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자(無字) 화두는 잘못 알고 깨닫는 알음알이를 두드려 없애는 무기(無記)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화두에 옛 사람이 열 가지의 병을 말하였다.
1. 있다, 없다 하는 것으로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2. 참으로 없는 무(無)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3. 무슨 도리로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4. 뜻으로 이리저리 헤아려서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5. 미간을 찡그리고 눈을 깜짝깜짝하는 곳에 집을 짓고 뿌리를 박지 말아야 한다.
6. 다른 사람의 말에서 찾으려 하거나 말재주로써 활계(活計)를 짓지 말아야 한다.
7.일 없는 굴 속에 주저앉지 말아야 한다.
8. 불조(佛祖)의 향상관(向上關)을 거기(擧起)하는 곳에서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9. 문자 중에서 인증(引證)하지 말아야 한다.
10. 미(迷)한 것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
또한 조주 무자(無字)에 대하여 예로부터 각각 자기의 이견(異見)을 붙여서 어떤 이는 없다는 공(空)에 집착하고, 어떤 이는 있다는 유(有)에 집착하고, 어떤 이는 단견(斷見)에 집착하고, 어떤 이는 상견(常見)에 집착한다. 이렇게 하여 없는 것에 집착한 이는 말하되, 조주가 무(無)라고 함은 만법이 본래 없음이요, 본성이 없는 것이니 어찌 있다고 의심하겠는가 하고, 있다는 유(有)에 집착한 이는 조주가 무(無)라고 한 것은 있는 것을 가르침이다. 없다고 말하는 무(無)가 없는 가운데 곧 있다는 것이니 어찌 또 의심하겠는가 하고, 단견(斷見)에 집착한 이는 조주의 무자(無字)는 만유가 다 공하여 하나도 가히 취할 것이 없으니 무엇을 다시 의심하리요 하고, 상견(常見)에 집착한 이는 조주의 무자(無字)는 우리의 참된 성품이 항상 있어 적연(寂然)하여 움직이지 않으니 무엇을 의심하리요 한다.
이렇게 자기들이 집착한 소견대로 주창(主唱)하고 망견망상(妄見妄想)으로 말하여 다른 사람들을 그릇 지도하기도 한다.
조주 무자(無字)의 기연과 화두 참구의 병통을 말하였으니, 1700가지의 공안(公案) 가운데 어떤 화두를 궁구하든지 이 무자(無字) 화두 병통에 의거하여 자기 공부에 지장 없이 잡드려가게 하고, 그 밖에 의심되는 일이 있으면 선각자(先覺者)에게 자주 물어야 한다.
화두가 일부러 후래 사람으로 하여금 의심나도록 만든 것이 아니라 옛 조사가 그 당시에 격식 밖으로 법을 말한 것이 이사불이처(理事不到處)가 되어 보통 사람이 모르니, 무슨 화두와 무슨 화두를 궁구하여 수행하라 하였으나, 화두를 간택하여 다른 사람을 지도할 때에 그 사람 근기(根機)를 보아서 모든 것을 세밀히 가르쳐 주어야 몸에 병도 나지 않고 세월도 헛되이 보내지 않고 고생을 안 하게 된다.
상근기(上根機)는 눈을 마주쳐 보기만 하여도 도를 알게 되고, 말하기 전에 벌써 도를 깨닫게 되고, 또한 일언지하(一言之下)에 생사돈망(生死頓忘)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예전에 귀종조사(歸宗祖師)에게 누가 묻기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네가 곧 부처이니라.” 하고 대답하니
그 사람이 깨달았다.
“어떻게 보임(保任)합니까?”
“조그마한 티라도 가린 것이 눈에 있으면 허공의 꽃이 어지러이 떨어지느니라(一翳在眼空花亂墬).” 하였다.
그 사람은 이러한 간단한 말에 의하여 보임(保任)하는 법까지 진실로 다 알았다. 수도하는 사람이 수행하다가 물아(物我)가 둘이 없고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둘이 없고, 맑고 더러움이 둘이 없는 조금 공한 이치가 나타나면, 옳다, 내가 깨달았다 하고 법당의 등상불(等橡佛)을 내어다가 파괴도 하고, 정토(淨土)와 예토(穢土)가 본래 없다 하고 법당 마당에서 대소변을 보며, 상하 노소 없이 주먹으로 때리기도 하고, 법을 물으면 주먹이나 쑥쑥 내밀기도 하고, 《전등록》, 《선문염송》에 있는 말이나 따서 사용을 한다면 자기에게 큰 손해인 줄 깨달아야 한다.
수도하는 사람이 그 식심(識心)이 맑아지면 방 안에서 해와 달과 별을 보기도 하고, 몇백 리 밖의 말소리도 들리고 그곳 모든 경계가 보여지게 되면 내가 도를 알았다 하여 환희심으로 매일 그 경계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기도 하고, 또 그것만 보고 듣고 앉았고, 그뿐만 아니라 사심(邪心)과 망정(妄情)이 생겨서 술 먹고 고기 먹는 것이 지혜에 방해되지 않는다 하고, 수행하는 사람이 함부로 행동하는 수도 혹 있는데, 이것은 지도자가 없는 까닭이다.
설사 지도자가 있더라도 아만과 고집이 있으면 듣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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