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는 우둔하고 몽매하다. 그는 우둔하고 몽매해서 이러저러한 것에 관하여 질문을 받으면 말의 꼬리를 잡아 이와같이 궤변을 늘어놓는다.
1) 만약 그대가 나에게 ‘저 세상은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내가 ‘저 세상은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저 세상은 있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다르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닌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2) 만약 그대가 나에게 ‘저 세상은 없는가?’라고 묻는다면, 내가 ‘저 세상은 없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저 세상은 없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다르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닌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3) 만약 그대가 나에게 ‘저 세상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내가 ‘저 세상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저 세상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다르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닌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4) 만약 그대가 나에게 ‘저 세상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내가 ‘저 세상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이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저 세상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이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다르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닌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5) 만약 그대가 나에게 ‘홀연히 생겨나는 화생의 뭇 삶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내가 ‘홀연히 생겨나는 화생의 뭇 삶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홀연히 생겨나는 화생의 뭇 삶이 있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다르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닌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6) 만약 그대가 나에게 ‘홀연히 생겨나는 화생의 뭇 삶이 없는가?’라고 묻는다면, 내가 ‘홀연히 생겨나는 화생의 뭇 삶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홀연히 생겨나는 화생의 뭇 삶이 없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다르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닌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7) 만약 그대가 나에게 ‘홀연히 생겨나는 화생의 뭇 삶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내가 ‘홀연히 생겨나는 화생의 뭇 삶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홀연히 생겨나는 화생의 뭇 삶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다르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닌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8) 만약 그대가 나에게 ‘홀연히 생겨나는 화생의 뭇 삶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내가 ‘홀연히 생겨나는 화생의 뭇 삶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이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홀연히 생겨나는 화생의 뭇 삶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이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다르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닌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9) 만약 그대가 나에게 ‘선업과 악업의 업의 성숙으로서의 과보가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내가 ‘선업과 악업의 업의 성숙으로서의 과보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선업과 악업의 업의 성숙으로서의 과보가 있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다르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닌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10) 만약 그대가 나에게 ‘선업과 악업의 업의 성숙으로서의 과보가 없는가?’라고 묻는다면, 내가 ‘선업과 악업의 업의 성숙으로서의 과보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선업과 악업의 업의 성숙으로서의 과보가 없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다르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닌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11) 만약 그대가 나에게 ‘선업과 악업의 업의 성숙으로서의 과보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내가 ‘선업과 악업의 업의 성숙으로서의 과보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선업과 악업의 업의 성숙으로서의 과보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다르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닌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12) 만약 그대가 나에게 ‘선업과 악업의 업의 성숙으로서의 과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내가 ‘선업과 악업의 업의 성숙으로서의 과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이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선업과 악업의 업의 성숙으로서의 과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이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다르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닌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13) 만약 그대가 나에게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내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다르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닌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14) 만약 그대가 나에게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가?’라고 묻는다면, 내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다르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닌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15) 만약 그대가 나에게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내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 것이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다르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닌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16) 만약 그대가 나에게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내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것이다.’ 고 생각한다면,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것이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다르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닌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회의주의자로서 그것 때문에 그것에 의거해서 이러저러한 것에 관하여 질문을 받으면 말의 꼬리를 잡아 궤변을 늘어놓는 네 번째의 근거이다.
59.
수행승들이여, 이와같이 그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회의주의자로서, 이러저러한 것에 관하여 질문을 받으면 말의 꼬리를 잡아 궤변을 늘어놓는다.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회의주의자로서, 이러저러한 것에 관하여 질문을 받으면 말의 꼬리를 잡아 궤변을 늘어놓는다면, 모두가 이러한 네 가지 근거나 그들 가운데 어느 하나에 의해서 주장하는 것이다. 그 밖에 다른 근거는 없다.
60.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이와같이 파악되고 이와같이 집착된 견해의 토대는 이와 같은 운명, 이와 같은 미래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여래는 그것을 분명히 알 뿐만 아니라 그 이상도 분명히 안다. 그러나 그는 그 분명히 아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을 여의고 그는 적멸을 자가한다.
수행승들이여, 느낌들의 생성과 유혹과 위험과 여윔을 있는 그대로 알아서 여래는 집착 없이 해탈한다.
61.
수행승들이여, 이것들이 여래가 스스로 곧바로 알고 깨달아 선언한,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탁월하고, 사고의 영역을 뛰어넘고, 극히 미묘하여 슬기로운 자들에게만 알려지는 것으로, 그것으로써 여래를 있는 그대로 올바로 칭찬할 수 있는, 그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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