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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端陽示衆

 
30년 동안 가로누운 풀은 집어 올리지 않고 세로선 풀은 밟지 않은 채 오로지 다만 마침맞게 쾌활무우산을 한 차례 복용하였더니 그 약이 비록 조금이었으나 효과는 지대하여 부처병 조사병 마음병 참선병 범부병 성인병 탄생병 죽음병 옳은병 그른병 할 것 없이 오직 참선하는 승려들의 한 가지 병통을 제외하고는 그 약을 듣기만 하고 보기만 해도 영험이 없지 않았으니, 그러면 무엇을 가지고 병통이라 하는가? (한참 있다 말하기를) 제각기 방으로 돌아가 점검해 보라.

 

16. 示衆.

 만약 착실한 참선이라 일컫는다면 반드시 세 가지 요긴함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의 요긴함은 커다란 믿음의 뿌리가 있어야 함이니 이 일은 하나의 수미산에 의지함과 같다는 것을 분명히 아는 것이요, 둘째의 요긴함은 크게 분한 생각이 있어야 하나니 마치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만난 듯이 곧장 한 칼에 두 동강이를 내고자 해야 하는 것이요, 셋째의 요긴함은 큰 의정疑情이 있어야 하나니 마치 어두운 곳에서 한 가지 중대한 일을 하였음에 바로 드러나려 하면서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때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12시간 가운데 과연 이러한 세 가지의 요긴함을 능히 갖춘다면 반드시 시일 내에 공을 성취하여 독 속에서 달리는 자라를 두려워하지 않겠지만 만일에 그 하나만이라도 빠트리면 비유컨대 마치 다리 부러진 솥이 마침내 못쓰는 그릇이 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이와 같더라도 서봉의 구덩이에 떨어진다면 구제하지 않을 수 없도다. 에잇!
 
(주장자를 집어들고 이르기를) 이 한 소식은 역대로 부처님과 조사들이 이것을 구하기 위하여 비록 1천의 마구니와 1만의 어려움을 겪으며 1만 번 죽고 1천 번 다시 태어나더라도 마치 물이 동쪽으로 흐름에 대해에 도착하지 않고는 결코 그치지 않는 것과 같이 하셨으니, 이로 미루어 보건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쇠를 두드려 금이 되게 하듯이 뭇 성인들과 더불어 같은 경지가 되고자 한다면 어찌 얕은 지식과 조그만 소견을 가진 자들이 능히 헤아려 논의할 바이겠는가? 모름지기 솥을 들고 산을 뽑는 힘과 천지를 포괄하는 아량과 못을 끊고 쇠를 자르는 근기와 봉鳳을 때려잡고 용을 그물질하는 솜씨를 갖춘 이라야 된다. 과연 이와 같은 지조와 방략이 있다면 주장자로 심기를 발동시키도록 도우리다. (한 번 내려치고 말하기를) 의기가 있을 때 의기가 더해진다. (또 한 번 내려치고 말하기를) 풍류가 없는 자리에 또한 풍류가 있도다. 만일 절름발이 자라이거나 눈먼 거북이라면 다만 뛰더라도 한두 번 뛰다가 기량이 다할 것이니 서봉의 문하에서는 도무지 쓸모가 없다. (주장자를 건네주려고 시자를 불러 이르기를) 사자바위로 보내어 갔다 두고는 제멋대로 동쪽으로 솟고 서쪽으로 빠지게 하라.
 
만약 이 일의 진정한 공부를 논하자면 결코 가고 머무르며 앉거나 눕는 자리에 있지 않으며, 결코 옷을 입거나 밥을 먹는 자리에 있지 않으며, 결코 똥 누거나 오줌 누는 자리에 있지 않으며, 결코 말하거나 침묵하며 움직이거나 잠잠한 자리에 있지 않다. 기왕에 이와 같다면 결국에는 어떤 자리에 있는가? 적! 만약 이 속에서 귀결처를 안다면 곧 어머니의 태에서 나오기 전에 벌써 행각을 마쳤으며, 이미 와서 고봉을 보았으며, 이미 마음이 공해 급제하였으며, 이미 만물을 제접하고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였음을 볼 것이다. 설령 무명의 때가 막중하여 깨닫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면 먼저 선정으로 움직이고 다음에 지혜로써 뽑아주지 않을 수 없다. (한참 있다가 ‘할’을 한 번 하고는 말하기를) 한 무리의 구멍 없는 무쇠방망이로다.


17. 示理通上人


대저 공부하는 사람들이 애초에 진짜배기 종사를 만나지 못하여 10년이고 20년이고 여기저기에서 혹은 참선하고 혹은 글을 익히며 혹은 전해 받고 혹은 기억하되 먹다 남은 국에 쉰밥과 나쁜 지식 나쁜 깨달음을 소복하고 그득하게 뱃가죽에 다져 쌓아서 마치 냄새나는 지게미를 담은 병과 같으니, 만약 콧구멍이 있는 자에게 냄새를 맡으라면 메스끄워 구토를 면치 못할 것이다. 여기에 이르러 만약 그른 줄 알고 허물을 뉘우치며 따로 삶을 건립하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철저하게 쏟아내어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씻으며 일곱 번이고 여덟 번이고 울궈내고서 바짝 말려 깨끗하게 하여 한 점의 냄새도 없게 하여야 바야흐로 감히 반야의 영단靈丹을 향해 나아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소홀하고 거칠어서 씻은 것이 마르지도 않았다면 설령 윗질의 제호醍醐를 담더라도 또한 한 병의 더러운 물로 변하지 않을 수 없다.

 

18. 示衆..

 훌륭한 의사는 병을 치료할 때 먼저 그 근원을 철저히 밝혀내나니, 그 근원을 밝혀내기만 하면 치료하지 못할 병이 없다. 참선하는 납자들이 10년이고 20년이고 돈독한 믿음으로 하나만을 지키되 생사를 밝히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그 근원을 철저히 밝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알진대, 인상과 아상은 생사의 뿌리요 생사는 인상과 아상의 잎이므로 그 잎을 제거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뿌리를 제거해야 할 것이니, 뿌리가 이미 제거되었는데 그 잎이 어찌 존재하겠는가? 그러나 비록 이와 같더라도 이 뿌리가 광대한 겁 이래로 깊고도 견고하게 심고 가꾸어 왔음을 어떻게 알겠는가. 만약 솥을 들고 산을 뽑아내는 힘이 아니면 끝내 제거하기 어려울 것이니, 주장자의 위광을 빌려 특별히 여러분들을 위해 열기를 내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주장자를 한 번 치고 ‘할’을 한 차례 하고는 말하기를) 수고롭기만 하고 공이 없구나.
 
만일 이 일의 확실한 공부법을 논하자면 마치 감옥에서 죽음에 직면한 죄인이 홀연히 간수가 술에 취해 자는 기회를 만나 칼과 수갑을 부수어버리고 밤을 이어 도망감에 길에 비록 독룡이나 맹호가 우글거리더라도 오로지 곧장 앞으로 나아갈 뿐 두려워하는 바가 없는 것과 같으니, 무슨 까닭인가? 단지 하나의 ‘간절’자 때문이다. 공부를 할 때에 능히 이 같은 간절한 마음이 있다면 반드시 백발백중하리다. 지금 명중시킨 자는 없는가? (불자로 禪床을 한 번 치고 이르기를) 털끝만치 어긋나도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생기느니라.
 
(주장자를 집어들고서 이르기를) 여기에 이르면 사람도 법도 모두 잊어버리고 심식의 길이 끊어졌으므로 발걸음을 들면 곧 바다에 파도가 넘실거리고 손가락을 퉁기면 수미산이 우뚝 솟으며 진흙뭉치와 흙덩이가 대광명을 발산하고 박과 동과가 치열하게 법을 설한다. 그러나 비록 이와 같더라도 만약 서봉의 문하에 온다면 팔은 긴데 소매가 짧아 팔뚝이 노출됨을 면치 못할 것이니, 곧장 정수리의 바른 눈을 활짝 떠서 공겁 이전의 자기가 지금의 허황된 색신과 더불어 둘도 없고 다름도 없음을 힐끗 보아 간파해야 한다. 일러보아라, 어떤 것이 공겁 이전의 자기인가? 적! (주장자를 한 번 치고 말하기를) 금강신장이 쇠몽둥이를 맞으니 진흙소의 눈에 피가 나는구나.


19. 解制示衆

 
만일 이 일을 논하자면 존귀함도 비천함도 없으며 늙음도 젊음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으며 예리함도 아둔함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 부처님이 정각산 앞에서 납월 8일 새벽에 밝은 샛별을 보시고 도를 깨닫고는 이에 말씀하시기를 「기이하도다! 중생들이여. 여래의 지혜와 덕스러운 모습을 갖추고 있구나」 하셨으며, 또 말씀하시기를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 하셨으며, 또 말씀하시기를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 하셨으니, 이미 차별이 없고 또한 높고 낮음이 없다면 역대의 부처님과 조사와 고금의 선지식 내지는 천하의 노스님들이 계합하기도 하고 증득하기도 하며, 더디기도 하고 빠르기도 하며,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한 것은 결국에 무엇 때문인가?
 
비유컨대 마치 여러분들이 여기에 있는데 제각기 가업家業이 있다고 할 때, 하루는 별안간 생각을 돌려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되 어떤 이는 한 해만에 도착하고 어떤 이는 한 달만에 도착하며 어떤 이는 하루만에 도착하고 어떤 이는 잠시만에 도착하며 또한 어떤 이는 죽을 때까지 도착하지 못하는 이도 있으니, 대개 집과의 거리가 멀고 가까운 차별이 있기 때문에 도착하는데 더디거나 빠르거나 또는 어렵거나 쉬운 차별이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비록 이와 같더라도 그 가운데 어떤 자는 돌아갈 만한 집이 없으며 배울 만한 선도禪道가 없으며 벗어날 만한 생사가 없으며 증득할 만한 열반이 없기에 종일토록 자유롭게 운에 맡기고 운에 맡겨서 자유롭나니, 만약 이를 점검해 낸다면 석가나 미륵불이 그대에게 물병을 가져다 주고 발우를 펴주더라도 또한 과분하지 않겠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불자로 禪床을 두 차례 내려치고 ‘할’을 두 번하고 이르기를) 만약 제방에 이르거든 부디 잘못 이야기하지 말라.

 

20. 示衆

 
만일 이 한 토막의 기특한 일을 논하자면 사람마다 본디 갖추고 있고 제각기 원만하게 이루어져 있으니 마치 주먹을 쥐고 손바닥을 펴는 것과 같아서 거의 실끝만한 힘도 범하지 않건마는, 다만 마음의 원숭이가 어지럽고 의식의 말이 시끄러워 삼독 무명을 제멋대로 내버려두며 망령되이 인상과 아상 등에 집착함이 마치 얼음에 물을 뿌리면 뿌릴수록 더욱 두터워지듯이 자신의 신령스런 광명을 장애하여 결코 드러날 길이 없게 된 것이다. 만약 무쇠로 주조하여 만든 놈이 정확하게 밝히고자 한더라도 또한 경솔하게 할 일이 아니니, 모름지기 큰 뜻을 내고 큰 서원을 세워 마음의 원숭이와 의식의 말을 잡아죽이고 망상과 번뇌를 끊어 없애기를 마치 급류의 여울목에 배를 대듯이, 위태로움과 죽음과 얻음과 잃음과 인상과 아상과 옳음과 그름 등을 돌아보지 말며 잠도 잊고 끼니도 잊고 생각도 끊고 걱정도 끊은 채 밤낮으로 마음마음을 잇대고 생각생각 계속하여 다리를 딱 버티고 어금니를 악물고 굳건히 밧줄을 거머쥐고서 털끝만큼의 이탈도 용납해서는 안된다. 설령 어떤 사람이 그대의 머리를 베어 가고 그대의 수족을 떼어내며 그대의 심장과 간을 도려내어 목숨이 다하기에 이르더라도 절대로 버려서는 안되니, 이러한 경지에 이르고서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공부한 기미가 있다 할 것이다.
 
오호라! 말법에 성현의 시대와는 떨어져 아득함에 한 부류의 대강대강 살아가는 무리들이 많이 있어 깨달음의 문이 있다는 사실은 끝내 믿지 않고 다만 이쪽에서 파헤쳐보고 저쪽에서 계교하고 있으니, 설령 계교하여 이루게 되고 파헤쳐 성취하더라도 눈빛이 땅에 떨어질 때는 또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만약 소용이 있다면 세존께서 설산에서 6년 동안 고행한 것과, 달마가 소림에서 9년 동안 면벽한 것과, 장경이 7개의 방석이 헤지도록 좌선한 것과, 향림이 40년만에 비로소 일념을 이룬 것과, 조주가 30년 동안 잡되게 마음을 쓰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에 허다한 생고생을 하였겠는가. 다시 한 부류의 놈들이 있어 10년이고 20년 동안 공부는 하였으되 깨달은 적이 있지 못했던 것은 다만 그들이 숙세에 신령스런 기골이 없어서 의지가 견고하지 못하여 반신반의하며 혹은 일어서고 혹은 거꾸러지며 이렇게 저렇게 해나감에 세간의 정은 갈수록 익어가고 도에 대한 생각은 점점 생소해져 12시간 중에 1시간도 선정을 다잡고 일념을 이루기가 어렵게 되었으니, 이 같은 놈들은 설령 미륵이 하생하게 되더라도 또한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만약 진정코 본색으로 행각하는 뜻 높은 선비라면 함부로 어지럽게 굴지 않고 애초에 진짜배기 종사를 찾아서 전해주는 말 한마디 반 구절을 듣자마자 더 이상 망설이지 않은 채 당장에 그렇게 믿기만 하면 믿어지게 되고 하기만 하면 주체가 되며 잡기만 하면 안정이 되어 외로워서 아득하고 우뚝하여 드높으며 씻은 듯이 깨끗하고 벗은 듯이 숨김이 없어 다시는 위태로움과 죽음과 얻음과 잃음을 묻지 않고 다만 이렇게 정진해나가면 별안간 밧줄이 끊어져 곤두박질하여 죽었다가 후에 다시 소생하여 그의 본지풍광을 보게 될 것이니 어느 곳에서 다시 부처를 찾겠는가? 또 한 게송이 있으니 대중들에게 들어 보이노라.

급한물살 여울머리 작은배를 대려면은, 
모름지기 이밧줄을 손에굳게 잡을진저.
문득밧줄 끊어져서 회피하기 어려우면,
그당장에 온몸에서 피가터져 솟아나리.
만법하나 돌아가니 하나어디 돌아갈꼬,
다만이것 성성하게 뜻을붙여 의심하라.
정을잊고 맘끊은곳 그의심이 이르르면,
금가마귀 야밤중에 하늘끝을 날으리다.
 
만일 이 일의 공부가 지극한 순간을 궁구해보면 마치 허공 속에 꽃을 심고 물속에서 달을 건져내는 것과 같아서 바로 그대들이 손을 댈 자리가 없으며 그대들이 마음을 쓸 자리가 없을 것이니, 흔히 이러한 경계가 눈 앞에 나타남을 만나기만 하면 열에 다섯 쌍은 물러가는 북을 치지만 바로 이것이 집에 도착한 소식인줄 전혀 알지 못한다. 만약 맹씨의 여덟째 아들놈이라면 곧 손을 댈 수 없는 자리와 마음을 쓸 수 없는 때에 나아가 오히려 마치 관우가 백만 대군 속에서 목숨을 잃고 얻음을 돌보지 않고 곧장 안량을 베듯하리라. 진실로 이와 같은 지조 및 방략과 이와 같은 용맹과 예리함이 있다면 필시 손가락 튕기는 사이에 공을 거두고 찰나에 성인이 될 수 있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설령 그대들이 미륵이 하생할 때까지 참구하더라도 한낱 장상좌일 뿐이리라.
섣달 그믐날 그 시절 어느듯 이르나니,
저 밖의 기둥이여 이 안의 등잔이여,
다시는 졸지 말지니라.
얼굴을 마주보며 마땅한 근기는 이끌어주고,
마땅한 근기는 얼굴을 마주보면 눈치를 챌 것이니,
갑자기 눈동자를 건드려 멀게 하면,
문드러진 진흙 속에 가시가 있음을 비추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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