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백
유태인의 법에서는 자기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것은 무효이므로 자백이란 인정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랜 경험에 의해서 고문으로 자백을 받아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서는 지금도 자백에 의한 죄는 무효이다.
성에 대하여
성 관계는 올바르고 깨끗하게 행하면 기쁨이 된다. 성에 대하여 추하다거나 부끄럽다는 말을 써서는 안된다. <탈무드>에 보면 '모든 교사는 아내를 얻지 않으면 안되며, 모든 랍비는 결혼한 사람이어야만 된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아내가 없는 사람은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사상에서 유래한 것이다. <탈무드>에서는 성을 일컬어 '생명의 강'이라고 한다. 강물은 때로는 홍수를 일으키고 온갖 것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갖가지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여 세상을 유익하게 만들기도 한다.
남자의 성적 흥분은 시각을 통해서 일어나고, 여자는 성적 흥분이며 피부의 감각을 통해 일어난다.
<탈무드>에는 남자들에게 '여자와 몸이 닿을 때 주의하라'고 했고, 여자들에게는 '특히 옷 입은 법에 주의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계엄이 엄격한 유태인 사회에서는 상인이 거스름 돈을 줄 때에도 여자 손님에게는 결코 손으로 직접 건네주지 않는다. 그들은 반드시 거스름 돈을 어딘가에 놓아서 손님이 가져가게 한다. 또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이스라엘의 여성들은 미니스커트 따위는 결코 입지 않고, 긴 소매에 긴 스커트를 입는다.
랍비는, 성 행위 때 남성이 절정에 이를 때와 여성이 절정에 이를 때에 시간적 차이가 있음을 알고 있다. 즉, 여성이 절정에 도달하기도 전에 남성은 행위를 끝낼 수도 있다.
남편이 아내의 허락 없이 일방적으로 아내를 끌어 안는 것은 강간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남편이 아내와 성관계를 맺을 때에는 아내를 반드시 설득하여야 한다.
상냥하게 말을 걸고 사랑이 넘치는 애무를 해주는 시간을 충분히 갖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월경 중에는 아내를 멀리해야 한다. 월경 후에도 7일간은 금지되어 있다. 아무리 부부 사이라 해도 이 며칠 동안에는 절대로 관게를 가질 수 없으므로, 이 동안 아내에 대한 남편의 그리움이 깊어져서 계율의 날짜가 지나면, 부부는 항상 신혼 때와 같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결혼한 여자는 절대로 외간 남자와 성 관계를 맺어서는 안된다. 그러나<탈무드> 시대의 남자에게는 두 사람 이상의 아내를 얻는 일이 허용되었지만, 일부일처 제도가 확립된 이후부터는 누구나 아내를 한 사람 이상은 갖지 않았다.
아내 이외에 다른 여자를 갖는 것은 성실성이 없는 남편이라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무드>에는 매춘부를 사는 얘기가 기록되어 있다. 자위 행위를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매춘부를 사는 것이 낫고, 아내가 계속 거절할 때 매춘부를 찾아가는 것은 기혼자라 해도 부득이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유태인 사회는 학문을 중하게 여기고 계율을 존중하고 종교를 존중하기 때문에 매춘 행위가 성행할 요소는 별로 없었다.
<탈무드> 시대부터 랍비들은 피임법에 정통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어떤 피임법을 쓸 것인가는 모두 랍비가 지도하였는데, 피임법은 여자만이 사용하였다.
<탈무드>에는 피임법을 써도 좋은 세가지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임신한 여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여자, 그리고 어린 여자의 경우였다.
임신한 여자에게 피임법을 써야 하는 이유는, 그 당시 랍비들의 지식으로는 임신 중에도 또 임신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여자의 경우에는, 어린아이가 네 살이 될 때까지는 보살펴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이 기간에 또 임신하는 것은 별로 장려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린 여자의 경우는, 아무리 결혼한 사이라 하더라도 해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밖에는 흉년이 들었을 경우, 전염병이 퍼지고 있을 경우 등에도 피임법을 쓰도록 장려했다.
■
랍비들에게 있어서 동성애는 용서할 수 없는 행위였다. 유태인들 사이에는 동성애의 예가 극히 적었다.
왜냐하면 아주 강한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 이것이 유태인 남녀의 이상형이었기 때문이다.
■ 사형
법원에서 사령의 판결을 내릴 경우 판결이 판사들의 전원 일치로 이루어지면 그 판결은 무효이다. 그것은 재판에서는 항상 두 가지 견해가 존재하기 마련인데, 한 가지 견해밖에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재판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형이라는 극형을 결정할 때에도 판사 전원의 의견 일치로 이루어지면 그 사형판결은 무효라는 규정이 있었다.
■ 물레방아
갑과 을, 두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갑은 을에게 물레방아를 질려 주었다. 그 조건은, 을이 갑의 곡식을 모두 찧어 주고 그 대신 을이 갑의 물레방아를 사용한다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갑은 많은 돈을 벌어서 다른 물레방아를 몇개 더 샀기 때문에, 곡식 찧는 일을 을에게 맡길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날 갑은 을에게 가서 임대료를 돈으로 달라고 했다. 그러나 을은 임대료 대신 갑의 곡식을 찧고 싶었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
<탈무드> 의 판결은 이러하였다. 만일 을이 갑의 곡식을 찧어주지 않고는 임대료를 지불할 능력이 없다면, 계약대로 임대료 대신 갑의 곡식을 계속 찧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갑이 아닌 제3자의 곡식을 찧어서 돈으로 임대료를 지불할 수 있다면, 돈으로 지불해야 한다.
■ 고용계약
고용주와 종업원 사이에 계약을 맺었다. 종업원은 고용주를 위해 일을 하고 1주일마다 임금을 받기로 하였다. 그런데 현금이 아니라 근처의 상점에서 그 금액에 상당하는 물건을 사면, 상점에서는 고용주로부터 대금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계약한 것이다.
1주일이 지나자 종업원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고용주에게 찾아와서 말했다.
[상점에서는 현금이 아니면 물건을 팔지 않겠다고 하니 현금을 지불해 주십시오.]
그런데 느닷없이 상점 주인이 찾아와서 말하는 것이었다.
[댁의 종업원이 물건을 이만큼 가지고 가서 대금을 받으러 왔습니다.]
이 경우에 고용주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 아무리 조사를 해 보아도 종업원이나 상점 주인에 대한 사실을 증명할 만한 것이 없었다. <탈무드>에서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신의 이름으로 선서까지 했고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으므로 <탈무드>는 고용주에게 양쪽 모두에게 지불하라고 했다.
왜냐하면 종업원은 상점 주인의 청구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며, 상점 주인도 종업원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고용주는 양쪽에 다같이 관계가 있으므로, 그런 관계를 가진 이상 양쪽 모두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에 양쪽 모두에게 지불하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탈무드>안에서도 오랫동안 토의되어 온 항목이지만 이 의견이 가장 타당하다. 어느 한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선서를 했고, 고용주는 양쪽 모두에 관련되어 있으므로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이것은 경솔한 계약 행위를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암시해주는 교훈이다.
■ 광고
현대 사회는 광고를 할 때에 지나친 과장이나 허위로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자동차, 맥주, 전자제품 등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광고를 보면, 광고가 반드시 올바른 정보만을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어떤 회사의 상품이 다른 회사의 상품보다 특별하게 우수하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반대로 다른 회사의 상품 광고를 보면, 역시 그들도 똑같은 선전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상품과는 관계없는 포장이나 디자인도 많이 이용되고 있는데, 오늘날에는 그와 같은 일이 관습이 되어, 오히려 좋은 판매 방법이라고 까지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담배 광고에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승용차 안에서 담배를 맛있게 피우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이 광고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이 아름다운 아가씨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탈무드>는 이와 같은 판매 방법을 금지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탈무드>는 이와 같은 판매 방법을 금지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탈무드>는 소를 팔 경우 다른 색을 칠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고, 또 여러 가지 도구에 색깔을 칠하여 새것으로 보이게 위장하는 것도 금하고 있다. 결국, 소비자를 속일 목적으로 상품에 색깔을 칠하는 것은 금하고 있는 것이다.
<탈무드>에는, 어떤 늙은 노예가 머리에 염색을 하고 얼굴에 화장을 해서 자신을 젊어 보이게 하여 사는 사람을 속였다는 얘기가 실려 있다.
또 과일가게에서는 신성한 과일을 오래된 과일 위에 올려 놓고?
'풀야드'니 하는 과장된 말들이 사용되고 있다.’풀 야드'라고 해야 사실은 1야드에 지나지 않으므로, <탈무드>에서는 일찍이 이런 말을 사용하는 것이 금해져 있었던 것이다.
■ 소유권
현대 사회는 광고를 할 때에 지나친 과장이나 허위로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자동차, 맥주, 전자제품 등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광고를 보면, 광고가 반드시 올바른 정보만을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어떤 회사의 상품이 다른 회사의 상품보다 특별하게 우수하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반대로 다른 회사의 상품 광고를 보면, 역시 그들도 똑같은 선전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상품과는 관계없는 포장이나 디자인도 많이 이용되고 있는데, 오늘날에는 그와 같은 일이 관습이 되어, 오히려 좋은 판매 방법이라고까지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담배 광고에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승용차 안에서 담배를 맛있게 피우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이 광고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이 아름다운 아가씨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탈무드>는 이와 같은 판매 방법을 금지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탈무드>는 이와 같은 판매 방법을 금지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탈무드>는 소를 팔 경우 다른 색을 칠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고, 또 여러 가지 도구에 색깔을 칠하여 새것으로 보이게 위장하는 것도 금하고 있다. 결국, 소비자를 속일 목적으로 상품에 색깔을 칠하는 것은 금하고 있는 것이다.
<탈무드>에는, 어떤 늙은 노예가 머리에 염색을 하고 얼굴에 화장을 해서 자신을 젊어 보이게 하여 사는 사람을 속였다는 얘기가 실려 있다.
또 과일가게에서는 신성한 과일을 오래된 과일 위에 올려 놓고 파는 것도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또 <탈무드>에는 건물의 안전 규정에 대해서도 차양 길이의 제한이나 발코니 기둥의 굵기 등에 이르기까지 아주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 시간에 대해서는 그 지방의 상식적으로 통하는 관례이상으로 이를 시켜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고, 과일을 따는 노동자를 고용했을 경우, 그 노동자가 일하는 동안 어느 정도의 과일을 따먹는 것은 금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탈무드>에서는 상품을 팔 때 그 물건과 성질이 다른 상품을 붙이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광고에서는 '킹 사이즈'니 '풀야드'니 하는 과장된 말들이 사용되고 있다.’풀 야드'라고 해야 사실은 1야드에 지나지 않으므로, <탈무드>에서는 일찍이 이런 말을 사용하는 것이 금해져 있었던 것이다
■ 두 세계
어떤 두 사람에게 랍비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랍비이므로, 사람들은 나를 전적으로 믿고 있다. 나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에게 만원을 빌렸고, 다른 한 사람으로부터는 2만원을 빌렸다. 그런데 어느 날 두 사람이 와서, 나에게 다같이 2만원씩을 갚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누구에게서 만원을 빌렸는지 기억할 수가 없다.
나는 과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에 대하여 <탈무드>에는 두 견해가 있다.
[누구에게 2만원을 빌렸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두 사람에게 다 만원씩 빌린 것만을 틀림이 없다. 그러니까 우선 두 사람에게 각각 만원씩은 갚아주고 나머지 만원은 증거가 나올 때까지 법정에 맡겨 두도록 한다.]
이러한 의견에 어떤 랍비가 이렇게 말하였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도둑이다. 만원밖에 빌려주지 않고서 만원을 더 받아내려고 한다. 그런데 만원씩을 돌려준다면, 그 도둑에게는 아무런 손해가 없다. 이래 가지고는 사회의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한다. 도둑이나 나쁜 사람이 이득을 보거나 벌을 받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사회정의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두 사람에게 한 푼도 갚지 말고 법정에 예치해 두어야 한다.]그러면 도둑 쪽에서는 만원마저 돌려 받지 못하면 손해가 되니까, 집에 가서 장부를 다시 살려보니 2만원이 아니라 만원이었다고 말하면 만원을 찾으러 올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앞에서 예를 든 극장 이야기로 돌아가서, 극장의 경우도 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을 발견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틀림없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거짓말을 한 사람이 그 돈의 절반을 차지한다면, 거짓말을 하고도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므로, 이것은 사회정의에서 어긋난다. 그러므로, 확실한 증거가 나올 때까지 그 돈을 법정에 보관해야 두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극장의 경우는 두 사람이 정말로 동시에 그것을 발견할 수도 있으므로, 그들에게 선서를 시켜도 괜찮다. 그러나 만원과 2만원의 경우는 어느 한족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므로, 그들에게 선서를 시킨다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선서를 허위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십계명 중의 하나로, 선서를 허위로 하면 39번 채찍으로 맞는 벌을 받는다. 선서를 하고도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탈무드>에서는 극장의 경우 한 사람이 '이것은 내가 발견했기 때문에 전부 내 것이다'라고 말하고, 또 한 사람도 '이것은 전부 내 것이다'라고 말하며, 선서를 하고서도 자기의 주장을 계속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탈무드>가 아무리 많은 내용을 담은 책이라 해도, 기나긴 역사를 한정된 지면에 담고 있기 때문에, 한 가지 테마에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할 수 없는데도 이 논쟁에서는 반복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것은 <탈무드>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이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보면 이것은 두 가지의 모순되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세상의 모든 일에는 두 가지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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