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삼조선 분립시대-삼조선붕괴의 원인과 결과
삼신설의 파탄
'삼조선 멸망의 근본 원인'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앞의 제2·3·4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신·말·불 삼조선이 한꺼번에 무너지게 된 데에는 두 가지 깊은 원인이 있는 것이다.
첫째는 삼신 신앙 체계의 균열이다. 본래 삼한은 천일·지일·태일이라는 삼신설에 기초하여 수립된 체제였던 것이다. 인민들은 '말한'을 천신의 대표로, '불한'을 지신의 대표로, 그리고 '신한'을 하늘보다 높고 땅보다 큰 우주 유일신의 대표로 받들어 왔다. 그러나 말한과 불한이 신한을 배반하고 각기 스스로 신한이라 칭하면서 삼대왕이 나란히 서게 되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일반 백성들은 계급이란 것이 자연적이거나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힘만 있으면 파괴할 수도 있고 건설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삼신설에 대한 의심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 근본적 원인인 것이다.
둘째는 통치 권위의 실추이다. 과거 역대의 삼한은 단순히 삼신의 미신으로만 인심을 장악한 것이 아니라, 외적을 물리치고 국토를 확장하여 그 위세가 천하를 떨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삼국의 군주들은 흉노와 중국의 잇따른 침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여 많은 영토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일반 백성들은 제왕도 결국 하늘의 아들이 아닌 평범한 인간의 아들이며, 그들의 성패와 흥망도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것이 삼한의 신성한 권위가 부정되는 직접적 원인이 된 것이다.
결국 삼신설이라는 기초 위에 세워진 삼한은, 그 기초가 되는 신앙 체계가 무너지면서 필연적으로 붕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고대 국가의 정신적 기반이 흔들릴 때 정치 체제 역시 존립하기 어렵다는 역사의 보편적 진리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열국의 분립
'삼신설 붕괴 이후의 사회 변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삼신설이 무너지고 삼한에 대한 신앙이 쇠퇴하자, 조선 역사상 유례없는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일부 인민들은 신인과 영웅들의 허상을 깨닫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치촌이나 자치계와 같은 조직을 설립하여 민중의 힘으로 민중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의 역사적 증거로는 진한부와 변한부 같은 조직을 들 수 있으며,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은 유사한 시도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성공적으로 정착하지 못한 데에는 세 가지 중요한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첫째, 미신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세계관이 부족했다. 우주와 인생의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할 수 있는 체계적인 학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 주변 환경이 불리했다. 조선 주변에는 예, 선비, 흉노, 왜 등 문화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민족들만 있어서 진보적 발전을 위한 협력 대상을 찾기 어려웠던 것이다. 셋째, 중국 문화의 영향이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중국은 오랜 문화를 가졌으나 대부분 군권을 옹호하는 사상과 학설이 중심이었기에, 그들의 문자 수입이 도리어 민중의 진보를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중의 지적 수준은 여전히 미숙했고, 기존 세력의 뿌리는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에 두 가지 상반된 움직임이 일어났다. 한편으로는 제왕의 후예들이 조상 대대로 내려온 지위를 회복하려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간의 용맹한 영웅들이 새로운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려 한 것이다. 작은 나라들은 큰 나라가 되기를 희망했고, 큰 나라들은 영토를 더욱 확장하려 했다.
이들은 각각 자신의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 다양한 호칭과 신화적 요소를 활용했다. 신수두님[大檀君], 신한[辰王], 말한[麻立干], 불구래[弗矩內] 등의 칭호를 사용하고, 하늘에서 내려왔다거나 해외에서 표류해 왔다거나, 태양의 정기로 태어났다거나 알에서 나왔다는 등의 신이한 출생담을 내세운 것이다. 이들은 전통적 미신의 세력을 이용하여 민중을 유혹하거나 위협했다.
결과적으로 갓 싹트기 시작한 민중의 자치적 움직임은 이러한 강력한 세력들에 의해 정복되어 소멸되고 말았다. 대신 각지에서 세력 다툼을 위한 전쟁이 일어나 열국쟁웅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이는 고대 조선 사회가 겪은 큰 변혁기였으며, 후일 삼국 시대로 이어지는 역사적 전환점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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