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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최초의 설법

 1. 베나레스행

 베나레스의 본래 이름은 '바라나시'이며 오랫동안 카시라는 나라의 서울이었으므로 카시푸라라고도 불리운다.

갠지스강의 지류인 바라나강과 아시강 사이에 있고 부처님이 성도한 부다가야에서는 직선 거리로 130마일 정도가 되므로 가도를 걷는다면 근 200마일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베나레스에서 '가야'까지는 급행열차로 약 4시간이 걸린다. 아마 쉬지 않고 계속해서 걷는다고 하더라도 베나레스까지 가기에는 열흘은 걸렸을 것이다. 이 긴 거리를 부처님은 무엇 때문에 도보로 걸으면서 베나레스까지 갔던 것일까?
 베나레스는 고래로 브라만교인들의 성지로 간주되고 있는 곳이다. <베다>성전에는 베나레스에 관한 것이 나오지 않지만 그것은 시대가 훨씬 앞서는 때의 갠지스강 상류지방에서 성립된 것인 탓이므로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불전에 보면 벌써 원시불교 시대에 베나레스는 특별한 의의가 있는 성지로서 인정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 교외에는 '사슴의 동산'이라고 불리는 동산이 있고 거기에 많은 수행자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그런 관계로 이 동산은 또 '리시 파타나', '선인들의 주처'라고도 불려 왔던 것이다. 물론 그 당시 인도에는 곳곳에 그런 동산이 있었고 그것을 다 녹야원이라고 불렀던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이 베나레스의 녹야원은 가장 유명한 곳이다. <大史>란 불전에 의하면 부처님은 가야 근처의 우루벨라 숲으로부터 가야로 나와, 거기서 아파라가야 수다르샤나 용궁 바샤알라 츈다드비일라 사라티푸라 간다푸라 로히타바스투카를 거쳐 갠지스강을 건너, 녹야원에 들어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부처님은 고행에 전념하고 있을 옛 벗들을 납득시키기 위해서 이곳을 먼저 찾아 온 것이다.


 2. 다섯 비구를 만남

 부처님이 다섯 비구와 만나는 것은 꼭 한 달만의 일이다. 한 달 이전에 이 다섯 사람의 수행자는 부처님을 타락한 사람이라고 버려왔던 것이다. 지금 부처님이 녹야원에 들어와 자기네들 쪽으로 오는 것을 보고 그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의논하여, ‘오겠으면 오라, 우리가 관여할 바 아니니 그대로 내버려두자.’ 이런 태도를 취하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부처님이 눈앞에 가까이 나타나자 다섯 사람은 모두 언제 그런 약속을 했던가 하는 식으로 친절하게 일어나서 부처님을 맞이했다. 어떤 사람은 나아가 바리를 받아 들고, 또 어떤 사람은 부처님이 앉을 자리를 만들고 또 다른 사람은 물을 길어다 발을 씻을 준비를 하였다. 부처님으로서 지닌 그 위력이 자연히 그들 다섯 사람을 그렇게 하도록 한 것이다. 부처님은 조용히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다섯 비구들은 무언가 이상한 힘에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그 옛 친구를 부처님으로 모시는 존경심은 없었다. 아직도 그를 타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들의 심정이었다. 그리하여 인사말도 옛 그대로 존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인 모양이다. 오래된 불전에는 그와 같은 호칭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즉 그러한 공순치 않은 다섯 비구들의 인사에 대하여 부처님은 이렇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여래를 부를 때, 그 이름을 부르거나 또는 ‘친구 아무개’ 이렇게 말해서는 안된다. 여래는 실로 응공자(應供者, 공양받을 만한 사람)며, 등정각자(等正覺者, 두루 똑바로 깨달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구리를 기울여 들어라. 불사가 내 것이다. 너희들에게 가르쳐 줄 것이다. 이 가르침대로 수행하면 머지않아 이 세상에서 무상한 청정행을 달성하여 출가한 목적을 이룩하게 될 것이다. 
 그때 다섯 비구는,
 “고타마야, 그렇지만 너는 그 난행(難行, 어려운 수행)으로도 초인의 법인 거룩한 지견은 얻을 수가 없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 고행을 버리고 욕심있는 상태로 되돌아가 어찌 초인의 법인 성스러운 지견을 열 수가 있을까?”
 부처님은 두 번 세 번 같은 말로 설명했지만 다섯 비구들은 듣지 않았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비구들아, 내가 여태까지 이런 말로 너희들에게 이야기 한 일이 있던가?” 이렇게 물으면서, 깨달은 이의 독특한 이상한 성격을 간취하게 하고 그들을 교화시켰다.
 최근 어떤 학자들은 이 칭호에 관한 경전의 이야기가 후세의 가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로는 부처님이 “여래를 부를 때, 그 이름을 말하거나 도 ‘친구 아무개’ 등의 말을 해서는 안된다”라고 했다 하지만, 오래된 게송 등에는 실제로 부처님을 고타마란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예가 많고 친근한 호칭의 예도 많다. 그리고 이러한 친근한 호칭법이 당시의 인도의 한 관습이었을 것이 틀림없다면, 고타마 개인이 인도의 그와 같은 관습을 배척할 정도로 오만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표현은 후세의 신도들이 고타마를 신격화한 다음에 생긴 전설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3. 법과 불

 부처님이 발견한 진리, 그리고 부처님이 그 일대에 걸쳐 제자들에게 가르친 진리를 다르마라고 하며 그것을 번역하여 법이라고 한다. 경전에 말하기를 “부처님의 말씀은 처음에나 중간에나 마지막에나 언제든지 좋으시며, 그 의미와 문자가 완전하고 한결같으며, 남김없고 또 순수하시다”라고 하였다. 성도 이래 열반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이 말하고 가르침 모든 것은 조금도 틀림이 없는 참된 것이라는 말이다. 
 “하늘이 달과 별들과 더불어 떨어지는 일은 있을지라도
 그리고 땅이 산과 숲과 더불어 하늘로 치솟는 일은 있을지라도
 큰바다가 말라붙는 일이 있을지라도
 위대한 현자께서는 추호도 그릇된 말씀을 하시지 않는다.” 
 이 말씀은 여러 불전 속에서 늘 되풀이되어 온 말이다. 
 그러면 부처님과 부처님이 깨달은 법과의 사이에는 어떠한 관련이 있을까? 부처님은 자기가 발견하고 자기가 가르침 법을 내세우고 자신은 즐겨 그 뒤로 물러나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신이 아니다. 무엇을 만들어낸 창조주도 아니다. 다만 그는 깨달은 분이었다. 그는 일체의 부정을 온전히 제거해 버린 붓다인 까닭에 신이나 인간을 훨씬 능가하는 독보의 존재였던 것이다. 
 “물 속에서 생겨나 거기서 자라난 연꽃이 물에 젖는 일 없이 그 물 위에 솟아 있듯이,
 부처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 거기서 자라, 이 세상을 이기시고
 세속에 물듦이 없이 거기에 머물러 계시네.” 
 모든 방해자들을 물리쳤고, 모든 오염을 떠나있으며, 모든 욕망에서 해탈된 승리자인 부처님은 지혜를 성취해 가진 분이다. 그에게는 스승이 없으며, 그에게는 필적할 사람이 없고, 오직 그만이 모든 것을 안다. 그에게는 번뇌가 없고 그냥 적정한 열반의 낙만이 있는 것이다.
 부처님은 그가 발견한 진리를 자기 홀로만 욕심껏 간직하는 그런 분이 아니다. 그의 가르침은 공개적이었으며 조금도 비밀이 없었다. 그는 빛 중의 최선의 빛이다. 그는 모든 중생을 그들에게 알맞은 방식으로 해탈하도록 인도하였다.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열반이 어디에 있으며, 그리로 가는 길이 어떤 길인가를 가르쳤다. 그러나 길손들이 그 지시대로 가느냐 안 가느냐 하는 길손들 자신에게 달려있는 문제이지 부처님에게 달린 일은 아니었다. 제자들 중의 몇몇만이 최고의 목표 니르바나에 도달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 실정이다. 부처님은 ‘길을 가르쳐 주는 분’인 것이다.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그가 증득한 진리에 ‘연기’에 관한 것이 있다. 그러나 이 진리는 결코 그가 만들어낸 진리가 아닐뿐더러 더욱이 어떤 다른 사람이 그것을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그 법은 부처님이 있건 없건 그와는 관계없이 살아 있는 진리인 것이다. 많은 초기 경전에 있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그러한 사정을 잘 말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성자가 이 세상에 나타나건 안 나타나건 사물에 속하는 사물의 본성은 그냥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은 자기가 발견한 법을 존숭한다. 부처님은 그가 보리수 밑에서 성도한 후 며칠이 지나 이 세상에서 그가 받들고 봉사할 만한 수행자가 없는가 하고 찾아보았다. 그러나 자기보다 탁월한 아무도 발견할 수 없었던 부처님은 스스로 그가 깨달은 법을 공양과 존숭과 봉사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잡아함>에는 기록되고 있다.


 4. 중도

 부처님의 가르침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른바 베나레스에서의 최초의 설법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이 최초의 설법을 초전법륜(初轉法輪, 처음으로 법륜을 돌리심)이라고 말한다. 법륜이라 함은 부단히 살아 있는 진리를 수레바퀴에 비긴 것이고 그것을 돌린다는 것은 곧 법을 설한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이 최초의 설법에서 그가 다섯 비구들에게 맨 처음 가르친 것은 향락적 생활이나 지나친 금욕적 고행의 두 가지가 모두 다 피해야 할 두 극단이란 교훈이다. 경에 이렇게 씌어있다. 
 비구들아, 여기에 출가로서 피하지 않으면 안 되는 두 가지 치우친 길이 있다. 그것은 야비한 욕심에 탐닉하는 어리석고 이익 없는 향락의 생활과, 또 헛되이 몸을 괴롭히며 학대하는 어리석은 고행의 생활이다. 이 두 가지 치우친 생활을 떠나서 여기에 여래에 의해서 증오된 마음의 눈을 열고 지혜를 증진시켜 적정과 성지와 정각과 열반으로 이끄는 중도가 있다. 비구들아, 중도가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정견, 정사,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의 여덟 가지 바른 길이다. 
 향락적 쾌락주의가 수도의 바른 길이 아닌 것은 다섯 비구들도 이미 잘 아는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그들은 고행주의에 사로잡혀서 그것이 최고의 길이기나 할 듯이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선 그들에게 이와 같은 중도의 교훈은 절실히 필요했을 것이다. 그 알맹이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팔정도였던 것이다. 부처님은 이 후에도 누차 이 중도를 언급하고, 일반 세상 사람들의 향락적 생활을 소폭도라고 하고 고행을 소도라 한 적이 있다. 때로는 이 중도의 내용을 팔정도 대신에 사념주 또는 사정단 등으로 바꿔 말하기도 하였다. 사념주라 함은 신, 수, 심, 법의 네 가지에 대하여 항상 올바른 생각을 가질 것을 다짐하는 가르침이다.
 사정단이란,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은 생기지 말게 하고(未生惡令不生),  이미 생긴 악은 영원히 끊어 버리고(已生惡令永斷) , 아직 생기지 않은 선은 생기게 하고(未生善永生) , 이미 생긴 선은 더욱 늘어나게 하라(已生善永增上), 이 네가지이다.
 더 나아가 중도는 두 계열의 극단을 버리는 것이라고 설명한 일도 있다. 세속에 있어서 피해야 할 두 가지 극단은 빈궁과 부유며, 출가에 있어서 피해야 하는 두 극단은 브라마의 고행단식이며, 챠르바카의 향락적인 쾌락주의다. 이 두 개의 극단은 모두 다 피해야 하는 것이라고 가르친 것이다.


 5. 네 가지 온전한 진리

 네 가지 온전한 진리를 한문으로는 사제(四諦)니 사성제(四聖諦)라고 말한다. 제(諦)의 원어는 사티야로서 진리라는 말이 가장 가까운 뜻이라 하겠다. 중도에 관한 교훈으로 시작된 <전법륜경>에는 이와 같이 씌어 있다.
 비구들아, 이것은 고통에 관한 온전한 진리다. 생도 고(苦)요, 노도 고(苦)요, 사도 고다. 원한있는 자와 만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고(苦)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고(苦)요, 구하나 얻어지지 않는 것도 고다. 요약해 말하면 번뇌 위에 뿌리박고 있는 이 몸이 있는 것이 고다.
 비구들아, 이것은 고의 원인에 관한 온전한 진리다. 새로운 생을 거듭 유발하고, 환락과 탐욕을 수반하여 여기 저기로 욕락을 찾아다니게 하는 것은 갈애다. 환락의 갈애, 생존의 갈애, 그리고 무상의 갈애가 그것이다.
 비구들아, 이것은 고의 멸에 관한 온전한 진리다. 욕망을 완전히 소멸시킴으로써 모든 집착을 떠나는 것이다.
 비구들아, 이것은 고의 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온전한 진리다. 즉 그것은 정견(正見, 올바른 믿음), 정사(正思, 올바른 意思), 정어(正語, 올바른 말), 정업(正業, 올바른 행동), 정명(正命, 올바른 생활수단), 정정진(正精進, 올바른 노력), 정념(正念, 올바른 기억), 정정(正定, 올바른 명상)의 여덟 가지 바른 길이다.
 비구들아, 이 사성제는 지금까지 아무도 가르침 바 없는 나 스스로 증오한 법인데, 나는 이 법에 의해서 마음의 눈을 열고, 지혜를 낳았고, 빛을 낳았다.

 이것은 고제다. 이 고제는 판단해서 알아야하는 것, 이것을 판단해서 알고 
 이것은 집제다. 이 집제는 끊어야 하는 것, 이것은 끊고 
 이것은 멸제다. 이 멸제는 깨달아 증득해야 하는 것, 이것은 깨달아 증득하고 
 이것은 도제이다. 이 도제는 닦아야 하는 것 이것을 다 닦았다.

 이와 같이 이 사제에 있어서 삼전 합하여 십이행상을 아직 하지 않은 동안은 이 세계에 있어서 나는 증득했다고는 말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제에 있어서 이 맑은 삼전십이행상의 지견이 생겼으므로 나는 증득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내 마음의 해탈이 확실하다. 이것이 마지막 생이며 다시 변하여 태어나는 일이 없다는 지견이 생긴 것이다.
 이 사제의 법은 부처님만이 홀로 아는 최승의 법이라고 불려지는 것으로서 그 광대한 부처님의 교설의 요점이 다 이 속에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은 고통 속에 잠겨 있다는 진리, 그리고 그 고통에는 원인이 있는데 그 원인은 탐욕과 진에(분노) 및 우치(어리석음)의 셋으로 종합되는 무명의 마음이라는 진리, 이 둘은 앞서 말한 연기의 이론으로 말하면 순관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연기설이다. 이것을 또한 유전연기라고도 부른다. 죄악적 인간이 어쩔 수 없이 생사의 탁류에 떴다 가라앉았다 하면서, 유전하는 인과법칙이 그렇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단순히 앞서 말한 어두운 마음의 노예가 되어 그냥 끌려가다시피 하는 필연적인 인과관계를 말한다.
 나머지 두 개의 진리, 즉 고통의 소멸에 관한 진리와 고통의 소멸을 가능케 하는 실천 도덕에 관한 진리는 순관에 대해서 역관이라고 할 수 있고, 이것을 또한 환멸연기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환멸이라고 한 것은 인간이 그 고통을 제거하고 본래 청정무구한 그 본성에로 돌아가는 인과관계를 의미한 것이다. 이를테면 이러한 인과관계는 인간의 자유로운 창조적 활동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처님은 이 네 가지 온전한 진리를 깨닫고 선포함으로써 인도의 정신사 위에 새로운 기원을 이룩하였다. 부처님은 인간을 그 횡포한 브라만교의 사제들의 올가미 속에서 구출하여, 운명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창조활동을 해나갈 수 있는 확실한 가능성과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이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단순히 사제에 의지하여 그들에게 재물을 바치고 그들이 집행하는 제사의 혜택만을 기대하는 그런 무기력한 일뿐일 수 없음을 알게 한 것이다. 사성제의 설법을 통하여 부처님이 처음으로 가장 강하게 가르친 것은 인간의 실천적인 윤리생활이다. 팔정도라고 열거되는 그 덕목들을 자세히 검토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속에 후대에 다시 정리되는 계율사상의 근본이 놓여 있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놀라운 일은 브라마니즘이 그 오래된 기간 중에 조금도 이러한 실천윤리를 한 마디도 명확하게 강조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처님의 최초의 설법의 내용은 획기적인 역사적 의의를 가지는 것이다. 팔정도의 내용은 흔히 세 가지로 종합되어 설명되기도 하였다. 즉 그 세 가지 부류란 계(戒, 실천규약), 정(定, 정신집중), 혜(慧, 깨달음의 지혜)의 세 가지 공부를 말하는 것이다. 팔정도를 이 세 가지 공부와 관련시켜 분류하면 계(戒), 정(定), 혜(慧)이다.
 물론 이 삼학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혜다. 이 삼자가 서로 불가분리의 관계를 가지고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나중에 대승불교의 학자들이 특히 그것을 강조했고 불교의 전 역사를 통해 언제나 그 생명이 되어온 궁극의 이상은 이 혜(慧)다. 혜를 반야라고도 한다. 반야란 한자 자체에 무슨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프라지냐 또는 판냐라는 인도의 원어를 음역한 것으로 ‘원만무애한 지혜’를 의미하는 것이다. 붓다 즉 깨달은 분의 깨달음의 내용이 또한 이것이 아닐 수 없으며 니르바나의 내용이 그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앞서 말한 사성제의 네 항목은 아직 깨닫지 못한, 수행과정이 느린 사람들, 우둔한 사람들에만 의미가 있는 설명이라고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참으로 속히 깨달을 수 있는 벌써 준비된 사람들에게는 셋째의 진리 즉 멸에 관한 진리만 완전히 증득하면 더 다른 설명이 필요 없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은 온전한 지혜의 권화다. 그러므로 그는 말과 형상과 논리를 빌어 설명할 때 스스로 세속적인 범주 속에 들어온다. 대부분의 가르침이 그와 같이 하여 진행되었으며 정리되었다. 그러한 차원의 진리를 속제(俗諦, 세속적인 진리 또는 이해방식)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원래 지혜 자체인 까닭에 그 근원적 본질적 입장을 버리지 않는다. 아니 궁극에 가서는 모든 제자들이 그렇게 이해할 것을 바란다. 그리고 그 제일가는 근본진리의 입장에서 말씀을 한다. 그것을 일컬어 진제 또는 제일의제라고 한다.
 대승경전들은 주로 이와 같은 진제의 입장에서 한 부처님의 말씀을 수록하였고, 그것을 해석한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세계는 모조리 취득할 수 없는 공 그 자체이며, 아무 것도 알려져야 할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단절되어야 할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증득되어야 할 것, 또 닦아져야 할 것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미와 오, 염과 정, 인과 과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미가 곧 오며 염이 곧 정이며, 인이 곧 과인 그런 상태로 이해되어지는 것이다. ‘생사를 떠나 열반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 원융무애한 자리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기 대승불교의 개척자인 나가르주나는 사제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보살은 세 개의 해탈문에 머물러 있으면서 사제를 관하고, 이것이 성문, 벽지불의 법임을 알고, 곧 사제를 넘어서 일제로 들어간다. 다시 말하면 일체법은 생함도 멸함도 없고, 구도 정도 없고 래도 거도 없다는 등의 일제(一諦, 오직 하나의 진리) 말이다. 이 일제에 들어가는 것을 일컬어 아비발치지(不退轉)이라는 뜻이다.”
 다섯 비구 중 제일인자였던 콘다냐는 이 사제를 설한 전법륜경을 듣고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6. 무아

 다섯 비구들에게 설해진 진리 가운데에는 무아에 관한 것이 있다. 이 가르침을 모은 것을 <무아상경>이라고 한다. 그 내용은 색, 수, 상, 행, 식의 오온이 모두 무상하며 무아한 것이라는 말이다.
 오온에 관해서는 이미 앞서 설명한 바가 있다. 이제 다만 그 의의를 부연해서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설명을 첨가할 수가 있을 것이다.
 오온은 우리의 심신을 구성하는 요소라고 생각되어 왔다. 그 하나 하나로 말하거나 또는 그 결합으로 말하더라도 인연에 의해서 생기지 않은 실체적인 것이 하나도 없다. 그것을 실체 또는 실아(아뜨만)라고 보는 견해야말로 고래로 내려오는 브라만교나 그 밖의 다른 이단사상의 류견인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본뜻은 인간이 그러므로 허무와 같다는 그런 말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은 마음에 관하여 많은 말씀을 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이 말한 마음이란 말에는 몇 가지 구별이 있는 것이다. 오온 속에 들어 있는 의도 마음이다. 그러나 이 의는 이를테면 마음이라고 불리는 기능으로서는 최하위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때로는 의식이라고 불려지고 의, 의식 둘로 나뉘어져 설명되기도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인연생이며 실아(아뜨만)가 아님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것은 심리적 작용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이성적 작용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상주하지 않은 전변이며 무아다. 그러므로 얼핏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들 치고 온전한 의미에서 참된 ‘나’인 것은 없다고 해야 마땅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생각하는 ‘나’ 아닌 것, 그 일체의 ‘나’의 요소를 없애버리면 오히려 거기에 참된 ‘나’, 이 개체에 사로잡혀 자유롭지 못한 대립적인 ‘나’, 차별적인 ‘나’를 초월한 ‘나’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은 참된 ‘나’이지만 아무나 첫 마디로 이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에 지금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들에게는 ‘나’ 아닌 ‘나’에 집착하는 사고방식을 버리는 것만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나’ 아닌 참된 ‘나’를 대아라고 부를 수 있고, 또 후대의 불경에서는 불성이니, 여래장이니, 심진여니, 본각이니, 무아 아닌 묘유니, 이렇게 말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마음’의 최고의 차원을 일컫는 것이다.
 초기경전에는 다섯 비구들이 이 <무아상경>의 말씀을 듣고 모두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섯 비구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안냐 콘다냐, 밧디야(跋提), 밧파, 마하나마, 앗사지(馬勝)


 7. 많은 제자들을 얻음

 부처님이 베나레스 교외에 있을 때 베나레스시의 한 부상의 외아들로 야사라는 청년이 있었다. 영화를 누리며 환락이 계속된 생활 속에서도 그의 머리를 사로잡은 것은 인생의 참화와 무상이었다. 그는 부처님이 태자일 때 느꼈던 것과 똑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어느 날 밤, 세상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고조에 달해, 무덤처럼 여겨지는 탐욕의 집을 뛰쳐나와 성문을 넘고 교외에 나서자 이상스럽게도 그 발길이 녹야원 쪽으로 향해졌다. 날은 아직 밝지 않았으나 부처님은 그 일대를 거닐고 있었다.
 야사는 그냥 “위험해, 위험해.” 이렇게 소리지르며 부처님 있는 곳까지 달려오는 것이었다. 부처님은 “젊은이여, 여기는 조금도 위험할 것이 없으니 앉으시오. 마음을 진정시키고 내 말을 들으시오”하고 그 청년에게 말했다. 야사를 그 옆에 앉힌 다음 부처님은 그 청년에게, 보시(布施, 주는 것)에 관한 이야기, 계의 이야기, 천상계에 태어나는 이야기 등을 하고 청년의 마음을 점차로 가라앉히고, 이 세상에서 욕심이 얼마나 큰 화를 가져오느냐 하는 이야기, 그리고 욕심을 버리고 수도를 하는 것이 얼마나 이로운 것인가 하는 것을 차례로 말하였다. 야사의 마음이 어느 정도 준비된 후에 사제의 법을 설하였다. 야사는 깨끗한 옷이 곱게 물들 듯이 법의 빛깔로 물들어 진리를 보는 눈이 생겼다.
 야사가 집을 나갔다는 사실이 아침녘에 알려지자 그 부모와 온 집안식구들은 크게 놀라 팔방으로 그 행방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그 아버지는 버려진 야사의 신을 보고 부처님에게로 가 그 아들 소식을 물었다. 그때에 야사의 아버지는 부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그 제자가 되었다. 그를 삼보에 귀의한 최초의 우파사카라고 하는 것이다. 삼보란 부처님과 그의 가르친 진리와 그 제자들의 집단의 셋을 말하는 것인데, 삼보가 다 갖춰진 것은 이 때가 처음이라는 것이다. 앞서 부처님 성도 직후에 두 우라사카는 이보귀의의 제자라고 불려졌던 것이다. 즉 아직 다섯 비구의 귀의 전의 일이기 때문에 상가 즉 남녀 출가수도자와 남녀 재가수도자의 사부대중이 아직 구성되어 있지 않았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야사의 집으로 초대받은 부처님은 야사의 어머니와 아내를 우파시카(優婆夷, 在家女信者)로 받아들이고, 야사의 친구 비말라, 수바후, 푼나지, 가밤파티의 네 사람을 출가시키고 또 계속해서 50명의 다른 친구들도 출가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부처님의 제자는 61명이 되었다.
 이때 부처님은 이 60명의 제자들에게 각지를 유행, 부처님의 가르침을 선포하게 하였다. 
 “비구들아, 내가 사람과 천인의 기반으로부터 벗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너희들도 또 사람과 천인의 모든 기반으로부터 벗어났다. 비구들아, 세상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의 안락을 위해서 유행하라. 둘이서 한 길을 가도록 하지 말라.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뜻과 글이 다 갖춰진 진리를 널리 전하라. 모두 원만하고 맑은 청정한 행을 가르쳐 보여라. 세상에는 더러움이 적은 사람들도 있는데, 법을 듣지 못하면 망할 것이지만 그들은 법을 요해할 것이다. 비구들아, 나도 진리를 설하기 위해서 우루벨라의 세나니촌으로 갈 것이다.” 
 60명의 비구들은 포교의 길에 올랐고, 부처님 자신은 우루벨라로 향하였다. 우리는 위의 말을 통해서 부처님이 진리의 선포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였던가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법은 널리 전해져야 하는 것이란 신념이 불제자들 사이에 복받쳐 오르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부처님이 돌아간 후 백년만에 난 성왕 아쇼카는 진리가 지배하도록 하는 정치를 폈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도의 국경을 넘어 페르샤, 그리스, 중앙아시아로 미치고, 마침내는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그리고 다시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까지 유포될 수 있었던 것이다.
 부처님이 우루벨라로 다시 갈 생각을 한 것에 관하여 학자들은 이런 동기를 추측하고 있다. 우루벨라는 부처님이 성도한 붓다가야에 가까운 촌락이다. 여기서 그는 6년 동안의 고행을 하였던 것이다. 그때에 이 지방에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던 배화교도인 우루벨라에 카삽파 세 형제가 있었다. 부처님은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이 형제들을 교화할 것을 결심한 것이다. 이 세 형제를 교화시키는 일은 지난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 주민들의 이 세 형제에 대한 존숭은 대단하였으며, 이 세 사람은 천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교화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앞으로의 전교상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우루벨라로 가는 도중에 부처님은 또 다른 많은 제자들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아마 베나레스에 가까운 어떤 숲속에서 일어났던 일인 모양이다. 많은 남자들이 황급히 달여와 부처님께 그곳에 한 여인이 도망쳐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 청년들의 수는 30명에 달했는데 모두 공자들로서 각각 자기 처를 동반하고 산 놀이를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 중 한 청년에게는 처가 없었으므로 창녀를 데리고 왔던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정신 없이 놀고 있는 동안에 창녀는 중요한 물건들을 들고 달아나 버렸다. 그리하여 그 창녀를 찾다가 사람들은 우연히 부처님을 만난 것이다. 그런 말은 들은 부처님은 “당신들은 여인을 찾는 것과 자기 자신을 찾는 것과 어느 것이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와 같은 뜻밖의 물음에 공자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그냥 그 자리에서 깊이 깨닫고 자기 자신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그 제자가 되었던 것이다.


 8. 카삽파 형제들

 부처님은 우루벨라의 숲에 이르자 곧 카삽파 형제 중 제일 맏이인 우루베라 카삽파가 있는 곳으로 가 하룻밤을 보낼 수 있도록 청하였다. 이 카삽파는 우루벨라 숲속에 살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불렀는데, 그에게는 오백 명의 제자가 있었다. 이 숲과 가야를 연결하는 네란자라 강변에 그 동생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강가에 살았으므로 나디 카삽파라고 불리웠다. 나디는 강이란 말이다. 그에게는 삼백 명의 제자가 있었다. 그 하류의 가야에는 그 다음 동생이 살고 있었고, 그 이름을 가야 카삽파라고 했으며 그에게도 이백 명의 제자가 있었다. 모두가 배화교도이며 고행자였고, 결발을 하고 있었으므로 결발행자라고도 불려졌다. 배화라는 것은 불의 신 ‘아그니’를 받드는 것이었던 모양이고, 한편 수행방법으로는 고행을 일삼았다는 것 밖에는 더 알려져 있는 것이 없다. 다만 그들의 교리는 온화한 것이었던 모양이고, 업보의 도리를 믿고 있었던 관계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전향시키기가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불전에는 부처님과 우루벨라 카삽파의 접촉을 재미있게 전하고 있다. 카삽파의 집에는 불을 소중히 모신 방이 있었다. 부처님은 그 방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기를 청하였다. 그때에 카삽파는 그 방안에 독룡이 살고 있으니 안된다고 거절을 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강하게 청하여 그곳에서 한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카삽파와 그 제자들은 부처님이 분명히 독룡의 이빨에 물려 죽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부처님은 태연히 그 독룡을 바리 속에 넣고 나타났다는 것이다.
 카삽파는 그 위대함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부처님을 계속하여 숲속에 머물러 있도록 했다. 그동안에 부처님은 여러 가지 이상한 기적들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어느 날 밤에는 사왕천이, 그리고 어느 날 밤에는 제석천이 또한 범천이 와서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들었다. 그때마다 숲속에 두루 환한 빛이 가득 차 카삽파를 놀라게 하였다. 또 어떤 때에는 멀리 북쿠루주로 가서 그 지방의 독특한 실과를 따다 식사를 하고, 그 방향이 숲 전체에까지 충만하게 했다. 또 어떤 때에는 숲 전체가 물로 가득 찼는데, 부처님 있는 곳에만 마른 흙이 남는 그런 일도 있었다. 또 어떤 때에는 물이 없는 곳에 연못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밖에 여러 가지 기적이 있어도 카삽파는 이 사문이 훌륭하기는 하지만 아직 나에게는 미치지 못한다는 제 잘난 마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자주 있은 뒤 마지막으로 부처님은 카삽파에게 “카삽파야, 너는 성자가 아니다. 또 성자가 되는 길도 발견하고 있지 못하다. 네 가르침은 성자가 되는 길이 아니다.” 이렇게 책망을 하였다. 이 말씀에 카삽파는 놀라 드디어 그 아만심을 꺾고 오백 명의 제자와 같이 배화의 제구를 강에다 버리고 길러 올렸던 머리를 자르고 부처님 산하의 비구가 되었다. 그 강의 하류에 사는 나디 카삽파는 물 위에 그 형의 제구가 떠내려오는 것을 보고 놀라 와 보고 자기도 출가했다. 가야에 사는 그 밑의 동생도 마찬가지로 출가하여 불제자가 됐다. 그리하여 여기 세 형제는 그 천 명의 제자와 더불어 모두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이다.
 부처님은 이제 왕사성으로 가 6년 전에 빔비사라왕과 한 약속을 지킬 때가 된 것을 생각하였다. 부처님은 세 카삽파 형제를 비롯한 천 명의 새 제자들을 데리고 왕사성으로 가 가야시사에 도달하였다.
 가야시사란 곳은 다른 책에 서부가야(西部伽耶; 아파라가야)라고 한 곳인 모양인데 상두산이라고도 한역된다. 현장삼장은 가야성의 서남 5, 6리에 있다고 하고 <우다나>의 주에는 가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못과 내가 있는데 그곳은 세속의 사람들이 악을 씻어버리는 영장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또 거기에 한 산이 있는데, 코끼리의 머리와 비슷한 큰 바위가 있어 천 명의 비구를 수용할 수 있어 상두산이라고 불리운다고 하고 있다. 부처님의 사촌동생 데바닷타가 부처님을 배반하고 독립한 곳도 여기다.
 부처님은 여기서 원래 배화교도였던 천 명의 비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연화경>을 설하였다. 
 비구들아,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 어떻게 불타고 있는가? 눈이 불타고, 물건들이 불타고, 마음이 불타고, 또 이 눈과 물건과 마음의 셋이 접촉해서 생기는 감각도 감정도 모두 다 불타고 있다. 무슨 불로 불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 진에의 불, 우치의 불에 의해 불타고 있다. 생과 노와 병과 사와, 근심, 슬픔, 아픔, 고민의 불로 불타고 있다. 귀와 소리와 마음과 코와 내음과 마음과, 혀와 맛과 마음과, 몸과 접촉함과 마음과, 그리고 그 하나하나의 접촉에 의한 감각과 감정도 모두 탐진치(貪瞋痴) 삼독의 불, 생노병사, 근심, 슬픔, 아픔, 고민의 불 때문에 불타오르고 있다.
 비구들아, 이와 같이 옳게 보고, 이 가르침을 받드는 제자가 안, 이, 비, 설, 신과 색, 성, 향, 미, 촉에 대하여 혐오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탐욕을 떠나 ‘나는 해탈했다’고 알게 되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듣는 자들은 수일 전까지도 단을 꾸미고 불을 태워 그 타오르는 화염 속에 제사를 드리던 사람들이다. 이제 그들에게 우리 인간 안에서 타오르고 있는 무서운 불길에 관해 경고를 한 것이다.
 부처님은 지나간 과거의 경험에 입각해서 그 설법을 하기를 좋아하였다. 그들에게 가르침 다음과 같은 말씀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비구들아, 내가 아직 도를 이루지 못하고 재가생활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도대체 세상의 복이란 무엇이며 화란 무엇인가? 그 화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이 세상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일으키는 것이 복이다. 이 세상의 무상, 전변, 고뇌가 곧 화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욕을 제어하고 욕을 떠나면 그것이 이 세상으로부터 이탈인 것이다.
 비구들아, 나는 이 세상의 복을 찾아 깊이 그 밑바닥을 다 보았다.
 그리하여 이 세상의 복과 화를 보고 그것으로부터의 이탈을 완전히 얻었을 때 내 명오는 열린 것이다.
 실로 이 세상에 복이 없다면 사람들이 이 세상에 집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 이 세상에 화가 없다면 사람들은 세상을 싫어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또 이 세상으로부터의 이탈의 방법이 없다면 사람들은 이탈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복도 있지만 화도 있다. 또 이탈의 방법이 있어서 사람은 이 이탈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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