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역사서의 개조에 대한 소견
역사적 자료에 대해, 그 사라진 부분을 보충하고, 빠진 부분을 채우며, 거짓을 제거하고, 훼손된 부분을 밝혀서 완전하게 만드는 방법에 대한 대략적인 개념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이제 역사를 편찬하고 정리하는 절차에서, 옛 역사 기록의 오류를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최근, 왕조 독립의 형식을 고쳐 신라사·고려사 등의 역사서를 새롭게 집필했다는 저서들이 몇 권 등장했지만, 그 내용은 단지 '왕조 독립'을 고치고, '통감', '분편' 등을 '제1편', '제2편'으로 바꾸는 것에 그쳤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재기', '이단'을 '예술', '학술'로 표현하며, 그 위치를 바꾸었을 뿐, ‘근왕’이라던가 ‘외적을 막다’를 ‘애국’, ‘민족적 자각’이라며 신구의 명사를 바꿨을 뿐이다. 결국 그들이 한 일은 ‘한장책’을 ‘양장책’으로 바꾼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나의 어리석은 생각으로 우리 역사를 개조하는 방법의 대강을 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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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계통을 찾을 것이다. 구사에서는 왕실의 계통을 찾는 것 외에는 다른 곳에서 계통을 찾지 않았기에, 무슨 사건이든 신기하게 전개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았다.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인과 관계를 밝히는 일인데, 만약 이러한 인과 외의 일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작성자의 부주의일 뿐, 본질적으로 역사에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구사에서 계통을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이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삼국사기나 신라사에서 진흥대왕부터 문무대왕까지의 국선들이 전성기를 맞았으며, 사다함과 같은 인물은 겨우 열 살의 소년으로 그 제자들이 대성공구와 겨룰 정도의 큰 업적을 이뤘다. 그럼에도 그 계통은 수십 년 안에 끊어졌으며, 국선 이후 국선의 후계자도 없었기에, 이는 신라의 신괴록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고대 국가에서 계통을 찾아보는 방법이란 이런 방식으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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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회통을 구할 것이다. 회통이란 사건이나 인물들 간의 전후 관계를 구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묘청이 "평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금국을 치자"고 주장했을 때, 많은 시민들이 이를 지지했다가도 결국 그는 큰 실패를 맛보게 된다. 그 뒤를 이은 김부식은 묘청을 처벌하고 그의 세력을 완전히 억제하였다. 그러나 묘청이 일으킨 북벌론이 당시 대중과 많은 인물들의 지지를 받았던 이유는, 고려가 금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북방의 옛 영토를 회복하려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회통이란 이처럼 사건이나 개인 간의 전후 관계를 파악하여 그 성패의 원인을 추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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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습을 제거할 것이다. 심습이란 무의미하거나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이 '세계 철갑선의 비조'로 언급되었을 때, 일본인들은 일본 배가 철갑이라며 반박하고 조선의 학자들은 이를 과장하여 논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순신의 배가 철갑선이 아니라는 주장은 증거가 부족하며, 철갑선의 창조자는 다른 인물일 수 있다. 이러한 논란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장하거나 잘못된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역사적 사실의 본질을 지키고 왜곡을 방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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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색을 보전할 것이다. 역사 기록에서 본색을 보전한다는 것은, 각 시대의 본래 모습을 정확히 그려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라 화랑사나 고구려 미천왕 기록에서, 그 시대의 사회적 풍속이나 인물들의 행동이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삼국사기나 고려사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본색을 제대로 그려낸 기록은 드물다. 이러한 왜곡은 유교적 춘추필법과 외교적 편견이 영향을 미친 결과이다. 역사는 시대의 정신을 그대로 반영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당시의 사회적 맥락을 정확히 짚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는 과거를 바로잡고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기 위한 작업이다. 개인적인 감정이나 편견을 배제하고,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는 것이 바로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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