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좌에 올라 주장자를 세 번 치고 이르시기를
비가 푸른 산 천만 리에 개이니
온 누리엔 봄 소리가 가득히 울려 온다
雨過靑山千萬里
虛空宇宙滿春聲
법문은 여기에 다 돼 있다.
이밖에 것을 구하면 고깃배는 이미 낙동강을 지나갔는데 고기를 사려고 하는 것처럼 느린 것이다.
신라의 대덕 자장율사(慈藏律師)의 성은 김씨로, 진골 귀족 계층인 소판(蘇判) 무림(茂林)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 그의 이름은 선종랑(善宗郞)이었다. 그는 출가하여 작은 집을 짓고 수행에 전념했으며, 지극한 수행을 위해 알몸으로 좌정한 채 움직일 때마다 나뭇가지에 몸이 찔리도록 하고, 머리를 들보에 매어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독특한 수행 방식을 실천했다.
그 당시 조정에서는 재상 자리가 공석이었고, 자장이 유력 후보로 여러 차례 불렸으나 그는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 이에 왕은 칙명을 내려 "나오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자장은 이 말을 듣고 단호히 말했다.
"나는 차라리 하루 동안 계율을 지키다 죽을지언정, 계율을 어기며 백 년을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 소신을 전해 들은 왕은 결국 자장의 출가를 허락했다. 이 자장율사는 무려 500생 동안 청정비구로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부처님께서 신라의 자장이 오면 정골사리(頂骨舍利)와 패엽경(貝葉經)을 주라고 문수보살에게 직접 부탁했다고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부처님의 사리가 무려 팔곡사두(八斛四斗)에 달하는 양으로 발견되었고 이를 서로 더 많이 얻으려는 싸움이 벌어졌다고 한다. 천상에서는 겨우 한두 개의 사리만 가져갈 수 있었는데, 부처님께서는 천상에는 이미 복이 많으니 필요한 만큼만 봉안하라는 뜻을 남기셨기 때문이다. 만약 마음대로 가져가게 했다면 신통력으로 남김없이 가져갔을 것이라고 한다.
선덕여왕 5년(636년), 자장스님은 제자인 승실(僧實) 등 열여 명과 함께 당나라 청량산으로 가서 문수보살상 앞에서 기도에 몰두했다. 어느 날 밤 꿈속에서 한 범승(梵僧)이 다가와 범어(梵語)로 법문을 들려주었지만, 그는 그 내용이 이해되지 않았다. 다음날 범승이 나타나 물었다.
"어젯밤 내가 들려준 법문을 기억하는가?"
"모르겠습니다."
범승은 다시 법문을 설명하며 자장을 깨우쳤다.
알거라 온갖 법엔
스스로 그 성리가 없도다.
이와 같이 법의 성리를 알면
이것이 노사나의 경지로다
了知一切法
自性無所有
如是解法性
卽見盧舍那
그 후 문수보살을 친견한 자장은 부처님 정골사리를 가지고 귀국하여 통도사에 봉안했다. 통도사가 세워지기 전, 그 터는 큰 연못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아홉 마리의 용이 이곳을 지키며 풍운조화를 일으켰기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자장은 그 연못을 메우고 탑을 세우며 절을 창건했다.
이 통도사는 교통이 좋아 많은 중생들이 참배할 수 있는 곳으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자장율사는 처음 통도사를 창건할 때 자장암(慈藏庵)에 머물며 절을 세웠다고 알려진다. 후일 자장암의 감원 스님이 법당을 중수한 뒤 주련의 글씨 하나를 부탁하자, 자장은 이에 게송(偈頌)을 지어 선사했다.
자장스님 원력을 그 누가 능히 알랴
예로부터 이름이 전해 영원히 빛나네
흐르는 물 푸른 산밖엔 물어 볼 곳이 없음이여
꽃은 붉고 버들은 푸른데 새는 가지에서 노래하네
慈藏願力豈能知
自古名傳永世奇
流水靑山無問處
花紅枊綠鳥歌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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