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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선후갑경(先後甲庚)

음양학설에 의해 거리끼는 날을 따지는 일은 옛날부터 있었으니 이는 문헌에서 모두 증거를 들 수 있다. 
고괘(蠱卦)의 단에,  


 “갑에서 사흘을 앞당기며 갑에서 사흘을 물린다.”는 말이 있다.
 갑에서 사흘 앞당기는 것은 신·임·계·갑(辛壬癸甲)이요, 갑에서 사흘 물리는 것은 갑·을·병·정이다.
손괘(巽卦) 구오(九五)에,
 “경에서 사흘 앞당기며 경에서 사흘 물린다.”고 하였다. 
 경에서 사흘 앞당기는 것은 을·병·정·경이요, 
 경에서 사흘 물린다 함은 경·신·임·계이다. 
갑의 앞과 경의 뒤는 길하고 경의 앞과 갑의 뒤는 나쁘다는 것이다. 
이 갑과 경의 앞뒤라는 것은 음양학설상 삼합의 설과 일치된다. 
이것은 내가 《주역》을 설명하는 중에서 상세히 설명하겠다.
《좌전》 애공 13년에 오(吳) 나라의 신숙의가 공손씨에게 식량을 얻으러 왔다. 
유산씨(有山氏)는, 
 “수수는 없으나 거친 곡식은 있으니 만일 산에 올라가서 경과 계라고 소리친다면 허락하겠다.”고 하였다. 
 경에서 계까지는 곧 경 이후의 3일이다. 
공자가 말한바,
  “처음은 없으나 끝이 있다.”는 것이니 곧 
 “처음에 술을 가져가지 못하여 곤란을 당한 일이 있었으나 뒤에 거친 식량을 얻어오는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 
 아마 이것은 개인적으로 주고 받는 것이므로 은어를 사용했으리라고 생각된다.
 《서경》에,
 “도산에서 아내를 맞이하는데 신·임·계·갑에서 하였다.” 하였으니, 
 요순시대에도 그 이치는 마찬가지였다. 
신·임·제·갑은 신(辛)에서 갑(甲)까지이니 곧 
 “갑에서 3일 앞서 있다.”는 것이다.
 우(禹)는 아내를 맞이해 놓고 바로 가서 치수 사업에 착수할 터인즉 이보다 더 중대한 일이 없다. 
 그러므로 그 날을 택한 것이니 공자가 말하듯 
 “결과가 있으면 시작이 있는 것이니 하늘의 길이다.”라는 것이다. 
대개 하늘은 두 반경(半徑)으로 보아 북은 음이요, 남은 양인데 음이 양의 기본이 되기 때문에 그 의의가 이러하다.



54. 일월도(日月道)

적도의 둘레는 두 극 사이를 평균하게 나누고 있는데, 황도의 둘레는 반은 적도의 안으로 24도 반이 들어갔고, 반은 적도 밖으로 24도 반이 나왔다. 
 춘분에는 동으로 각성에서 5도보다 좀 모자라는 곳에서 교차되며, 
 추분에는 서쪽으로 규성에서 14도보다 좀 넘어선 곳에서 교차되며 태양도 이 위치에 있다.
 하지에는 적도와 가장 먼 거리인 24도가 되는데 이것은 두성의 지도에 있으며 태양도 이 위치에 있다. 
 동지에는 적도와 가장 먼 거리인 24도에 있게 되는데 이것은 정성(井星)의 25도에 있으며 태양도 여기에 있다. 
황도와 적도가 모두 하늘을 따라서 왼쪽으로 돌고 있는데 황도는 적도보다 하루에 1도가 느리며, 그것이 하늘을 한바퀴 돌아가자면 남극과 북극의 모양에 따른다.
 곧 태양은 하늘의 중심이 되는 둘레가 되어 움직이고 있어 하늘과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약간 느린 것이다.
 남극과 북극의 적도를 가지고 추측하면 황도의 하늘에도 극이 있을 것이다. 
그 극은 성신천극의 좌편에 있을 것이며 그 모양은 자미 성좌가 있고 태미 성좌가 따로 있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음양의 조화는 태양에 중심을 두고 있다. 
태미성의 제좌는 공경과 같은 것이니, 궁중의 왕실에 대하여 밖으로 행정부가 있는 것과 같다. 
인체로 말한다면 자미는 중심이니 신장이며 태미는 행정부이니 심장이다. 
북두는 그 중간 역할을 하는 것이니 목구멍과 혀와 같은 존재이다.
 달이 다니는 9개의 노선도 황도를 비스듬히 끼고 돌아간다. 
13일 몇 시간 동안은 황도 밖으로, 13일 몇 시간 동안은 황도 안으로 돈다. 
 안과 밖을 통해 황도와의 거리가 가장 먼 곳이 6도이다. 
그리하여 합하여 27일 몇 시간 동안 달은 황도에 있는 것이다. 
 그믐과 초하루 사이에는 후퇴하는 것이 가장 느리어서 하루에 12도보다 약간 더 가며 보름이 되면 매우 빨라져서 하루에 14도 반 조금 더 간다.
 그리하여 27일 반을 조금 지나서 하늘과 만난다. 
 흑도(黑道)·적도(赤道)·백도(白道)·청도(靑道)가 각기 노선이 둘씩 있어서 황도와 함께 9개의 노선이 된다. 
대체로 황도를 따라다니면서 가고 오며 늘었다 줄었다 하는 계기를 이룬다. 
이것이 음양의 이치이다.



55. 북신(北辰)

북극이란 북극성의 머리의 위치로서 변동하지 않는 곳이니 이것이 북신이라는 것이다. 
 선기옥형을 가지고 이것을 측량하면, 제·양 시대의 조긍(祖暅)이 측량할 때는 그 변동되지 않는 곳이 1도가 조금 넘는 정도였는데, 송 희령 때에 심존중(沈存中)의 측량에서는 3도 정도가 떨어져 나왔고, 원 세조 지원 때에 곽수경(郭守敬)이 측량할 때 3도 반이나 떨어졌다.
 밤에 북극성이 그 둘레를 도는 것을 보고 그 주위를 따라가는 것을 보면 직경이 7도이다. 
공자는,
 “북신은 제자리에 있고 모든 별은 여기를 향하고 있다.”고 하였다. 
별 밖에 있는 신(辰)으로서 제자리에 있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곽수경에서 조항까지가 대략 1백 년인데 별이 3도 반을 옮겼으니 과거의 상황도 알 수 있다. 
조항에서 공자 때까지가 또 대략 8백 년이며 그 당시에는 별이 북신에서 떨어져 나오지 아니하였다. 
그렇다면 공자 이전에는 별이 밖에서 조금씩 안으로 들어갔다가 끝까지 가서 다시 조금씩 밖으로 나온 것이다.
술가에서,
 “북극성이 동쪽으로 옮긴다.” 하는데, 북극성은 하늘에 가득한 경성과 다 같은 하늘에 있는 것이니, 경성이 조금씩 동쪽으로 옮겨간다면 북극성만이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옛적에, 
 “하늘이 조금씩 동쪽으로 옮겨간다.” 하였으니, 75년마다 1도의 차가 생긴다는 것이며, 해마다 조금씩 차이가 생겨 서쪽으로 옮긴다는 것은 황도에 나타나는 분·지(分至 춘·추분 동·하지)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의 천문학에서는,
  “황도는 영원히 변동이 없고 다만 경성만이 동쪽으로 조금씩 차이가 생긴다.”고 한다. 
경성의 차이는 2만 7천 년을 지나서 한바퀴를 돌아간다. 
 북극성이 주 말기에서 원 대까지 1천 6백여 년 만에 3도 반의 차가 생겼다면 2만 7천 년 동안에 북극성은 약 40도 동쪽에 옮겨가며 한바퀴 돌게 된다. 
 과연 그러한지 어쩐지는 알 수 없다. 
 “해마다 조금씩 차이가 생겨서 서쪽으로 옮긴다.”는 설을 현대의 천문학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56. 작두모탈(鵲頭毛脫)

7월 7일에 오동나무 잎이 떨어지면 까치 대가리의 털이 벗겨진다고 하는데 그 이치가 그럴듯하다. 
오동과 까치는 모두 금에 속하며 7월 7일이 되면 금의 기운을 받아서 먼저 벗어진다. 
털이 벗어지려면 속이 가려워서 긁고 싶기 때문에 비벼대고 부딪치고 해서 벗어지는 것이다. 
옛 경에,
 “달이 별을 따르면 곧 바람이 불고 비가 온다.”고 하였으나 7월 7일의 비는 달과 관계되는 것이 아니다. 
 하늘은 1년 사이에 차이가 있고 달도 노선을 옮겨가기 때문에 한자리에 정해져 있지 않다.
 하늘이나 해와 달이 모두 따로따로 다니는 노선이 있으니 이것은 태양의 노선을 가지고 측정해야 될 것이다. 
 이에 대한 문헌을 본 적이 없으나 이치로 미루어 보아 그러하다. 
달이 태양보다 하루에 12도 7분씩 늦으니 7일이면 80도보다 약간 더 될 것이다. 
태양 노선과의 거리가 80도 정도에 이르면 반드시 필성(畢星)과 만나는 것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겠으나 사람이 보지 못한다. 
 그러나 달이 태양과 가까워지면 가는 속도가 빠르고 태양과의 거리가 멀어지면 속도가 느리다. 
또 그 거리에 대한 분수가 계산되어야 할 것이다.



57. 수간미곤(首艮尾坤)

《천문략》에,
 “은하수라는 것은 작은 별들이 총총히 모여 있기때문에 그 자체가 빛을 발하여 흰 비단처럼 연속되어 있는 것이다.”고 하였다. 
 서양에는 망원경이 있기때문에 관찰한 것인데 꼭 그런지 알 수 없다. 
세상 사람들은 은하가 강물처럼 가로 뻗쳐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위치에서 본다면 그 머리는 동북이요 꼬리는 서남쪽이다. 
지금 중국의 물은 모두 동쪽으로 황하로 들어가서 서북에서 동남쪽으로 흘러서 바다에 들어간다. 
 우리나라는 큰 강이 셋이니 압록강·대동강·한강이다. 
압록강이 격, 대동강이 산, 한강이 대다. 
이 세 강은 모두 동북에서 서남쪽으로 흘러서 하늘과 서로 들어맞는다. 
《시경》에, 
“높은 저 은하수 하늘에 문채를 이루었다.” 했는데, 조그마한 우리나라가 하늘의 은하수와 문채가 일치하니 이상한 일이다.



58. 일천지극(日天之極)

서양의 천문학에서는, 
 “태양 노선의 북극은 성신 노선의 북극보다 약간 동쪽이며 약간 높다. 
 그러므로 그 중심부의 적도는 성신 노선의 적도에서 볼 때 반은 남쪽, 
 반은 북쪽으로 비스듬히 서로 교차 된다. 
태양의 속도는 하루에 하늘보다 1도씩 느려 하지에 적도 북쪽에 있으면서 서로의 거리가 12도가 된다. 
15일 남짓한 일자는 24기 중의 1을 지나면 곧 태양의 노선은 조금씩 남쪽으로 옮겨서 두 노선의 거리 차는 11도가 되고 추분에 와서 서로 교차 될 시기에 밤과 낮이 평균을 가진다. 
 이때부터 조금씩 남으로 옮겨서 1기 동안에 1도씩 차가 생기어 동지에 와서 12도의 차를 나타낸다. 
이때부터 또 조금씩 북으로 옮기어 6번의 기를 지나면 다시 교차기로 들어가고 또 북으로 나와서 6번의 기를 지나면 하지가 된다. 
 태양 노선의 북극은 성신 노선의 대동이기 때문에 사람으로 볼 때는 3백 65일 동안 날마다 노선을 달리하는 것 같으나 사실은 태양의 노선은 한 길뿐이어서 하늘을 한 바퀴 돌 때까지 변동되는 일이 없다. 
그렇다면 태양 노선의 북극은 성신 노선의 북극보다 동쪽으로 24도의 차가 있다.



59. 구중천(九重天)

구중천이란 말은 굴원의 천문에서 처음 나왔다. 
그것은 해·달과 다섯 별과 경성 이외에 또 한 노선이 있다는 뜻이니, 곧 서양에서 말하는 종동천이라는 것이다. 
무엇으로 증명하느냐 하면 옛적에 북극 한가운데의 별이 하루를 돌아갔다가 제자리에 오는데 그 지름이 1도라 했는데, 지금에는 3도가 된다. 
 곧 이것은 북극성 외에 다른 노선이 하나가 더 있다는 증거다. 
옛날에 하늘을 측정하기를 3백 65도 4분의 1도라 했으나 이는 대강을 말한 것이요, 사실은 4분의 1하고도 남는 숫자가 있다.
 지금 천문학에서 1만 분으로 계산한다면 그 4분의 1은 2천 5백 분이겠으나 사실은 2천 5백 75분이다. 
달이 태양보다 하루에 12도 7분이 느리다 하나 사실은 보름에는 느리고 초하루에는 빠르다. 
이것은 뒤의 사람들이 더 정확하다. 
여러 학자들은 《서경》의 주만 가지고 얘기하기 때문에 이를 적어 놓는다.



60. 중서력삼원(中西曆三元)

서양의 천문학은 중국으로서는 따를 수 없다. 
서양이 첫째요, 회회가 그 다음이다. 
하늘을 측정하는 데 3백 60도라고만 하고 나머지 숫자는 계산에 넣지 않고 다만 태양이 다니는 거리만으로 기준을 삼고 있는데, 이는 하늘과 관계가 없는 것이다. 
 육갑도, 윤월도 없고 윤일만 있다. 
그 밖의 해 내의 여러 나라에서는 윤달을 두지 않은 곳이 많다. 
중국 천문학에서 윤달을 설치한 것도 요에서 시작되었고 제곡 이전에는 역시 없었다.
 역서를 만든 사람은 사람이 알기 쉬운 방법을 사용하였다. 
알기 쉬운 방법은 태양을 가지고 기준을 삼는 것이 가장 좋았다. 
윤달을 두는 것은 또한 달을 기준으로 삼은 데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요는 이를 발견한 것이며 서양 사람들이 미처 모른 점이다. 
지금의 만분력법으로는 하루를 1백 각으로 나누고 1각을 1백 분으로 나누어서 모두 1만 분이 된다.
 천·지·인 3원 설은 오군 진성천양의 기록에서 나온 것이요, 회회력(回回曆)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의 설에 의하면, 3원은 각각 2천 4백 19만 2천 년으로, 가정 갑자년은 인원에서 4백 56만 6천 8백 40년이 지났다는 것이다. 
 이는 태을 수의 주기를 찾아보려는 것이다. 
성천은 바로 원 요범 황의 스승이다. 
요범은 임진란 때에 우리나라에 와서 글을 만들어 팔도에 돌린 사람이다. 
 대체로 천원에서 가정 갑자까지가 5천 2백 95만 8백 40년이고, 가정 갑자에서 또 1천 9백 62만 5천 1백 60년을 지나야 3원이 끝난다는 얘기이다. 
 지금 사람이, 12만 9천 6백 년이면 한 번씩 개벽이 된다고 하니 소견 없는 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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