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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조서를 내리다


신룡 원년(705년) 정월 보름날에 측천과 중종이 조서를 보내며 이르기를 
“짐이 혜안국사와 신수 두 대사를 청하여 궁중에서 공양하며 만사를 보살피는 겨를에 언제나 일승을 연구하였더니 
두 대사가 사양하며 말하기를 「남방의 혜능선사가 홍인대사의 가사와 법을 받아서 부처님의 심인을 전해 받았으니 그 분을 청하여 물으십시오.」하기에 
이제 내시인 설간을 보내어 조서를 전하며 청하오니 조사께서는 자비로 살피시어 속히 서울로 오시기 바랍니다.” 하였으나 
조사께서는 아프다는 글을 올려 사양하시며 산기슭 숲 속에서 여생을 마치기 원하였다.
설간이 말하기를 “경성의 선덕들이 모두 다 말하기를 「도를 알고자 하면 반드시 좌선하여 정(定)을 익혀야 한다. 선정을 하지 않고 해탈을 얻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시던데 조사께서는 어떻게 설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조사가 말씀하셨다.
“도는 마음으로 깨닫는 것인데 어찌 앉는데 있겠습니까. 경(금강경)에 이르시길 「만일 여래가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한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사도를 행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디로부터 온 바가 없으면 또한 갈 바도 없다.」하셨습니다. 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는 것이 여래의 청정한 선(禪)이고 모든 법이 비어 고요한 것이 여래의 청정 좌(坐)이며 끝내 증득할 것이 없는데 어찌 하물며 앉는데 있겠습니까?” 
설간이 말하기를 “제자가 경성에 돌아가면 주상께서 반드시 물으실 것이니 원컨대 조사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마음의 요점을 가르쳐 주시면 두 궁전과 경성에서 배우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아룀으로서, 비유하건대 한 개의 등이 백 천 개의 등을 켜서 어두운 것을 모두 밝게 하듯이 밝고 밝음이 영원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니 조사가 말씀하셨다.
“도에는 밝고 어두움이 없습니다. 밝음과 어두움은 번갈아 바뀐다는 뜻입니다. 밝고 밝아 다 함이 없는 것도 역시 다함이 있는 것이니 상대로 이름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정명경에서 말씀하시길 「법은 비교할 데가 없음이니 상대가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설간이 “밝음은 지혜에 비유하고 어두움은 번뇌에 비유한 것이니 도를 닦는 사람이 만일 지혜로써 번뇌를 비추어 깨뜨리지 아니하면 비롯함이 없는 생사를 무엇을 의지하여 벗어나겠습니까?” 하니 조사가 말씀하셨다.
“번뇌가 곧 보리입니다. 둘이 아니고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만일 지혜로써 번뇌를 비추어 깨뜨린다고 하면 이것은 이승의 견해이고 양과 사슴 등의 근기이지 높은 지혜의 대 근기는 다 이와 같지 않습니다.”
설간이 “어떤 것이 대승의 견해입니까?” 라고 여쭈니
“밝은 것과 밝지 못한 것을 범부는 둘로 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 성품이 둘이 아님을 요달합니다. 둘이 아닌 성품이 곧 실다운 성품입니다. 실다운 성품이라는 것은 어리석은 범부에게 있어도 줄어들지도 않고 현명한 성인에게 있어도 늘어나지 않으며 번뇌에 머물러도 어지럽지 않고 선정에 있어도 고요하지 않으며 끊어지지도 않고 항상 하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중간과 그 안팎에도 있지 아니하며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아 성품의 모습이 여여하여 항상 머물러 변천하지 않는 것을 도라고 이름 합니다.” 하셨다.
설간이 “조사께서 말씀하시는 불생불멸은 외도와 어떻게 다릅니까?” 라고 여쭈니 
“외도가 말하는 불생불멸은 멸을 가지고 생을 멈추고 생으로써 멸을 나타내는 것이라. 멸도 오히려 불멸과 같으며 나는 것도 나지 않는 것이라 말하지만 내가 말한 불생불멸이라는 것은 본래 스스로 생겨남이 없는 것이어서 이제 없어지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외도와는 같지 않습니다. 그대가 만일 핵심을 알고자 하면 일체의 선과 악을 전혀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연히 청정한 마음의 바탕에 들어설 것이며 맑고 항상 고요하여 그 묘한 작용이 항하의 모래 수 같을 것입니다.”라 하셨다.
설간이 가르침을 받고 크고 시원하게 깨달아서 절하고 하직하여 대궐로 돌아와 조사의 말씀을 글로 올렸다.
그해 9월 3일에 조서가 있었는데 조사께 감사하며 이르기를 
“조사께서 늙고 병들었다고 말씀하시며 짐을 위하여 도를 닦으시니 나라의 복전입니다. 조사께서는 정명(유마힐 거사)께서 병을 들어 비야리 성에서 사양하고 대승을 명백하게 들어 나타내며 모든 부처님의 마음을 전하시고 둘이 아닌 법을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설간이 조사께서 가르쳐 주신 여래의 지견을 전하여 주니 짐은 적선을 쌓은 집에 경사가 있는 생활이 되었고 숙세에 심은 선근으로 조사의 출현하심을 만나서 높은 <승>을 몰록 깨달았으니 조사의 은혜에 감사하여 머리에 받들어 마지않습니다.” 하며 
마납 가사와 수정 발우를 드리고 소주자사에게 명하여 도량을 수리하여 장엄하게 하고 조사의 옛 거처에 국은사 라는 이름을 내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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