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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어디서 재료를 가져오나


꿈을 분석하는 실마리는 예외없이 그 날 겪었던 일, 만났던 사람, 나눴던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심리적 가치를 거의 갖지 않는 사소한 요소들이다. 그럼 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 사소한 요소가 꿈에 등장하는 것일까? 이것은 검열 때문이다. 우리 무의식 속에는 강한 소원을 담고 있는 체험들이 들어 있다. 이 소원은 겉으로 표출되고 싶어하지만 원래의 체험과 함께 나타나면 검열에 걸린다. 그래서 낮에 경험한 사소한 사건과 결합하여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등장하는 것이다. 

이 억눌린 소원은 어린 시절에서 유래하는 것이 많다. 친구 R에 대한 꿈으로 돌아가자. 적어도 성인이 된 이후로 나는 공명심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교수라는 명예로운 지위를 얻기 위해 환장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꿈에 등장한 내 공명심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내가 태어났을 때 이웃집 할머니가 큰 인물이 태어났다고 축하해줬다는 얘기를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들었다. 어렸을 때 내 주위에는 유대인이라도 열심히 공부하면 장관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도 의대로 진학하기 전까지는 법학을 전공할 작정이었다. 내 좌절된 야심은 꿈 속에서 그런 공명심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많은 연구자들은 꿈은 심리적 동기에서 비롯된 정신 현상이 아니라 생리적 자극의 결과라고 말한다. 소화 불량이나 갈증, 성기의 흥분 같은 내부 자극이나 신체 외부로부터 수면 중에 끊임없이 받는 자극이 꿈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슈트륌펠 같은 생리학자는 자극과 꿈내용의 관계를 악기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의 무지막지한 연주에 비유한다. 그러나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쉐르너 같은 연구자는 신체 자극을 상징화한 것이 꿈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숨을 쉬는 폐는 활활 타오르는 난로, 심장은 빈 상자와 바구니, 방광은 주머니 모양의 물건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꿈의 의미를 단편적으로만 해석하는 꿈해몽서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똑같은 자극이 왜 다른 꿈을 만드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물론 신체 자극이 꿈에 전혀 영향을 안 미치는 건 아니다. 갈증이 나면 물을 마시는 꿈을 꾸고 오줌이 마려우면 소변 보는 꿈을 꾼다. 하지만 신체 자극과 꿈의 관계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수면 중에도 사람은 자극을 얼마든지 정확히 해석할 수 있지만 그럴 경우 수면을 끝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의 소원과 가장 잘 부합되는 방향으로 자극을 해석한다. 꿈은 결코 자의적이지 않다. 

어느 날 나는 ‘교황이 죽은’ 꿈을 꿨다. 나는 이 꿈을 도저히 해석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 뒤 아내가 오늘 새벽 그 끔찍한 교회 종소리 들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꿈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꿈은 내 잠을 깨우려는 소음에 대해 내 수면 소원이 나타낸 반응이었다. 나는 교황이 죽는 꿈내용을 가지고 종을 친 교인들에게 복수했으며 종소리와는 무관하게 잠을 계속 잘 수 있었다. 내가 아는 대학생은 하숙집 주인이 병원에 가라고 깨우자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꿈을 꾸고는 계속 잤다. 잠을 계속 자고 싶다는 소원만큼 강한 소원도 드물 것이다. 이런 식으로 꾸는 꿈을 ‘편의꿈’이라고 부른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꿈은 편의꿈인 셈이다. 꿈은 자극으로부터 수면을 지켜준다. 꿈은 잠의 훼방꾼이 아니라 파수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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