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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자유 부록 ④  란지스와 이맷드

 

  제 9 화  불교인 가정에 태어난 영국인 조종사 란지스
  
  란지스는 스리랑카의 콧테에서  1942년 순수한 스리랑카인 가정의 일곱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두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 실버는 란지스가확실한 전생기억 같은 것을 상당히 가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또 그의행동은 스리랑카인의 아이라기보다  영국 아이에 어울리는 특징을 보이곤 하였다. 그가 두살 무렵에구토증을 느끼고는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으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스리랑카 사람들은 구토증이 나도 이런 짓은하지 않는다. 이것은 영국식의 구토촉진술이다. 또 음식에 대한 취향도마치 서양 사람 같아서 쌀밥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또 먹을 때에도 서양식으로 먹었다.  빵에는 서양인처럼 두텁게 버터를 발라 먹기를 좋아했다. 그는 사용한 적이 없는 포오크와 나이프를 호텔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다루었고 사용하는 방법도 다른 형제와는 달리 서양식이었다.
  그가 부모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놀랄 정도로 빨리 영어를 습득한다는 것이었다. 스리랑카는 150여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들을 기회가 많고  또 실버의 가정에서도 영어와 실론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그의 놀라운 영어 습득능력을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 흥미로운 것은 병적이라고 해도좋을 만큼 카메라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진 찍히는것을 아주 싫어하여  카메라 앞에 서게 되면  당황하면서 도망을 쳤다.부모를 부를 때에도 다른 애들은 '엄마, 아빠'라고 하는데 그는 '부모'라고 불렀다. 실론의 어느 아이도 이런 식으로 부르지 않는 것이다.
  그가 가족내에서  뚜렷하게 고립적인 태도를 나타내보인 것은 서너살무렵이었다.  그는 엄마와 형제들을 보고 "모두 나의 엄마나 형제가 아니다"고 하며, "나의 부모, 나의 가족은 영국에 있다"고 말했다. 이 일로 인하여 아버지는  그의 전생기억을 분명히 하기 위해,  그를 조용한곳으로 불러서 전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는 대강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영국인이다. 나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고 형제 중에 톰, 짐, 마가렛이 있다. 아버지는 큰기선을 타며 파인애플을 선물로 사 왔다. 기선에서 점심을 먹었다.  집은 언덕 위의 외딴 집이다. 저어지나 오버코트를 입는 일도 있었다.  마당이나 길에 얼음이 어는 추운 날 아침에는불 옆에서 몸을 녹였다.  길의 얼음을 치우러 차가 온다.  그리고 나는기독교인이지 불교인이 아니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갔다. 그 때에는 내가 오토바이를 운전하고 형제들을 태우고 갓다."
  얼음을 치우러 오는 차가 모터가 달린 차인지 아니면 말이 끄는 것인지를 묻자 그는 마차라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어떤 옷을 입었는가라는물음에 스커트와 재킷을 입고 있었다고 했으며,  어떤 과일을 먹었는가하고 물으니 포도와 사과를 먹었다고 한다. 이런 란지스의 이야기에 나오는 얼음이나 마차는 실론에는 없는 것들이다.
  란지스가 네살이 되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지방 방송국에  부탁해서생일을 축하한다는 전문을 영어로 방송해 달라고 부탁했다.  누이가 미리 그에게 "오늘 오후 5시 영국에서 엄마가 너의 생일을 축하하는 말을방송해 온다"고 일러두었다.  시간이 가까와지자 가족들은 라디오 앞에모여 앉았고 그가 가장 가까이에 앉았다.  잠시 후 여자 아나운서가 영어로 "란지스의 생일 입니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손을 나팔같이 만들어서 라디오에 대해 "엄마, 나 실론 사람의 집에 있어,  그리로 데려가줘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라디오에서는 '생일축하'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그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역시 엄마야. 엄마는 나를 '다아링'이라 하고 가끔 '스위트 하트'라고 했어."   곁에 있던 숙부가 "어떻게엄마 목소리인 줄 알았지?" 하고 묻자, 그는 "엄마는 이 라디오에서 나오는 말처럼 천천히(softly) 애기하니까"라고 대답했다.  라디오에서는분명히 말을 천천히 했다. 그러나 실론 사람이 영어로 '천천히'를 말할때는 slowly라고 하지 woftly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방송 사건은 란지스를 우울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의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란지스가  전생 일을 빨리 잊어버릴수 있도록 하라고엄하게 말했다.  그러고 나서 몇 년 동안 란지스도 전생 이야기를 하지않았다.
  란지스가 십대가 된 어느 날, 그는 아버지에게 학교를 그만두고 자동차 수리공장에 취직해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모는 그의 소원을 허락했고 그는 자동차 수리공장에 일하러 나갔다. 그러자 깜짝 놀랄 만큼빠른 속도로 자동차의 구조와 운전에 숙달되었다.  이리하여 그가 열여덟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그를 영국으로 보내주었다. 그가 자동차 엔지니어가 되었으면 하고 막연히 기대했던 것이다.  그는 2년 동안 영국에 머물었는데,  영국인과 친숙하게 사귀었으며 런던이나 그 근교의 거리가 옛날부터 익숙한 장소인듯이 느끼곤 하였다. 그리고 훗날 그는 영국에서 보낸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말하였다.
  그는 귀국하여 자동차 관계 회사에 근무하였는데,  1970년 11월 스물다섯살 때에 이안 스티븐슨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전생에 영국인 조종사가 아니었나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그 비행기가 내가 태어난 콧테 근방에 추락해서 죽었고  거기에서 지금의 집에 환생한 것 같아요."  2차대전 중 콧테에는 영국 공군기지가 있었고 그 주변에서 죽은 영국인 조종사도 많았다.  그러나 그의 전생 이야기 중에는  조종사로서의 전생을 조사할 충분한 증거가 없는 것이다.그러나 사실은 이런 구체적 자료가 불충분한 사례는 세계적으로 많다는점에서 란지스의 경우는 좋은 실례가 된다 하겠다.

  
  제 10 화  전생의 애인을 그리워하는 이맷드
  
  이멧드 에라와르는 1958년 12월 22일 라일 레바논의 코오나엘에서 모하멧드 메라와르의 아들로 태어났다.  코오나엘은 베이루트에서 동쪽으로 24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도루스교도들의 유일한 거주지이다. 이맷드가 자라면서 처음 걷기를 배우고 또 말을 하게 되자  그는 곧잘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걸을 수있게 되어서 정말 행복해."
  그의 이런 말은 그의 어머니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그는 한살 반에서두살이 될 무렵 '쟈이레'와 '마하모드'라는 두 사람의 이름을 처음으로말하였다. 전생 발언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고는 보우햄지 가(家)의 가족과 함께 크리비이 마을에 살았다고 하며,  또 다른 많은 사람의 이름도 말했다.  크리비이 마을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손짓까지 해가면서"아주 먼곳에 있다"고 하였다. 실은 코오나엘 근처에 같은 이름의 마을이 있었지만 그가 손짓까지 하는  그 '먼곳'의 마을은 아닌 듯 싶었다.또 손가락을 두개 가지런히 해 보이면서  쌍동(雙胴)의 총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이맷드가 두살이 되던 어느 날 할머니 손을 잡고 길을 가다가 갑자기한 남자쪽으로 달려가더니 그의 다리를 끌어안는 것이었다.  그 남자는의아해했다.
  "아가야, 이 아저씨를 아니?"
  "그럼요, 우리 마을 사람인 걸요."
  그는 사림 아슈라고 하며 이맷드가 말하던  '먼곳', 곧, 크리비이 마을 사람이다. 사림은 코오나엘에 있는 처가집에 왔던 것이다.
  이맷드가 네살이 되던 해 가을, 이맷드의 집을 방문한 마셀쇼프 마을의 여자가 있었다. 쇼프 마을은 크리비이에 가까운 곳인데 그녀는 이맷드가 말한 이름의 사람들이 실제로 크리비이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코오나엘로 시집온 딸을 찾아온 것이다. 이 여자는 이맷드와 함께그의 부모와 대화를 하다가 말했다. "아가야, 네가 말하는 케말 조움브랫드 씨는 벌써 죽었어." 케말은 이맷드의 전생 발언에 따르면 그의 전생의 친구였다. 이 말을 듣고 이맷드가 하도 슬픈 표정을 짓기에 그 여자는 이맷드에게 자기가 거짓말로 그렇게 해 보았다고 말하자  그는 성난 얼굴을 하며 소리쳤다. "어서 나가, 이 거짓말쟁이야." 이것은 그의부모가 처음으로 본, 전생에 대한 아주 강한 감정의 반응이었다.
  이로 인하여 이맷드의 아버지는 아들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동안 이맷드가 자주 말한 전생 발언을 토대로 하여이렇게 추정하였다.  "이맷드의 전생은 크리비이 마을의 마하모드 보우햄지이고 쟈미레라는 아내를 갖고 있었다."
  1963년 12월 이맷드가 다섯살이 되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어느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크리비이에 가게 되었다.   그곳은  코오나엘에서24Km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보우햄지 가의 사람들을 만나지는 않고 이내 돌아왔다.  이맷드가 자주 말한 전생발언 중의 하나가  자동차 사고였다.  그는 버스 사고와 트럭 사고를 생생하게 말했다.  또 아주 어릴때부터 대형 자동차를 거의 병적이라고 할 만큼 무서워하였다.  이맷드의 아버지가 장례식 때문에 크리비이에 갔을 때,  그 장례를 치르는 셋드 보우햄지라는 사람과 같은 이름의 사람이  오래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또 이맷드는 '셋드라는 친구가 있다'고 말했고 이어 다른 두 사람의 이름을 말했는데,  그들이 친척 사이라는 것도 알게되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는 셋드가 사실은 이맷드 본인일 것이라고여기게되었다.
  이맷드가 다섯살 하고 삼개월이 되었을 때, 이안 스티븐슨 교수는 우연하고도 다행스럽게도 그를 만날 수 있어서,  이 사건의 조사를  직접진행할 수 있었다. 스티븐슨 교수는 크리비이 마을에 처음 와서는 이맷드의 전인격은 트럭 사고로 죽은 셋트 보우햄지라고 한  아버지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셋드는 1943년에 트럭 사고로 죽었다는 것과작년에 죽은 셋드와는 친구 사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전생의 친구라고 한  '유셀프 하리비'를 만나서 그가 셋드와 친구였다고 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셋드의 아내는 쟈이레가 아니라는 것과 마하모드 보우햄지는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더욱놀라운 사실은 셋드의 아들 하페츠를 만났을 때 그의 부친이 환생한 인물은 따로 있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시리아의 같은 도루스 교인에게시집 간 셋드의 여동생의 아들로서 스레이만이라는 사람이다.   셋드가트럭 사고로 죽은 것은 1943년 6월 8일이고  스레이만은그 반년 후에출생하여 지금은 스무살이 되었다고 한다.
  이 스레이만의 출현으로 인하여 이맷드의 전인격(前人格)은 공중무산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페츠는 말했다.
  "그 아이가 말한 것 중에서 부친의 생애와 꼭 부합되는 것은 트럭 사고뿐입니다.  그 아이는 사냥도 좋아하고 총도 가지고 있었으며 집앞의도로는 가파른 고갯길이라고 말했는데, 그것도 전혀 틀립니다. 또 부친은 쟈미레라는 여자와 아무 관계가 없는 것도 이미 알지 않습니까?"
  사실 그랬다.  하페츠가 지금 사는 집은 셋드가 살고 있던 집 그대로라고 하는데 그것은 이맷드가 말하던 집과는 전혀 달랐다. 그러나 셋드가 사고로 인해서 부상을 입고  그 후에  치료받은 것에 대한 이야기는이맷드가 말한 그대로였기 때문에,  이것이  하페츠로 하여금 보우햄지가(家)의 인물 중에서 이맷드의 전인격을 다시 찾아보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는 셋드의 사촌 이브라힘을 생각해내었다.
  "이브라힘이라는 사람도 트럭 사고로 죽었습니까?"
  "아니요, 그는 페병으로 죽었어요.  그렇지만 그는 다른 점에서는 모두 합당해요."  하페츠는 즉시 우리를 창가로 안내하여 건너편 언덕 위에 있는 한 채의 집을 가리켰다.
  "저기 벚꽃나무가 보이지요?"
  분명히 이맷드의 전생 발언에서는 집에 벚꽃나무가 있었고 그 근방은가파른 경사길이었다.  또 셋드와 친구인 하리비가  이브라힘과도 친구사이인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맷드의 전인격을 이브라힘이라고본다면 그의 전생 발언은 맞는 셈이다.
  이브라힘은,  1949년 9월 18일에, 그전에 일년 정도 요양원에서 치료하다가 스물다섯살에 사망했고  그것은 이맷드가 출생하기  9년쯤 전의일이다.  셋드의 아들 하페츠의 증언으로 일단 이맷드의 전인격은 이브라힘인 것으로 단정을 지었다.  그러나 큰 의문점이 남아 있다. 이멧드가 보여준 자동차 공포증이며  또 걸을 수 있는 일의 행복을 그토록 강조한 것은 무슨 까닭에서 일까?  또 하나의 새로운 의문으로, 이맷드는"트럭 사고는 운전수와의 싸움 뒤에 일어났는데  운전수는 일부러 치어죽이려 했다"고 말했지만, 하페츠는 싸움이 있었을 리가 없다고 하였는데, 당시의 재판 기록에서도  운전사의 단순과실로 판명되었다고 한다.다른 점에서는 모두 정확한 이맷드의 전생 발언이  왜 여기서는 커다란차이를 보이는 것인가?
  이브라힘의 임종에 대한 하페츠의 설명에 의하면 이브라힘은 일년 정도 결핵요양원에서 지내다가 스물다섯살에 죽었다. 마지막 반년 동안은침대에 누워 있기만 하다가 죽기 이틀 전에 자택으로 옮겨졌다고 한다.임종은 자택에서 하고 싶다는 희망에서였던 것 같다. 하여튼 젊고 원기왕성하던 그가 오랫동안 병상생활을 강요당했으니  걷는다는 것뿐만 아니라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얼마나 희망했겠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럼  자동차 사고는 어떻게 된 일인가? 트럭 사고와 버스사고에 대한 이맷드의 발언에 대해  많은 증언을 모은 결과  그의 발언에는 틀린점이 많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입증하기 곤란한 것은, 트럭 운전수와 싸웠는데 그 운전수가 죽이려고 고의적으로 충돌했다는 것이다.싸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재판기록에는 충돌사고는 단순과실이라고 되어 있었다.  스티븐슨 교수는 셋드의 환생인 스레이만 보우햄지에게서 셋드가 죽을 때의 상황을 전생기억으로 확인했다.  그는 셋드로서의 자신이 사고가 나기 전에 싸웠다는 것은  현재까지 생각해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부분은 이맷드의 전생기억이 틀린 것이다.
  셋드는 사고 후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몇 시간 만에  죽고 말았다.  셋드의 자동차 사고는 이브라힘에게 큰 충격을 준 것 같다.  자기집안에서도 버스와 트럭을 갖고 있었지만  자신의 버스 사고 후에는 운전을 두려워하여 죽을 때까지 버스를 운전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브라힘의 대형 자동차 공포증은  스티븐슨 교수가 만난 다섯살 무렵에는 거의 없어졌다. 그러나 스레이만도 모든 차에 대해서 심한 자동차 공포증을 보였는데 그것은 열한살이 될 때까지 지속되었다고 한다. 이런 여러가지 사정으로 미루어볼 때 이브라힘은  트럭과 자동차의 두가지 차 사고에서 강한 충격을 받았던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맷드의 전생기억 중  가족과 친구 관계에 대해 살펴보면,   전생에'후다'라고 하는 여동생이 있었다고 하면서,  그가 어릴때 태어난 여동생의 이름을 '후다'라고 하자고 부모를 졸랐다. 또 그는 '셋드'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의 이름을 말하며 형제라고 했다. 그들은 이브라힘의 사촌이거나 가까운 친척들이다. 케말 조우므브랫드는 쇼트 마을의 여자가거짓으로 죽었다고 말해서 이맷드가 화를 내었던 그 사람이다. 그는 이브라힘과 셋드와 공통의 친구로 도루스 교도 중에서는 유명한 철학자이며 정치가였다.
  이맷드의 전생이 셋드가 아니고  이브라힘이라고 추정한 후에 스티븐슨 교수는 그를 크리비이로 데리고 왔다.   우선 처음에 셋드의 전생집(지금은 하페츠가 사는 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아무 것도 분별하지 못했다. 사진첩을 보여주며 몇몇 사람을 지적했지만 그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하페츠조차도 알아보지 못했다.
  다음에는 셋드의 집을 나와 이브라힘의 생전 집으로 갔다.  이브라힘이 죽은 뒤에 그 집은 폐쇄되어 있었다.  이맷드의 전생 발언대로 마당에는 벚나무가 있고 집 앞은 가파른 언덕길이 뻗어 있었다. 여동생 '후다'는 알아보았지만 어머니는 알아보지 못했다. 지난 10여년 동안에 너무 많이 늙어버린 것이다. 사진을 한 장 보여주었다. 그랬더니 그 사진의 인물은 바로 자기라는 것이었다.  사실 그것은 이브라힘의 사진이었다. 그의 전인격을 최종적으로 확정짓는 결정적인 발언이었다. 벽에 걸린 초상화를 보고는 남동생인 '파우드'라고 하였다.  자기가 마지막 이틀 동안 누워 있던 침대를 알아보았다.  "아가가 죽을 때 무슨 말을 했어?" 하고 후다가 물었다. "후다, 파우드를 불러줘"라고 말했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다락은 두개의 방으로 되어 있었다. 그 사이의 칸막이를 가리키며 거기에 총을 감추어 두었다고 했다. 이브라힘은 사냥을 무척 좋아하여 법으로 금지된 라이플 총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이 벽 칸막이에 총을 숨겨둔 것을 아는 사람은 오직 어머니 뿐이었다.  이맷드는 이전부터 "총을 다락방에 숨겨두었다"고 말했다.  '갈색' 개를 '밧줄'로 매어 둔 것도 말했다. 이 지방에서는 보통 쇠사슬에 매어두지 밧줄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맷드가 집에 대해 말한 것도 거의 맞았다.
  "집에는 우물이 두 개 있다."
  "내가 죽을 무렵 정원을 고쳤다. 벚나무와 능금나무를 새로 심었다."
  "차고가 둘 있었다."
  "기름난로가 있었다."
  한편 이맷드가 어릴 때부터 항상 말해오던 쟈이레라는 미인이 있는데그의 말을 종합해 보면 대개 이런 여자이다.
  "나에게는 쟈이레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미인이다. 옷입은 맵시가 예쁘고 하이힐을 신었다.  빨간색의 옷을 잘 입었고 또 자주 사주었다."
  그러나 레바논에서 하이힐을 신는 여자는  도루스 교도 중에는 퍽 드물었다.  스티븐슨 교수는 하페츠로부터 쟈이레에 관해서 어느 정도 정보를 들었다.  그녀는 이브라힘이 결핵으로 죽기 직전까지 그의 애인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녀는 이웃 동네의 남자와 결혼했다고 한다. 이맷드가 크리비이에 왔을 때  스티븐슨 교수는 쟈이레가 어느 마을에 사는지를 조용히 물어보았다. 그러자 이맷드는 서쪽 방향을 가리켰다. 그는쟈이레가 살던 마셀 쇼프 마을 방향을 정확히 지적해보였다. 그러나 이맷드가 코오나엘에서는 그녀의 일을 가장 많이 이야기하며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정작 쇼프 마을에 좀더 가까운 크리비이에 와서는  그녀에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전생에서의 연애사건을 가족 앞에서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심리적 측면이 작용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 후 쟈이레가 결혼하여 이웃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맷드는 열살이 되었을 때 엉뚱한 발상을 갖고 있었다. 자기는 쟈이레의딸과 결혼할 것이라고 했다.  이미 남의 아내가 된 그녀와는 결혼할 수없으니 그의 딸과 결혼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전생과 현생에서 죽음의 단층(斷層)을  넘어서는  참으로 기구한 사랑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맷드는 열살이 지나서도 상당한 전생기억을 갖게 되었다.  그는 열살 때에 처음으로 마하모드 씨를 만났다. 이브라힘의 삼촌으로 그의 전생기억에서 맨 처음으로 말하던 사람이었다. 이 때 마하모드 씨는 수염이 없었지만 수염이 있는 사진을 보여 주니 금방 알아보았다.  또 마하모드 씨와 함께 크리비이 마을의 큰길을 걸어가다가  우연히 한 군인을만났다.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함께 프랑스 군대에 입대했다고 말했다.이브라힘이 프랑스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이맷드도 학교공부 중에서 특히 프랑스어를 잘하였다.
  한편 이맷드는 한때 다하르엘아하르에서 산 일이 있다고 하며  두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그것은 이브라힘과는 다른 생애이다. 그러나 그의중간적 전생이 너무 단편적이어서 증멸하거나 조사할 수가 없다.  어쨌든 그는 1973년에 열다섯살이 되어 정상적인 소년으로 성장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에서 셋드의 환생인 스레이만 보우햄지에 대해 간단히 소개했다.  셋드 보우햄지가 트럭 사고로 죽은 것은 1943년 6월 8일이고,그의 환생인 스레이만은 같은 해 12월 3일에 시리아의 라하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셋드의 여동생으로, 같은 도루스교도의 집안에 시집온 것이다.  스레이만은 말을 하게 되면서 자신은 셋드의 환생이라고하였다. 서너살 무렵에 처음 크리비이 마을에 왔다.  당시 열한살쯤 되었던 하페츠의 말에 의하면  스레이만은 혼자서  셋드의 집을 정확하게찾았다.  셋드의 사고와 죽음의 상황을 이야기했고 하페츠 등 아이들을알아보며 이름을 말했다. 또 자기보다 나이가 더 많은 아이들에게 부친다운 태도를 보이며, 자기의 어머니를 '여동생'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페츠 자신도 어린 시절 크리비이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알고  분간했던 것,  마을의 밭이나 포도밭의 경계를 정확히 지적했던 일, 셋드의소유인 권총과 웃옷 등을 구분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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