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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이있게 알기 위하여  
프로이트처럼 찬반 양론의 극단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사상가도 흔치 않다. 긍정적 측면은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는 것이다. 흔히들 프로이트를 무의식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사람이 의식하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은 옛날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프로이트의 혁명성은 무의식이 나도 모르게 나를 ‘억압’한다고 주장한 데 있다. 무의식 속의 억압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프로이트는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새로운 체계를 제시했다. 그래서 인간 행동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확대했다. 이 의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람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무의식이 나도 모르게 나를 '억압'한다
나는 슈퍼마켓의 계산대에서 왜 돈을 지불할까? 음식을 구입해서 먹기 위해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소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행동한다. 이 의식되는 소망이 돈의 지불이라는 의식되는 행위의 동기인 셈이다. 동기는 행동을 낳는 내면의 심리 상태다. 우리는 행동을 낳은 동기가 있을 때 그 행동을 합리적으로 여긴다.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는 동기를 대개 안다. 자기의식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물은 그렇지 않다. 행성은 자신이 움직이는 이유를 모른다. 

프로이트의 심리학에 깃들어 있는 혁명적 요소는 동기의 존재와 동기의 인식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분리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행동을 유발하는 동기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꿈은 무의미하고 우발적이고 목적이 없어 보인다. 이렇다 할 동기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겉보기에만 그렇다고 말한다. 동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주인이 모르는 동기다. 꿈을 해석한다는 것은 무의식 속의 동기를 찾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프로이트는 동기에 토대를 둔 설명의 범위를 혁명적으로 확대시켰다. 무의식을 설명권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프로이트가 사람들에게 주는 매력은 이런 광범위한 설명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프로이트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많다. 프로이트의 설명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칼 포퍼는 프로이트가 하는 말은 반증 가능성을 원천 봉쇄한다고 비판한다. 포퍼에 따르면 어떤 말이 참이기 위해서는, 이러저러한 조건이 성립한다면 그 말은 거짓이 된다고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즉 반증의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자기를 객관적 조건 속에 노출시켜야 한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그러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꿈은 소원 성취라는 명제에 대해 어떤 환자가 불쾌한 꿈을 소개하면서 반론을 폈을 때 프로이트는 당신은 내 말이 틀리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런 꿈을 꾼 것이고 그건 결국 소원 성취인 셈이라고 했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비판가들은 언제나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는 프로이트의 이론은 과학이 아니라고 말한다. 

원숭이의 무의식 속에서도 억압이 이뤄지나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가 되면서 또 일반인에게 가장 널리 수용된 요소는 무의식의 억압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이 가장 박대를 당하는 미국에서도 어린 시절에 겪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기억은 무의식 속에서 억압된다고 하는 프로이트의 주장은 폭넓게 수용됐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성적으로 학대를 당했다며 친부모를 고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심심치않게 화제에 오르내린다. 하지만 개나 원숭이 같은 동물도 꿈을 꾼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면서 많은 연구자들은 억압에 바탕을 둔 프로이트의 꿈이론에 의문을 제기한다. 프로이트는 꿈은 무의식에 의해 억압돼 있던 유년기의 경험이 위장하고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그럼 개나 원숭이의 무의식 속에서도 억압이 이뤄지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현대의 정신의학계에서 점점 대세로 자리잡은 약물 치료에 맞서서 심리 치료의 중요한 축을 맡아왔다. 무의식의 막강한 영향력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인간을 왜소한 존재로 격하시키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처럼 인간의 주체적 역량을 신뢰한 치료 기법도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자기 무의식에서 억압당해온 것을 인식함으로써 해방될 수 있다고 프로이트는 믿었다. 과정은 더디더라도 그것이 진정한 치료라고 생각했다. 프로이트는 ‘인식’의 힘을 믿었고 ‘말’의 힘을 믿었다. 그는 인문주의자요, 계몽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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