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유비유경 11-20
11. 자식을 죽인 바라문
옛날 어떤 바라문이 스스로 많은 것을 안다고 하였다. 하늘의 별을 보고 미래를 알며 갖가지 지혜를 밝게 통달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자기의 재주를 믿고 그 덕을 나타내려고, 다른 나라에 가서 자식을 안고 울고 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왜 우는가.”
그는 말하였다.
“이제 이 아이는 이레만에 죽을 것이다. 일찍 죽는 것이 가여워 우는 것이다.”
그들은 말하였다.
“사람의 병은 알기 어려워 실수하기 쉽다. 혹 이레만에 죽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왜 미리 우는가.”
그는 말하였다.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별들이 떨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내 예언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는 자기의 예언을 입증하기 위해 이레 째가 되자 스스로 자식을 죽여, 자기가 한 말을 입증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이레 뒤에 그 아이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참으로 지혜 있는 사람이다. 그의 말이 맞았다”고 탄복하면서 마음으로 믿고 우러러 모두 와서 공경하였다.
그것은 마치 이와 같다.
부처님의 네 무리 제자들이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도를 얻었다고 자칭하면서 어리석은 사람의 법으로 선남자를 죽이고 거짓으로 자비의 덕을 나타낸다.
그것 때문에 장래에 한량없는 고통을 받게 되니 마치 저 바라문이 자기 말을 입증하기 위해, 자기 자식을 죽여 세상을 현혹시키는 것과 같다.
12. 석밀을 달이는 사람
옛날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검은 석밀(石蜜)장을 불 위에 얹어 놓고 달이고 있었다.
때마침 어떤 사람이 그 집에 가게 되었다.
그러자 그 어리석은 사람은 ‘나는 이 석밀장을 그에게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불 속에 물을 조금 떨어뜨리고 부채로 불 위를 부치면서 석밀장이 식어지기를 기다렸다.
옆에 있던 사람이 말하였다.
“밑불이 꺼지지 않았는데, 부채로 부친다고 식겠는가.”
그것은 마치 외도가 왕성한 번뇌의 불을 끌 수 없는 것과 같다. 어찌 외도가 번뇌의 불을 끌 수 있겠는가.
곧 얼마간의 고행을 행하며 때론 가시덤불 위에 눕거나 혹은 다섯 가지 불로 몸을 지지면서 맑고 시원하며 고요한 도를 구하더라도 그것은 한갓 지혜로운 이의 비웃음을 받을 뿐 현재의 괴로움을 미래로 돌려보내는 것과 같다.
13. 자기 허물을 모르는 사람
옛날 어떤 사람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방안에 앉아서 밖에 있는 어떤 사람의 흉을 보고 있었다.
“그 사람은 오직 두 가지 허물이 있다. 첫째는 성을 잘 내는 것이요, 둘째는 일을 경솔히 하는 것이다.”
그때 문 밖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그 사람은 성을 내면서 방에 들어가 그를 움켜잡고는
“이 어리석고 나쁜 사람아” 하면서 주먹으로 때렸다.
옆의 사람이 물었다.
“왜 때리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내가 언제 성을 잘 내며 경솔했기에 이 사람이 나를 흉보는가. 그래서 때리는 것이다.”
옆의 사람이 말하였다.
“네가 성내기를 좋아하고 경솔하게 행동하는 것을 지금 바로 나타내 보여주었다. 그런데 왜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가.”
남이 자기의 허물을 말할 때에 원망하거나 성을 내면 여러 사람들은 그의 어리석고 미혹함을 더욱 더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다.
비유하면 술을 마시는 사람이 술에 취해 거칠고 방일하다가 남의 꾸지람을 들으면 도리어 원망하고 미워하면서 증거를 끌어와 스스로 깨끗하다고 변명한다.
저 어리석은 사람이 자기의 허물을 듣기 싫어하여 남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오히려 그를 때리려고 하는 것과 같다.
14. 상인들의 어리석음
옛날 어떤 상인들이 큰 바다를 항해하게 되었다. 바다를 항해하자면 반드시 길잡이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길잡이 한 사람을 구하였다. 길잡이를 따라 바다로 나가는 도중에 넓은 들판에 이르렀다.
거기는 천신(天神)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사람을 죽여 천신에게 제사한 뒤에 라야 비로소 지나갈 수 있었다.
상인들은 서로 의논하였다.
“우리는 모두 친한 친구다. 어떻게 죽이겠는가. 오지 저 길잡이가 제물에 적당하다.”
그리하여 그들은 곧 길잡이를 죽여 제사를 지냈다. 그런데 제사를 마친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다가 마침내 지쳐서 모두 죽고 말았다.
모든 세상 사람도 그와 같다. 법의 바다에 들어가 그 보물을 얻으려면 좋은 법의 행을 길잡이로 삼아야 하는데, 도리어 선행을 부수고 생사의 넓은 길에서 나올 기약 없이, 세 가지 길[三惡道]을 돌아다니면서 한없는 고통을 받는다.
그것은 마치 저 장사꾼들이 큰 바다에 들어가려 하면서도 길잡이를 죽이고 나루터를 잃고 헤매다가 마침내 지쳐 죽는 것과 같다.
15. 어떤 왕의 어리석음
옛날 어떤 국왕이 딸 하나를 낳았다.
왕은 의사를 불러 말했다.
“나를 위해 공주에게 약을 먹여 빨리 자라게 하라.”
의사는 말하였다.
“나는 공주님께 약을 먹여 곧 크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그 약을 구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 약을 얻을 때까지 왕께서는 공주님을 보지 마십시오. 약을 쓴 뒤에 왕께 보여 드리겠습니다.”
의사는 곧 먼 곳에 가서 약을 구해 오겠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12년이 지난 뒤에 약을 얻어 가지고 돌아와 공주에게 주어 먹게 한 뒤에 왕에게 데리고 가서 보게 하였다.
왕은 그것을 보고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참으로 훌륭한 의사다. 공주에게 약을 주어 갑자기 자라게 하다니.”
왕은 좌우에 명령하여 그에게 보물을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왕의 무지를 비웃었다.
“공주가 12년 동안 자란 것은 알지 못하고 그 장성한 것만을 보고 약의 힘이라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선지식을 찾아가 말하기를,
“나는 도를 구하려고 합니다. 원컨대 나를 가르쳐 당장 선지식이 되게 하소서” 한다.
스승은 방편으로 그로 하여금 좌선하면서 열 두 가지 인연[十二因緣]을 관(觀)하게 하고, 차츰 온갖 덕을 쌓아 아라한(阿羅漢)이 되게 한다.
그러면 그는 크게 기뻐한다.
“훌륭하시다. 큰 스승님은 나로 하여금 가장 빨리 묘한 법을 증득하게 하셨다”고.
16. 사탕수수를 망친 사람
옛날 두 사람이 사탕수수를 심으면서 서로 맹세하였다.
“좋은 종자를 심은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좋지 못한 종자를 심은 사람에게는 무거운 벌을 주자.”
그 때 그 중 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사탕수수는 아주 달다. 만일 즙을 짜서 그 나무에 다시 주면 그 맛은 다른 것보다 뛰어날 것이다.’
그리하여 곧 사탕수수를 눌러 그 즙을 짜서 나무에 쏟고는 맛이 좋아지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도리어 그 종자만 못 쓰게 되고 많은 사탕수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재물과 권력을 위해 힘을 다하고, 세력을 빙자하여 백성들을 협박하고 재물을 빼앗는다. 그리하여 그것으로 복의 근본을 지어 놓고는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
그것은 마치 사탕수수를 짜서 이것저것 모두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17. 반푼의 빚과 네 냥의 손해
옛날 어떤 상인이 남에게 돈 발 푼을 빌려쓰고 오랫동안 갚지 못하였다.
그는 빚을 갚으러 떠났다.
그 앞길에는 큰 강이 있었다. 뱃삯으로 두 냥을 주어야 건너갈 수 있었다.
그는 빚을 갚으려고 갔으나 때마침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강을 건너 돌아오면서 또 두 냥을 써 버렸다. 그리하여 그는 반 푼 빚을 갚으려다 도리어 네 냥의 돈을 손해보고 말았다. 진 빚은 극히 적었으나 손해는 아주 많아 결국 여러 사람들의 비웃음만 당하였다.
세상 사람도 그와 같다. 작은 명예와 이익을 구하다가 도리어 큰 손실을 보게 되나니, 제 몸을 위하여 예의를 돌아보지 않으면, 현재에는 허명을 얻고 미래에는 괴로움의 갚음을 받는다.
18. 다락을 오르락거린 비유
옛날 어떤 가난한 사람이 왕을 위해 오랫동안 일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늙고 야위었다.
왕은 그를 가엾이 여겨 죽은 낙타 한 마리를 주었다.
그는 낙타의 가죽을 벗기려 하였으나 칼이 무디었기 때문에 숫돌에 칼을 갈아야 했다.
그는 다락 위에 올라가 숫돌에 칼을 갈아 다시 밑으로 내려와 가죽을 벗겼다.
자주 오르내리면서 칼을 갈다 몹시 피로해졌다. 그래서 오르내리지 않고 낙타를 다락에 달아 두고 숫돌에 칼만 갈았다. 이를 본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다.
비유하면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계율을 깨뜨리면서도 재물을 많이 취하여 그것으로 복을 닦아 하늘에 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낙타를 달아 두고 다락에 올라가 칼을 가는 것처럼 애는 많이 쓰나 소득은 매우 적은 것과 같다.
19. 물에 금을 긋는 사람
옛날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가 은그릇 하나를 물에 떨어뜨려 잃어버렸다.
그는 가만히 생각하였다.
‘지금 물에 금을 그어 표를 해 둔 뒤 나중에 다시 찾자’고.
그리하여 그는 두 달이나 걸려 사자국(師子國)에 이르렀다. 그 사람은 앞에 흐르는 물을 보고 곧 들어가 전에 잃은 은그릇을 찾으려 하였다.
사람들이 물었다.
“어쩌려고 그러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나는 전에 은그릇을 잃었는데 지금 그것을 찾으려 한다.”
“어디서 잃었는가.”
“처음으로 바다에 들어와 잃었다.”
“잃은 지 얼마나 되었는가.”
“잃은 지 두 달되었다.”
“잃은 지 두 달이나 되었는데 어떻게 찾겠는가.”
“내가 은그릇을 잃었을 때에 물에 금을 그어 표를 해 두었는데 전데 표해 둔 물이 이 물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찾는 것이다.”
“물은 비록 다르지 않지마는 너는 전에 저기서 잃었는데, 지금 여기서 찾은들 어떻게 찾겠는가.”
그것은 외도들이 바른 행을 닦지 안고, 선과 비슷한 것을 닦다가 중간에 잘못 생각하여 괴로워하면서 해탈을 구하는 것과 같다. 마치 저 어리석은 사람이 저기서 은그릇을 잃고 여기서 찾는 것과 같다.
20. 백 냥의 살과 천 냥의 살
옛날 어떤 사람이 왕의 허물을 말하였다.
“왕은 매우 포악하여 다스리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고.
왕은 그 말을 듣고 매우 화를 냈다. 그러나 누가 그런 말을 하였는가를 끝까지 조사하지 않고, 곁에서 아첨하는 사람의 말만 믿고 어진 신하를 잡아 매달고 등에서 백 냥 가량의 살을 베어 내었다.
어떤 사람이 그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증명하자, 왕은 마음으로 뉘우치고 천 냥 가량의 살을 구해 와 그의 등에 기워 주었다. 밤이 되자 그는 신음을 하며 매우 괴로워하였다.
왕은 그 소리를 듣고 물었다.
“왜 그리 괴로워하는가. 너의 백 냥 가량의 살을 베고 그 열 배를 주었는데 그래도 만족하지 않은가, 왜 괴로워하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대왕이 만일 아들의 머리를 베었다면 비록 천 개의 머리를 얻더라도, 아들은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 또한 비록 열 배의 살을 얻었지만 이 고통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도 그와 같아서 내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현세의 즐거움만 탐하여 중생을 몹시 괴롭히고 백성들의 재물을 많이 짜내어 죄를 없애고 복의 갚음을 바라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왕이 사람의 등살을 베어 낸 뒤에 다른 살로 기워 놓고 그가 괴로워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0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