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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이 10년이나 20년 내지 일생 동안 세속을 떠나 반연을 잊은 채 오로지 이 일을 밝히되 꿰뚫어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 병이 어디에 있는가? 참된 납자들은 시험삼아 드러내 보아라. 숙세부터 신령스런 기골이 없는 것은 아닌가?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루만 햇볕을 쬐고 열흘은 추운 것은 아닌가? 근기가 열등하고 의지가 미미한 것은 아닌가? 번뇌와 망상에 골몰한 것은 아닌가? 공에 빠지고 고요함에 막힌 것은 아닌가? 잡스런 독이 마음에 들어간 것은 아닌가? 시절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 말이나 글귀를 의심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아직 얻지 못했으나 얻었다고 말하고, 아직 증득하지 못했으나 증득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만약 고황에 든 병을 논하자면 아무튼 이러한 것에 있지 않으리니, 이미 여기에 있지 않다면 결국에는 어느 곳에 있는가? 에잇! 세 개의 연목 아래와 7척 자리에 있느니라.
 
만약 이 일을 논하자면 마치 하나의 높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으니, 세 면은 평이하여 잠깐동안에 오를 수 있어서 힘도 매우 들지 않고 지극히 편리하다. 그러나 만약 돌이켜 비추어서 점검해 본다면 귀는 여전히 두 조각의 가죽이며 이빨은 전과 같이 한 무더기의 뼈이니 무슨 상대할 꺼리가 있을 것이며 무슨 사용할 꺼리가 있겠는가? 만약 구름을 붙잡고 안개를 움켜잡는 놈이라면 결코 그런 들여우의 굴 속에 떨어져 자기의 신령스런 빛을 매몰시키거나 출가한 본래 의지를 저버리지 않고 곧장 저 한쪽 면인 매달린 듯 가파른 절벽의 발 붙일 수 없는 자리에서 부처님과 조사들을 뛰어넘는 마음을 세우고 오래도록 변함이 없는 의지를 갖추고는 오를 수 있는가 오를 수 없는가 또는 얻을 수 있는가 얻을 수 없는가를 묻지 아니하고, 오늘도 목숨을 던지고 뛰어 오르며 내일도 목숨을 던지고 뛰어 오름에 뛰어 오르고 뛰어 오르다 사람도 법도 모두 잊고 심식의 길도 끊어진 자리에 이르러 갑자기 대지를 밟아 엎어버리고 허공을 두드려 깨트려버리면 원래 산이 곧 자기이고 자기가 곧 산이리니, 산과 자기도 오히려 원수이거니와 만약 완벽한 납자의 최상의 요처를 성취하고자 하면 모름지기 그 앉은 자리까지 타방세계에 날려버려야 옳으리다.
 
1‧2‧3‧4와 4‧3‧2‧1이 쇠사슬의 연이어진 고리와 같이 은산철벽을 이루고 있으니, 힐끗 보아 간파하고 뛰어서 벗어나면 모래알 같은 대천세계가 바다 가운데의 거품이요 일체 성현이 번개가 치는 것과 같겠지만, 힐끗 보아 간파하지 못하고 뛰어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아무쪼록 하늘을 뒤집고 땅을 뒤엎으며 소굴을 벗어나 문득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라는 화두 위로 나아가 동쪽으로 부딪치고 서쪽으로 두드리며 가로로 다그치고 세로로 핍박하여, 핍박하고 핍박하여 핍박하기를 깃들일 수도 어찌할 수도 없는 자리까지 이르러 진실로 맹렬하고 예리함을 더욱 더하여 몸을 뒤척여서 한 차례 던진다면 흙덩이나 진흙뭉치도 모두 성불하겠지만, 만약 삼킨 것도 아니요 뱉은 것도 아니어서 반쯤 들어가고 반쯤 나온 것이 마치 뱀이 개구리를 삼키듯 한다면 서봉은 감히 말하노니 당나귀의 해나 되어야 되겠다고 하리다.

 

13. 結制示衆 

 

 (불자로 ∴과 三을 그리고) 대중들은 알겠는가? 만약 알았다면 여래선과 조사선과 밤송이와 금강덩어리와 오위편정五位偏正과 삼요三要 및 삼현三玄을 꼬챙이에 꿰지 못할 것이 없으며 근원을 궁구하지 못할 것이 없으니, 이러한 경지에 이르러서는 무슨 장기간이니 단기간을 말할 것이며 공관이니 가관을 말하겠는가? 생각을 얻거나 생각을 잃는 것이 해탈 아님이 없으며 법을 이루고 법을 깨트리는 것이 모두 열반이라 이름하거니와, 만약 알지 못했다면 너희 대중들이 이미 제각기 양식과 음식을 꾸려 싸가지고 큰 마음을 내어 왔으니 90일 동안 12시간 안에 간절하고 간절하며 조심스럽고 조심스럽게, 이르느냐 이르지 못하느냐 혹은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도 묻지 말고 신발을 끌어당겨 매고 다리에 힘을 주어 마치 얼음 위를 가듯이 칼날 위를 달리듯이 목숨을 버리고 형상을 잊은 채 다만 이렇게 나아갈지니, 물이 말라붙고 구름이 모두 걷힌 자리와 연기가 사라지고 불이 꺼진 때에 이르기만 하면 불현 듯 본지풍광을 밟아서 반드시 부처님과 조사들을 초월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설사 이렇게 깨달았더라도 여전히 법신 주변의 일일 뿐, 만약 법신의 위로 향하는 일로 말하자면 아직 꿈에도 보지 못한 것이리다. 무슨 까닭인가? 천리안을 마음껏 발휘하자면 다시 한층의 누각을 올라가야 되기 때문이다.

 

14. 示衆

 

 만일 참선의 요점을 말하자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공부라 여겨 혼침과 산란에 빠져들거나 편안함과 고요함 속에 떨어져 도무지 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해서는 되지 않나니, 비단 시간을 헛되이 죽이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시주의 공양을 소화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루 아침에 눈빛이 땅에 떨어질 때는 결국 무엇을 가지고 의지할 바를 삼겠는가? 산승이 예년에 대중으로 있을 때 죽 먹고 밥 먹는 두 때를 제하고는 방석에 올라 앉지 않고 다만 아침부터 저녘까지 동쪽으로 갔다 서쪽으로 갔다 하며 걸음걸음에 화두를 여의지 않았고 마음마음에 간단間斷이 없었다. 이와 같이 지내기를 3년이 되도록 일찍이 한 생각도 게으른 마음이 없다가, 하루는 불현듯 자기의 집이란 것을 밟고 보니 원래 한 치의 걸음도 옮긴 적이 없더라.
 
혼침과 들뜸 및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이 그대로가 진여스런 불성이요 지혜로운 해탈이건만 단지 그러한 사람을 만나지 못한 반연으로 제호醍醐의 으뜸가는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되었다. 영리한 자가 설령 당장에 그른 줄 알아서 온 몸으로 짊어지더라도 마침맞게 아침에 3천 방을 때릴 것이요 저녁에 8백 방을 때릴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어찌 듣지 못했는가? ‘안다’는 한 글자가 온갓 재앙의 문이란 것을.
 
만일 이 일을 논하자면 마치 모기가 무쇠소에 오르는 것과 같으니, 어떻게 되는가 어떤 것인가 하며 다시 묻지도 말고 문득 부리를 내릴 수 없는 자리에서 목숨을 던지고 한 차례 뚫어서 몸까지 꿰뚫어 들어가야 하리다. 바로 이러한 때에 마치 백천만억의 향수해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것과 같아서 가져도 다함이 없고 사용해도 고갈됨이 없지만, 만약 뜻이 견고하지 못하고 마음이 한결같지 못하여 그럭저럭 흐늘흐늘 동쪽으로 날다가 서쪽으로 날다가 한다면 비록 네가 날아서 비비상천에 이른다 하더라도 여전히 한낱 주린 모기일 뿐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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