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
00:00

21. 除夜小參

 
나고 죽는 일은 크고 무상함은 신속하다. 태어났으나 온 자리를 알지 못하니 이를 일컬어 태어남의 큰일이라 하고, 죽어서 가되 가는 자리를 알지 못하니 이를 일컬어 죽음의 큰일이라 하니, 다만 이 나고 죽음의 일대사가 곧 참선하고 도를 배우는 요체이며 부처를 이루고 조사가 되는 관건이다. 삼세의 여래와 항하사 같은 모든 부처님께서 천만의 변화를 보이시며 세간에 출현하신 것은 대개 이 생사 일대사의 본원을 위해서이며, 서천의 28조사들과 중국의 6조사와 나아가서는 천하의 노스님들이 나고 죽고 거두고 펴며 거슬러 행하시고 도리를 쫓아 교화하신 것 역시 이 일대사의 본원을 위해서이며, 제방의 참선납자들이 노고를 꺼리지 않은 채 20년이고 30년이고 풀을 헤치고 바람을 맞으며 잠방이를 문지르고 바지를 비벼대는 것도 역시 이 일대사의 본원을 위해서이며, 너희들 모든 이가 발심하여 출가하고 발심하여 행각하며 발심하여 와서 고봉을 보고 밤낮으로 머리를 맞대는 것도 역시 이 일대사의 본원을 위해서이며, 사생 육도에 천만겁 동안 머리를 바꾸고 얼굴을 고치며 고생을 받는 것도 역시 이 일대사의 본원에 미혹했기 때문이다.
 
우리 부처님 세존께서 금륜왕의 지위를 버리시고 설산에서 6년 동안 고행하시다 한밤중에 샛별을 보고 도를 깨달은 것도 역시 이 일대사의 본원을 깨달으신 것이며, 달마대사가 이 땅에 들어와 소림에서 9년 동안 면벽함에 신광이 팔을 끊고 마음을 찾아도 얻을 수 없는 자리에서 콧구멍을 잃어버린 것도 역시 이 일대사의 본원을 깨달은 것이며, 임제스님이 황벽스님에게 예순 방의 호된 방망이를 맞고 대우스님의 옆구리로 주먹을 돌려 준 것도 역시 이 일대사의 본원을 깨달은 것이며, 영운스님이 복사꽃을 보고 깨달은 것과 향엄스님이 돌멩이가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달은 것과 장경스님이 발을 말아 올리다가 깨달은 것과 현사스님이 돌뿌리를 차고서 깨달은 것과 나아가 역대의 역대 선지식들이 계합하고 증득하여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 만물을 제도한 것도 아무튼 이 일대사의 본원을 깨닫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여러분들을 종종 보니 비록 이 하나의 문에 들어왔으나 흔히들 도를 배우는 본원도 알지 못하고 그 의지를 분발시키지도 못하면서 그럭저럭 날을 보내다 지금에 와서 이러쿵 저러쿵함을 면치 못하였기에 위와 같이 부처님과 조사들이 도에 들어간 인연 및 도를 깨달은 연유를 이끌어와서 표본으로 삼아 늦게 배우는 이들과 처음 공부하는 이들로 하여금 바야흐로 견디어 나아가게 하고자 하나니, 일러 보아라!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보지 못했던가? 옛사람이 말하기를 「만일 생사를 벗어나려면 모름지기 조사관을 꿰뚫어야 한다」 하였으니 결국에는 무엇을 가지고 관문이라 하는가? 「죽비라 하면 곧 집착이 되고 죽비라 하지 않으면 부정에 빠진다」 하였으니 말이 있어서도 안되고 말이 없어서도 안된다. 만약 이 속에서 착안하여 힐끗보아 간파하고 몸을 돌려 기운을 통하게 하면 꿰뚫지 못할 관문도 없고 통하지 못할 법도 없어서 모든 사물에 나타나고 온갖 만물에 온전히 드러나서 가없는 세계의 경계에서 나와 남이 털끝만큼의 간격도 없으며 십세의 고금과 시종이 현재의 생각을 여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수료화상이 마조대사를 뵙고는 절을 하고 일어나며 질문하려는 순간에 마조에게 멱살을 잡히고 한 번 걷어차여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서 크게 껄껄 웃으며 이르기를 「백천 가지 법문의 한량없는 오묘한 이치를 모두 한 터럭 끝에서 근원을 알아버렸습니다」라고 하였으며, 덕산스님이 용담선사를 뵈올 때 종이초를 불어 끄는 자리에서 활연히 크게 깨닫고는 다음날 마침내 경전을 해석하고 배낀 것을 가지고 법당 앞에서 태우며 이르기를 「모든 현묘한 변론을 다 궁구하더라도 마치 한 가닥의 털을 허공에 두는 것과 같고, 세상의 관건을 다하더라도 흡사 한 방울의 물을 거대한 골짜기에 던지는 것과 같다」 하였으니,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무슨 참구할 만한 선도禪道가 있을 것이며, 무슨 배울 만한 불법이 있을 것이며, 무슨 벗어날 만한 생사가 있을 것이며, 무슨 증득할 만한 열반이 있겠는가? 자유로이 운에 맡기고 운에 맡겨 자유로우면 섯달 그믐날이 도래함에 반드시 큰 자재로움을 얻어서 가고 머묾에 자유로울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조계의 길을 인식하고부터 생사가 상간치 않음을 알았다」고 하였느니라.
 
그러나 비록 이와 같더라도 (불자를 세우고 말하기를) 일러 보아라! 이것은 사는 것이냐 죽는 것이냐? 만약 말할 수 있다면 곧 부처님이 없는 자리에서 존귀하다 일컬어질 수 있으며 법이 없는 자리에서 법을 설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산승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다시 여러분에게 하나의 소식을 드러내겠다. (불자로 고기를 낚는 시늉을 하며 말하기를) 밤 기운은 차갑고 고기는 속 깊이 잠겼음에 공연히 낚시만 드리웠으니 걷어치우고 남은 여생을 지냄이 나으리다. (다시 불자를 거둬들이고는) 북선이 설을 셀 때는 땅 위에 드러난 흰 소를 삶으니 백미 진수가 모두 구족되었지만, 고봉이 설을 셀 때는 비록 가난하여 아무것도 없으나 무無를 가지고 유有를 짓고자 하니, 산봉우리 구름을 잘게 썰고 못 속의 달을 얇게 삐져서 뾰죽하고 새롭게 소복이 담아 놓고 격식에 벗어나게 늘어 놓고서 제각기 창자를 채워 배를 부르게 하여 사람마다 영원히 굶주림을 끊게 하나니, 일러 보아라! 옛사람과 같은가 다른가? 혀 끝에 눈을 갖춘 이는 말해 보아라.


22. 示衆

 만일 기한 내에 증득하는 법을 논하자면 마치 사람이 눈을 져다가 우물을 메우는 것과 같아서 추위와 더위를 꺼리지 않고 밤낮없이 가로로도 지고 세로로도 지며 옳게도 지고 그르게도 지며 지고 또 지기를 설령 해를 넘기고 1천 생 1만 겁에 이르더라도, 그렇게 하는 사이에 믿어서 믿어지고 밟아서 평온하며 잡아서 안정이 되고 행함에 주체가 되어, 한 생각도 싫어하여 여의려는 마음이 없게 되고 한 생각도 게으른 마음이 없게 되고 한 생각도 의심하는 마음이 없게 되고 한 생각도 만족을 구하는 마음이 없게 되어야 하나니, 능히 이러한 시절이 있게 되고 능히 이러한 기개가 갖추어지는 이 경지에 이르면 반드시 사람과 법이 동시에 잊어지고 마음과 의식이 함께 사라져서 형상은 마치 마른 나무와 썩은 나무둥치 같으며 의지는 어린애나 간난아기 같게 되어 별안간 멜대가 졸지에 끊어지고 터지듯 부러지리다. 영가선사가 이르기를 「대천세계의 모래알 같은 세계가 바다 가운데의 물거품이요, 일체의 성현은 번개가 번쩍이는 것과 같다」 하였으니 30 방망이를 때려주는 것이 좋겠다.
 
만일 이 일을 논하자면, 참구하려면 참구해지고 깨달으려면 깨달아지고 말하려면 말해지고 행하려면 행해지고 오려면 와지고 가려면 가지게 된다. 그러나 비록 이와 같더라도 다시 30년을 기다려야 되니, 무슨 까닭인가? 두 뿔과 네 발굽은 모두 지나갔으나 꼬리는 아직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일을 논하자면 마치 만 길 깊은 못에 하나의 동멩이를 던진 것과 같이 수면을 뚫고 들어가 바닥에 닿기까지 털끝만큼의 간격도 없는 듯이 해야 한다. 진실로 이와 같이 공부하고 이와 같이 간단間斷이 없음에도 7일 동안에 깨달음이 없다면 나는 영원히 아비지옥에 떨어지리다.


23. 結制示衆

 주장자를 봉해버리고 바랑끈을 묶어버리고 철위산에 갇혀 있으며 칼 위에 수갑을 더 채운 채 유有 가운데 무無를 뽑아 내고 무 가운데 유를 뽑아 내어 고통이 백천 가지로 많더라도 이 소굴을 여의지 않느니라. 대중들은 일러 보아라! 무엇을 일컬어 소굴이라 하는가? 설령 명확하게 밝혀내더라도 서봉의 저쪽에서 다시 저쪽의 사람을 위하고 또한 위하지도 않는 한 소식을 보려면 또한 30년 뒤를 기다려야 되리라.


24. 示衆

 
(주장자를 집어들고 대중을 부르고서 말하기를) 보았느냐? 사람마다의 눈 속에는 눈동자가 있어서 장님이 아니므로 반드시 보았을 것이다. (주장자를 한 번 내려치고는 이르기를) 들었느냐? 제마다 가죽 밑에 피가 흐르기에 죽은 놈이 아니므로 반드시 들었을 것이다. 이미 보고 이미 들었다면 이것이 무엇이냐? (주장자로 ????를 하고) 보고 들은 것은 우선 그만두고라도 다만 6근이 아직 갖추어지기 전과 소리와 물질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시기에는 아직 듣지 못한 들음과 아직 보지 못한 봄은 바로 이러한 때를 당하여 결국 무엇으로 증험을 삼는가? (주장자로 ????를 하고) 내가 지금 그대들에게 이 일을 잘 보호해 지켜서 주려하나니 마침내 헛되지 않으리다. (주장자로 ㉤를 하고) 30년 후에 부디 소식을 잘못 전달하지 말지니라. (주장자를 의지하고서 법좌에서 내려 오려오다)
 
만일 이 일을 논하자면 다만 당사자에게 간절한 마음이 분명하게 있어야 하니, 간절한 마음이 있기만 하면 참된 의심이 곧 일어날 것이다. 참된 의심이 일어날 때에는 단계적인 것에 속하지 않고 당장에 번뇌와 망상이 몰록 쉬어지고 산란이 아울러 없어져서 한 생각도 나지 않고 앞뒤의 시간이 모두 끊어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시절에 이르기만 하면 틀림없이 예정된 결과를 얻겠지만 만약 이 생각이 절실하지 않아서 참된 의심이 일어나지 않으면 설령 그대들이 앉아서 방석을 백개 천개 헤지게 하더라도 여전히 한낮에 삼경을 칠 것이다.
 
미혹한 가운데 깨달음이 있고 깨달았다가 다시 미혹하게 되니 모름지기 미혹과 깨달음을 둘 다 잊고 사람과 법을 함께 버려야 납자승려의 문하에서 비로소 말할 자격이 있으리다. 대중들아, 이미 미혹과 깨달음을 모두 잊었고 사람과 법을 함께 잊었다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는 다시 누구인가? 어서 일러라, 어서 일러라.
 
만일 이 일을 논하자면 마치 만 길 높은 산을 오르는데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 거의 정상에 이르게 되어 오직 몇 걸음만 남겨두고 절벽이어서 손발로 기어올라야 되는 것과 같으니, 여기에 이르러서는 모름지기 무쇠로 두드려 만든 놈이라야 목숨도 버리고 몸도 돌보지 않은 채 왼쪽을 보아가며 오른쪽을 보아가며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정상에 오르리라 단단히 결심하여 설령 천생만겁을 지나고 오만 가지 어려움과 수천의 마구니를 만나더라도 이 마음과 이 의지를 더욱더 견고하게 하리니, 만약 근본이 실답지 않은 대강대강 살아가는 무리라면 어찌 절벽을 바라보기라도 하겠는가? 틀림없이 바람소리만 듣고도 물러날 것이다.

다른 화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