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보각장 : 네 가지 잘못된 수행법
이 때에 보각 보살이 대중 가운데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이마를 조아려 예배하고 존경의 표시로 우측으로 세 번 돌며 두 무릎을 땅에 대고 두 손을 모으면서 부처님께 사뢰었다.
“크게 자비로우신 세존이시여, 참선중 나타나는 병통을 시원하게 말씀해 주시어서, 모든 보살로 하여금 일찍이 없었던 경계를 얻게 하셨으며, 마음이 활짝 트여 완전한 평온을 갖게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말세의 중생은 부처님 열반 후 그 시절과 멀어지게 되니, 성인과 현자가 숨고 삿된 법이 더욱 치성해집니다. 그러니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어떤 선지식을 구하고 어떤 법에 의지해야 하며, 어떠한 수행을 하고 어떤 병을 제거하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발심해야 그 눈먼 중생들로 하여금 사견(邪見)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겠습니까.”
이 말을 마치고서 오체투지하며, 이와 같이 거듭 세 번 청함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간청하였다.
그 때에 세존께서 보각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도다 선남자여, 너희들이 여래의 이와 같은 수행을 자문하여 능히 말세의 중생에게 두려움 없는 도의 안목을 베푸니, 이로 인해 그 중생들로 하여금 성스러운 도를 얻게 하는구나.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희들을 위하여 설하리라.”
그러자 보각 보살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환희하며 모든 대중들과 함께 묵연히 부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선남자여, 말세의 중생이 큰 마음을 내고 선지식을 구하여 수행하고자 하면 마땅히 일체의 정지견(正知見)을 가진 사람을 구하여야 한다. 그는 상(相)에 머물지 않고 성문과 연각의 경계에 집착하지 않는다. 비록 중생의 모습을 드러내더라도 마음이 항상 청정하고, 모든 허물을 보이면서도 깨끗한 행을 찬탄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바른 모습이 아닌 곳에 들어가지 않게 한다. 이와 같은 사람을 구한다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것이다.
말세의 중생이 이와 같은 사람을 만나면 공양을 올리되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 선지식은 일상에서 행주좌와(行住坐臥)에서 언제나 항상 청정함을 드러내며 여러 허물을 보이더라도 마음에 교만이 없으니, 하물며 처자와 재산과 권속이 있다고 문제가 되겠는가. 만약 선남자가 저 좋은 도반에게 나쁜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곧 구경에 바른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어 마음의 꽃이 빛을 발하며 시방국토를 비출 것이다.
선남자여, 저 선지식이 증득한 오묘한 법은 응당 네 가지 병을 여의어야 한다.
무엇을 네 가지 병이라 하는가. 첫째는 작병(作病)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의 마음에서 “나는 여러 가지 수행으로 원각을 구하고자 한다”라고 말하면, 그 원각의 성품은 수행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작병(作病)이라고 한다.
둘째는 임병(任病)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우리들은 지금 생사를 끊지도 않고, 열반을 구하지도 않으며, 열반과 생사에 일어나거나 멸하는 생각 없이 일체의 흐름에 맡기어 모든 법성을 따라 원각을 구하고자 한다”라고 말하면, 그 원각의 성품은 일체의 흐름에 맡겨 있는 것이 아니기에 임병(任病)이라 한다.
셋째는 지병(止病)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는 지금 내 마음에서 모든 생각을 영원히 쉬어 일체의 성품이 적연(寂然) 평등한 것을 얻어 원각을 구하고자 한다”라고 한다면, 그 원각의 성품은 생각을 쉬어서 계합하는 것이 아니기에 지병(止病)이라고 한다.
넷째는 멸병(滅病)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는 지금 일체번뇌를 영원히 끊어 신심도 결국에 공(空)하여 있는 바가 없는데, 하물며 근진(根塵)의 허망한 경계가 있겠는가. 일체가 영원히 공적(空寂)한 것으로 원각을 구하고자 한다”라고 한다면, 그 원각의 성품은 공적한 상(相)이 아니기에 멸병(滅病)이라고 한다.
이 네 가지 병을 떠난다면 청정을 아는 것이니, 이와 같은 관(觀)을 정관(正觀)이라 한다. 만약 이를 떠나 다른 관(觀)을 행한다면 삿된 관(觀)이다.
선남자여, 말세의 중생이 수행하고자 하면 목숨이 다하도록 선지식을 공양하고 섬기어야 한다. 선지식이 가까이하려 하면 교만한 마음을 버려야 하며, 멀리하더라도 성을 내지 말아야 한다. 뜻대로 되는 순경계와 뜻대로 되지 않는 역경계를 마주하더라도 보는 마음을 허공같이 하여, 신심이 필경에 평등하여 모든 중생과 하나로서 다를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하니, 이와 같은 수행으로 원각에 들어가는 것이다.
선남자여, 말세의 중생이 도를 성취하지 못하는 것은 아득한 옛적부터 자기와 남으로 나누어 증오하고 사랑하는 일체종자가 있어 왔기 때문에 해탈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원한 있는 이를 볼 때 자기의 부모와 같이 여겨서 마음에 원수다 부모다 하는 것이 둘이 없으면 곧 모든 병을 제거하리니, 모든 법 가운데서 자기와 남으로 나누어 증오하고 사랑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선남자여, 말세의 중생이 원각을 구하려면 응당 발심하여 이와 같은 말을 해야 한다. “허공계가 다하도록 내가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구경의 원각에 들어가게 하되, 그 원각 중에서 깨달음이라 취할 것이 없게 하여 아상과 인상 및 일체 모든 상(相)을 제거하리라”고 이와 같이 발심해야 삿된 견해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하여 게송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보각 보살이여 알아야 한다.
수행하는 말세의 모든 중생이
스승 삼을 선지식을 구하려 하면
지견이 바른 사람 구해야 하고
2승을 멀리멀리 떠나야 하네.
법 가운데 네 가지 병 제거할지니
상대 개념 작지임멸(作止任滅) 이것이로다.
선지식이 가까워도 겸손해 하고
멀리멀리 있더라도 불만이 없이
여러 가지 경계를 지켜보면서
희유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
그 자리는 부처님이 출현하신 곳
바른 행이 아니면 행하질 않아
계의 근본 영원히 청정하여라.
이 맘으로 일체중생 제도를 하니
구경에 원각으로 들어 가도다.
그들에게 아상 인상 존재하지 않아
영원히 이 지혜에 의지한다면
순식간에 삿된 견해 초월하여서
깨달음의 열반을 증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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