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
00:00

4. 금강장 : 허망한 미혹과 원각의 불변성

이 때에 금강장 보살이 대중 가운데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이마를 조아려 예배하고 존경의 표시로 우측으로 세 번 돌며 두 무릎을 땅에 대고 두 손을 모으면서 부처님께 사뢰었다.
크게 자비로우신 세존이시여, 일체 모든 보살을 위하여 여래의 원각인 청정한 대다라니 인지법행(因地法行)과 점차방편(漸次方便)을 잘 말씀하여 주시어서 모든 중생의 몽매함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 법회에 모인 모든 중생은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으로 어둠을 밝히어 지혜의 눈이 청정해졌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중생이 본래 성불(成佛)해 있는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다시 일체의 무명(無明)이 있게 되고, 만약 모든 무명이 중생에게 본래 있는 것이라면 무슨 인연으로 여래께서는 다시 “중생이 본래 성불해 있다”라고 말씀하시며, 시방의 중생이 본래 불도를 이루고 있음에도 뒷날 무명을 일으킨다면 일체 여래께서는 어느 때 다시 일체 번뇌를 일으키는 것입니까.
오직 바라옵건대 끝없는 큰 자비를 버리지 마옵시고, 일체 보살을 위하여 여래의 비밀한 창고를 열고, 말세의 일체중생을 위하여 이와 같은 경의 가르침인 요의법문(了義法門)을 들을 수 있게 하여 영원히 의심을 끊게 하옵소서.
이 말을 마치고서 오체투지하며, 이와 같이 거듭 세 번 청함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간청하였다.
그 때에 세존께서 금강장 보살에게 말씀하시었다.
착하고 착하도다 선남자여, 너희들이 능히 모든 보살과 말세의 중생을 위하여 여래의 깊고도 깊은 비밀스런 구경의 방편을 묻는구나. 이는 모든 보살의 최고 가르침인 요의대승(了義大乘)이니, 이것으로 시방세계의 수행하는 보살과 모든 말세의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결정적인 믿음을 얻게 하여 영원히 의심을 끊게 할 수 있다.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희들을 위하여 설하리라.
그러자 금강장 보살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환희하며 모든 중생과 함께 묵연히 부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선남자여, 일체 세계의 처음과 끝, 생겨남과 소멸함, 앞과 뒤, 있음과 없음, 모임과 흩어짐, 일어남과 멈춤이 생각생각에 상속하고 순환 왕복하며, 온갖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모두 윤회이다.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고서 원각을 분별하면 그 원각의 성품은 곧 윤회의 흐름과 같으니, 이것으로 윤회를 면했다고 하면 이는 옳지 못한 것이다.
비유하여 움직이는 눈동자가 담담한 물을 흔들 수 있듯, 또한 가만히 있는 눈이 빙빙 돌리는 불로 인하여 둥근 불바퀴를 보듯, 구름이 빠르게 흐르면 하늘의 달이 움직이듯, 배가 앞으로 나아가면 강가의 언덕이 뒤로 움직이듯 하는 것도 또한 이런 이치와 같다.
선남자여, 모든 흐름이 아직 쉬지 않았다면 먼저 저 사물이 멈추는 것도 오히려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윤회하는 생사의 번뇌로운 마음이 아직 청정해지지 않았거늘 이 마음으로 부처님의 원각을 보니 어찌 그 원각이 윤회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너희들이 문득 세 가지 의혹을 내게 되는 것이다.
선남자여, 비유하면 눈병으로 허망하게 허공의 꽃을 보게 되나, 눈병을 제거하면 “눈병이 사라짐에 어느 때 다시 눈병이 일어날까”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눈병과 허공의 꽃은 상대하여 기다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멸할 때 “허공이 어느 때 다시 꽃을 피게 할까”라고 말할 수 없으니, 왜냐하면 허공에는 본래 꽃이 없어 피어나거나 사라질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사와 열반도 일어나고 멸하는 것은 같지만, 묘각의 원만한 비춤은 눈병이나 허공의 꽃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선남자여, 마땅히 허공이란 잠시 있거나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물
며 여래가 원각에 수순하여 허공의 평등한 본래 성품이 됨에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느냐.
선남자여, 비유하면 금광을 녹여 나온 금이, 녹여서 새로 있게 된 금이 아니며, 이미 금으로 만들어졌음에 다시 광석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 무궁한 세월이 지나도록 금의 성품은 파괴되지 않아, 금의 성품이 본래 성취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으니, 여래의 원각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선남자여, 일체 여래의 오묘한 원각심(圓覺心)에는 본래 보리와 열반이 없고, 부처가 되고 되지 않고가 없으며, 허망한 윤회와 윤회 아닌 것도 없다.
선남자여, 단지 모든 성문의 원만한 경계에서는 신심과 언어만이 다 끊어졌을 뿐, 이 경계로는 끝내 저 친히 증득하여 나타날 열반에는 이를 수 없다. 하물며 범부의 사유 분별하는 마음으로 어찌 여래의 원각 경계를 측량하여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는 마치 반딧불로 수미산을 태우려고 하나 끝내 태울 수 없는 것과 같으니, 윤회하는 마음으로써 윤회하는 견해를 내어 여래의 대적멸 바다에 들어가려 하면 끝내 이를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 때문에 일체보살과 말세의 중생은 먼저 무시이래로 윤회하는 근본을 끊으라고 설하는 것이다.
선남자여, 사유(思惟)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모두 육진 망상이 인연한 기운일 뿐, 진실한 마음의 바탕이 아니니, 이미 허공의 꽃과 같다. 이 사유(思惟)로써 부처님의 경계를 알려 하면 마치 허공의 꽃이 다시 그 꽃의 열매를 맺듯 망상만 거듭 더할 뿐이니, 이는 옳지 못한 것이다.
선남자여, 허망한 들뜬 마음은 교묘함이 많아 원각을 성취할 수 있는 방편이 되지 못하니, 이와 같은 분별은 바른 물음이 되지 않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하여 게송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금강장 보살이여 마땅히 알라
여래의 원각인 적멸한 성품
일찍이 처음과 끝 있지를 않네.
만약에 윤회하는 마음으로써
사유하여 생사를 되풀이하면
오로지 윤회 속에 있을 뿐이니
부처님의 바다에 갈 수가 없다
비유하면 금광석을 녹인다 해도
그 속에는 원래의 금이 있었고
본래부터 순금 성품 갖고 있어도
끝내는 녹여서야 순금이 되니
하나의 순금으로 만들어지면
다시는 금광석이 되질 않는다
중생의 생사와 부처의 열반
세상의 범부와 모든 부처님
똑같이 허공의 꽃 모습과 같고
중생의 사유도 허깨비가 되는것과 같거늘
어찌하여 허망함을 힐난하는가
만약에 이 마음을 알 수 있다면
그런 연후 원각을 구하게 되리.
 

다른 화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