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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화두참구와 삼매


1) 화두단계 

  1. 송화두 : 소리를 쫓아서 하는 것.
  2.  염화두 : 마음속에 자리가 잡혀 일상생활에서 문득 문득 화두가 올라오는 경지
  3.  做作話頭 : 화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일평생 화두밖에 없다는 목적의식이 확실히 서있지만 화두를 잘 놓치기도 한다.
  4.  眞疑頓發 : 참된의심이 몰록 일어나는 경계. 생활속에서 화두가 성성적적하고, 말하면서도 화두가 남아있으며, 잠에서 깨어나자 마자 첫생각으로 화두가 들어온다.
  5.  좌선일여 : 좌선하면 망상이 붙지 못하고, 일념으로 화두가 성성적적하고, 움직일때는 번뇌가 들어오지만 좌선할때만은 또렷하게 화념으로 들리는 경지
  6.  동정일여 : 앉으나 서나 잠드는 순간 빼고는 화두가 너무 잘 되어 뭔가 떼려고 하도 떨어지지 않는 경계

  7. 몽중일여 : 꿈속에서도 화두자리는 잠드는 바 없이 일여하게 들어가는 경지

  8. 寤寐一如, 숙면일여 : 깊이 잠든 상태에서도 화두가 끊이지 않는 경지

  9.  생사일여 : 죽고 사는 것에 자재한 경지.

  10.  입태일여 : 태중에 들어갈때도 화두가 들리는 경지

  11.  주태일여 : 어머니 뱃속에서 10개월동안에도 화두가 이어지는 경지

  12.  출태일여 : 울면서 세상에 나올때에도 화두가 이어지는 경지

  13.  영겁일여 : 화두타파, 확철대오, 견성성불의 단계

 

(2) 정중동

 초심자는 고요하고 정갈한 곳에서 모든 잡념을 버리고 간절하게 의심해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해서 화두를 놓으려 해도 놓을 수 없고 버리려 해도 버릴수 없게 되었을 때 고요한 곳에서 마음이 한결같은 경지에 이를수 있게 되는데, 이를 靜中工夫라한다. 이렇게 되면 시끄러운 곳으로 나아가 공부 힘을 더욱 키워야 한다. 이것을 動中工夫라 한다. 화두가 고요한 곳에서는 빈틈없이 잘 들리다가 시끄러운 곳에서 끊어지거나 희미하게 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시끄러운 곳에 가서 바짝 애를 써서 지극하게 밀고 가면 고요한 곳이나 시끄러운 곳 관계없이 動靜에 끊어지지 않고 한결같은 공부경지를 이룬다. 이를 動靜一如라 한다. 정중공부를 하다가 힘이 생기면 바로 동중공부로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 움직일때나 고요할 때나 화두가 끊어지지 않을때를 비로소 동중일여라 한다. 또한 발심이 항상 유지되면 동과 정이 서로 나누어 지지 않는다. 
 만약 시끄러운 곳에서 힘을 얻지 못했다면, 이는 고요한 곳에서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말과 같다고 대혜선사는 전한다. 또한 화두가 좀 익숙해지면 시끄러울때가 오히려 공부에 힘을 얻을수 있는 계기가 된다. 진실로 일상생활 속에서 공부가 되고 이때 힘을 얻어야 참다운 수행자라 할수 있다. 나아가 고요할때나 시끄러울때나 어디에도 치우침 없이 공부가 순일하게 이어질때 진정한 공부인이다.


(3) 생활선

 가고 머물고 앉고 눕고 행주좌와 일상에서 화두를 한결같이 들어야 한다. 萬行 또한 道 와 떨어져 있는 생활이 아니기에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화두가 한결같이 들려야 한다. 화두야 말로 생사의심을 타파하는 칼이며, 이 칼자루는 당신의 손안에 있다. 다른사람으로 하여금 손쓰게 할래야 할수도 없으니, 스스로 손을 써야만 비로소 타파할 수 있다. 만약 목숨을 내걸고 참구한다면 비로소 스스로 타파할 것이요, 목숨을 내걸지 못한다면 다시 다만 의심을 깨뜨리지 못한 곳에서 오직 한결같이 참구해 나가도록 해야한다. 그러다 홀연히 스스로 기꺼이 목숨 버리기를 한번하게 되면 바로 깨닫게 된다고 대혜선사가 강조했다. 
 화두는 일상삶속에서 지속적으로 들수 있으며, 간단없이 들어야 화두와 혼연일체가 된다. 때문에 화두와 생활이 일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조용할 때나 시끄러울 때나 언제나 화두를 들어야 하고, 이렇게 들다보면 설은것은 익어지고 익은것은 설어진다. 화두를 처음 들때는 설지만 그 화두 드는게 익어가면 업력이 설어진다는 것이다. 세속법은 생소하지만, 불법에는 익숙해지는 것이며 끝내 이 둘의 경계마저 없어지는 중도경지에 들게된다. 이같은 선정의 힘을 마음 중심으로 잡아 경계에 흔들리지 않으면 부딪치는 일마다 훌륭하게 해낼 수 있다. 
 생활하다 번거로운 일로 사량분별할 때도 그것을 애써 물리치려 하지말고 사량분별이 일어나는 곳에서 가볍게 화두를 드십시오. 그러면 무한한 힘을 더는 동시에 무한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서장 대혜선사 - 
 이렇게 화두 들다가 한고비 넘게되면 마음이 청량하기 그지 없게 된다. 몽산선사는 “발 밑이 땅에 닿지 않은 듯, 공중에 뜬 듯, 홀연이 눈앞의 검은 구름이 활짝 열리는 듯, 금방 목욕탕에서 나온듯 몸과 마음이 맑고 쾌활해진다”고 했다. 또한 “의심 덩어리가 더욱 뚜렷하여 힘들이지 않아도 끊임없이 화두가 현전한다”고 자신의 경험을 말했다. 이렇게 되면 “어떤 바깥 경계에도 흔들리지 않고 청정하기가 은쟁반에 하얀 눈을 담은 듯하고 청명한 가을 공기와 같은 경지가 전개된다.”고 했다.
 특히 납자에게 있어 만행은 자신을 점검하는 자기시험 기간이므로, 고인들은 해제가 곧 결제라 말했듯, 만행중이라도 절대 화두공부를 놓아서는 안된다. 오조법연선사는 “무릇 행각은 도를 품고 해야지 주는 밥이나 축내면서 한가하게 세월 보내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생사라는 두글자를 이마에 못질해 놓고 온 종일 체면치레 제쳐놓고 이것을 찾아 분명히 해야한다. 만약 패거리를 따르고 때를 쫓아서 헛되이 세월을 보낸다면 죽을 때에 염라대왕이 밥값을 청구할 것이다. 그때 내가 그대를 위해서 말하여 주지 않았다고 하지 말라.”고 했다.


(4) 역경계와 순경계

 공부과정에서 누구나 역경계와 순경계를 끊임없이 경험하게 되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냐가 중요하다. 역경계란 자신뜻을 거스르는 상황이 전개되어 참기 어려운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그래서 힘들고 고통스럽다. 순경계는 자신의 뜻에 맞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으로 자신의 뜻에 맞는지라 즐거움과 편안함을 주는 경계다.
 역순경계에 부딪치는 순간 수행자들은 보통 눈앞의 경계에 마음을 빼앗겨 하던 공부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역경계에 부딪치면 마음을 굳게 먹고 돌파하면 되지만 순경계에서는 대체로 거기에 마음이 매몰되고 만다. 바라던 일이 성취하면 그 기쁨에 도취되어 자신을 잃어버리고 상황에 휩쓸리기 때문이다.
역경계든 순경계든 거기에 집착하지 말고, 그때그때 인연에 따라 대응하면 자연히 이 도리에 들어 맞을 것이다. 역경계는 참을 忍하나로 자중하면 지나가 버리지만, 순경계는 도피할 곳이 없다. 마치 자석과 쇠붙이가 서로 만나면 저도 모르게 합쳐지듯, 지혜가 없이는 부지불식간에 끌려가기 쉽다. 이때에는 다만 망상으로 전도된 마음과 사량분별심과 살기좋아하고 죽기싫어하는 마음과 분별로 이해하는 마음과 고요함을 기뻐하고 시끄러움을 꺼려하는 마음을 한꺼번에 눌러버리고, 이렇게 눌러버린 경계에서 화두를 살펴라 -대혜선사-
 역경계든 순경계든 그러한 경계가 닥쳐올때는 모든 세간일이 연기된 현상으로 실체가 없는 줄을 알아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그러한 경계들이 저절로 가벼워진다. 역순경계는 모두 이미 준비되어 있는 마음속의 경계로 역 순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밖의 경계에 투영된 자기 업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역순경계를 더없이 훌륭한 화두공부의 장으로 활용하여, 그순간 기분에 좌우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면밀하고 힘있게 파고들어야 한다. 
 그러니 하루가 지독히 힘들고 어렵고 캄캄하더라도 거기에 휩쓸리지 말고 오직 화두 하나만 부여잡고 나가면되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더라도 거기에 너무 들떠있지 말아야한다. 거기에 집착하는 순간 좋지 않은 경계가 달려온다. 역경계와 순경계를 만나면 “경계가 찾아왔구나”하고 바로 알아차리고, 화두를 들고 마주친 경계를 의연하게 대처해나가면 역경계와 순경계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5) 성성적적

 화두참구의 가장 바람직한 상태는 惺惺寂寂이다.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양변을 여읜 상태로 전개되는 것이 적적(寂寂)이며, 이는 깨끗한 물결이 일어나지 않는 맑은 호수와 같다. 이런 상태에서 무기에 떨어지지 않고 초롱초롱한 정신으로 화두에 대한 의정이 지속되는 것을 성성(惺惺)이라 하며, 이는 깨끗한 거울에 밝은 빛이 역력히 비치는 것과 같다. 이중에서도 성성(惺惺)이 더욱 중요시된다. 만약 화두가 성성하게 깨어있지 않으면 혼침이나 무기, 마구니의 경계에 빠지기 때문이다. 

 공부를 해나감에 처음부터 끝까지 고요할 정(靜)과 맑을 정(淨) 두글자를 떠나지 말아야 한다. 고요함이 지속되면 곧 깨닫게 되고, 맑음이 지속되면 광명이 통달하게 된다. 기상이 엄숙하고 풍채가 맑아 움직임과 고요함의 두경계가 마치 가을 하늘과 같을 것이다. 이것이 첫 고비이니 이때를 잡아타고 더욱 나아가야 한다. 마치 가을들판의 맑은 물같이, 옛사당 안의 향로같이 고요하고 초롱초롱하여 마음길이 끊어졌을때, 몸이 인간세상에 있는 것도 모르게 되고 다만 화두만 면면히 끊어지지 않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곳에 이르면 번뇌는 바로 쉬고 광명이 터질것이니 이것이 두 번째 고비이다. 여기서 만약 깨달았다는 마음을 내면 순일한 공부의 묘가 끊어져서 크게 해가된다. - 몽산화상법어 -

 그러므로 영가선사는 惺惺寂寂은 옳지만 惺惺妄想은 그르고, 寂寂惺惺은 옳지만 寂寂無記는 그르다고 하였다. 이미 고요한 가운데에 멍하니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또렷한 가운데에 어지러운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데 어찌 망심이 생기겠는가. -영가 현각-


(6) 득력처(得力處)

 화두에 대한 의심이 간절하지 못한 까닭에 화두를 든지 얼마지나지 않아 망상이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좌선하는데에 마음에 모든 생각과 인연을 다 놓아버리고 만가지 일을 쉬어야 한다고 했다. 세간 잡사나 욕망이나 원한 구하는 생각이나 잡념으로는 마음을 밝힐수 없다. 그래도 억지로 화두를 들어보려 하지만 또다시 망상더미에 갇혀있는 자신을 볼수 있다. 이에 대해선사는 “오래지속 하다보면 힘이 덜드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그곳에서 바로 힘을 얻는다. 따로 고요함속에서 공부를 짓지 않아도 이것이 공부이다”고 했다. 망상만 일어날지라도 계속 화두를 놓지 않고 꾸준히 들다보면 의심이 순숙해져 자연스럽게 화두가 들리는 경지가 온다. 거기서 화두를 밀고 나가는 힘이 생기는데, 화두를 드는 힘이 들지않을 때 그 자리가 힘을 얻게되는 자리라 해서 득력처(得力處)라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화두가 익어 힘이 전혀 안드는 상태로 이런 상태에 이르면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꿈쩍하지 않는다. 
 망상이 떠오르는 것은 마음을 고요하게 가질때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평상시에는 마음의 그런 작용을 못느낄 따름이며, 고요해지는 순간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치 문틈사이로 밝은 햇빛이 비치면 수없이 많은 먼지들이 선명하게 보이는 이치와 같다. 이때에 망상과 씨름하지 말고 화두참구에만 온힘을 쓰다보면 마침내 화두가 순일해지고 의정이 생겨나 저절로 화두가 들리게 된다. 
 그러나 게으르게 되면 화두에 대한 의정이 사라지게 되므로 꾸준히 방심하지 않고 정진해 나가면 머지않아 화두하나만이 오롯이 남아있는 타성일편(打成一片)을 이룰것이다.


(7) 몰자미(沒滋味)

 화두참구 하다보면 마음이 답답한 순간이 오기도 하는데, 이것은 공부가 농익지 않은 상태로 화두가 잘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때 발심을 다시 일으켜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를 들어야 한다. 또 화두에 의정이 형성되어 순일하게 이어지다가도 아무맛도 재미도 못 느끼는 경지가 오기도 한다. 이를 몰자미(沒滋味) 또는 무자미(無滋味)라고 한다. 부여잡을 데도없고 기댈데도 없어서 도무지 재미없게 되는 이럴때를 좋은 때라고 했다.
 화두가 본래 언어와 관념의 맛이 끊어져 아무 맛도 없는 쇠로 만든 떡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치의 길이 끊어져 온갖 갈등과 헤아리는 생각과 분별의식이 떨어져나가 종적과 자취가 끊어진 것이다. 이것이 어느정도 진전되면 말길도 끊기고 생각의 길도 막혀 아무런 재미도 없다. 그러나 이것은 화두가 익어 자신과 화두가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이며, 이런 경지에 도달하면 자신마저도 사라진다.

■ 만약 곧바로 쉬고자한다면, 예전에 재미붙였던것을 되돌아보지 말고 잡을 수도 없고 재미도 없는 곳에다 뜻을 두고 힘써 그것을 살펴보라. 만약 그것이 진실로 뜻을 둘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것이라면 그것을 알 수 있는 더듬이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치나 뜻의 길을 오가던 의식의 흐름이 사라져 나무나 흙, 돌처럼 되는데 수행자는 이때 공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곳이 바로 자신의 목숨을 내던질 곳이니 결코 소홀히 하지 말라.-대혜선사-

■ 혹 화두를 들어도 공부가 차고 담담해서 도무지 재미가 없어 부리로 쫄만한 곳이 없고 힘을 붙일곳이 없으며, 조금도 분명한 곳이 없고 그렇다고 어찌할 수가 없더라도 절대로 여기서 물러서지 마라. 이때야말로 공부를 하는 이가 공부의 힘을 붙일 곳이며, 공부의 힘을 덜곳이며, 송부의 힘을 얻을 곳이며, 몸뚱이와 목숨을 버릴곳이다. -나옹화상-

■ 공부가 깊었다 얕았다 하면서 아무런 맛이 없는때가 바로 정진하기 좋을 때이니 한발한발 거쳐야 할 곳들로 나아가라. 결코 놓아버리면 안될 것이니 성성하면 곧 고요함에 들어가고 고요한 뒤에야 정(定)에 들어간다. 아무재미가 없는 때가 이 공부의 재미인 것이니 문득 번뇌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 - 몽산화상법어-

■ 이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소 등에 앉은 것과 같으니 이러니 저러니 묻지말고 어떻게 해도 주둥이를 꽂을 길이 없는 곳에서 목숨을 한번 버린다는 생각으로 온몸으로 뚫고 들어가야 한다. <평창>위에서 말한 뜻을 거듭 결론지은 것이다. 활구를 궁구하는 자로하여금 물러서지 말도록 한 것이다. 옛 사람은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 관문을 뚫어야 하고 묘한 깨달음은 마음으로 분별할 길이 끊어진 곳을 궁구해야 한다’고 하였다. -선가귀감-


(8) 화두삼매

 간화선에서 강조하는 화두삼매는 화두와 내가 한 덩어리가 되어 놓을래야 놓을수 없는 은산철벽의 경지에 들어서는 것을 말하며 이상태에서 화두를 타파하면 지혜가 바로 나온다. 이렇게 화두를 타파해서 돈오하게 되면 혜능선사가 말하는 일상삼매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선(禪)에서 말하는 삼매는 소리의 경계에도 물들지 않고 물질의 경계에도 물들지 않는 것이다.
일행삼매란 행주좌와에 항상 곧은 마음을 행하며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는것이다. 그러나 미혹한 사람은 법의 모양에 집착하고 일행삼매에 국집하여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일행삼매라 하는데, 만약 이와같다면 이법은 무정과 같은 것이므로 도리어 도를 장애하는 인연이다.
 육조단경에서는 “일체처에 처하더라도 상에 머물지 말로 설사 상(相)을 취했더라도 미워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한다. 또한 취하고 버리지 말 것이며 이익이 있다든가 없다든가 또는 성취가 된다든가 허물어진다든가 하는 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저 편안하고 고요하고 안온하며 텅 비어 있는 듯이 담박(澹泊)하게 되면 이를 일상삼매라 한다”하였다. 이는 임제스님이 말한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선자리마다 모두 진리인 경지 隨處作主立處皆眞”이 이러한 궁극적인 삼매의 상태이다.

첫째, 어느때는 사람(주관)은 빼앗고 경계(객관)는 빼앗지 않는다.
 둘째, 어느때는 경계는 빼앗고 사람은 빼앗지 않는다. 
셋째, 어느때는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는다. 넷째, 어느때는 사람과 경계를 모두 빼앗지 않는다. -궁극적 삼매경지 임제선사의 사료간四料簡-
 즉, 주관은 없고 객관만 있는 경우, 객관은 없고 주관만 있는 경우, 주객이 모두 사라진 경우, 주객의 양변이 모두 사라진 청정한 상태에서 다시 주객의 작용을 일으켜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자유자재한 경우를 말한다. 이 양변을 여읜 청정한 상태를 大機圓應이라하고, 그 청정한 상태가 작용하는 것을 대용직절(大用直截)이라한다. 때문에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활발발하고 무애자재한 대자유의 세계가 펼쳐진다.

① 動靜一如 : 行住坐臥 語黙動靜에 화두가 한결같이 여여하게 들려 하상 밝게 깨어있는 것이다. 
② 夢中一如 : 화두가 꿈속에서도 변함없이 들려있어 꿈속에서도 일여해 흔들리지 않고 밀밀하게 화두를 지어갈 수있다. 몽중일여의 경지에 들어섰다하더라도 꾸준히 화두를 들지 않으면 다시 후퇴하게 된다.
③ 寤寐一如 : 오매일여란 깨어있을 때나 깊은 잠에서나 화두가 한결같이 들리는 경지를 말한다. 잠이 들자마자 없어져 버린다면 어떻게 생사와 대적할 수 있겠는가. 꿈이 없는 깊은 잠에서도 화두가 끊어지지 않고 오롯해야 물러섬이 없으며 머지않아 좋은 시절이 온다.


(9) 고요한 경계와 신비한 경계

 수행하다 보면 몸이 사라진듯 마냥 편안할 때가 있는데 이것이 병통이다. 때문에 편안하고 고요한 경계를 조심하면서 화두를 놓치지 말아야 하며, 고요한 상태에서 앞뒤 경계가 끊어졌을 지라도 그 고요한 상태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화두를 끝까지 이어가야 한다. 이와 달리 화두삼매에서는 화두에 의심이 끊임없이 이어져 몸의 움직임을 느끼지 못하고, 걸어가는 것도 앉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밥먹을때도 그 맛을 느끼지 못하며 숟가락 움직임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즉 화두에 몰입되어 있는 경지가 아니라면 무기에 떨어진 것이다. 이때는 다시 있는힘을 다해 간절히 화두를 들어야 한다.
 또한 공부가 익어갈 때 신비한 현상이 드물게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러한 일에 마음을 빼앗기면 옳게 정진할 수 없다. 화두 삼매가 지속되면 신기한 현상이 일어날 수 없다. 그런 현상이 보이는것 자체가 화두를 놓치고 경계에 끄달리고 있다는 증상이다. 즉 화두가 순일하게 진행되다가 잠깐 한눈판 사이 비몽사몽간에 일어난 현상이다. 수행자는 어떤 경계가 일어나든 신통하고 묘한 현상에 조금도 신경쓰지 말고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지극하게 화두만 밀고가야 한다. 경계나 현상에 집착을 하고 번뇌망상을 붙이면 성성하던 화두가 사라지고 갖가지 魔가 나타난다. 
 대체로 공부를 방해하는 경계는 세가지 통로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눈에 보이는 것이오 둘째는 귀에 들리는 것이요 셋째는 마음에 알려오는 것이다. 수행자는 이런 경계가 모두 진실이 아님을 알아차려야 한다. 아무리 수승하고 미묘한 법문을 설해오더라도 모두 마의 경계이며 이는 화두하는 마음에 틈이 생겨 일어난 것이다. 곧 망념의 뿌리가 남아있어 그런줄 알고 마음을 크게 돌이켜 오직 공부에만 면밀하고 힘있게 파고들어야 한다. 이럴때야말로 지혜와 용맹심을 시험해볼 호시절인 것이다. 태고선사는 화두참구중 나타나는 신비한 경계를 벗어나려면 그러한 상념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말고 상념이 일어날때마다 화두를 더욱 또렷하게 살피라고 한다. 상념이 일어나면 일어났다고 알아차리면 곧바로 없어진다. 
 화두공부시 나타나는 모든 병통은 화두를 놓쳤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오로지 화두를 다시 들어야 한다. 더불어 신비한 현상에 대해 대처하기위해서는 첫째 성성적적한 삼매로 초점을 잃지 말고 오로지 화두공부만 면밀히 지어가야 한다. 둘째, 수행자 마음에 일체 구하는 생각이 없어야한다. 도를 깨치기를 구하거나 불조만나기를 바라는 것이 마음이 마를 부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셋째, 마음이 본래 형상이 없다는 도리를 잘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공부도중 그런 경계가 나타났다는 것은 수행자의 마음자세에 허점이 있거나 공부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오직 화두참구로 마음을 돌이켜 면밀하게 지어가면 온갖 경계를 없애려하지 않아도 저절로 없어지고, 공부는 더욱 깊게 나아갈 것이다. 오직 지어갈줄만 아는 이것이 이공부의 가장 중요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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