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밀린다 왕과의 첫번째 문답
첨미리가 앞에서 왕에게 고하였다.
“나선대사가 이미 출발하여 아침에 도착하셨습니다.”
“어디에 있는 이가 나선인가?”
첨미리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왕은 ‘내가 은밀히 알아보았던 바로 그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매우 기뻐했다.
나선이 즉시 도착하였다.
왕과 나선은 우선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왕은 크게 기뻐하며 나선과 대좌했다.
나선이 왕에게 말했다.
“부처님께서 경전에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안온한 것은 가장 큰 이득이 되며 사람이 만족할 줄 알면 그것이 큰 부자가 되는 일이며, 사람에게 믿을 것이 있으면 그것이 크게 마음을 쓰는 일이 되는 것이며, 열반의 도는 마음이 크게 상쾌한 일이다’고 하셨습니다.”
왕은 즉시 나선에게 물었다.
“대사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부모님은 나를 나선이라고 이름을 지으셨습니다.
사람들도 나를 나선으로 부릅니다.
어느 때는 부모님이 나를 수나선(首那先)으로 부르게 하셨고, 어느 때는 부모님이 나를 유가선(維迦先)이라고 부르기도 하셨습니다.
이런 연유로 사람들은 다 나를 알게 됩니다.
사람들도 다 이 이름을 취합니다.”
“이 나선이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왕은 다시 물었다.
“머리가 나선입니까?
“나선이 아닙니다.”
“귀와 코와 입이 나선입니까?
“나선이 아닙니다.”
“턱과 목과 어깨와 팔과 손과 발이 나선입니까?”
“나선이 아닙니다.”
“넓적다리와 정강이가 나선입니까?”
“나선이 아닙니다.”
“안색이 나선입니까?”
“나선이 아닙니다.”
“괴로움이나 즐거움이 나선입니까?”
“나선이 아닙니다.”
“선악이 나선입니까?”
“나선이 아닙니다.”
“몸이 나선입니까?”
“나선이 아닙니다.”
“간장과 허파와 심장과 비장과 창자와 위장이 나선입니까?”
“나선이 아닙니다.”
“안색이 나선입니까?”
“나선이 아닙니다.”
“고락과 선악과 몸과 마음이 합해진 것, 이것이 나선입니까?”
“나선이 아닙니다.”
“고락도 없고, 안색도 없고, 선악도 없고, 몸과 마음도 없는 것, 이 다섯 가지가 없는 것을 오히려 나선이라고 합니까?”
“나선이 아닙니다.”
왕은 다시 물었다.
“소리의 울림과 숨이 차서 헐떡거리는 것이 나선입니까?”
“나선이 아닙니다.”
“나선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선이 왕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수레라고 합니까? 굴대를 수레라고 합니까?”
“굴대는 수레가 아닙니다.”
“바퀴통이 수레입니까?”
“바퀴통은 수레가 아닙니다.”
“바퀴살이 수레입니까?”
“수레가 아닙니다.”
“바퀴테가 수레입니까?”
“수레가 아닙니다.”
“끌채가 수레입니까?”
“수레가 아닙니다.”
“멍에가 수레입니까?”
“수레가 아닙니다.”
“가마가 수레입니까?”
“수레가 아닙니다.”
“덮개가 수레입니까?”
“수레가 아닙니다.”
“이 재목들을 모아서 하나로 붙이면 수레입니까?”
“수레가 아닙니다.”
“소리가 수레입니까?”
“수레가 아닙니다.”
“무엇이 수레입니까?”
왕은 말이 없었다.
나선이 말했다.
“부처님의 경전에서 말씀하시기를 이 여러 재료들을 합하여 써서 수레를 만듦으로 해서 수레가 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머리와 얼굴과 눈과 귀와 코와 입과 목과 어깨와 팔과 뼈와 살과 손발과 허파와 간장과 심장과 신장과 비장과 창자와 위장과 안색과 소리의 울림과 숨이 헐떡거리는 것과 고락과 선악이 합해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나선대사께서는 나와 함께 경에 대해서 논하고 도에 대해서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대왕께서 지혜 있는 자의 질문을 하면 대왕께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나 왕으로서의 질문이나 어리석은 자로서의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혜 있는 자의 질문과 왕으로서의 질문과 어리석은 자의 질문은 어떻게 다릅니까?”
“지혜 있는 자는 상대를 대할 때 서로 힐난하기도 하고, 서로 존중해서 말하기도 하고, 서로 하대해서 말하기도 합니다.
대화로 승부를 가릴 때에는 자기 스스로 그것을 압니다.
이것이 지혜 있는 자의 말입니다.
왕으로서의 말은 방자한 데가 있어서 그 말에 오류가 있어도 왕에게 하는 말처럼 하지 않으면 왕은 즉시 강제로 그를 벌합니다.
이것이 왕으로서의 말입니다.
어리석은 자의 말은 말이 길어도 스스로 알지 못하고, 말이 짧아도 알지 못합니다.
사리에 어긋나는 것을 써서 이길 뿐입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자의 말입니다.”
“지혜 있는 자의 말을 쓰기를 원합니다.
왕으로서나 어리석은 자의 말을 쓰기를 원치 않습니다.
나와 말하면서 왕이라는 생각을 갖지 마십시오. 여러 사문과 같이 말하는 것으로 여기시는 것이 마땅할 것이며, 여러 제자와 같이 말하는 것으로 여기시며, 우바새와 말하는 것으로 여기시며, 곁에서 명령을 받는 사람과 말하는 것으로 여기시는 것이 마땅할 것이며, 서로 깨달음을 위해서 하는 것으로 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좋습니다.”
“나는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물으십시오.”
“나는 이미 물었습니다.”
“나는 이미 대답했습니다.”
“무슨 말로서 내게 대답했습니까?”
“왕께서는 무슨 말로서 내게 물었습니까?”
“나는 물은 것이 없습니다.”
“나도 대답한 것이 없습니다.”
왕은 나선이 큰 지혜를 가진 인물임을 곧 알아차렸다.
왕이 말했다.
“내가 비로소 많은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같도다.
날이 어두워지려고 하니 내일 나선을 청해서 궁중에서 서로 질문을 주고받는 것이 어떻겠는가?”
첨미리망군은 즉시 나선에게 말했다.
“날이 어두워지니 대왕께서는 환궁하셔야 합니다.
대왕께서는 내일 나선대사를 청하실 것입니다.”
나선은 좋다고 말했다.
왕은 곧 나선에게 예를 올리고 말을 돌려 궁으로 돌아갔는데 말 위에서도 나선에 대한 생각을 계속해서 했다.
다음날이 되자 첨미리망군과 신하들은 왕에게 말했다.
“나선대사를 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청해야 할 것이니라.”
“청할 때는 몇 분의 사문과 함께 오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왕은 나선이 임의대로 몇 명의 사문과 함께 와도 좋다고 말했다.
간(慳)이라는 이름의 창고를 지키는 이가 왕에게 말했다.
“나선대사로 하여금 열 명의 사문과 함께 오도록 해야 좋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 번을 말했다.
왕이 화를 내며 말했다.
“어찌하여 나선으로 하여금 열 명의 사문과 함께 오도록 하는가?”
왕이 말했다.
“너의 이름은 ‘간’인 것처럼 왕의 물건을 너의 물건처럼 아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은 좋다.
그러나 어찌하여 너는 내 뜻을 거역하는가?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가히 불쌍히 여겨 너의 죄를 사해 주겠다.
내가 지금 국왕의 입장으로 사문에게 공양을 흡족히 못 올리겠는가?”
간은 몹시 두려워하며 다시는 말을 못하였다.
첨미리망군은 나선의 처소에 가서 예를 올린 후에 말했다.
“대왕께서 나선을 청하십니다.”
“대왕께서는 내가 몇 명의 사문과 함께 가도 좋다고 하셨는가?”
“나선대사께서 몇 분의 사문과 함께 오시든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나선은 곧 야화라(野羅) 등 80명의 사문과 함께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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