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밀린다왕의 질문 - 사후, 영혼, 선악, 열반 32상80종호 등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사람이 죽은 이후에 현재의 몸은 후생에까지 따라가지 않습니까?”
“사람이 죽은 이후에는 새 몸을 받기 때문에 현재의 몸은 따라가지 않습니다.
비유하자면 등불 가운데 심지가 서로 연이어 타는 것과 같습니다.
먼저 심지가 있는 가운데 새 심지가 연이어 탑니다.
사람의 몸도 이와 같아서 먼저 몸을 가져가지 않고 새 몸을 받습니다.
대왕께서 어렸을 적에 스승을 따라서 글을 배우고 경을 읽지 않았습니까?”
“그랬습니다. 나는 그것을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대왕께서는 스승에게서 경서를 배웠는데 스승께서는 어떻게 본 경서에 대해 알고 계셨을까요? 아니면 대왕께서 그 본 경서 모두를 탈취해낸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스승께서는 계속해서 스스로 본 경서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다.”
“사람의 몸도 이와 같아서 먼저의 몸을 놓아두고 새 몸을 받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영원히 상주하는 주체로써 영혼(智)이란 없는 것입니까?”
“영원히 상주하는 주체로써 영혼(智)은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과일이나 열매를 도둑질한다면 그 사람은 잘못이 없는 것입니까?”
“잘못이 있습니다.”
“처음에 나무 묘목을 심었을 때 아직 과일이 열리지 않았었는데 도둑질한 사람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만일 묘목을 심지 않았다면 과일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도둑질 한 사람에게서는 본받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도 이와 같아서 현재의 이 몸으로 착한 일도 하고 악한 일도 합니다.
그리고 후세에 다시 태어나 새 몸을 받습니다.”
“사람이 먼저의 몸으로 지은 착한 일이나 악한 일은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이 지은 모든 착한 일이나 악한 일은 그림자처럼 그 몸을 따라다닙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몸은 없어지지만 그가 행한 것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비유하자면 불을 켜고 밤에 책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불이 꺼져도 그 글자는 계속해서 있습니다.
불을 켜면 다시 글자를 볼 수 있습니다.
금생에 지은 행은 후생에도 남아있어 이를 받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나선대사께서는 선악의 소재를 분별하여 가리킬 수 있습니까?”
“선악의 소재를 알 수가 없습니다.”
나선이 왕에게 물었다.
“나무에 아직 과일이 열리지 않았을 때 대왕께서는 어떤 나뭇가지 사이에는 과일이 열릴 것이고, 어떤 나뭇가지 사이에는 과일이 열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분별하여 가리켜 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미리 알아서 말할 수 있습니까?”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이 득도하지 못하면 선악의 소재를 미리 알 수 없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후생에 다시 태어날 사람은 자신이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그 태어날 사람은 그것을 스스로 압니다.”
“어떻게 압니까?”
나선이 말했다.
“비유하자면 농가에서 씨 뿌려 경작할 때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그 사람은 당연히 곡식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압니까?”
“알게 됩니다.
그 밭에서 곡식이 많이 나오리라는 것을 압니다.”
“사람도 그와 같아서 후생에 태어날 사람은 그것을 미리 압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진정 열반이란 없는 것 아닙니까?”
“진정 열반은 있습니다.”
“나선대사께서는 내게 부처님께서 어디에 계신지 가르쳐주실 수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어디에 계신지 가르쳐드릴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열반하셔서 가셨기 때문에 부처님 계신 곳을 가르쳐드릴 수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사람이 큰 불을 켰다가 즉시 그 불을 끈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그 불빛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열반해 가셨습니다.
어디에 계신지 알 수 없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또 나선에게 물었다.
“사문들은 그 자신의 몸을 아깝게 여깁니까?”
“사문들은 자기 몸을 아깝게 여기지 않습니다.”
“사문들이 자기 몸을 아깝게 여기지 않는다면 어찌하여 스스로 움직이거나 쉬며, 눕기도 하고, 편안하거나 따뜻하게 하고, 음식을 먹으며 스스로를 잘 보호하려고 합니까? 왜 그럽니까?”
“대왕께서는 일찍이 전투를 해본 일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일찍이 전투를 해본 일이 있습니다.”
“전투를 할 때 일찍이 칼날이나 투구나 화살로 인해 상처를 입은 일이 있습니까?”
“나는 일찍이 칼날에 상처를 입은 일이 있습니다.”
“칼날이나 투구나 화살로 상처를 입었을 때 어떻게 합니까?”
“나는 고약과 솜으로 치료합니다.”
“상처를 아깝게 여기기 때문에 고약과 솜으로 치료하는 것입니까?”
“나는 상처를 아깝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특별히 상처를 아깝게 여기지 않는다면 왜 고약과 솜으로 치료하여 그것을 보호하는 것입니까?”
“나는 상처를 빨리 낫게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문도 그와 같습니다.
몸을 아깝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음식을 먹기는 하지만 마음으로 즐겨서 아름다워지려고 하거나 좋은 것을 취하거나 신체를 좋게 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신체를 유지해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계율을 봉행하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부처님의 경전에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몸에는 아홉 개의 구멍이 있는데 이것이 아홉 궁(弓)의 상처가 되며, 이 모든 구멍에서는 냄새가 나고 깨끗하지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32상(相) 80종호를 갖추신 몸으로 모두 금색이시고 빛나셨습니까?”
“부처님께서는 32상 80종호를 갖추신 몸으로 모두 금색이며 빛이 나셨습니다.”
“부처님의 부모님께서도 32상 80종호를 갖추신 분으로 모두 금색이며 빛나셨습니까?”
“부처님의 부모님께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32상 80종호를 갖추셨는데 부모님께서는 그렇지 않았다니 부처님께서도 그렇지 않으셨던 것 아닙니까?”
왕이 다시 물었다.
“사람의 자식은 다 부모를 닮습니다.
부처님의 부모님이 그렇지 않으셨다면 부처님도 정녕 그렇지 않으셨던 것 아닙니까?”
“부처님의 부모님께서는 32상 80종호를 갖추시지 않으셨고 금색에 빛나지 않으셨지만 부처님께서는 32상 80종호를 갖추시고 금색에 빛나셨습니다.
대왕께서는 일찍이 연꽃을 보셨습니까?”
“보았습니다.”
“이 연꽃은 땅에서 나서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그 빛깔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다시 진흙탕 빛깔과 같겠습니까?”
“땅이나 진흙탕 빛깔과는 다릅니다.”
“부처님의 부모님은 32상 80종호를 갖추지 않으셨지만 부처님께서는 이 상을 갖추셨고, 부처님께서는 세간에 태어나셔서 세간에서 자라셨지만 세간의 일을 닮지 않으셨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제7천의 범천왕과 같이 그 행하는 바가 청정하여 여자와 만나는 일이 없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여인과 떨어져 있어서 깨끗하며 허물이나 더러움이 없었습니다.”
“만일 부처님께서 제7천왕의 행하는 바와 같으시다면 부처님은 제7천왕인 범천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까?”
나선이 왕에게 물었다.
“제7천왕은 유념(有念)입니까, 무념(無念)입니까?”
“제7천왕은 유념입니다.”
“그렇기 때문이 제7천왕과 위의 여러 하늘들은 모두 부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선이 왕에게 물었다.
“코끼리의 울음소리는 어떤 소리와 비슷합니까?”
“코끼리의 울음소리는 기러기의 울음소리와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코끼리는 기러기의 제자가 되어야 할 것인데 각각 다른 종류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도 제7천왕인 범천의 제자는 아닌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경전과 계율을 배워서 알고 봉행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모든 경전과 계율을 배워서 알며 봉행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떤 스승에게서 경전과 계율을 배우셨습니까?”
“부처님에게는 스승이 없었고, 부처님께서 득도하셨을 때 여러 경전의 도를 스스로 아셨습니다.
부처님은 여러 제자들이 배워서 아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것을 여러 제자들은 늙을 때까지 봉행해야 할 것입니다.”
왕이 또 나선에게 물었다.
“사람들은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슬퍼서 울며 눈물을 흘립니다.
사람들이 부처님의 경전을 들을 때 역시 슬퍼서 울며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같은 것입니까, 다른 것입니까?”
“사람이 부모를 위해서 우는 것은 다 은혜와 사랑을 생각해서입니다.
은혜를 생각하며,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이러한 종류의 괴로움은 다 어리석은 괴로움입니다.
부처님의 경전을 듣고 우는 것은 다 자애의 마음에서 세간의 고통을 생각하고 우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울음은 그 복덕이 매우 큰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또 나선에게 물었다.
“득도하여 해탈한 사람은 어떤 점에서 다릅니까?”
“해탈하지 못한 사람은 탐욕심이 있고, 해탈한 사람은 탐욕심이 없습니다.
그저 음식을 먹고 명을 유지하기 위할 뿐입니다.”
“내가 세간의 사람들을 보니 다 몸을 상쾌하게 하려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 하며, 만족할 줄을 모릅니다.”
“사람이 해탈을 얻지 못하면 음식을 먹는 것은 왕성하게 되기 위한 것이 되거나 좋은 맛을 즐겨서 먹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해탈을 얻으면 비록 음식을 먹긴 하지만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고, 좋은 맛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명을 유지하기 위해 그러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사람이 집에서 하는 일들 속에서 영원에 관한 일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나선이 왕에게 물었다.
“사람은 괴로운 일이 있을 때 영원에 관한 일을 생각합니다.
대왕께서는 어떻게 이것을 생각하십니까? 본래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생각하십니까, 기억으로 생각하십니까? 일찍이 배운 것이 있은 후에 그것을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일찍이 배운 것이 있은 후에는 그것을 잊지 않습니다.”
“대왕께서는 이때 본래적인 마음이 없기 때문에 잊어버리는 것 아닙니까?”
“나는 이때 생각하는 것을 잊습니다.”
“마치 왕이라는 것을 빌려서 그 모습으로 하는 것과 같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 기억합니까? 만약 처음으로 했던 것이 이미 있어서 기억하는 것이고, 현재 하는 것은 그것을 기억해서 알고 있는 것입니까?”
“과거의 일들은 다 기억해서 알고 있으며, 현재의 일들도 기억해서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단지 과거의 일들만 기억하고 새로운 일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령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이 있는데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사람이 처음으로 글을 배우는데 기교는 헛된 것입니까?”
“사람이 새로 서화를 배우는데 기억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제자로 하여금 배워서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사람은 어떤 일들에 대해 기억을 하는 것입니까?”
“사람에게는 대체로 열여섯 가지 일이 있어서 기억을 하게 됩니다.
첫째는 예부터 한 일에 대해 기억을 합니다.
둘째는 새로 배우는 것에 대해 기억을 합니다.
셋째는 큰 일이 있으면 기억을 하게 됩니다.
넷째는 좋은 일을 생각해서 기억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일찍이 겪은 고통에 대해 기억을 하고, 여섯째는 스스로 사유한 것에 대해 기억하고, 일곱째는 일찍이 안 잡다한 일에 대해 기억하고, 여덟째는 사람이 가르쳐주어 기억하는 것이고, 아홉째는 특징에 대해 기억합니다.
열째는 일찍이 잊어버린 것에 대해 기억을 하며, 열한 번째는 기호(記號)에 대해 기억을 하며, 열두 번째는 산술(算術)에 대해 기억하고, 열세 번째는 빚진 것에 대해 기억하고, 열네 번째는 일심(一心)을 기억하고, 열다섯 번째는 독서에 대해 기억하고, 열여섯 번째는 일찍이 부탁받은 것이 있어 다시 보게 되어 기억합니다.
이것이 열여섯 가지 일이 있어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예부터 한 일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부처님의 제자이신 아난의 여제자인 우바이 구수단파(鳩讐單罷)는 천억 세 전의 숙명의 일들을 기억했으며, 그 밖의 다른 도인들도 과거의 일들을 능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난의 여제자 같은 이는 많습니다.
과거를 생각하면 문득 이를 기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왕이 또 물었다.
“새로 배운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사람이 일찍이 배워서 알고 요량하여도 이를 잊어버립니다.
그러다 다른 사람이 이를 요량하는 것을 보고 즉시 이를 기억합니다.”
“큰일에 대해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비유하자면 태자를 세워 왕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는 귀합니다.
이런 것이 큰일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생각해서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비유하자면 사람이 초청을 받는 일이 있습니다.
지극한 마음에서 그를 귀빈으로 대접합니다.
초청을 받은 사람이 생각하기를 ‘언젠가 누구의 초청을 받았었는데 지극한 대접을 받았다’고 기억하면 이것이 좋은 일에 대해 기억하는 것입니다.”
“겪은 고통을 기억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비유하자면 사람이 매를 맞거나 감옥에 갇힌 일이 있었으면 이것이 겪었던 고통을 기억하는 것이 됩니다.”
“스스로 생각해서 기억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비유하자면 사람이 일찍이 본 바가 있는 가실(家室)이나 종친이나 축생들은 스스로 생각해서 기억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잡다한 것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비유하자면 사람이 만물의 이름이나 안색이나 향취나 초고(酢苦) 등 여러 가지 일에 대하여 생각하면 이것이 일찍이 한 잡다한 일에 대하여 기억하는 것입니다.”
왕이 나선에게 다시 물었다.
“사람이 가르쳐주어 기억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사람이 스스로 기뻐서 주위 사람을 잊습니다.
그 가운데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잊어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이 가르쳐주어 기억하는 것입니다.”
“특징으로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사람이나 소나 말은 각각 자신의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특징으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잊었던 것을 기억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비유하자면 사람이 죽게 되면 잊히게 됩니다.
자주자주 혼자 생각해서 이를 기억하게 되는 것이 일찍이 잊었던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기호에 대해 기억을 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글을 배우는 사람은 글자의 차례를 압니다.
이것이 기호에 대해 기억하는 것입니다.”
“산술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사람이 함께 요량하여 성취하면 그 모든 책술(策術)을 알아서 분명하게 됩니다.
이것이 산술에 대해 기억하는 것입니다.”
왕이 또 나선에게 물었다.
“빚진 것에 대해 기억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사람이 빚이 있으면 마땅히 갚아야 합니다.
이것이 빚진 것이 기억이 되는 것입니다.”
“일심(一心)이 기억이 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사문은 일심으로 여러 생을 내려오면서 수천억 세의 일들을 스스로 생각합니다.
이것을 나는 일심이 기억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독서가 기억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임금이 옛날 책을 가지고 있는데 이 책이 어느 임금 어느 신하 때의 책인 것이라고 기억하여 말합니다.
이것이 독서가 기억이 되는 것입니다.”
“일찍이 부탁받은 것이 있어 다시 보게 되어 기억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사람이 부탁받은 것이 있었는데 이를 눈으로 보고 문득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부탁받은 일이 기억이 되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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