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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법쌍망 - 비구니 수경큰스님  

1. 참선인은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 말고, 머리를 숙여 땅을 보지도 말고, 
산을 쳐다보되 산이라고 헤아리지 말고, 물을 보되 물이라고 보지도 말며, 
다니되 다닌다는 생각을 내지 말고, 앉아 있으되 앉아 있는 줄 알지 못하고, 
천사람 만사람 가운데 있어도 한 사람도 없는 것처럼 해야 하며, 
몸 안팎으로 한낱 의심 덩어리만 있을세 
그 의심 덩어리를 깨뜨리지 못하면 맹세코 쉬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워야 하나니, 
이것이 공부의 긴요함 이니라.

2. 참선하는 사람은 잠깐 사이라도 바른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만약 참구하는 한 생각을 잃는다면 반드시 이단에 떨어져 돌이킬 수 없고 돌아올 수 없다. 
비유하자면 고요히 앉아 있는 이는 맑고 맑고 고요하고 깨끗한 것을 잘못 알고서 이것으로 불법을 삼는다면, 
여기에서 바른 마음을 잃는 것이다. 
맑고 조용한 속에 빠져가지고 간혹 말하고 능히 움직이고 능히 고요할 때 이것을 불법이라고 착각하는데 
이것을 일러서 정념을 잃어버린다고 한다.

3. 식신을 잘못 알고 억지로 망념을 누르려고 하는 이것으로 불법을 삼는다고 하면서 
정념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돌로 풀 누르듯, 파초의 껍질을 벗기듯 공부 하지 말지니
 혹 생각과 몸을 관하더라도 허공과 같다고 생각을 내지 말고 장벽과 같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도 말지니 
이러하면 바른 생각을 잃었다고 할지니라.
 그런 경계를 공이나 망에 떨어진 외도라고 할지니라.
 혼이 흐트러지지 않았다고 하나 죽은 사람일지니 
이를 통틀어서 정념을 일었다고 하느니라.

4. 참선하는 사람은 도라고 하는 것을 잠깐도 여의지 말지니 이를 여의면 도가 아니다. 
참선공부하는 사람은 한 순간도 끊어짐이 없어야 하고, 끊어짐이 있으면 공부가 아니다. 
참으로 바르게 참선하는 사람은 눈썹 위에 불이 붙고 머리에 불이 떨어져 털듯이 할지니, 
어찌 다른 일로 생각을 일으킬 수가 있느뇨. 
옛어른이 말씀하시길 한사람이 만사람과 대적하듯 눈 한번 깜짝할 겨를도 없을만큼 해야하느니라.
이것이 가장 긴요한 말씀이며 몰라서는 아니되느니라.

5. 참선하는 사람의 가장 긴요한 것은 간절 切자이며 간절 절자는 가장 힘이 있으니 
간절함이 없으면 해태심이 생기고, 해태한 즉 방일을 낳아 뜻에 망상심이 모든 자리를 차지한다. 
만약 마 음쓰기를 참으로 간절하게 하면 방일하고 해태하는 마음이 어찌 일어나겠느냐. 
당연히 알라. 
간절함이 있으면 이르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지니 당연히 얻게 될 것이다. 
고인의 차원은 생사를 뛰어넘지 못할까 근심치 않았느니라.

6. 간절절자 한자는 당장 선악이나 무기나 삼성을 전부 다 뛰어넘게 되나니 
마음 씀이 심히 간절한 즉, 선도 생각지 말고 마음 쓰기를 다만 간절한 즉 악도 생각지 말고, 
무기에도 떨어지지 아니하나니, 화두가 간절하면 흔들림이 없고 화두가 간절하면 혼침도 없느니라.

7. 참선인은 간절 절자 한자가 가장 친절한 말씀이니 마음쓰기를 간절히 하면 틈도없고 끊어짐도 없을 세 
마구니도 감히 침입치 못하느니라. 
마음 씀씀이가 간절하면 계탁이 있을 수 없고, 
유무가 나지 아니한 고로 외도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8. 참선하는 사람은 한치의 실오라기 만치라도 다른 생각을 일으키지 말며 
다만 행주좌와에 오로지 화두를 놓치지 말지니 
의정을 발하고 분심을 일으켜서 낙처를 놓치지 말지니 
만약 한오라기라도 다른 생각이 있으면 옛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잡독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지혜의 목숨을 상하니 공부하는 사람은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느니라.

9. 참선하는 사람은 다른 생각을 일으키지 말지니라.
 다른 생각이란 세간 온갖일일 뿐이니, 공부하는 마음 밖에 모든 것은 없애야 하나니 
불법에 일체 좋은 것은 이름일 뿐이니 불법의 일이겠느냐, 
마음과 몸에 취하고 버리고 집착하고 놓는다는 것을 이름하여 다른 생각이라 하느니라.

10. 공부인이 공부를 지어서 가이 마음 쓸 곳이 없을 곳에 이르르면 
만길이나 되는 절벽 끝뜨머리 물이 끝나고 산이 다한 곳, 
실로 (고양이 그림을 그릴때) 무늬를 그리고 색을 칠하고 귀를 그려 완성한 것과 같고, 
늙은 쥐가 소뿔에 들어가매 스스로 꺼꾸러짐이 있는 거와 같나니라.

11. 악법은 삼독으로 뿌리를 삼나니 무명이라는 것의 모든 악은 무엇으로 그 근본을 삼는고? 
답해서 말하기를 무명의 마음이 비록 팔만사천 번뇌 정욕이 있어서 황하의 모래같은 모든 악이 한량없고 가이 없으나 
가장 긴요한 한 글자를 취한다면 삼독이 원인이라. 
이 삼독의 근본은 즉 탐진치니라. 
그 삼독심이 자연히 본래 일체 모든 악을 갖고 있나니 
그러므로 삼독의 한 뿌리에 모든 악업을 내는 것이 백천 만억배나 되어 
앞에서 한 비유에 지나지 않나니 가히 비유에 이를 수 없나니라.

12. 여섯가지 도적을 밝히나니, 삼독이 하나의 뿌리니라. 
응당히 육근에서 나타나면 이름을 육적, 여섯 도적들이라 하나니, 육적은 즉 육식, 여섯가지 마음작용이니라. 
이 육적으로 말미암아 모든 감각기관인 근에 출입해서 만가지 경계에 집착하게 되어 
모든 악업을 일으킬세 진여를 장애하고 방해하는 고로 육적이라 하나니 
일체중생이 삼독과 육적으로 말미암아 
혹 심신을 어지럽게도 하고 생사에 윤회함은 제반고통과 번뇌를 여섯가지로 취함이니 
비유하자면 강이나 냇물은 자그마한 샘물에 근원으로 하여 아래로 흘러서 
이에 능히 큰물이 되어 만리에 파도가 되는 것과 같느니라.

13. 참선하는 사람이 무엇을 좌선이라 이름하느냐. 
장애도 없고 걸림이 없어서 밖으로는 일체 선악의 경계에 다시 생각을 일으키지 말지니, 
이것의 이름이 좌이니라. 안으로는 자성을 보고 움직이지 않는 것을 선이라 한다. 

무엇을 이름하여 선정이라 하느냐. 
바깥으로는 상을 여의는 것이 선이고 안으로는 흔들리지 않는 것을 정이라 이름하니
 바깥으로 만약 모습에 집착하고 안 마음이 어지럽다면 바깥으로 상을 여의고 안으로 어지럽지 않게 할지니 
즉 본성이 스스로 맑고 고요하니라. 
다만 경계를 보고 경계를 생각할 때에 이것이 어지러우니 
모든 경계를 보고 마음이 어지럽지 않은 것을 진실로 정이라고 하나니라.

14. 밖으로 모든 모습을 여읜 것을 선이라 하고 
안으로는 마음에 산란하지 않음을 즉 정이라 하나니, 
밖이 고요하고 안이 편안함을 선정이라 한다. 

생각생각에 스스로 본래 성품이 맑고 깨끗함을 보고 스스로 닦고 스스로 실천해서 스스로 불도를 이룰 지니라.

 이 문의 좌선은 마음에 집착하지도 말며 
또한 깨끗한 것에도 집착하지 말고 흔들리지도 말지니 
만약 말하되 마음에 집착심이 생기면 마음이 원래 망심이니 
마음이라는 것은 아지랑이와 같은 것인줄 알라. 

집착하는 바가 없어야 된다. 
만약 정에 집착하면 사람의 성품은 본래 깨끗한데 망념으로 말미암아 진여를 덮어버린다. 
다만 망상만 없다면 성품은 그대로 청정함이니라. 
정에 집착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정이 망이니 일어남을 물리칠지니라 
망념은 처소가 없는 고로 망념에 집착한 자는 망이요 
깨끗함도 형상이 없으며 정이라는 상도 세우지 말지니 이것이 공부니라. 
볼려고 하는 것은 본성에 장애니 마음을 헤아리지 말지니 
만약 흔들리지 아니하는 자는 다만 모든사람을 볼 때 사람의 시비선악 허물을 보지 말지니 
즉 자성을 흔들지 말지니라. 
미혹한 사람들은 몸은 비록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나 입을 열매 
문득 타인의 시비장단 좋고 나뿜을 말하나니 도에 위배된다. 
마음에 집착하거나 정에 집착하면 문득 도에 장애가 되나니라.

15. 계를 지킨다는 것은 소승의 견해니 계를 지키지 않는 것은 중생의 견해라. 
곧바로 무심하고 분별심을 일으키지 말지니 이것을 대승의 견해니라. 
견문각지에 집착하는 것이 중생의 견해요 견문각지를 여의는 것은 소승의 견해이니 삿된 견해를 면치 못하느니라. 
즉 견문각지를 초월하고 성색에서 도리어 자기를 반조하는 것이 대승의 견해니라. 

16. 불법을 전승하는 한 수행자가 도의 안목이 밝지 못한 고로 죽어서 몸이 버섯이 되어 시주의 은혜를 갚는다. 
고로 잎으로는 안다고 하나 뜻을 모르면 털을 뒤집어 쓰고 뿔달린 짐승이 되느니라. 
헛되이 시주의 은혜를 받는 것이니라. 

어떤 사람이 배고프지 않으면서 먹고 춥지도 않은데 옷을 입는 사람이 있으니 어떠한 마음인가? 
눈앞에 즐거움만 생각해서는 않된다.
 이 몸이 후에 고통을 받을 지니라.
 지론에 이르기를 한 도인이 다섯알의 좁쌀을 먹고 소의 몸을 받아 뼈골로 일하여 갚고 죽어서는 껍질과 고기로 갚았나니 
시주의 은혜는 메아리 소리가 상응함과 같으니라. 

17. 한 물건이 이에 있으니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고 옛과 지금까지 꿰어져 있어서 
천지보다 먼저 생겨 그 시작도 없고 천지가 멸한 후에도 종말이 없는 것을 없다고 해야하나, 
있다고 해야 하나 그 까닭을 알지 못하겠다. 
상이 없으므로 으뜸으로 삼고 머무르지 않음을 근본으로 삼고 妙有로 행을 삼아야 하나니라.

18. 성문 경계차원은 숲 속에 편안하게 앉으므로 마왕에 붙들린 바가되고,
 보살은 세간에 걸림없이 노닐어도 바깥의 마구니가 넘보지 못하고 
성문들은 고요한데 집착하여 수행을 삼나니 마음이 흔들려서 움직인즉 귀신이 넘보느니라. 
보살들은 스스로 공적한 연고로 자취가 없느니라.
 자취가 없으니 밖으로 마구니가 넘보지 못하느니라.

19. 바깥으로 모습을 여의고 안으로 공을 여의거니와 
만약 온전히 모양에 집착하면 곧 삿된 견해를 키움이니라. 
만약 모양에 집착하면 무명을 키움이니라. 
공에 집착하는 사람은 경을 비방함이니라. 
내 소견은 언제나 내 마음을 볼때 자신의 허물을 보고 다른 사람의 시비 옭고 그름을 보지 말지니라. 
이것을 일러 ‘봐도 보지 아니함이다’라 하느니라.

20. 내말 자세히 들어라. 
제법이 꿈과 같고 헛개비 같아 허망한 것이니 망념이 본래 고요하고 모든 경계가 본래 공했느니라. 
모든법이 공한 자리에 신령스럽게 알아 어둡지 않으니 즉 비고 고요한 마음이 본래의 면목인줄 알아라. 
또한 삼세 모든 부처님들과 역대 조사와 천하 선지식님들이 말없이 대대로 전하여 온 법인 이니라.

21. 마음을 길들이고 도를 배우는 사람이 숫자로는 티끌같이 많지마는 
이 속에서 조계, 육조스님의 심법을 알아 얻은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 
만약 성자다 범부에 걸림이 없어야 할진대 문득 기와를 갈아 진리를 얻겠다는 것이 되거니와 
한 생각이라도 일어나면 이미 다생에 방일한 원인에 근거하느니라. 
조사의 가르침을 만나지 못하고 기틀에 다달아서 입을 열어 헤아려 이야기 하지 못하느니라.

22. 육조스님이 말씀하시길 부처님께서 설하신 일체법은 중생의 일체마음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니
 나에게 일체심이 없으니 어찌 일체법이 필요하겠느뇨. 
지금 사람들은 단지 말만듣고 배우는 것을 가벼이 여겨서
 도무지 스스로 살피지 아니하나니 참으로 무심한 것인가?

23. 무심하다는 것은 팔풍의 온갖 경계가 능히 흔들지 못할지니 
설사 습기가 다하지 못하여 성내는 생각이 때로 문득 일어날 때에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원수와 같이 비방하지 말지니, 
탐하는 생각이 문득 일어날 때 마음을 일으키지 말며, 
다른 사람의 영화와 성취를 볼 때에 질투심과 이기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 
일체시중에 자기의 배고프고 춥고 덥다 좋다 나쁘다 하는 분별심을 내지말지니 
혹 사람들을 가벼이 여기거나 없수이 여기거나 하는 그런 마음을 두려워하거니와 
또한 가지가지에 집착이 없어야 할세 ‘일체심이 없다’라는 이름을 붙일 수가 있으니 
이것을 도 닦는다고 이름한다. 

만약 순경계 역경계를 상대하여 탐심 진심 애착심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도를 얻었다고 이름할 수 있느니라. 
각각 반조해서 몸에든 마음에든 병이 있으면 잘 다스리고 
만약 병이 없으면 약이 필요없듯이 곧 탐진등이 없는 것이 공이다. 
문득 이름을 ‘일체심이 없다’라고 할 수 있으니 
일체심이 없는 사람에게 무슨 상대해 다스림이 필요하겠느냐.

24. 답하노니 만약 그렇다고 하면 네가 중병에 걸리면 확연히 고통스럽고 아플것이니 
병고가 곧 공하면 문득 병이 없다고 할지니 병이 없으면 무슨 약이 필요하겠느냐. 
모름지기 알아라. 탐진이 항상 공했으되 능히 업을 발하고 능히 업을 이루나니 
업이 또한 공했으되 능히 고를 만들고 고통 역시 공했으되 다만 참기가 어려움일세 
고로 자체가 없지만 이를 받는다고 한다.

25. 망녕된 마음을 갖고 경계를 상대하는 것은 아는 것으로 아는지라. 
순경계 역경계에 탐진치의 마음을 일으킬새 이미 저 경계에 탐진치 삼독을 일으키는 이것이 망심을 봄이로다. 

조사스님이 말씀하시길 역경계와 순경계가 서로 다툴 때 
이것이 마음의 병이라 하시니 고로 알거라. 
옳다 옳지 못하다 이것 모두 망심이니라. 

만약 진실된 마음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도 저절로 아는 것이다’ 평등하고 원만하게 비치는 고로 
풀이나 나무와 다르느니라.
 좋다 나쁘다 생각내지 않는 고로 망심과 다르니 
즉 경계 마주쳐서 텅비고 밝아서 좋다 나쁘다고 내지 않으면서 
또 ‘아는 것이 없으면서 아는 것이 이것을 진심’이라 한다.

26. 지극한 이치는 말이 끊어짐이고 교는 말이니 진실로 도는 아니니라. 
도는 본래 말이 없을세 말이 망이다. 
법신은 본래 청정하여 모든 경계를 받아 들임이 없지만 단지 모르기 때문에 알지 못하고 깨닫지를 못하나니 
그래서 망녕되이 업보를 받을 세 좋아하는 것에 집착하여 자재함을 얻지 못하느니라. 
비유하자면 거울을 닦으면 빛이 나고 밝게 환히 비치는 것과 같이 마음도 법도 쌍으로 잃으매 
성품이 곧 진실하다고 하리니 이에 망에서 벗어나 진을 이루게 되느니라.

27. 마음은 재주있는 환쟁이와 같다. 
그것의 업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다. 
천당을 지어놓고 그 위에서 즐기기도 하고 지옥을 만들어 놓고 그 속에 들어가서 울기도 한다. 
이 인간 세상도 제가 지어놓고는 제가 못벗어나서 애를 쓰고 있다. 
제 마음이 한 세계를 짓고 있구나 하고 놀랐다. 
꿈이야 꿈이지마는 괴롭고도 괴로움이요, 
나고 죽기 그만하고 생사자유 성불하세. 
인생 백년이 부싯불 같아서 보이는 듯 스러지니 불법만나기 어려워라. 
불자야 바쁘시고 시각이 바쁘시고 이러쿵 저러쿵 남의 시비하고 싸울사이 있던가.

28. 범부의 마음은 장마철 하늘과 같다. 
욕심을 떠난 마음은 마니보주와 같다. 
흐린 물이라도 이 이 구슬을 담구면 곧 맑아 지듯이 오탁악세도 이러한 마음으로 맑아진다. 
내 마음 하나가 맑아서 보리를 얻으면 한국 중생이 보살이 되고 한국 천지가 극락정토가 되리라. 
누가 이런 뜻을 품었느뇨. 
마음 굳게 잡아 잡념 망상 다 떼어서 가을 하늘 맑은 듯, 
이 몸이 살아있는 동안에 권세와 재물이 힘을 쓰지마는 혼이 한번 이 몸을 떠나면 남는 것은 업보뿐이다. 
무섭고 지긋지긋한 모든 고초를 당할 적에 인정을 쓸것이 무엇인고. 
그것은 불법을 믿어서 적선하고 송경하고 염불 참선 공덕 뿐이라.

29. 진리를 찾는 생활 진리를 지키는 생활 생활이 진리가 되는 생활, 
이것이야 말로 일생의 최고 이상이다. 
그의 눈에는 일신의 부귀영화도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생사 고락도 없다. 
그의 눈에는 오직 진리가 있고 중생이 있을 뿐이다. 
자기를 완전히 잊어버린 곳에 순교자의 정신이 있는것이다.

30. 인생은 꿈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낳는 듯 늙고 병들고 죽고 못 믿을 앞 일을 생각하고는 근심하고 
뜻같이 아니한 뒷일을 생각하고는 슬퍼하고 
세상이 내 마음대로 않된다 하여 괴로워하고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욕심과 사랑과 미움으로 부대끼고 인생은 괴로움이요 오는 괴로움의 근본이요. 
그러한 고로 석가세존께서는 인생은 괴로움이라 하시와 
고집멸도 사성제의 이치를 설하시고, 
인생은 아무쪼록 애욕의 번뇌를 끊고 중생을 불쌍히 여기어 
생사의 고해바다 불타는 화택의 사바세계에서 건지려는 대원을 세워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여섯가지 바라밀을 닦으라고 하셨다.

31. 지옥도에 빠진 혼은 슬프고 원통하고 미워하고 노여워하고 
한 시각도 마음이 편하지 못하고 지글지글 끓는 것이다. 
유황불에 타고 기름가마에 끓는 것이다. 
그러나 유황불 기름가마는 제가 제업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생전에 탐하던 다섯가지 욕심이 불이되고 기름되어서 여러 겁을 두고 본인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그림자와 같이 따라서 아무리 뗄려도 뗄 수 없고 도망가려도 도망칠수없는 업보다.
 머리칼마다 털구멍마다 퍼런 불길이 숨이 막히고 죽게 아프로 괴로우니 마음대로 죽어지지도 아니하는 것이다. 
치를 것은 다 치른 뒤에야 이곳을 벗어나거니와 
겨우 지옥을 벗어나 박복한 중생은 그날부터 다시 지옥업을 닦는 것이다.

32. 아귀도에 떨어진 중생이 있다하면 그는 굶주리고 목마르고 하도 깊은 괴로움 속에 있는것이다. 
배는 바다와 같이 큰데 목구멍은 바늘과 같이 가늘어서 아무리 마셔도 목마른 것이 좋아지지 아니하고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한량없는 탐욕의 업이 이러한 몸을 나툰것이다.

33. 다생부모 처자는 영겁의 고행에서 헤어나지를 못한다. 
삼악도에서 우는 모든 중생에게는 꼭 같은 부모요 권속인 것이다. 
그 중에 하나라도 못 건져진 자가 있는 동안 결코 성불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일체 중생을 위하야 여러 억겁천생을 나고 죽기를 아끼지 아니하는 것이 또한 보살행이다.

34. 금생에 빈궁한 사람은 모두 전생에 호화로운 탐욕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다. 
금생에 그런 생활을 많이 하면 내생에 병약한 몸을 타고난다. 
내가 음란한 값은 자신에게도 오거니와 내자녀에게 영원히 따르는 것이 내 업보다. 
피하랴도 피할 수 없는 내 업보다 업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실 모양으로 내 발 뒤꿈치에 매여서 어디까지든지 나를 따른다. 
무덤까지도 지옥까지도 극락까지도 따른다. 
그 기록은 세밀하여서 털 한오라기 만치의 착오가 없고 또 그계산이 엄청나서 탕감이 없다.

35. 공공연하게 말하기를 인간의 업보가 어데있느냐 전생 내생이 어데있느냐, 다 허망한 소리다. 
그저 살아 생전에 제 멋대로 살면 그만이다. 
이렇게 뽐내면서 그들은 더욱 더욱 지옥업을 짓는다. 
수명은 점점 짧아가고 병은 많아지고 정신은 둔탁하여지고 얼굴은 점점 박복한 궁상흉상을 띄게되어서
이러한 사람이 많아지는 대로 나라는 절로 쇠약하여 지고 세상은 살아가기가 어렵게 된다. 
그러한 중생은 가는데 마다 다 지옥을 조성하는 것이다. 
제 집을 지옥을 만들고 제 마을 제나라를 지옥을 만들고 이리해서 이 세상을 만든다. 
그리하되 그들의 정신에 욕심으로 둔탁해서 이 모든 지옥고에 든다. 제손으로 지은 것인줄 깨닫지 못한다. 
중생 중생아! 인과의 법에 깰지어다. 
내 고락은 내가 지은 것이다. 
오늘의 고락은 어제까지 내가 지은 것이요. 내일의 고략은 오늘까지 내가 지은것이다. 
네 마지막은 악업을 쌓아놓을진대 수미산이 오히려 낮을 것이다.

36. 만일 제불보살의 대자비력과 대위신력이 아니었더라면 
벌써 인형을 쓴 중생이 자취를 끊었을 것이다.

37. 중생중생아 그래도 깰줄은 모르느냐. 
언제까지 제 한몸을 위하여 욕심에 매여 다리랴느뇨.

38. 오직 오욕을 떠난 부처의 세계만이 영원불변하는 청정한 세계이다. 
공공연히 말하길 세상에 박복한이 누구누구 이름인가 불법을 못 듣는 이 그를 두고 이름이라. 
다겁생래 악업장이 귀와 눈을 가리우니 불법속에 살면서도 못 보고 못 듣는다. 
업장을 떼는 법이 예불참회 고작이라. 
부처의 법을 살피고 착한 법을 살피는 것이 업장을 녹이드라. 
철통같은 묶은 업장 일조에 터지는 날 광명일월 넓은 법계 자유자재 내리고나.

39. 한 중생이 초발심에 법계가 진동하고 은밀한 작은 행도 하늘에 적히도다. 
무애 삼매 닦는 법을 선정이라 하거니와 먹고 입고 쓰는 것이 모두 중생 수고도다. 
입에 드는 밥 한알을 절하고 먹으라. 한숨 두숨 쉬는 숨이 시주의 은혜를 갚는 맹세로다.

40. 성인은 누구이며 범부는 누구냐. 
유정무정이 계유불성이라 부처 아님 어데있나.
 미혹함이 범부요 깨달으면 부처로다 
천당지옥이 내마음이 지은 데다.
 삼독오욕 벗어나서 무상보리 닦을진데 생사 윤회 끊어지니 악도를 두려워할소냐. 
세존께서는 중생을 위하시와 무량겁의 노고를 하셨건마는 한 때 밖에 밥을 안 자셨거늘 
나는 무엇을 햇길래로 아침낮에 밥을 배불리 먹나 이 쌀한알이 밥이 되어 내입에 들어오기까지 
중생의 수고는 얼마나 하며 하늘과 땅의 수고는 얼마나 할까. 
일 아니하고 밥을 먹는 것은 중생의 피를 빨아먹는 것과 같다. 도적이다. 
도적이다. 밀 한 이삭 주인 모르게 먹은 죄로 소가 되어 그 빚을 갚았다 하거든
 이 밥 한그릇 값 없이 먹는 죄는 얼마나 할까. 어 무서워라 무서워라. 
눈앞에 무서운 것이 보이는 듯이 몸이 떨린다. 
탐진치를 떼고 더러운 세계의 죄업을 소멸하고 맑은 물과 같이 맑고 맑아 거울과 같이 깨끗한 몸이 되기를 기원하였다. 

41. 공공연히 말하길 무념무상이 되어보려고 애를 썼으나 마음바다의 물결은 아무리 하여도 자지 아니하였다. 
42. 문수사리 게송을 생각하였다. 있다고 보는 이 몸이 기실은 헛개비요. 
그 본성은 새로 생기는 것도 아니요,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 함을 
이치로는 알면서도 참으로 있는 것으로 보아서 거기 집착하는 범부심을 못떠난 듯 한 것이 괴롭게 하였다.

43. 번뇌를 말씀하면 사람의 몸을 쓰고 있는 동안 그 몸에 붙은 번뇌 없지 아니할 것이요, 
생로병사를 멸할 수 없으니 이 육신을 벗기 까지는 번뇌가 있소.
 마음은 결코 가을새벽 하늘과 같이 새 맑은 하늘 이 아니요.
 봄꽃 필때 하늘처럼 아지랑이낀 하늘임을 깨달았다. 
그 아지랑이는 오욕의 번뇌였다. 
그러므로 중생을 얽매는 것이 오직 아상이란 말이요. 
내다 내것이다 하는 생각이 우리를 얽어 매어서 
날마다 시각마다 생로병사의 모든 괴로움을 되풀이 한단 말씀이요.

44. 한번 우리가 아상을 떠나서 중생을 동포를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킬 때에 
우리 벌써 삼계에 거칠것이 없는 보살이 되는 것이요, 
이런 경계를 일러서 환희지라고 여래의 종자라 하는 것이요.
 평생에 어렵다는 말을 한 일이 없습니다마는 이것만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어렵습니다. 죽기보다 어렵습니다. 
그야 죽기보다 어렵지 이 몸둥이 하나 죽기야 쉽지만은 
태란습화 사생과 삼악도에 영겁의 윤회를 탈출하고 떠나기가 어렵습니다. 
불보살의 가피 없이는 어려운 일이지요.

45. 중생의 마음 이같이 종종 망상을 일으켜나니 
이같이 모든 부처와 사찰도 모두 헛개비 같으니라. 
자기가 보는 세계가 자기 행업으로 나타남이란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러나 나의 뿌리가 깊고 깊어 끊기 어렵다는 결국은 내 심행에서 오는 망상이다. 
모든 망상 끊은 비고 비고 빈 사람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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