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오성취정(五星聚井)
한 나라 원년에
“다섯 별이 동쪽에 있는 정성에 모였다.”고 한 데 대하여 고윤(高允)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금성과 수성은 언제나 태양에 붙어다닌다.
겨울 10월에는 태양이 아침이면 미성과 기성에 있다가 저녁에 신방 남쪽에 지나고 나서 동쪽 정성이 비로소 인방 북쪽에 올라오는데, 두 별이 어떻게 태양을 등지고 다닐 수 있으랴?” 하였다.
그의 말은 과연 옳다.
한 나라 갑인력에 의하면, “원년에 태양이 견우성에 있다.” 고 하였다.
이것을 가지고 추측 고찰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듯하다.
요즈음 천문을 관측하는 사람들이 그것이 잘못되었다고만 할 뿐 어째서 잘못되었는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므로 보는 사람이 의심을 갖게 된다.
최호(崔浩)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를 고찰하여 “이보다 3개월 앞서 있었던 사실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믿기가 어렵다.
금성과 수성뿐 아니라 목성과 토성의 진행조차도 일정치 아니하니 역사의 기록에서 이것이 증명된다.
그런만큼 어떻게 그 다니는 속도를 대중할 수 있겠는가?
29. 동국지맥(東國地脈)
유주와 병주에 있는 물이 옥하인데, 옥천산에서 발원하여 북경으로 흘러들어 나와서는 대통하와 노구하와 합류된다.
노구하는 대동부 상건산에서 출발하여 태항산을 경유하여 순천 경내로 들어왔다가 노구교로 나와 통주까지 이르러 백하를 경유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지금의 백두산은 중국의 국경 밖에서 동남쪽으로 내려왔다.
그 큰 줄기의 서쪽으로 흐르는 물은 모두 발해로 들어간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서해이다.
유주·정주는 북경의 동북방에 위치한다.
《서경》 주에
“기주 동쪽에 항산이 있는 지역이 정주요 그 동북방인 의무려산(醫巫閭山)이 있는 지역이 유주다.” 하였고, 또
“청주의 동북 지방인 요동 지역을 따로 떼어서 영주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그것이 정확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지금 몽고의 국경 밖은 곧 글안(契丹 거란)의 경내이다.
그런즉 순 시대의 12주는 글안과 선비의 지역까지를 포함한 것이다.
요동에서부터는 하나의 국면이 형성되었다.
한 갈래는 뻗어 나와 바닷속으로 들어가 서향의 국면이 되었는데, 그 큰 줄기는 두류산에서 끝났고, 바닷가를 따라 내려간 한 줄기는 빙빙 돌아서 두류산의 동쪽 갈래와 모여졌는데, 물이 한 줄기도 갈라져 나가지 아니하였다.
이곳은 또 우리나라의 별개의 국면으로 개성과 서울의 왼쪽 방위선이 되었고, 그 서북방으로 뻗친 큰 줄기는 압록강을 따라 서남방으로 달려서 의주까지 갔으며, 그 한 가닥은 설한령에서 갈라져서 대동강을 따라가다가 삼화현까지 갔으며, 가장 남방으로 뻗친 줄기도 설한령에서 갈라져서 저탄강을 따라가다가 해주에서 그쳤다.
구월산에서 나오는 물은 모두 북쪽으로 흐르니 그 산기슭이 모두 북쪽으로 꺾여져서 개성과 서울을 두 수도의 국면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지리적인 맥락의 대강이다.
30. 선비산맥(鮮卑山脈)
백두산의 줄기는 유주·영주·병주의 3개 주의 밖에서 왔고, 또 그 밖에 있다.
오호시대에 선비족이 제일 강했는데, 산 이름을 가지고 그 종족의 명칭을 붙인 것이다.
아마 이것이 백두산의 출발점이 된 듯하다.
백두산 내외에 있는 종족을 모두 숙신이라 하며 그 서남방의 줄기는 조선이다.
그 영역이 처음에는 요동 전역에 걸쳤으며, 요동의 땅은 모두가 선비산의 지맥이었다.
조(朝)라고 한 것은
“아침에 해가 떠오른다.”는 뜻의 아침이다.
아침이란 곧 동쪽이란 말이다.
천하에서 동쪽의 끝이 곧 조선이다.
요 시대에,
“공공이 힘을 모아서 공적을 나타냈다.”고 하였다.
공공(共工)은 사공(司空)에 소속된 관리이다.
그의 직무는 국가의 토지를 관장하는 것이니, 본래 황무지를 개간하는 관리이다.
그런즉 그가 “힘을 모아 공적을 나타내었다.”는 것은 국토를 개척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순(舜)이 12개의 주를 창설한 사실은 그 이전에는 없었던 사실이었으며, 기주 동북방에 따로 유·병·영의 3주를 설치하였으니, 이것이 곧 그가 나타내었다는 공적이다.
우공(禹貢)의 9주에 와서는 이 3개 주는 제외되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아마도 무력으로 토지를 확장시키고 보니 영토만 넓고 백성이 피폐하였을 것이다.
그의 죄상은 곧
“이론으로는 성립되나 실제 운영에는 맞지 아니하여 제(帝)의 명령을 어긴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禹)는 이 지역을 폐기하였다.
네 사람의 죄를 처벌할 때에 공공(共工)은 유주에 유배하였으니, 그 지역에 유배한 것은 곧
“실제 운영에 맞지 아니하며 국가의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을 백성에게 보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후세에 내려오면서 점점 잘 복종하여 본토 사람과 다름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주가 천하를 차지했을 때에 황제의 후손을 유주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였으니, 이것은 그 공적을 나타낸 성과라 할 것이다.
31. 성토탁개도(星土坼開圖)
여섯 쪽으로 된 방성도는 서양에서 나온 것이요, 중국 사람이 미처 생각해 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섯 쪽의 내부가 모두 중앙이 볼록한 것이 수레 뚜껑처럼 되어 있으니, 반듯이 펴서 평면으로 그린다면 중앙은 좁아들고 옆은 넓게 되기 때문에 위아래의 양쪽 부분을 쪼개어서 열두 쪽으로 만들어야 모두 중심부가 넓고 양쪽 머리가 좁아져서 길고 짧은 상태가 모두 원형태를 나타내게 된다.
중국 사람은 남극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은하가 동북방으로 머리를 두고 서남방으로 꼬리를 두어서 둘레가 반원형의 고리옥처럼 되어 한쪽이 트여 있는 줄로만 알았지 그것이 남쪽으로 돌아서 북쪽으로 제자리 돌기가 되어 둥근 고리처럼 중간이 조금도 끊어진 곳이 없다는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이러한 이치에 의거하여 연구한다면 그 이유는 자명하다.
물과 불이 교류되지 않는다면 모든 물건이 생장할 수 없을 것이다.
은하는 물이요 태양은 불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이것이 없이는 변화가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니, 《주역》에,
“물과 불은 서로 충돌되지 않는다.”는 것이 곧 이를 말한 것이다.
황도는 태양의 궤도요 은하는 물의 궤도이다.
적도는 그 중앙에 위치하여 하늘의 중심부가 되어 있고
태양의 궤도는 여름에는 북쪽, 겨울에는 남쪽으로 돌아서 각기 반호형을 이루고 한데 맞추어 놓고 보면 두 개의 활을 한데 합친 것과 같아서 한 가닥의 줄이 끝없이 제 바퀴로 돌고 있는 것과 같다.
북쪽으로 돌 때에는 춘분에 강루의 위치에서 시작하여 하지에 순수의 위치에서 최고에 달하며, 추분에 수성의 위치에서 끝난다.
남쪽으로 돌 때에는 추분에 수성의 위치에서 시작하여 동지에 성기의 위치에서 최고에 달하며, 춘분에 강루의 위치에서 끝난다.
은하는 태양과 서로 교차되어 봄에는 북쪽, 가을에는 남쪽으로 돈다.
북으로 돌 때에는 하지에 순수의 위치에서 시작하여
춘분에 강루의 위치에서 최고에 달하며
추분에 수성의 위치에서 끝난다.
이것 또한 두 개의 활 모양이 한 줄로 연결된 것과 마찬가지다.
모두가 적도를 궤도로 삼으며
황도는 내부에 위치하여 최고점과의 거리가 각각 64도에 달하며
은하는 외부에서 최고점과의 거리가 각각 22도에 달한다.
그들이 서로 마주치는 때는 동지와 하지이다.
이론상으로 보면 태양은 하늘보다 하루에 1도씩 늦어서 12개월에 제자리에 돌아오는데, 그의 진행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간다.
은하는 움직이지 않는 듯하지만 그 기운은 반드시 옮겨지고 있는 것이니, 아마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듯하다.
은하가 순수(鶉首)의 위치에서 두 갈래의 궤도로 나누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순수의 위치에서 불기운이 왕성하기 시작하면 물기운은 저절로 분산되고, 강루의 위치에서 기운이 약해지면 물기운은 다시 뭉쳐지는 것이니, 이는 당연한 이치이다.
지금 바닷물이 대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고리나 마찬가지이며 그 중앙부의 가장 넓은 지역이 중국에 해당하고 북쪽 끝으로 갈수록 차츰 좁아지고 있는 것과 서로 대조해 보면 이것이 증명된다.
32. 태음(太陰)
화식전에,
“태음이 묘에 있으면 풍년이 들고 다음해는 쇠악하며, 오에 이르면 한재가 들고 다음해는 좋으며, 유에 이르면 풍년이 들고 다음해는 쇠악하며, 자에 이르면 크게 한재가 들고 다음해에는 좋으며 물이 진다.” 하였고
그 주에,
‘해가 바뀐 뒤에 이진이 태음이다.’ 했는데, 지금의 역서에는,
“해가 바뀌기 전의 이진이다.” 하여 이와 맞지 않는다.
역서의 방법이 다르다 할지라도 풍년과 흉년이 드는 것이야 따라서 달라질 수 있겠는가?
또 넓은 천하가 반드시 다 같지 않을 터인데, 이것을 가지고 어떻게 연사를 점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근자에 이상스러운 일이 있었다.
내가 젊을 때 마침 정해년이었는데, 노인의 말이,
“전번 정해년에 크게 수해가 났으니 이에 대비 해야 된다.” 하였다.
나는 믿지 않았더니 과연 들어맞았었다.
또 신해년이 되었는데 노인의 말이,
“전번 신해년에 큰 흉년이 들었다.” 하더니 또 들어맞았다.
그 사이가 60년이니 십이진(十二辰)과는 시간 적으로는 일치하지 않는다할지라도 마침내 일정한 계산법만 가지고 추측할 것이 아니다.
내가 또 생각하니 연·월·일·시는 원·회·운·세와 같아 운명 감정가들이 사주팔자를 가지고 서로 분수를 조절 추측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연·월·일·시는 또 운과 세안에 있으면서도 각기 기본과 지엽이 있어서, 해는 같아도 세가 다르며 세가 같더라도 운이 다르게 될 것이다.
사마천은 다만 그 당시에 들어맞는 것만 가지고 말한 것인지?
그러나 그의 설은 마침내 믿을 수가 없다.
33. 성수해(星宿海)
황하가 곤륜산에서 나온다는 것은 《이아》에서 시작되었다.
원대에 성수해를 찾아가서 그것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러나
“성수해의 근원은 곤륜산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산의 남쪽을 통과한 뒤에 굽이쳐서 산 동쪽에 이르고, 다시 북으로 흘러서 차츰 서쪽으로 돌다가 산의 삼면을 감싸서 반원형이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성수해의 서남은 모두 높은 산이므로 곧장 바다로 흘러 들어가지 못하고 산의 동쪽으로 나오다가 다시 높은 산이 가로질렀기 때문에 북쪽으로 흐른다.
그러므로 그 골짜기 한 군데만 깊고 양쪽이 모두 산이므로 동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북으로 꺾어져서 중국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 성수라는 것이 어디에서 생겼는가?
곤륜산은 황하가 삼면으로 싸고도는 가운데 위치하여 하늘까지 높이 솟았으며 연중 계속하여 얼음과 눈으로 덮여 있다.
산이 높으면 자연히 물이 많은 법이니, 그 물이 어디로 갈 것인가?
내 생각으로는, 산이 모두 모래흙이기 때문에 물이 많이 속으로 스며들고 흐르지 않으며, 스며든 물은 마침내 지면으로 솟아오를 것이다.
또는 땅속에 텅 빈 동굴의 세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산골짜기에 깊은 동굴이 있는 것을 보아 짐작할 수 있다.
동굴 안에는 못과 흐르는 물이 있는데 그 근원은 측량할 수 없다.
이런 물이 결국 어디로 갈 것인가?
성수해라는 것은 곤륜산의 여러 물이 쏟아져 모여서 이루어진 것일 터이니 이렇게 본다면 그 물이 이 산에서 나왔다 해도 틀린 것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근처의 작은 물 큰물이 모두 합류가 되었는데 성수해는 가장 멀리서 흘러온 것뿐이며 물이 누르고 흐린 것도 모래와 진흙이 섞여 나온 때문임에 불과하다.
그러면 이런 것이 어디서 생기는가?
중간에 양쪽 언덕이 매우 좁아서 여우가 건너뛸 정도이나 그 하류에 가서는 깊고 넓으나 물이 숨어서 흘러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다시 꺾어져서 북으로 흐를 때에는 지형이 반드시 가팔라서 급하게 흐르게 되므로 물이 누르고 흐려져서 맑지 못한 것이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서역에 대류사가 있는데, 이는 중국 북쪽에 있는 사막은 문제가 아닐 정도로 크다 한다.
그러니까 지세나 흙의 맥이 그렇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간혹 물이 맑은 경우가 있음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여러 갈래의 물이 전부가 흐린 것이 아니고 어떤 한 갈래의 물만이 흐리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수와 위수가 합류되면 모두 흐려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가령 산의 두 곳에서 물이 솟아 나온다고 하면 많이 솟아 나오고 적게 솟아 나옴이 때에 따라 서로 다를 것이니, 이와 마찬가지로 흐린 물줄기는 적어지고 맑은 물줄기가 넘쳐 흘러나온 결과가 아닐는지?
또는 모래와 진흙이 메워지는 수가 많을 것인데, 메워지면 물이 터져 나가지 못하여 성수해처럼 속으로 스며들고 밖으로 솟아 나오지 못할 터이니 이렇게 되면 흐린 부분이 저절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성수해는 본시 맑은 물인데, 흘러내려 오면서 비로소 흐려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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