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일곱군데로 갈라지는 중생세계
이때 문수사리법왕자가 대중 가운데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까지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경의 이름은 무엇이며, 저희들과 중생들은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의 이름은 '대불정실달다반달라무상보인시방 여래청정 해안(海眼)'이며, 또한 구호친인도탈아난급차회중성비구니득보리심입변지해(菩提心入遍知海)이라고도 이름하며, 또한 여래밀인수증요의라고도 이름하며, 또한 대방광묘연화왕시방불모다라니주(佛母陀羅尼呪)라고도 이름하며, 또한 관정장구제보살만행수능엄(首楞嚴)이라고도 이름하니, 너희들은 마땅히 잘 받들어 지니도록 하여라.
이 말씀이 끝나자, 아난과 대중은 여래께서 열어 보이신 밀인반달라의 뜻을 받들고, 겸하여 이 경의 완벽한 뜻을 갖춘 이름을 들으니, 선나로 성인의 자리를 닦아 더욱 위로 향하는 묘한 이치를 단번에 깨달아서, 심려가 텅 비어 삼계(三界)에서 마음을 닦는 6품의 미세한 번뇌를 끊었다.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까지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두 손 모아 공손하게 부처님께 아뢰었다.
“위대한 위덕을 갖추신 세존이시여, 자혜로운 음성으로 차별 없이 중생의 깊고 미세한 번뇌를 훌륭하게 깨우쳐 주시니, 저는 이제 몸과 마음이 상쾌하며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이 묘하고 밝고 진실하고 청정하고 묘한 마음이 본래 두루 원만하다면, 이와 같이 넓은 땅과 풀과 나무와 꿈틀거리는 미물까지도 본원이 진여이며, 그대로 여래께서 성불하신 진실한 본체입니다. 부처님 자체의 진실이라면, 어째서 또 지옥과 아귀와 축생과 수라와 인간과 천상 등의 길이 있는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이 길은 본래 그대로 있는 것입니까, 중생의 망상 습기로 생기는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보살계를 받은 보련향 비구니는 남몰래 음욕을 행하면서 '음행은 살생도 아니고 도둑질도 아니니 업보가 없다'고 망언하다가 그 말이 끝나자, 먼저 여근(女根)에서 일어난 맹렬한 불이 온몸의 마디마디를 태우면서 무간지옥에 떨어졌습니다. 또 유리대왕과 선성비구도 마찬가집니다. 유리는 구담족을 죽인 죄로, 선성은 '일체 법이 공하다'고 한 거짓말로, 각각 살아 있는 몸으로 아비지옥에 빠졌습니다.
이 모든 지옥은 일정한 곳이 있습니까, 아니면 자연히 저들마다 업을 일으켜 각각 홀로 받는 것입니까? 부디 큰 자비를 내리시어 어린 어리석음을 깨워주시고, 계를 지닌 중생들이 결정된 뜻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높이 받들어 조심하여 깨끗이 지켜서 범하지 않게 하옵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시원하게 잘 물었다. 모든 중생이 삿된 견해에 들어가지 않게 하려고 물었으니, 너는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설하리라.”
“아난아, 일체중생은 참으로 본래 진실하고 청정하나, 저 허망한 보는 작용에 따라 허망한 습기가 생기니, 이로 인하여 안팎으로 나뉘어 열린 것이니라.
아난아, 내분은 곧 중생의 분내이니, 온갖 애욕의 집착으로 인하여 허망한 정을 일으켜서 정이 쉬지 않고 쌓이면, 애욕의 물이 생기느니라.
그러므로 중생이 마음속으로 맛난 음식을 생각하면 입안에서 침이 나오고, 마음속으로 앞사람을 생각하여 가련하게 여기거나 한탄하면, 눈 속에 눈물이 고이며, 탐욕으로 재물과 보배를 구하여 마음속에 애착의 군침을 흘리면 온몸이 탐욕 빛으로 윤택해지고, 마음속으로 음욕을 행하려고 하면 남근과 여근에서 자연히 정액이 흐르느니라.
아난아, 온갖 애욕이 비록 다를지라도 흘러서 맺힘은 한가지니, 젖어 축축한 것은 오르지 못하여 자연히 아래로 처지기 마련이다. 이를 내분이라고 한다.
아난아, 외분은 곧 중생의 분외이니, 온갖 간절한 우러름으로 인하여 공(空)한 생각을 밝혀서 생각이 쉬지 않고 쌓이면, 뛰어난 기운이 생기느니라. 그러므로 중생이 마음으로 금계(禁戒)를 지키면 온몸이 가볍고 맑아지며, 마음에 주인을 지니면 돌아보는 모습이 웅대하여 씩씩해지고, 마음으로 천상에 나기를 원하면 날아다니는 꿈을 꾸며, 마음을 부처님의 나라에 두면 성스러운 경계가 은연중 나타나고, 선지식을 섬기면 스스로 몸과 목숨을 가볍게 여기느니라.
아난아 온갖 빈 생각이 비록 다를지라도 가볍고 들뜸은 한가지니, 날아 움직이는 것은 가라앉지 않고 자연히 뛰어오르기 마련이다. 이를 바깥 몫이라고 하느니라.
아난아, 일체세간에는 생사가 서로 이어지고 있는데, 출생은 순종하는 습기(習氣)를 좇고, 죽음은 변한 흐름을 좇느니라. 죽음이 닥쳐서 아직 따스한 감촉을 버리기 전에는 일생의 선악이 동시에 모두 나타나서, 죽음을 거역하고 생을 순종하는 두 습기가 서로 어울리느니라.
순수한 생각뿐이면 곧 날아 올라 반드시 천상에 태어나게 된다. 만일 날아오르는 마음 가운데 복덕과 지혜와 청정한 원을 겸하고 있다면, 자연히 마음이 열려서 시방 부처님을 뵙게 되고 일체 정토에 소원대로 왕생하느니라.
정이 적고 생각이 많으면 멀리까지 가볍게 날지는 못하나, 곧 날아다니는 신선이나, 힘센 귀신 왕이나, 날아다니는 야차나, 땅에 다니는 나찰이 되어, 네 하늘에 놀며 다니는 데는 걸림이 없느니라. 그 가운데 만일 좋은 원과 좋은 마음이 있어서 불법을 보호하여 지키거나, 혹은 금계를 보호하여 계를 지키는 사람을 따르거나, 혹은 신비한 주문을 보호하여 주문 가진 사람을 따르거나, 혹은 선정을 보호하여 법인을 안전하게 지킨다면, 이들은 친히 여래의 자리 아래에서 부처님을 모시게 되느니라.
정과 생각이 균등하면 날지도 못하고 처지지도 않아서 인간으로 태어나게 되는데, 생각은 밝아서 총명하고 정은 깊어서 우둔 하느니라.
정이 많고 생각이 적으면 축생으로 흘러 들어가서, 무거운 것은 털 달린 짐승이 되고, 가벼운 것은 깃 달린 짐승이 되느니라.
정이 7푼이고 생각이 3푼이면 수륜(水輪)에 잠겨 내려가서 화륜(火輪)의 경계에 태어나는데, 기가 맹렬한 불을 받아 몸이 아귀가 되니 항상 불에 타서 물도 몸을 해치므로, 먹지도 목하고 마시지도 못하며 백천 겁을 지내느니라.
정이 9푼이고 생각이 1푼이면 화륜(火輪)을 뚫고 내려가서 몸이 풍륜과 화륜이 맞닿아 지나는 곳에 들어가서는, 두 가지 지옥 곧 고통을 쉴 틈이 있는 가벼운 지옥과 고통을 쉴 틈이 없는 무거운 지옥에 태어나느니라.
순수한 정 뿐이면 곧 잠겨서 아비지옥에 들어간다. 만일 잠기는 마음 가운데 대승을 비방한 죄와 부처님의 금계를 헌 죄와 거짓말로 속여 설법한 죄와 헛되게 시주의 보시를 탐한 죄와 분에 넘게 공경을 받은 죄와 오역죄와 십중죄가 있으면, 다시 시방의 아비지옥에 태어나느니라.
나쁜 업을 따라 지은 죄는 비록 자신이 홀로 불러들이나, 여럿이 공동의 몫 가운데서는 원래의 땅을 겸하느니라.
아난아, 이런 일들은 모든 중생이 자기 업으로 감염된 경계로서, 열 가지 습인을 지어 여섯가지로 어울린 과보를 받는 것이니라.
무엇을 열 가지 원인이라고 하겠느냐?
아난아, 첫째는 음욕의 습기로 접촉하여 어울리는 행위이니라. 서로 비비는데서 발생하여 문지르고 비비는 작용을 쉬지 않기 때문에, 죽는 순간에 맹렬한 큰 불빛이 그 가운데서 발동하는 모양을 보는 것이니, 마치 사람이 스스로 손을 마주 비비면 따뜻한 기운이 뚜렷이 나타나는 것과 같으니라.
이렇게 두 습기가 서로 타기 때문에 무쇠평상과 구리기둥의 일들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일체 여래께서도 다같이 음행을 지목하여 '애욕의 불꽃'이 라고 이름하셨으며, 보살은 애욕의 경계를 보면 불구덩이를 피하듯 멀리하느니라.
둘째는 탐욕의 습기로 계략을 일삼아 어울리는 행위이니라. 서로 빨아 들이키는데서 발생하여 당기는 작용을 그치지 않기 때문에, 죽는 순간에 차가움이 쌓인 딱딱한 얼음 가운데서 얼어 터지는 모양을 보는 것이니, 마치 사람이 입으로 공기를 빨아 들이키면, 서늘한 촉감이 생기는 것과 같으니라.
이렇게 두 습기가 서로 능멸하기 때문에 죽은 뒤에 '타타 파파 라라'라는 추위를 참는 소리와 푸르고 붉고 흰 연꽃 빛깔의 차가운 얼음 등의 일들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일체 여래께서도 다같이 탐욕으로 많이 구하는 일을 지목하여 '탐욕의 물'이라고 하셨으며, 보살은 탐욕의 경계를 보면 장독이 흐르는 바다를 피하듯 멀리하느니라.
셋째는 아만의 습기를 따라 능멸로 어울리는 행위니라. 서로 자랑하는데서 발생하여 달려 흐름이 쉬지 않기 때문에, 죽는 순간에 솟구쳐 달리는 물결이 물결을 쌓아 물이 되는 모양을 보는 것이니, 마치 사람이 입안을 혀로 핥아서 연이어 맛을 보면 물이 생기는 것과 같으니라.
이렇게 두 습기가 서로 두드리기 때문에 죽은 뒤에 피의 강물, 잿빛 강물, 독한 바닷물, 끓는 구리 물을 붓고 삼키는 일들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여래께서도 다같이 아만을 지목하여 '어리석은 물을 마시는 짓'이라고 하셨으며, 보살은 아만의 경계를 보면 큰 소용돌이를 피하듯 멀리하느니라.
넷째는 성냄의 습기를 따라 충돌로 어울리는 행위이니라. 서로 거슬리는데서 발생하여 거슬림이 맺혀 쉬지 않고 마음의 열이 불을 일으켜서 기운을 달구어 쇠가 되기 때문에, 죽는 순간에 칼산과 쇠몽둥이와 칼 나무와 칼 바퀴와 도끼와 작두와 창과 톱의 모양을 보는 것이니, 마치 원한을 품으면 살기가 펄펄 살아 움직이는 것과 같으니라.
이렇게 두 습기가 서로 치기 때문에 죽은 뒤에 생식기를 헐고 몸을 잘라내고 목을 베고 몸을 두 쪽 내고 허리를 꺾고 몸에 말뚝을 박고 몽둥이로 때리고 창으로 치는 일들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일체 여래께서도 다같이 성냄을 지목하여 '날카로운 칼'이라고 하셨으며, 보살은 성냄의 경계를 보면 죽이는 곳을 피하듯 멀리하느니라.
다섯째는 속임수의 습기를 따라 유혹으로 어울리는 행위이니라. 서로 달래어 꾀는데서 발생하여 이끌어 일으키기를 멈추지 않기 때문에, 죽는 순간에 밧줄로 묶고 주리를 틀고 몸을 얽어 칼을 씌우는 모양을 보는 것이니, 마치 물이 밭에 스며들어 풀과 나무가 자라는 것과 같으니라.
이렇게 두 습기가 서로 연이어 끌어들이기 때문에 죽은 뒤에 칼을 씌우고 족쇄를 채우고 채찍질하고 곤장을 치고 몽둥이로 때리는 일들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일체 여래께서도 다같이 간사한 거짓을 지목하여 '남을 모함하는 도적'이라고 하셨으며, 보살은 속임수의 경계를 보면 승냥이와 이리처럼 두렵게 여기느니라.
여섯째는 속임의 습기를 따라 기만으로 어울리는 행위이니라. 서로 업신여겨 속이는데서 발생하여 꾸며 속이기를 그치지 않고 날랜 마음으로 간사한 꾀를 내기 때문에, 죽는 순간에 티끌과 먼지와 똥과 오줌의 더럽고 부정한 모양을 보는 것이니, 마치 티끌을 바람에 날려 보내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하는 것과 같으니라.
이렇게 두 습관이 서로 더하기 때문에 죽은 뒤에 빠져 가라앉고 치어 오르고 날리다가 떨어지고 물에 뜨고 잠기는 일들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일체 여래께서도 다같이 속임을 지목하여 '겁살(劫殺)'이라고 하셨으며, 보살은 속임의 경계를 보면 뱀을 밟은 듯 피하느니라.
일곱째는 원망의 습기를 따라 거리낌으로 어울리는 행위이니라. 한을 품는데서 발생하기 때문에, 죽는 순간에 돌멩이가 날리고 큰 돌을 던지고 궤짝에 가두고 수레 울에 갇혀 끌려가고 독 안에 담기고 포대에 쌓여 치는 모양을 보는 것이니, 마치 몰래 독을 가진 사람이 가슴속에 악을 쌓아 품는 것과 같으니라.
이렇게 두 습기가 서로 잡아 삼키기 때문에 죽은 뒤에 집어던지고 잡아들이고 치고 쏘고 내동댕이치고 거머쥐는 일들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일체 여래께서도 원망하는 사람을 지목하여 '몰래 해치는 귀신'이라고 하셨으며, 보살들은 원망을 보면 짐독의 술을 피하듯 멀리하느니라.
여덟째는 나쁜 소견의 습기를 따라 밝힘으로 어울리는 행위이니라. 살가야와 견취와 계금취와 같은 온갖 업이 삿되게 깨닫고 거역하는 데서 발생하여 상반된 견해를 내놓기 때문에, 죽는 순간에 왕사의 주리가 문적으로 증명하여 집행하는 모양을 보는 것이니, 마치 길가는 사람이 오고가면서 서로 보는 것과 같으니라.
이렇게 두 습기가 서로 어울리기 때문에 죽은 뒤에 힐문하고, 유도하여 사실을 심문하고, 고문하고 방문조사로 증거를 대고, 숨긴 일을 드러내어 규명하고, 업경대로 비춰 밝히고, 선악동자가 문부로 변론하는 일들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일체 여래께서도 다같이 나쁜 소견을 지목하여 '나쁜 소견의 구덩이'라고 하셨으며, 보살은 온갖 허망하게 두루 집착한 소견의 경계를 보면 독 구렁에 들어가듯 멀리하느니라.
아홉째는 덮어씌움의 습기를 따라 가해로 어울리는 행위이니라. 모함하고 헐뜯는데서 발생하기 때문에, 죽는 순간에 두 산이 합하는 사이에 끼이기도 하고 두 바위가 마주 부딪치는 사이에 치이기도 하고 방아와 맷돌에 부서지기도 하고 보습에 혀와 몸이 갈리기도 하는 모양을 보는 것이니, 마치 남을 모함하는 도적이 어질고 착한 사람을 핍박하여 죄를 덮어씌우는 것과 같으니라.
이렇게 두 습기가 서로 배척하기 때문에 죽은 뒤에 누르고 비비고 방망이로 때리고 눌러 앉고 짓밟아 문지르고 자루로 걸러내고 몸을 짓눌러 실처럼 뽑아내는 일들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일체 여래께서도 다같이 원망하여 헐뜯음을 지목하여 '간특한 범'이라고 하셨으며, 보살은 덮어씌움의 경계를 보면 벼락을 만나듯 멀리하느니라.
열 번째는 송사(訟事)의 습기를 따라 말다툼으로 어울리는 행위이니라. 감춰 덮는 데서 발생하기 때문에, 죽는 순간에 거울로 비추고 촛불로 밝히는 모양을 보는 것이니, 마치 햇빛에 그림자를 감출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두 습기가 서로 펴서 늘어놓기 때문에 나쁜 벗과 업 거울과 불구슬로 지난 죄업을 들춰내고 증거를 대는 일들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일체 여래께서도 다같이 덮어 감춤을 지목하여 '숨어 있는 도적'이라고 하셨으며, 보살은 덮어 감추는 경계를 보면 높은 산을 이고 큰 바다를 밟는 것처럼 무겁게 여기느니라.
무엇을 여섯 과보라고 하겠느냐?
아난아, 일체중생이 6식으로 업을 지어 불러들인 나쁜 과보가 여섯 감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나쁜 과보가 여섯 감관에서 나온다고 하겠느냐?
첫째는 보는 작용의 업보가 나쁜 과보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 보는 작용의 업이 어울리면, 죽을 무렵에 먼저 시방세계에 가득 찬 맹렬한 불꽃을 보면서, 망자의 혼령이 날아 떨어져서 연기를 타고 무간지옥에 들어가느니라.
망자(亡者)는 여기서 두 모양을 밝히는데, 하나는 밝음을 보는 작용이니, 가지가지 나쁜 경계를 두루 잘 보면서 한량없는 두려움을 내는 일이며, 하나는 어둠을 보는 작용이니, 적막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한량없는 공포를 일으키는 일이다.
이러한 보는 작용의 불이 듣는 작용을 태우면 가마솥의 끓는 쇳물과 끓는 구리 물이 되고, 숨을 태우면 검은 연기와 검붉은 불꽃이 되며, 맛을 태우면 불에 탄 알맹이와 쇠죽이 되고, 촉감을 태우면 뜨거운 재와 화로의 숯이 되며, 의식을 태우면 작은 불꽃들이 생겨서 빠르게 번져 허공계를 세차게 두드리느니라.
둘째는 듣는 작용의 업보가, 나쁜 과보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 듣는 작용의 업이 어울리면, 죽을 무렵에 먼저 하늘과 땅이 파도에 빠져 잠기는 모양을 보면서, 망자의 혼령은 휩쓸려 내려가서 흐름을 타고 무간지옥에 들어가느니라.
망자는 여기서 두 모양을 밝히는데, 하나는 들음이 열린 작용이니, 가지가지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면서 정신이 아득하여 어지러워지는 일이며, 하나는 들음이 막힌 작용이니, 적막하여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가운데 유명의 넋이 침몰하는 일이다.
이러한 듣는 작용의 물결이 듣는 작용에 흘러들면 책망과 힐난이 되고, 보는 작용에 흘러들면 우레와 우레 소리와 악독한 기운이 되며, 숨에 흘러들면 비와 안개가 되어 온갖 독충이 흩어져서 신체에 가득 차게 되고, 맛에 흘러들면 고름과 피가 되어 가지가지 잡된 더러움을 이루며, 감촉에 흘러들면 축생과 귀신과 똥과 오줌이 되고, 의식에 흘러들면 번개와 우박이 되어 마음의 넋을 부숴 무너뜨리느니라.
셋째는 냄새 맡음의 업보가 나쁜 과보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 냄새 맡는 업이 어울리면, 죽을 무렵에 먼저 독한 기운이 멀고 가까운 곳에 꽉 찬 모양을 보면서, 망자의 혼령이 땅에서 솟아 나와 무간지옥에 들어가느니라.
망자는 여기서 두 모양을 밝히는데, 하나는 냄새 맡음이 통한 작용이니, 온갖 나쁜 냄새를 심하게 맡는 가운데 마음이 뒤흔들리는 일이며, 둘째는 냄새 맡음이 막힌 작용이니, 기가 가리어 통하지 않는 가운데 땅에 넘어져서 기절하는 일이다.
이러한 냄새 맡는 기운이 숨에 부딪치면 막힘과 통함이 되고, 보는 작용에 부딪치면 불과 횃불이 되며, 듣는 작용에 부딪치면 잠김과 빠짐과 녹음과 끓음이 되고, 맛에 부딪치면 썩는 것과 쉬어 변하는 것이 되며, 감촉에 부딪치면 불어터짐과 썩어 문드러짐과 산처럼 큰 살덩어리가 되어 백천의 구멍에서 한량없는 벌레들이 뜯어먹는 것이 되고, 생각에 부딪치면 재와 장독과 날리는 모래와 자갈이 되어 몸을 쳐부수느니라.
넷째는 맛의 업보가 나쁜 과보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 맛의 업이 어울리면, 죽을 무렵에 먼저 쇠 그물에 붙은 맹렬한 불꽃이 치열하게 타올라 세계를 두루 덮는 모양을 보면서, 망자의 혼령은 아래를 뚫고 내려가다가 그물에 걸려 머리가 거꾸로 매달린 채 무간지옥에 들어가느니라.
망자는 여기서 두 모양을 밝히는데, 첫째는 빨아들이는 기의 작용이니, 그 기운이 맺혀 차가운 얼음이 되는 가운데 육신이 얼어 터지는 일이며, 둘째는 내뱉는 기의 작용이니, 그 기운이 날려 맹렬한 불꽃이 되는 가운데 골수가 타서 문드러지는 일이다.
이러한 맛보는 작용이 맛을 만나면 승복과 참음이 되고, 보는 작용을 만나면 불에 달군 쇠와 돌이 되며, 듣는 작용을 만나면 군사의 예리한 칼이 되고, 숨결을 만나면 커다란 쇠 울타리가 되어 국토를 가득 덮으며, 감촉을 만나면 활과 화살과 쇠뇌와 쏘는 것이 되고, 생각을 만나면 날아다니는 뜨거운 쇠가 되어 허공에서 비 오듯 내리느니라.
다섯째는 감촉의 업보가 나쁜 과보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 감촉의 업이 어울리면, 죽을 무렵에 먼저 큰 산이 사방으로 밀려와 합쳐서 더 이상 나갈 길이 없는 모양을 보는 가운데, 망자의 혼령은 또 커다란 무쇠 성의 불 뱀과 불개와 호랑이와 이리와 사자를 거느리고 손에 창검을 든 소머리 옥졸과 말머리 나찰이 성문 안으로 몰아넣는 모양을 보면서 무간지옥으로 향하느니라.
망자는 여기서 두 모양을 밝히는데, 하나는 합하는 감촉작용이니, 합치는 산이 몸을 핍박하여 뼈와 살과 피가 터져 나오는 일이며, 둘째는 떼는 감촉작용이니, 칼과 검이 몸에 닿아서 심장과 간을 도려내는 일이다.
이와 같이 합하는 촉감이 촉감을 만나면 감옥 길과 관망대와 가두는 청사와 문초하는 책상이 되고, 보는 작용을 만나면 불타고 불사르는 것이 되며, 듣는 작용을 만나면 때리고 치고 찌르고 쏘는 것이 되고, 숨을 만나면 홀쳐 묶고 포대에 담고 고문하고 결박하는 것이 되며, 맛을 만나면 보습으로 갈고 재갈물리고 베어내고 잘라내는 것이 되고, 생각을 만나면 떨어지고 튀어 오르고 삶아내고 구어 내는 것이 되느니라.
여섯째는 생각의 업보가 나쁜 결과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 생각의 업이 어울리면, 죽을 무렵에 먼저 사악한 바람이 몰아쳐서 국토가 부서지는 모양을 보면서, 망자의 혼령은 바람에 날려 공중에 올랐다가 바로 떨어져서 바람을 타고 무간지옥에 떨어지느니라.
망자는 여기서 두 모양을 밝히는데, 첫째는 미혹하여 깨지 못한 경계이니, 극도로 미혹하여 황망한 가운데 날뛰기를 쉬지 않는 일이며, 둘째는 미혹하지 않고 깨어 있는 경계이니, 괴로움만 깨달아 아는 가운데 한량없이 삶기고 불에 타는 심한 고통을 참지 못하는 일이다.
이러한 삿된 생각이 생각에 맺히면 벌 받는 방향과 장소가 되고, 보는 작용에 맺히면 비춤과 증명이 되며, 듣는 작용에 맺히면 합쳐 부딪는 큰 돌과 얼음과 서리와 티끌과 안개가 되고, 숨에 맺히면 큰 불 수레와 불 배와 불 우리가 되며, 맛에 맺히면 큰 외침과 뉘우침과 눈물 흘림이 되고, 감촉에 맺히면 커졌다가 작아졌다 하면서 하루 동안 만 번 살고 만 번 죽는 것과 엎어지고 자빠지는 것이 되느니라.
아난아, 이를 지옥의 열 가지 원인과 여섯 가지 결과라고 하는데, 모두 중생의 미혹한 망상으로 지은 경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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