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선, 참회, 사홍서원, 삼귀의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좌선이라는 이 문은 원래 마음에 집착해서도 안 되고 또 깨끗한 것에 집착해서도 안 되며 움직이지 않는 것도 옳지 않느니라.
만일 마음에 집착한다고 말한다면 마음은 원래 망령된 것이어서 그 마음이 허깨비와 같음을 알 것이므로 집착하는 바가 없을 것이니라.
만일 깨끗한 것에 집착한다고 말한다면 사람의 성품이 본래 청정한 것인데 망상으로 인하여 진여를 덮은 것이 되느니라.
망상만 없으면 성품이 스스로 청정한 것인데, 마음을 일으켜서 청정한 것에 집착하므로 도리어 청정하다는 망상을 내는데, 망상은 있을 곳이 없음이라, 집착하는 것이 곧 망상이니라.
깨끗함도 형상이 없는데 도리어 깨끗하다는 생각을 세워서 이것을 공부라 말하지만 이런 견해를 짓는 자는 자기의 본성을 막아 도리어 깨끗하다는 생각의 결박을 당하리라.
선지식아, 움직이지 않는 것을「닦는다.」라고 하는 것은 일체 사람을 볼 때에 사람의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과 허물과 근심을 보지 않는 것을 말하며, 이것이 곧 자성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선지식아, 미혹한 사람은 몸은 비록 움직이지 아니하나 입을 열어 타인의 옳고 그름과 잘하고 못함과 좋고 미워함을 말해서 도와는 어긋나고 등진다.
만일 마음에 집착하고 청정함에 집착하면 도리어 도에 장애가 되느니라.”
대사가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선지식아, 어떤 것을 좌선이라 하는가 하면, 이 법문 가운데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어서 밖으로 일체 선악의 경계에 마음 가운데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좌>라 하고 안으로 자성이 움직이지 않음을 보는 것을 <선>이라 한다.
선지식아, 어떤 것을 선정이라 하는가 하면, 밖으로 상을 여의는 것이 <선>이고, 안으로 어지럽지 않는 것이 <정>이다.
밖으로 만일 상에 빠지면 안의 마음이 곧 어지럽고, 밖으로 만일 상을 여의면 마음이 곧 어지럽지 않으리라.
본성이 스스로 깨끗하고 스스로 정(定)한 것인데 경계를 보고 경계를 생각하기 때문에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만일 모든 경계를 보되 마음이 어지럽지 않으면 <선>이요, 안으로 어지럽지 않으면 <정>이니, 밖의 <선>과 안의 <정>이 곧 선정이니라.
정명경에 이르시길,「즉시에 시원하게 깨달으면 다시 본심을 얻는다.」하셨으며 보살계경에 이르시길,「나의 본성이 원래 스스로 청정하다.」하셨느니라.
선지식아, 생각 생각가운데에 자기의 본성이 청정함을 보아서 스스로 닦고 스스로 행하면 스스로 불도를 이루리라.
참회
이때에 대사는 광주와 소주 두 개 군을 비롯한 사방의 선비와 백성들이 모두 산중에 모여 법을 들으려하는 것을 보시고 법좌에 오르시어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잘 왔다. 선지식아, 이 일은 모름지기 자성으로 일어난 것이니 어느 때나 생각 생각에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여 스스로 닦고 스스로 행하면 자기의 법신을 볼 것이며 자기 마음의 부처를 보아 스스로 제도하고 스스로 경계하여 비로소 얻게 되니 구태여 이곳까지 올 필요가 없느니라.
먼 곳에서 와서 이렇게 모였으니 모두 다 인연이 있는가보다. 이제 다들 꿇어 앉아라.
먼저 자성의 오분 법신향을 전하고 다음에 무상 참회를 주겠노라.”
대중이 꿇어앉자 대사가 말씀하셨다.
“첫째는 <계향>이다. 자기의 마음 가운데에 그릇됨이 없고 악함이 없으며 질투가 없고 탐냄과 성냄이 없으며 빼앗고 해치는 마음이 없는 것을 계향이라 하느니라.
둘째는 <정향>이다. 곧 모든 선과 악의 경계와 모양을 보더라도 자기의 마음이 어지럽지 않는 것을 정향이라 하느니라.
셋째는 <혜향>이다. 자기의 마음이 걸림이 없어서 항상 지혜로써 자성을 관조하여 모든 악을 짓지 아니하며, 비록 많은 선을 닦지만 마음에 두지 않고 위를 공경하고, 아래를 보살피며 외롭고 가난한 이를 불쌍히 여기는 것을 혜향이라 하느니라.
넷째는 <해탈향>이다. 자기의 마음에 인연을 일으키는 바가 없어서 선도 생각하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아니하여 자유롭고 걸림이 없는 것을 해탈향이라 하느니라.
다섯째는 <해탈지견향>이다. 자기의 마음이 이미 선악에 인연이 일어나는 바가 없지만 공에 빠져 고요함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모름지기 널리 배우고 많이 들으며 자기의 본심을 알아 모든 부처님의 이치를 통달하여 법신에 화해서 사물을 대함에 있어 나도 없고 남도 없어서 깨달음의 참된 성품이 바뀌지 않는 곳에 이르는 것을 해탈지견향이라 하느니라.
선지식아, 이 향은 각자 안으로 그윽하게 익힐 것이지 밖을 향하여 찾지 말아라.
이제 너희들에게 무상참회를 주어서 삼세의 죄를 멸하고 삼업을 청정하게 해주겠노라.
선지식아, 모두 내 말을 같이 따라 하여라.
<제자들이 앞의 생각과 지금 생각과 뒤의 생각으로 순간순간에 어리석고 미혹한데 물들지 않고, 이제까지 지은 바 악업인 어리석고 미혹된 죄를 모두 다 참회하오니, 원하옵건대 일시에 소멸하여 다시는 영원히 일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제자들이 앞의 생각과 지금 생각과 뒤의 생각으로 순간순간에 교만과 속임에 물들지 않고, 예전부터 지은 악업인 교만하고 속인 죄를 모두 다 참회하오니 원하옵건대 일시에 소멸하여 다시는 영원히 일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제자들이 앞의 생각과 지금 생각과 뒤의 생각으로 순간순간에 질투에 물들지 않고 지은 바 악업인 질투 등의 죄를 모두 다 참회하오니 원하옵건대 일시에 소멸하여 다시는 영원히 일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선지식아, 이상이 무상참회인데 어떤 것을 <참>이라 하고 어떤 것을 <회>라 하느냐하면, 참이라는 것은 그 전의 허물을 뉘우치는 것으로 이제까지 지은 바 악업인 어리석음과 미혹함과 교만과 속임과 질투 등의 죄를 모두 다 뉘우쳐서 다시는 영원히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을 참이라 하고, 회라는 것은 이후의 허물을 뉘우치는 것으로 이제부터 이후에 지을 바 악업인 어리석음과 미혹함과 교만과 속임과 질투 등의 죄를 지금 미리 깨달아서 모두 다 영원히 끊어서 다시는 또 짓지 않는 것을 회라고 하므로 참회라 말하느니라.
범부는 어리석고 미혹하여, 다만 그 전의 허물만 뉘우칠 줄 알고 앞으로의 허물은 알지 못하여 뉘우칠 줄 모르므로 예전의 허물이 없어지지 않고 뒤의 허물이 또 생기느니라.
앞의 허물이 없어지지 않고 뒤의 허물이 다시 또 생기면 어찌 참회라 하겠느냐.
사홍서원
선지식아, 이미 참회를 하였으니 선지식과 더불어 <사홍서원>을 일으키자.
각각 마음을 바로 하여 잘 들어라.
내 마음의 중생이 가 없지만 기어코 제도하겠으며,
내 마음의 번뇌가 가 없지만 기어코 끊겠으며,
내 마음의 법문이 한이 없지만 맹세코 배우겠으며,
자성의 위없는 불도를 맹세코 이루겠습니다.
선지식아,「대중이 중생이 가 없지만 맹세코 건지겠습니다.」라고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이 혜능이 제도하는 것이 아니니라.
선지식아, 각자의 마음 가운데 중생인 이른바 삿되고 미혹한 마음, 속이고 망령된 마음, 착하지 못한 마음, 질투하는 마음, 악독한 마음 등 이와 같은 마음이 다 이 중생이니 각각 모름지기 자성으로 스스로 제도하는 것을 참된 제도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자성으로 스스로 제도하는 것이라 하는가 하면, 즉 자기의 마음 가운데에 삿된 견해와 번뇌와 어리석음의 중생을 바른 견해로 제도하는 것이다.
이미 바른 견해가 있으므로 반야의 지혜로 어리석고 미혹하여 망령된 중생을 쳐부수어 각각 스스로 제도하되, 삿된 것이 오면 바른 것으로 제도하고 미혹함이 오면 깨달음으로 제도하고 어리석음이 오면 지혜로 제도하고 악이 오면 선으로 제도하는 이와 같은 제도를 참된 제도라 하느니라.
또 번뇌가 가 없지만 기어이 끊겠다. 하는 것은 자성의 반야 지혜로 허망한 사상(思想)을 없애버리는 것이며, 또 법문이 다함이 없지만 맹세코 배우겠습니다. 하는 것은 모름지기 스스로 견성하여 항상 정법을 행하는 것이며 참된 배움이라 하느니라.
또 위없는 불도를 맹세코 이루겠습니다. 하는 것은 항상 하심하여 참되고 바른 것을 행하고 미혹도 여의고 깨달음도 여의어서 항상 반야를 내고 참도 없애고 거짓도 없애어 불성을 보며 곧 말 아래 불도를 이루는 것이다.
항상 수행을 생각하여라. 이것이 원력의 법이니라.
삼귀의
선지식아, 이제 사홍서원을 일으켰으니 다시 선지식들에게 상이 없는 삼귀의의 계를 주겠노라.
선지식아,
깨달음의 <양족존>께 귀의하며,
올바름의 <이욕존>께 귀의하며,
청정함의 <중중존>께 귀의하여라.
오늘부터는 깨달음을 스승으로 삼고 다시는 삿된 악마와 외도에 귀의하지 말고 자성삼보로써 항상 스스로 증명하고 선지식에게 권하여 자성삼보에 귀의하게 하라.
<불>이라는 것은 깨달음이요, <법>이라는 것은 바른 것이요, <승>이라는 것은 청정함이다.
자기 마음이 깨달음에 귀의하여 삿됨과 미혹함이 일어나지 않고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아서 재물과 여색에서 떠남에 양족존이라 하고,
자기의 마음이 바른 곳에 귀의하여 생각 생각에 사견이 없고 사견이 없으므로 곧 나다 남이다 하며 잘난 체함과 탐욕과 애욕의 집착이 없음에 이욕존이라 하며,
자기의 마음이 청정함에 귀의하여 일체의 번뇌와 애욕의 경계에 자성이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음에 중중존이라 하느니라.
만일 이런 행을 닦으면 이것이 스스로 귀의하는 것인데 범부는 알지 못해서 해가 지고 밤이 되도록 삼귀의의 계를 받는다 하는데, 만일 부처님께 귀의한다고 말하지만 부처님이 어느 곳에 계시며, 만일 부처님을 보지 못했다면 무엇을 빙자하여 귀의한단 말인가. 말이 도리어 허망함을 이루는구나.
선지식아, 각각 스스로 관찰하여 마음을 잘못 쓰지 않도록 하여라.
경문(화엄경 정행품)에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스스로 부처에게 귀의하라.」했고 다른 부처에게 귀의하라 말하지 않았으니 자기 부처에게 귀의하지 않는다면 의지할 곳이 없으리라.
이제 스스로 깨달았으면 각자 자기 마음의 삼보에게 귀의하여 안으로 심성을 고르게 하고 밖으로 다른 사람을 공경하여라.
이것이 스스로 귀의하는 것이니라.
선지식아, 이미 자기의 삼보에게 귀의하였으니 각각 지극한 마음을 가져라.
내가 하나의 바탕이면서 세 가지 몸인 자성(自性)불을 설하여 너희들로 하여금 세 가지의 몸이 뚜렷함을 보게 하고 스스로 자성을 깨닫게 하리니 따라 외워라.
<자기 육신의 청정법신불에 귀의하며,
자기 육신의 원만 보신불에 귀의하며,
자기 육신의 천 백억 화신불에 귀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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